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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고집부리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분명 멸망할 부류이다. 너희는 오로지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할 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한 번도 청종한 적이 없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너희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무엇과 맞바꾸겠느냐? 죄짓기를 반복하고 입술로 죄를 자복하는 너희의 성심이냐?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바치겠느냐?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자산이냐? 너희는 무엇으로 재림한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느냐?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이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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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7/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지, 자기 기분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말씀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을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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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6/2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지, 자기 기분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말씀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을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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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발췌문 21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9)








6/1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75)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고집부리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분명 멸망할 부류이다. 너희는 오로지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할 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한 번도 청종한 적이 없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너희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무엇과 맞바꾸겠느냐? 죄짓기를 반복하고 입술로 죄를 자복하는 너희의 성심이냐?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바치겠느냐?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자산이냐? 너희는 무엇으로 재림한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느냐?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이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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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속시대 사역의 실상>(발췌문 23)


성육신한 예수에게는 감정이 없었지만, 늘 제자들을 위로해 주고 공급해 주며, 도와주고 보살펴 주었다. 그는 많은 사역을 행하면서 수없이 고통을 겪었지만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았고, 사람의 죄를 한결같이 인내하며 포용해 주었다. 이에 은혜시대 사람들은 그를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당시의 모든 사람이 본 예수의 속성(원문: 所有所是)은 긍휼과 자비였다. 그는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았고, 그 과오를 잣대로 사람을 대하지도 않았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그는 늘 풍성한 음식을 베풀어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죽은 자를 다시 살려 주었다. 사람들에게 그를 믿고, 그가 행한 모든 것이 진실함과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 그는 심지어 썩은 시체를 살리기까지 하였다. 이를 통해 죽은 자도 그의 손에서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처럼 그는 언제나 사람들 가운데서 묵묵히 참으면서 구속 사역을 행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의 속죄 제물이 된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십자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자신의 긍휼과 자비, 거룩함을 모두 인류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그는 언제나 관용으로 사람을 대하고 보복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회개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사람에게 인내와 포용과 사랑을 갖고, 그가 걸은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넘어섰다. 그가 행한 사역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냄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사역은 모두 그의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는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다. 가난한 자를 풍족하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했으며, 눈이 먼 자를 보게 하고 귀가 먼 자를 듣게 했다. 심지어는 가장 비천하고 가난한 자, 즉 죄인을 멀리하지 않고 불러 모아 그들과 동석하며 늘 참아 주었다. 나아가 “목자는 양 백 마리 중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찾으면 몹시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기까지 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자를 사랑하기를 어미 양이 새끼를 사랑하듯 했다. 우매하고 무지한 그들은 예수의 눈에 모두 죄인이었으며, 사회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는 도리어 남들이 무시하는 그 죄인들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여겼다. 예수는 그들을 사랑했기에 제단에 바쳐진 어린양처럼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그들의 종이 된 것처럼, 그들에게 마음대로 사용되고 죽임 당할지라도 무조건 순종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였다. 하지만 그는 높은 곳에 서서 사람을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은 긍휼과 사랑이 아닌, 혐오와 반감으로 대했다. 그가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때로 훈계하고 질책했을 뿐, 그들 가운데서는 구속 사역을 행하지 않았고 이적과 기사도 행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그는 그 죄인들을 위해 끝까지 참고 십자가에 달려 온갖 모욕을 받은 후에야 온 인류를 완전히 구속했다. 이것이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이다.

예수가 사람을 구속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계속 죄 속에서 살면서 죄의 자손과 귀신의 후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땅은 사탄이 기거하고 살아가는 곳으로 변했을 것이다. 구속 사역을 행할 때는 반드시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어야 했다. 그래야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마지막에 온전케 되어 완전히 얻어질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 단계의 사역이 없었다면, 6천 년 경륜도 전개될 수 없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의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기만 했다면, 사람의 죄는 온전히 사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땅에 와서 3년 반 동안 사역하며 구속 사역의 반만 완수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었고, 그 악한 자에게 넘겨진 후 십자가의 사역을 완수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관했다. 그는 사탄의 손에 넘어간 뒤에야 인류를 속량할 수 있었다. 예수는 세상에서 33년 반 동안 비웃음, 비방과 버림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머리 둘 곳도 안식할 곳도 없이 고난을 겪었다. 그러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로 인해 온전한 자기 자신, 즉 거룩하고 무고한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온갖 고난을 다 겪었던 것이다. 집권자들은 그를 희롱하고 채찍질했으며, 병사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끝까지 참으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구속했다. 그러고 나서야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행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변할 뿐, 율법시대는 대변하지 못하며 말세 사역도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한 사역의 본질이며, 인류가 겪은 두 번째 시대인 구속시대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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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6)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6)







6/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심판에서 도망친 결과>(가사 버전)



1
무엇이 심판이고 진리인지 아는가?
이것을 안다면 너는 순순히 하나님의 심판 받아야 하리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칭찬받을 기회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기회 영원토록 잃게 되리
하나님은 입으로만 충성하고 그를 배반한 자 놓치지 않고 
이들의 영, 혼, 육을 모두 징벌하시리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드러내시는 목적과 그의 공의 성품이 아니겠는가?
(공의의 하나님)

2
심판만 받고 정결케 되지 못한 자 심판 사역에서 도망친 자는 영원히 하나님께 버려지리
하나님을 배반한 죄는 바리새인보다 더 무겁고 많으며
봉사할 자격도 없는 이들은 영원한 징벌 받으리
하나님은 입으로만 충성하고 그를 배반한 자 놓치지 않고 
이들의 영, 혼, 육을 모두 징벌하시리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드러내시는 목적과 그의 공의 성품이 아니겠는가?
(공의의 하나님)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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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 (솔로 찬양)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고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들이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네가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하나님은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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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유튜브에서 온 메시지를 통해 주님을 다시 만나다


