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menu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플랫폼배경사진 출처: https://www.holyspiritspeaks.org/special-topic/kingdom-has-descended-on-the-world/copyright_en.html
레이블이 하나님의사역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하나님의사역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7/0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발췌문 105)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창세기 19:1~11)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세기 19:24~25)

소돔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 흔적도 없이 멸망당하다

소돔 성 사람들은 두 사자를 보았을 때, 그들이 거기에 온 이유를 묻는 자가 없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왔는지도 묻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무리 지어 와서 다짜고짜 미친개와 같이, 악한 이리와 같이 그 두 종을 잡으려 하였다. 당시에 일어난 일을 하나님은 다 보고 있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그런 행위와 그런 일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은 이 성을 멸하리라 뜻을 정하였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았으며 기다리지 않았고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의 날이 오면 하나님은 하고자 했던 일을 그대로 행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9장 24절과 25절에서 말씀하신바,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라는 이 두 구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성을 멸하였는지를 말해 주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멸하였는지도 알려 주고 있다. 우선, 성경에는 하나님이 불로 이 성을 태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안의 사람에서부터 땅에서 난 모든 것까지 다 멸할 정도로 불태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내린 불이 이 성을 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안의 사람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함께 멸하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성을 멸한 후, 땅에는 더 이상 생물이 살지 못하였고, 더 이상 생기가 없었으며, 더 이상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고, 정적만 흐르는 공터로 변해 버렸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행이 다시는 있을 수 없었으며, 살육과 피비린내가 다시는 없었다.

하나님은 왜 이 성을 이렇게 완전히 불태웠을까? 너희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류와 만물이 그렇게 멸해지는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을까? 네가 만약 하늘에서 떨어진 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멸망시킨 대상과 그 성이 멸망당한 정도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노한 정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성을 증오할 때는 징벌을 내릴 것이며, 하나님이 어떤 성에 염증을 느낄 때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알 수 있도록 계속 경고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성을 없애고 멸하기로 뜻을 정하였다면,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거스르는 일이 생겼다면 더 이상 징벌이나 경고를 주지 않고 곧바로 멸한다. 그리하여 완전하고 철저히 사라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4)


어째서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은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지 못했다고 하겠느냐? 말씀이 완전히 육신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 중 일부일 뿐이다. 그는 구속 사역만 했을 뿐, 사람을 완전히 얻는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세에 또다시 성육신한 것이다. 이번 사역도 평범한 육신으로 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한다. 그에게는 비범한 인성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사역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사역하며, 완전한 육신으로 사역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비범한 면이 조금도 없는 육신이자, 하늘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표적을 나타내지도,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며, 예배당에서 종교의 실상을 폭로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 번째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는 똑같은 점이 하나도 없고, 첫 단계의 사역을 이번 단계에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역은 첫 번째에 한 사역과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근원이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근원이 하나인지에 대한 판단은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육신의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3단계의 사역에는 총 두 번 성육신하였는데, 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은 모두 시대를 여는 것이며 새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이 두 육신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의 사유로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그들의 사역은 하나의 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본질은 처음부터 하나다. 두 번의 성육신의 근원이 하나인지를 알아보려면 육신의 출생 연대나 출생지, 혹은 육신의 다른 조건들을 볼 것이 아니라 육신이 나타낸 신성 사역을 봐야 한다. 두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예수가 행한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마다 이전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길을 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이유는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인상을 더 깊게 하거나 공고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형상을 보완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규례를 깨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잘못된 형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행한 어느 한 단계의 사역만 보고서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완전히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성품을 다 나타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깨닫는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사람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표현할 수 없을진대, 단 한 단계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밝힐 수 있겠느냐? 육신의 사역은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에 사람은 신성의 말씀을 통해 그를 알 수 있을 뿐, 육신의 외형을 보고서는 그를 알 수 없다. 육신을 입고 온 그는 서로 다른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그의 사역이 단계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게 한다. 그래야 육신을 통해 하는 그의 사역을 사람들이 일정 범위에 국한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성육신의 사역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육신의 본질과 사역의 근원은 동일하다. 다만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두 시대에 나타났을 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과 근원은 서로 같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7/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서 너의 사람됨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하고 현실을 마주해야지 허무맹랑한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의미까지 없어진다. 