한국 리란

때때로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몇 달 전, 저는 예상 밖의 기쁘고 놀라운 일을 겪었습니다. 바로 유튜브에서 온 메시지를 통해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6월의 어느 날,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베갯머리에 놓아둔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꾸짖는 말씀이 보였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 21:13) 저는 지금의 교회 모습이 마치 율법시대 말기 성전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에 우려를 금치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항상 우리에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설교하지만, 그들은 신도를 위해 기도한다는 명목으로 뇌물을 받았고, 때로는 뇌물의 크기에 따라 기도 시간의 길이도 달랐습니다. 교회는 원래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이지만 지금은 신도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신도의 수가 나날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목회자들은 설교에 심혈을 기울여 어떻게 주님의 양을 잘 목양할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의 사회자 노릇을 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회자들은 주의 도에서 벗어났고, 교회는 완전히 세속에 물들었어. 마치 율법시대 말기의 성전처럼 강도의 소굴이 되었는데,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런 교회에 나타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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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도를 고찰하다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띠리링…’ 알람 소리에 생각이 끊긴 저는 휴대폰을 들어 알람을 끄려다가 무의식중에 유튜브에서 온 메시지를 보게 되었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라는 익숙한 듯한 글자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교회의 이름은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곧바로 생각이 나지 않아 매우 답답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동영상을 구독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 교회의 메시지를 보낸 거지?’ 이때, 저는 불현듯 한 달 전에 친구가 저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데리고 가서 말씀을 들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무척 새롭고 빛 비춤이 있는 데다 성경에도 부합했고 귀와 눈이 확 트였습니다. 저는 계속 알아보려고 했지만 친구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하는데, 바로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말세에 새로운 사역을 하시고,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만 보고 성경을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목사님이 예배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 안에 있고, 성경 밖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없다고 하셨어. 게다가 역대 신도들도 모두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믿었잖아. 주님을 믿는 게 바로 성경을 믿는 거야. 성경을 떠나서 어떻게 주님을 믿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친구가 다시 저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초청했지만 거절했습니다. 휴대폰에 온 메시지를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구독하지도 않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관한 메시지를 받다니, 설마 이게 주님의 계획인가?’ 하지만 저의 고정 관념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동영상을 열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게 그 후로 연이어 며칠 동안 저는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새로운 업로드 영화와 찬양 동영상을 받았고, 속으로 ‘설마 이게 정말 주님의 인도일까? 주님의 뜻이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동영상을 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메시지가 제 휴대폰에 계속 뜰까요? 그들은 당신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하는데, 그것이 정말인가요? 제가 봐야 할까요? 주님, 저를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그래, 주님이 오시는 일은 큰 사건이야.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겸손히 찾고 열심히 알아봐서 신중하게 분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대체 예수님의 재림인지 살펴보는 것이 마땅하잖아. 만일 주님이 정말 돌아오셨는데도 내가 찾거나 알아보지 않는다면 주님과 다시 만날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동영상을 보기로 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지만, 보고 나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웹 사이트는 내용이 아주 다채롭고 없는 게 없었습니다. 복음 영화, 합창 앨범, 뮤직비디오, 찬양, 체험 간증문 등 다양한 장르의 찬양과 복음 영화가 동시에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여 날 기다려 주소서> 이 찬양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동안 교회의 황량함 때문에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다녔던 일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었고, 특별히 공급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더 알아보고,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누가 나의 主인가>라는 복음 영화의 ‘성경과 하나님은 어떤 관계인가?’ 명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고, ‘나’와 ‘성경’을 동일시하며,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구절로 내가 말한 모든 내용을 가늠하고, 심지어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니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가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대체 무엇이냐?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들은 그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태도를 남김없이 다 드러내셨습니다. 저는 확실히 내심 성경을 다른 무엇보다 귀하게 보았고, 주님의 말씀은 다 성경에 있으며, 성경이 주님을 대표하고, 주님을 믿는 것이 바로 성경을 믿는 것이라서 성경을 떠나서는 주님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성경은 주님에 대한 증거이자 우리 신앙의 근본이고, 2천 년 동안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따라 주님을 믿었고, 아무도 성경과 주님을 분리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왜 성경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계속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한 형제님의 교제를 들었습니다.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대체 뭐가 주님을 믿는 것일까요? 무엇이 성경을 믿는 걸까요? 성경과 주님은 어떤 관계일까요? 주님이 먼저였나요, 아니면 성경이 먼저였나요? 누가 구원의 사역을 할까요? 성경이 주님을 대신해 역사합니까? 또 주님을 대표할까요? 성경을 맹신하고 숭상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인가요? 성경만 지키는 것이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인가요? 또 그것이 주의 도를 지키는 것인가요? 성경을 무엇보다도 높이 보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하고 순종하는 걸 뜻합니까? … 몇천 년간 사람들은 성경만 숭상하면서 하나님과 똑같이 대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하고 주님을 대신했어요.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사람은 없었죠. 유대교 바리새인들도 성경을 지켰지만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잖아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성경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인가요? 성경만 고집하는 것이 주의 도를 지키는 것입니까? 바리새인들이 성경은 가장 잘 알지만 하나님은 몰랐어요. 바로 그들이 진리를 가져오시고 구속 사역을 하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다들 잊으신 겁니까? 그럼 뭐가 하나님을 아는 걸까요?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 지식이 있으면 하나님을 아는 걸까요?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해석하면서 또 왜 그렇게 주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을까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순종하느냐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아는지와 또 그분에게 순종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형제님의 질문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틀림없이 먼저 주님이 있고 나서 성경이 있는 거야. 성경이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는 없어. 성경은 성경이고, 주님은 주님이셔. 아, 난 지금까지 성경이 주님을 대표하는 줄 알았는데, 성경을 주님보다 더 높게 본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자 좀 충격이었습니다. ‘주님은 주님이시고 성경은 성경이라면, 내가 목회자의 말을 듣고 성경을 숭배하며, 성경을 모든 것보다 높게 보는 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할까?’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떠나면 또 어떻게 주님을 믿는다고 하겠어? 설마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고집하는 게 잘못인가?’ 이때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성경은 하나님을 증거할 뿐이고, 주님의 칭찬을 받고 생명을 얻으려면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확실히 주님을 대신할 수 없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성경이 아니라 주님이셔. 성경을 믿는 것이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아니야! 만약 내가 무턱대고 성경만 고집하고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새 사역을 찾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일지도 몰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진리가 있어서 나의 관념과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진지하게 알아보고 찾아야 해.’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친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데려가 달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찾아가니 형제자매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인내심 있게 우리와 교제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홈페이지의 영화와 동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얻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가 있는 것도 확실히 보았고, 저의 궁금증과 문제를 해결해서 진리를 깨닫게 해 줬어요. 하지만 저에게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또 있어요. 목사님이 항상 저희에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 안에 있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근본이라서 주님을 믿으면 성경을 떠날 수 없다고요.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하고,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며, 말세에 또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고,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말씀 좀 해 주세요.”

한 자매님이 제 질문을 듣고 저에게 <누가 나의 主인가>라는 영화의 명장면,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은 다 성경에 있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영화 속의 복음을 전하는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경 신구약 전서는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만 기록됐죠. 그럼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신 말씀과 역사가 성경에 다 기록됐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율법시대에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주님이 하셨던 모든 말씀까지 다 성경에 있다고 장담하시나요? 사실 여러분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많은 말씀들이 다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하셨던 말씀에서 성경에 기록된 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율법시대의 선지서도 성경에 다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이건 다 아는 사실이죠! 근데 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다 성경에 있다고 하십니까? 이건 사실과 어긋나지 않습니까? 그럼 거짓말하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여러 번 예언하셨죠. 그럼 주님이 오셔서 하실 말씀이 미리 성경에 기록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성경에는 지난날 하나님이 하셨던 역사가 기록됐다는 거죠. 또 주님이 오셔서 구속시대의 사역을 하신 것도 구약 성경이 생기고 한참 지난 뒤에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주님이 하실 역사와 말씀이 미리 성경에 기록될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반드시 사람이 편집해야 성경이 됩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 집에서부터 심판 사역을 시작하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럼 이런 진리가 스스로 성경에 기록될까요?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를 다 하나님나라시대 성경에 수록했습니다. 바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죠. 이 하나님나라시대의 성경 내용은 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영원한 생명의 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 성경에 있고 성경 외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관점은 완전히 잘못됐고, 그릇됐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인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형제님의 교제를 듣고, 저는 이 말들이 사실과 부합한다고 느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데 참고가 될 뿐 주님을 대표할 수 없으며, 주님의 말씀과 사역은 더욱 대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경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고, 성경과 주님을 동급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성경 안에 제한하는 것은 더욱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전 두 단계 사역의 기록이며, 기록된 것은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역사일 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위대하고 풍성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성경 한 권에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 21:25)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성경에 다 기록되지도 않았는데, 저는 교계 목회자들의 주장을 따라 성경 밖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은 눈뜬장님이 아닙니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말씀교제 중 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저는 또 계속해서 보았습니다. 한 형제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제한적인 내용으로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대변할 수 없다. 4복음서를 모두 합쳐도 100장(章)이 되지 않는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일,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한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난 일, 금식에 관한 것, 기도에 관한 것, 아내를 버리는 일에 관한 것, 예수의 출생, 예수의 족보, 예수가 제자들을 세운 것 등등 얼마 되지 않는 것들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보배로 여기고 지금의 사역과 대조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일생 동안 행한 사역이 그것이 전부인 듯, 마치 하나님이 그런 사역 외에는 다른 사역을 못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도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도를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을 봐야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알고 싶다면 신약 성경을 봐야 한다. 그렇다면 너는 말세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늘날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오늘날의 사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라 성경에 미리 ‘기록’해 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따로 중국에서 다시 선민들을 택해 이들에게 사역하며 땅에서의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가 본 적이 없는 길이고,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도이며, 아직까지 한 적이 없는 사역이다. 즉, 하나님의 땅에서의 최신 사역이다. … 이런 사역을 어떻게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할 수 있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을 그 누가 하나도 빠짐없이 미리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관례를 깨는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이 사역을 그 누가 오래되어 곰팡내 나는 책에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현시점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사역에도 진입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난 후, 한 형제님이 교제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사실과 맞네요. 성경에 기록된 건 다 하나님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신 말씀이죠.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말씀이 미리 기록될 순 없죠. 예전엔 하나님 말씀과 역사가 성경에만 있다고 고집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실과 맞지 않네요.” 하나님의 말씀과 형제님의 교제를 듣고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습니다. ‘맞아, 하나님이 아직 하지 않으신 사역을 어떻게 사람이 미리 성경에 쓸 수 있겠어? 이제야 성경 계시록 5장 5절의 말씀이 이해되는 것 같아.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여기서 언급한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는 책은 주님이 말세에 다시 오실 때만 열린다고 했어. 그건 성경 이외에도 주님의 말씀과 사역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니 저는 좀 더 일찍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알아보러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맹목적으로 목회자들을 따르면서 관념과 상상에 기대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어서 저우(周)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자매님,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우리는 성경이 단지 하나님의 이전 사역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한 책일 뿐, 하나님이 말세에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기초 위에서 또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어요. 바로 하나님나라시대에 말씀으로 심판 형벌의 사역을 하시는 것이죠. 또한 성경의 예언을 완전히 이루셨어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7~4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말씀과 사역은 성경을 부인하지 않았고, 율법시대와 은혜시대 사역의 기초 위에서 더욱 높아지고 심화되었어요. 하시는 사역은 우리의 현실적 필요에 더욱 부합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바로 하나님나라시대의 성경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은 하나님이 말세에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영원한 생명의 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의 비밀과 성육신의 비밀을 밝히셨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하심,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선포하셨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섬기는지, 또한 어떻게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여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지 등등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가서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의 공급을 얻어야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어요. 만약 우리가 계속 성경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도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생명수의 공급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어 버림받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 각 종파 각 교계가 점점 더 황량해지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따르지 않아서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의 공급을 얻지 못하고, 광야에 버려져 나아갈 길이 없기 때문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님과 교제하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완전히 성경의 예언에 부합하고, 성경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하셔서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에 의해 정결케 되고 구원받아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리와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또 왜 교계가 점점 더 황량하고 타락하는지, 왜 제가 영적으로 계속 메말라 가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교만하게 관념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성경에 제한했고, 하나님의 말세의 새 사역을 찾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지 않아서 초래된 것입니다. 그 후, 형제자매가 또 저에게 여러 측면의 진리를 교제해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의 고민과 문제는 하나하나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복음을 받아들이는 종교인  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적극적으로 교회 생활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고 형제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저는 예전에 몰랐던 많은 진리와 비밀을 깨달았고, 영적으로 점점 충만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이 점점 밝아졌고 하루하루가 기쁨과 평안으로 넘쳤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성경을 고집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성경 안에 규정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거나 알아보기를 거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몹시 후회되고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저는 정말 눈뜬장님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또한 제가 유튜브를 통해 온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메시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저는 계속 맹목적으로 목회자들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찾거나 알아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평생 보아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제가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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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동영상 : 「누가 나의 主인가」 명장면(4)성경과 하나님은 어떤 관계인가?