너의 추구와 인생은 그저 허망함과 기만 속에서 덧없이 흘러갈 뿐이고, 네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너는 진리와 무관한 그릇된 이치밖에 얻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너를 공허한 상태에 빠지게 할 뿐, 네가 생존하는 의미나 가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렇게 되면 너의 일생은 그 어떤 가치도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게 될 텐데, 그런 삶을 어떻게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은 말 그대로 짐승이 아니냐?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려고 하지만, 보이는 하나님은 추구하지 않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만 숭배한다면, 이것은 더욱 헛된 추구가 아니냐? 네가 추구하는 바는 결국 잿더미로 변할 텐데, 그런 추구가 너에게 또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사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만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신묘하기 그지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평범한 사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분석하며, 만사를 제쳐 두고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려는 망상까지 한다. 또한,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자세히 생각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치밀하게 구상하기까지 한다. 이와 반대로, 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심지어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날 행하는 나의 현실적인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냐? 이렇게 현실적인 것일수록 너희는 더 경시하고, 그것을 알아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아예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기준이 낮은 이런 현실적 요구를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도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그의 실제와 정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너희의 믿음은 모두 막연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전의 막연한 하나님은 그토록 굳게 믿었으면서도 오늘날의 실제 하나님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제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이 다른 시대의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냐? 어제의 하나님은 위대한 하늘의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땅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이 숭배하는 하나님은 관념 속에서 탄생한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땅에서 탄생한 실제적인 육신이기 때문이 아니냐? 결국, 오늘날의 하나님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사람이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사람이 가장 하기 싫어하고 또 난감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난처하게 하고, 또 일부러 자신들의 허물만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래서 현실을 추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 즉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냐? 이전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너는 단지 종교인이거나 경건한 신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후, 경건했던 많은 신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원인을 아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았고, 진리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공허한 것에만 매달렸다. 그것이 바로 네가 성육신한 하나님의 원수가 된 가장 뚜렷한 원인이 아니냐? 성육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라 일컫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자는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네가 믿고 사랑하는 분이 정말 육신에 거하는 이 하나님이 맞느냐? 현실을 가장 중요시하고 ‘유달리’ 정상적이며 생생하게 살아 계신 이 하나님이 맞느냐? 네가 추구하는 목표는 도대체 무엇이냐? 하늘이냐, 아니면 땅이냐? 고정 관념이냐, 아니면 진리냐? 하나님이냐, 아니면 신선이냐? 사실, 진리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고 인류의 최고 인생 격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하나님 자신이 직접 행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 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격언은 종합해 낸 것도 아니고 위인의 명언도 아니라 천지 만물의 주재자가 인류에게 발한 음성이다. 또한 사람이 이것저것 종합해서 생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 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 실행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요구’의 본질은 가장 현실적인 진리이지, 그 누구도 이를 수 없는 공허한 이치가 아니다. 네가 추구하는 것에 이치만 넘쳐 나고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면, 너는 진리를 거역하는 사람이 아니냐? 이런 자는 진리를 반대하며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냐?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실제가 없는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배반한 자이자 패역한 천성을 가진 자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느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에게 질문을 하자, 사탄은 속으로 기뻐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하나님 눈에 완전한 사람을 공격할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에게는 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가! 사탄은 이 기회를 틈타 욥의 믿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욥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언제든지 욥을 자기 수중에서 멋대로 우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신의 사악한 의도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을지라도 그의 악독한 본성은 억제할 수 없었다. 그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탄의 대답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4~5). 사탄의 이 말에서 사람은 자연히 사탄의 악독함에 대해 실제적인 인식과 느낌을 갖게 된다. 사탄의 이런 황당무계한 논리를 듣게 되면, 진리를 사랑하고 사악함을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탄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증오할 것이다. 또한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염증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욥을 위해 기도와 축원을 올릴 것이다. 정직한 자가 더 순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가 영원히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또한, 욥의 의로운 행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편달하고 격려하기를 바랄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사탄의 이러한 말 속에서 사탄의 악독한 속셈을 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주 흔쾌히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다만 사탄에게 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욥 2:6). 사탄이 이번에는 손을 뻗어 욥의 뼈와 살을 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의 뜻은 욥의 육체를 사탄의 손에 붙이지만 그의 생명은 보존해야 하며, 그의 생명을 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방식과 수단으로 욥을 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후, 사탄은 허둥지둥 욥의 앞에 이르러 손을 뻗어 그의 살가죽을 쳤으며, 그의 온몸에 악창이 나게 했다. 욥은 살가죽의 통증을 느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기묘함과 거룩함을 찬양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사탄은 더 길길이 날뛰었다. 사탄은 사람을 해치는 쾌감을 느꼈기 때문에 손을 뻗어 악창이 난 욥의 살을 움켜쥐어 곪아 터지게 했다. 그 순간 욥은 피와 살에 너무나 큰 통증을 느껴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온몸의 피부와 살을 문질렀다. 마치 그러면 육체의 통증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듯이 말이다. 