       ※ 크리스천 간증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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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누구인가 (상)

               ➤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누구인가 (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전능하고 실제적인 하나님의 본질>(가사 버전)


1
하나님은 실제로 사역하시고 성품과 속성을 공표하신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하시는데 이것이 그의 전능이다
직접 사역하시는 것이 그의 실제적인 면이다
하나님 본질은 전능하고 실제적이며 서로 보완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성품과 속성이 나타나는데 전능과 공의, 위엄이 있다

2
하나님은 전능하고 실제적이며 그의 말씀에는 전능이 있다
그는 권능을 가진 분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일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말씀하신 즉시 전능이 나타난다
하나님 본질은 전능하고 실제적이며 서로 보완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성품과 속성이 나타나는데 전능과 공의, 위엄이 있다

3
율법시대에 일어난 일을 함께 회상해 보자
하나님이 요나에게 분부하신 것에서 그의 실제가 보였다
요나가 거절하자 큰 물고기에게 삼켜져
3일이나 물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하신 일에서 그의 전능을 볼 수 있다
그는 사역으로 본질과 속성을 나타내신다

4
그가 행한 사역의 각 단계에서 그의 본질을 볼 수 있는데
실제와 전능, 실제와 전능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하나님 본질은 전능하고 실제적이며 서로 보완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성품과 속성이 나타나는데 전능과 공의, 위엄이 있다
하나님 본질은 전능하고 실제적이며 서로 보완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성품과 속성이 나타나는데 전능과 공의, 위엄이 있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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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 찬양 추천 : 

              ♣ 말씀 찬양 CCM 2020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

              ♣ 말씀 찬양 CCM <성육신하신 인자는 하나님 자신>

              ♣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이 얻으려는 사람은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다>

              ♣ 말씀 찬양 CCM 2020 <누가 하나님의 마음 이해할까>



4/1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


1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은가?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은가?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이 가득하며 생명과 진리는 추구하지 않은 채 
메시야가 오실 거라고만 믿었다
그들은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모른 채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린다
2
어리석고 완고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 받거나 메시야를 보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예수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시야를 본 적도,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온갖 수단으로 그의 본질을 대적하며 
메시야란 이름만 헛되이 지켰다
3
바리새인들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가르치는 진리가 아무리 높아도 권능이 아무리 커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관점이 아닌가?
4
너희는 예수를 알지 못해 바리새인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는가? 진리의 말씀을 분별할 줄 아는가?
네가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너는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기독교 영상 <말세의 바리새인>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을 누가 막고 있는가? (교회 만담)


장이 형제는 주님이 오셨다는 증언을 듣고 그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에서 목사와 장로가 수차례 찾아와 “주님이 성육신으로 오셨음을 전하는 것은 전부 가짜다! 절대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접촉하지도 말라!”라며 방해를 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장이 형제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 10:27) 등의 예수님의 말씀을 대조해 봅니다. 주님은 분명 먼저 나가 적극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찾고 듣는 사람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목사와 장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계속 막아서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이 두려워 참도를 알아보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목사, 장로와의 변론 속에서 장이 형제는 말세의 바리새인이 누구인지, 누가 진정 주님을 맞이하는 길의 걸림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 동영상 더보기: 워십 찬양 <진리를 추구하려면 이렇게 다짐해라> (남성 솔로)

4/1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진리를 실천할수록 생명이 더 빨리 성장하리>


1
사람이 갖춰야 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네
모든 인류에게 가장 도움되는 진리라네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며 사람이 갖춰야 할 진리네
진리는 정상 인성을 되찾게 해 준다네
말씀을 실천할수록 생명이 더 빨리 성장하리
말씀을 실천할수록 진리가 더 명확해지리
2
분량이 자랄수록 영계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다네
사탄을 이겨 낼 힘이 더 생길 것이라네
말씀을 실천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리
대부분의 사람은 말씀의 글자를 아는 것에 만족하네
바리새인처럼 도리에만 치중하고 깊이 실천하는 체험은 하지 않는다네
3
“말씀은 곧 생명”이라는 말이 그들에게 어찌 실제가 될 수 있는가?
말씀을 실천해야만 생명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네
말씀을 읽기만 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네
말씀을 아는 것으로만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그 이해는 비뚤어진 것이라네
진리를 실천했을 때 말씀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네
진리를 실천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더보기: 찬양 ccm 모음 연속 듣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류가 아니다>



인류는 수만 년 발전하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내가 태초에 창조한 인류는 오래전 타락해 버렸다

1
그들은 나의 존재도 믿지 않고 나의 돌아옴도 환영하지 않는다
마지못해 나의 요구를 따를 뿐 진정 나와 고락을 나누진 않는다
나를 알 수 없는 존재로 보기에 거짓된 미소 보이고 나의 비위를 맞출 뿐이다
나의 사역도, 뜻도 모르기에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인류 아니고 내 눈엔 인류가 아니다
그저 사탄의 포로인 인간 말종 사탄 거하는 산송장일 뿐

2
진실로 이르노니 그 날이 오면 나를 경배하는 이는 누구나 너희보다 고통 덜할지니
욥과 바리새인보다 못한 믿음 그런 믿음 지닌 너희는
불의 날에 모세를 대적한 족장들보다 바리새인과 멸망된 소돔보다 더 큰 고통 받으리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인류 아니고 내 눈엔 인류가 아니다
그저 사탄의 포로인 인간 말종 사탄 거하는 산송장일 뿐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인류 아니고 내 눈엔 인류가 아니다
그저 사탄의 포로인 인간 말종 사탄 거하는 산송장일 뿐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4/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발췌문 1)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발췌문 1)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고집부리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분명 멸망할 부류이다. 너희는 오로지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할 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한 번도 청종한 적이 없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너희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무엇과 맞바꾸겠느냐? 죄짓기를 반복하고 입술로 죄를 자복하는 너희의 성심이냐?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바치겠느냐?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자산이냐? 너희는 무엇으로 재림한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느냐?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이냐?

📺 동영상 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발췌문 1)

3/2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하)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하)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14.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니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고르거나 선택하지 말고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도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15. 『성경은 사람과 수천 년을 함께했고,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처럼 대했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서는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몹시 증오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틈틈이 성경의 실상과 그 기원을 낱낱이 밝혀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성경은 늘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며, 사람은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할 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의 본질과 구성, 그리고 그 결점을 설명한다고 해서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성경을 정죄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성경에 대해 적절하고 올바른 설명을 덧붙이고, 성경을 본래 자리로 되돌렸으며, 성경에 대한 사람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았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를 갖고, 더는 성경을 숭배하거나 방향을 잃는 일이 없게 했다. 즉, 성경에 대한 맹신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경배라고 착각하고, 성경의 실제 배경이나 결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한 것이다. 사람은 성경을 순수하고 정확하게 알게 된 후에야 거리낌 없이 그것을 버리고, 과감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몇 편의 말씀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떤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나 말씀을 대신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오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모든 존재를 지워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오직 성경에 대해서만 해석했다. 하지만 잊지 말라. 사람은 성경을 떠받드는 것 외에도 참으로 많은 그릇된 것들을 떠받든다. 사람이 유일하게 떠받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참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성경을 일례로 모든 이에게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또다시 극단으로 치닫거나 미망에 빠져선 안 된다.”라고 깨우쳐 주었을 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가 교회들을 다니며 한 말씀ㆍ내용 소개> 중에서

16. 『내가 오늘날 성경을 이렇게 분석하는 이유는 성경을 혐오하거나 참고할 만한 가치를 부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경의 원래 가치와 기원을 너에게 분명하게 밝혀 주어 네가 캄캄절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에 대한 사람의 견해가 너무 많은 데다 대부분은 정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을 보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내가 행하려는 사역까지 가로막아 앞으로의 사역에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이익은 없이 폐단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어디까지나 성경의 본질과 실상을 알라고 하는 것이지, 그것을 보지 말거나 가치 없는 책이라고 소문내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견해를 가지라는 것이고, 너무 단편적이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그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겼던 원칙과 근대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체험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사람의 참된 깨달음과 인식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 것은 모두 그 시대에서 참도를 추구하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생명의 도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 도는 모두 역대의 선지자나 사도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체험했던 생명의 도이다. 또한 상당히 귀한 많은 말씀이 있어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성경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는 비밀스러운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책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그 어떤 영적 위인의 저작에 대한 견해와도 같지 않다. 성경은 신구약시대에 여호와와 예수를 섬긴 사람들의 체험과 인식을 수집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 책에서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이 영적 위인들의 그 어떤 저작보다 훌륭한 까닭은 그들의 모든 저작은 성경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며, 그들의 체험도 모두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성경을 풀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사람이 보기에 성경은 너무나 대단하고,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바울의 서신’이나 ‘베드로의 서신’과 같이 생명의 말씀을 다룬 일부 책들이 모아져 있고, 사람들이 그 책들에서 공급과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자 구시대의 책이다. 그 책들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한 시기에만 적용될 뿐, 영원히 보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므로 바울과 베드로가 있었던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은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들은 은혜시대에만 적용되고, 마지막 시대인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은혜시대의 신도들에게만 공급되고, 하나님나라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공급되지 못하기에 아무리 좋아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창세 사역이나 그가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처럼, 그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흘러갈 때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십자가 사역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고 아무리 사탄을 물리치는 데 효과가 있다 해도 사역은 어디까지나 사역일 뿐이고, 시대 또한 어디까지나 시대일 뿐이다. 사역은 어느 한 기초에만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시대 역시 영구불변할 수 없다. 창세가 있으면 반드시 말세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생명의 말씀’, 즉 ‘사도 서신’과 ‘4복음서’를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책이 되고, 오래된 책력이 된다. 그런 오래된 책력으로 어찌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가겠느냐? 그런 오래된 책력이 아무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고, 아무리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 수 있다 할지라도 모두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냐?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더 이상 그 오래된 책력을 맹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 오래된 책력은 너무 ‘케케묵어’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 수 없고 짐만 될 뿐이다. 따라서 너를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진입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낡은 교회당 안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퇴보한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4> 중에서

17. 『나는 인간 세상에서 많은 사역을 행하면서 그동안 많은 말을 했다.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말이자 사람으로 하여금 내 마음에 합하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땅에서 내 마음에 합하는 사람을 많이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내 말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마음에 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경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내 마음에 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올무와 자신의 육, 그리고 사욕에 얽매인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내 마음에 합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 칭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도는 나와 상반된다. 그들의 말에는 교만함과 자만심이 가득 배어 있다. 그들은 본래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고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으며, 내키는 대로 ‘적합한’ 구절을 찾아 하염없이 읊조리는가 하면,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까지 한다. 그들은 내 마음에 합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이 나와 적대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경’만 읽을 뿐이다. 그들은 본 적도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여유가 생길 때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고, ‘나’와 ‘성경’을 동일시하며,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구절로 내가 말한 모든 내용을 가늠하고, 심지어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니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가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대체 무엇이냐?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들은 그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성경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자비로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옹호하고, 또 성경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성경 글귀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떠하냐? 그들은 천국에 가거나 은혜를 받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진리를 선포하는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 밖으로 내몰려 하였다. 또한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완전히 막으려 하였다. 심지어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도록,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또다시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토록 악랄하고, 그 본성이 나를 이토록 적대시하는데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나의 빛을 밝게 비추어 주어도 여전히 나의 존재에 대해 무지하다. 나의 진노가 닥칠 때면 나의 존재를 더욱 부인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글귀와 어우러지고 성경과 합하기를 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천상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천상의 내 존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나는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너무도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오직 성경의 글귀와,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비천해 보인다. 그들은 죽은 글귀를 숭배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 사람의 지배를 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들의 비천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자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 나를 거역하는 자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18. 『하나님 자신이 곧 생명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로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는 일이 없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글귀와 이치, 그리고 죽음뿐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생명과 함께 공존한다. 진리의 근원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분명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몸뚱이는 상상과 관념으로 가득 찬 육체, 즉 구린내가 진동하는 육체에 불과할 것이다. 명심해라. 책의 글귀는 생명으로 삼을 수 없고, 역사적 기록은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는 하나님이 현실에서 한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한 말씀만이 진리이자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 방식이다.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 했던 말씀의 기록을 오늘날에도 고수한다면 너는 고고학자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역사ㆍ문화재 전문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너는 늘 하나님이 과거에 사역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지난날 인간 세상에서 사역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오래전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해 준 도만 믿을 뿐, 하나님이 현재 사역하는 방향이나 현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 현재 선포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공상가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글귀만 고수하고 있다면 너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나무와 다름없다. 너는 너무나 고집스럽게 낡은 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며 너무나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19.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3/21/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사람이 성경의 신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 성경 참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 15:8~9)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 관련된 하나님 말씀: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올무와 자신의 육, 그리고 사욕에 얽매인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내 마음에 합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 칭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도는 나와 상반된다. 그들의 말에는 교만함과 자만심이 가득 배어 있다. 그들은 본래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고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으며, 내키는 대로 ‘적합한’ 구절을 찾아 하염없이 읊조리는가 하면,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까지 한다. 그들은 내 마음에 합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이 나와 적대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경’만 읽을 뿐이다. 그들은 본 적도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여유가 생길 때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고, ‘나’와 ‘성경’을 동일시하며,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구절로 내가 말한 모든 내용을 가늠하고, 심지어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니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가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대체 무엇이냐?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들은 그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성경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자비로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옹호하고, 또 성경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성경 글귀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떠하냐? 그들은 천국에 가거나 은혜를 받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진리를 선포하는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 밖으로 내몰려 하였다. 또한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완전히 막으려 하였다. 심지어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도록,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또다시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토록 악랄하고, 그 본성이 나를 이토록 적대시하는데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나의 빛을 밝게 비추어 주어도 여전히 나의 존재에 대해 무지하다. 나의 진노가 닥칠 때면 나의 존재를 더욱 부인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글귀와 어우러지고 성경과 합하기를 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천상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천상의 내 존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나는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너무도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오직 성경의 글귀와,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비천해 보인다. 그들은 죽은 글귀를 숭배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 사람의 지배를 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들의 비천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자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 나를 거역하는 자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성경의 글귀에만 신경 쓸 뿐, 진리와 내 발자취를 찾는 일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은 모두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를 성경에만 국한시키고, 성경 안의 존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인데 그들이 어찌 내 앞에 올 수 있겠느냐?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의 행사와 나의 뜻, 진리가 아니라 글귀이다.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글귀이다. 이런 자들이 어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사역을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고 또한 얼마 안 되는 지식과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재단했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은 체험이 얕으면서도 또 천성이 교만하고 제멋대로라 성령의 사역을 가볍게 여기고 성령의 징계를 등한시한다. 또한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낡은 이론으로 성령의 사역을 ‘확증’하고, 게다가 스스로 학식이 높다고 믿으며 온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자는 모두 성령께 버림받는 자이고 새 시대에 도태되는 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 앞에 와서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경망을 떠는 소인배들이 아니냐? 얼마 되지도 않는 성경 지식으로 온 세상의 ‘학술계’를 주름잡으려 하고, 겨우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이론만으로 성령의 사역을 자기의 생각에 맞춰 움직이게 하려는 야심 찬 생각을 하며, 좁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6천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다 꿰뚫으려고 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이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어째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데에 힘을 적잖게 들였는데도 인식만 있을 뿐 실제적인 길을 말하지 못하겠느냐? 너는 인식이 있으면 진리도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어리석은 견해가 아니냐? 네가 백사장의 모래만큼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다 한들, 그 안에 실제적인 길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허세가 아니겠느냐? 전부 남을 해하는 수작에 불과하다! 이론이 고매할수록 실제가 없기에 사람을 실제 속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이론이 고매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 고매한 이론을 보배처럼 여기지 말라. 그것은 화근일 뿐, 아무런 쓸모도 없다! 어떤 이가 최고의 이론을 말할 수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을 수도 있다. 그 자신이 아직 체험하지 못했기에 실행의 길도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 뿐, 정상 궤도로 인도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사람을 해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너는 적어도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 줌으로써 다른 사람이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봉헌한다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일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늘 비현실적인 큰소리만 치면서 합당하지 못한 수작으로 다른 이를 속박하여 네게 복종시키려 하지 말라.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점점 더 흐리멍덩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다 보면 수많은 규례가 생겨 사람들이 너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전부 사람의 부족한 면인데, 실로 골치 아픈 문제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제를 좀 더 중시하여라> 중에서

너희의 인식은 다른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 공급할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똑같은 것만 말하면 그것을 알아보고 네가 너무 얄팍하여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 너는 어쩔 수 없이 도리를 말해 사람들을 미혹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아래 있는 사람들도 네 방식과 절차, 형식에 맞춰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면서 그러한 글귀와 도리들을 행하게 된다. 네가 그렇게 거듭 설교하면 결국 사람들은 모두 너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네가 사람들을 이끌며 도리를 가르치면, 아래 있는 사람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면 길을 잘못 들어 정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네가 가는 길이 곧 아래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니, 그들은 너를 보고 배우고 너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 너는 속으로 ‘이제 내게 권력이 생겼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내 말을 듣다니, 뭐든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 배반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배척하고 스스로 어떤 종파나 파벌을 형성하게 한다. 각 종파나 파벌은 바로 이렇게 생겨났다. 각 종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전부 오만하고 독선적이어서 성경을 제멋대로 끊어 해석하고, 자신의 상상에 따라 설명하며,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따르겠느냐? 어쨌든 그들에게는 지식이 좀 있기에 도리를 가르치거나 사람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고, 이러저러한 수법을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오고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고 있다. 참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일은 리더에게 물어봐야 합니다.”라고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다른 이를 통해야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럼 그들의 리더는 어떤 존재가 되었느냐? 바리새인, 거짓 목자, 적그리스도가 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참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느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 추천 동영상 : 기독교 영화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명장면(3)성경 말씀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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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세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외식하는 것이란?

                                                  외식하는 바리새인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 관련된 하나님 말씀:

바리새인’이라는 호칭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바로 외식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모든 일에 가식적이어서 언제나 훌륭한 사람인 양,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인 양 위장한다. 그들의 본모습이 정말로 그러하겠느냐?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태도와 모습이 진실하지 않은 거짓되고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진실한 면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채 드러내지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종교적 지식과 이론들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입에 달고 다니는 글귀상의 도리가 되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렇듯 ‘올바른 것 같은’ 도리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포장한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올바르고 훌륭해 보이며,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경건하고 겸손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포용할 줄 알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껍데기를 들춰 보면 전부 거짓과 위장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뒤에서는 건성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고생을 마다치 않으며 헌신하는 것 같지만 뒤로는 교회 밥을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전부 거짓이다. 그런 자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바리새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이방인 가운데서 생겨났겠느냐? 그렇지 않다.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났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겠느냐? 설마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느냐? 그들이 그렇게 변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를 무장하는 도구로 삼고, 그것을 밑천으로 밥벌이를 하며 밥을 얻어 먹었다. 그들은 종교적 도리를 전했을 뿐, 단 한번도 하나님의 도를 행한 적이 없다. 그들의 그 소위 ‘올바른’ 행동과 태도, 버림과 헌신 등은 다 사람의 의지로 억누르고 꾸며낸 것으로, 전부 거짓이며 위장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티끌만큼도 없다. 아니, 경외심은커녕 참된 믿음조차 없다. 게다가 그들은 불신파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런 길에 들어서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두렵지 않으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지표> 중에서

겉으로 보기에 좋은 행동을 하는 것, 어떻게든 영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영적인 사람으로 행세하고 말과 행동으로 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 사람의 관념과 생각에 맞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영적인 척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외식하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글귀나 도리를 말하는 한편, 남에게는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진리 추구를 중시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을 처리하거나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진리를 찾지도,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 또한, 진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고, 일이 닥치면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이 같은 외적 행동과 내적 상태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믿어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없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게 되겠느냐? 늘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겠느냐?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채우지 않겠느냐? 늘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포장하며, 바리새인이나 이른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행하는 것은 어떤 행실이냐?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을 내세워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일 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다른 꿍꿍이를 부린다. 이들이 종교 바리새인과 다를 바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며, 양심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일을 지혜로이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원칙 있게 일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말로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온종일 울상을 짓고, 능청스럽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니 정말 못 봐줄 노릇이다! “왜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겉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줘야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성의하게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은 모두 위선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이들은 종교 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나 슬픔의 눈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자들이 발전성이 있겠느냐? 어떤 자는 겸손해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말한다. 또 어떤 자는 순한 양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 힘도 없는 양 행동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정말 그렇단 말이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활발하고 자유로우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또한, 정직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존엄성을 갖추어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새 신자들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아 한동안 훈계와 깨뜨림을 받아야 한다. 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네가 매일 여기저기 복음만 전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에만 급급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규례와 도리 속에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외식하는 사람이다.

종교인들은 함께 모이면 “자매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마디, 몇 자의 말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힌 더러운 것을 뱉어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혐오스럽고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 거기엔 솔직함만 있을 뿐 거짓도, 체면치레도, 꾸밈도 없고 세속적인 규율도 없다. 하지만 겉면의 열정이 많고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누가 찬송가를 부르면 춤추느라 밥솥의 밥이 다 타 버린 것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함과 존귀함이 없고 너무나 경박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제가 없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제할 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죄스러워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표면적인 열의나 행동이 아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인 좋은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육을 의미한다. 외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의 성품만을 의미할 뿐, 생명을 의미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공급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영적인 것이라 여기겠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기호가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요, 너의 습관은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고 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겉으로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좋은 행위만 있을 뿐 실제가 없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종교 인사이다! 외적인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가식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정상적인 영 생활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을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게 해 준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현재 하나님이 하려는 일에 대해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옛것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모든 실행이 생명 성장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기도는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중얼거리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번 대성통곡함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운용하는 훈련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범사에 말씀의 인도를 구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소극적으로 되지도, 게을러지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한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이 다 행위만 중요시할 뿐, 생명의 성장을 위해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는 치우친 것이다. 새로운 빛은 받아들이지만 실행법을 바꾸지 않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하나님 말씀을 과거의 종교 관념과 결합해 받아들인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 관념을 띤 도리이지, 순전한 오늘날의 빛이 아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실행에는 불순물이 끼어 있으며, 형식만 바꿨을 뿐 내용은 그대로이다. 그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행해도 그것은 외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매일 사람을 인도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낡아 빠지고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견해와 인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네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겉으로만 열정적이고 바쁠 뿐, 행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제 하나님과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목적이 있어야 사람에게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 생기게 된다면 이런 순종은 조건부 순종이자, 개인의 앞날을 전제로 한 순종이며,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네가 그저 장래와 운명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낫다. 너의 그런 ‘믿음’은 자기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고, 자기 위안이며 자아도취다. 너의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지를 구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네 본심이 정말 이러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높이고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이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만약 네 본심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말하고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심지어 너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너의 말투가 부드럽고, 태도가 온화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의 일거수일투족과 표정이 적절해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너의 본심과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서 본다면 네가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양과 같이 순종하면서 마음속에는 악의를 품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이며, 직접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는다. 성령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들을 한 명씩 드러낼 것이다. 외식하는 자는 반드시 성령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벌하고 해결할 것이니 모두 조급해하지 말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중에서

💁 참고 설교:

『목회자가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아닌지 알아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그들의 표면적인 태도가 아닌, 주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봐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신자들을 꽤나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에게는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랑으로 가득하지만, 주님과 진리를 대하는 마음은 미움과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외식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언뜻 보기에 그들은 사역하느라 몹시 고생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면류관과 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주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외식하는 사람을 가려내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속, 곧 마음가짐을 봐야 합니다. 이런 판단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지 알아보려면 가장 먼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준행하는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지를 봐야 하며, 나아가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지 봐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배할 때 늘 성경을 가르칩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일에 있어 성경의 규례를 지킬뿐더러 사랑으로 다른 이를 대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 23:5)라고 그들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한참 동안 기도합니다. 금식을 할 때는 짐짓 얼굴을 흉하게 해서 모두에게 자신이 금식 중이라는 것을 알리지요. 이 밖에도 그들은 남들에게 보여 주려고 거리에서 구제를 행하고 의를 행하며,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 밥을 먹어선 안 된다’와 같은 옛사람들의 종교 의식까지 대대로 지켰습니다. …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옹호와 존경을 받기 위해 사소한 일들을 크게 부풀려 스스로를 포장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이끌어 종교적인 예배와 찬송, 찬미를 하거나 조상의 유전을 고집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진리의 실제에 들어가는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겉면의 행위로 신자들을 미혹하고 속였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 때, 경건한 척하던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등을 돌렸습니다. 또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거짓 증거를 날조하며, 미친 듯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모함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자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막았으며, 결국에는 집권자들과 결탁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외식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바리새인들의 민낯이 낱낱이 폭로되었고, 적그리스도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바리새인의 본질은 외식하고, 음험하고, 간사하고, 악독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도에 등을 돌린 채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는 거짓 목자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을 미혹하고 억압했으며, 교계를 통제해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광기 어린 사람들처럼 성육신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정죄하고 증오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들이 독립 왕국을 세우려는 적그리스도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리새인의 외식하는 갖가지 양상을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들을 오늘날 교계 목회자들에게 대입해 보면, 그들이 바리새인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며, 주님을 받들거나 증거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을 믿고 숭배하며 높이 떠받드는 사람들에 불과하지요. 그들은 때에 맞춰 예배하고, 새벽기도를 하고, 떡을 떼고, 성찬을 하는 등 갖가지 종교 의식들을 지킬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겸손과 인내, 경건과 사랑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더더욱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그들의 사역과 설교는 오직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에만 치중할 뿐,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행하고 체험해야 하는지, 주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널리 알리고 증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등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에 대해서는 찾지도,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도 않고, 나아가 사람들을 말씀대로 실천하고 준행하는 길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말합니다. 스스로를 자랑하고 치켜세워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얻기 위해서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자, 목회자들은 교계에서 신자들을 영원히 장악하고 통제해 독립 왕국을 세우겠다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 공공연히 예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판단하고 공격하고 모독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도를 찾는 신자들을 가로막았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신랑이로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맞으라고 일러 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 힘을 다해 교회를 봉쇄하고 신자들을 가로막아 참도를 찾거나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는 형제자매들을 비방하고 욕하고 폭행하라고 신자들을 부추겼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은 이웃에 대하여 거짓말과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목회자들은 각종 유언비어를 지어내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했으며, 심지어 마귀 중국 공산당과 결탁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계 목회자들의 모든 언행은 주님의 가르침에 완전히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소경된 인도자이자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에 관한 대표적인 문답(선집)≫ 중에서


3/06/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기독교 간증 영화 <아들아, 돌아오거라!>명장면(2) 이 세상은 왜 이토록 사악하고 어두운가



게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타락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는 왜 청소년에게 해로운 온라인 게임을 계속 권장하고 개발하고 홍보하는지,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해졌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