욥은 하나님이 곁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강해지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또 한 번 무릎 꿇고 엎드렸다.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사람의 고통을 살피시나이다. 당신께서 어이하여 사람의 나약함까지 생각해 주시나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사탄은 욥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에 사탄은 급하게 손을 뻗어 욥의 뼈를 쳤다. 욥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욥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살가죽이 뼈에서 벗겨지는 것 같았고, 또 뼈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욥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극한에 달했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 통증을 덜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욥은 참고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욥은 사탄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욥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지만 이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욥은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그의 앞에, 그의 뒤에, 그의 좌우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가 아파할 때 아파하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그때는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숨겼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미는 고통받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욥은 눈물을 흘렸다. 욥은 몸의 통증은 억지로 참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다. ‘인간은 너무도 나약한 존재입니다.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하며 여리고 무지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어찌하여 이처럼 생각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나이까? 당신께서 저를 치시고 오히려 당신이 고통스러워하시나이다. 사람이 무슨 가치가 있어 당신께서 생각해 주고 마음에 두시나이까?’ 욥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 사탄은 수를 다 썼어도 성과가 없자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은 결코 이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욥에게서 나타낼 큰 능력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는 사탄의 퇴각으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 멋진 장면은 각 인물의 출현에 따라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7/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는 축복의 말씀만 들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은 그 순간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 수 있었겠느냐?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슬펐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 그가 계획한 것에 대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때,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와 마음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얻었고, 그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은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렸을지라도, 마음은 여전히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가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경영이 비로소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얻고자 하는 사람, 그가 보고자 하는 사람, 그가 기뻐하는 사람이 아주 멀리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때는 하나님 자신 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며,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음이 아주 흥분된 동시에 무겁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다음 사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준 일을 통해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유 하나로 하나님은 그에게 이처럼 큰 복을 내렸다. 비록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를 귀히 여기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진심을 보이는 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같은 진심을 어느 정도로 소중히 여기느냐? 아마 너희는 그 정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란 후, 하나님은 또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요구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수행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다. 아브라함의 그 진심에 하나님은 감동하였으며, 그것을 귀히 여겼다. 어느 정도로 귀하게 여겼느냐? 귀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이냐?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전에 없던 만족감을 느꼈으며,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은 기쁨을 느꼈다. 그런 ‘만족감’과 ‘기쁨’은 하나님이 손수 만든 피조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이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께 드린 가장 진귀한 첫 번째 ‘제물’이었다. 이 ‘제물’은 하나님이 그토록 힘들게 기다렸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창조된 인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물로 간주하였다. 또한 그것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기울인 심혈로 얻게 된 첫 번째 성과를 보았고, 인류에게서 희망도 보았다. 그 후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들이 더 나와 그와 함께하며, 그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그를 헤아리기를 바랐다. 심지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계속 살아가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아브라함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그와 함께하고, 그의 경영에 계속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했든, 그것은 단지 바람일 뿐이고 생각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 하나님을 알고 증거하고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것에 ―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그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을 보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것도 보게 되었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진심과 순종을 열납했을지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했으며,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도 부족했다. 또한 하나님과 동심합의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고 조급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롭고 조급할수록 최대한 빨리 그의 경영을 계속해 나가려고 했고, 한 무리를 선정하고 얻어 그의 경륜을 이루고 그의 뜻을 이루려고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그런 간절한 마음은 바뀐 적이 없다. 처음 인류를 창조한 후 하나님은 이긴 자들, 즉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깨닫고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와 그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난하든, 하나님이 희망하는 목표가 얼마나 멀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변한 적이 없고, 그것을 포기한 적도 없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느냐? 아마도 그렇게 실감 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느껴 보거라!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사람의 결말은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너희의 태도이다.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이 태도는 너희가 최종적으로 멸망에 이를지, 아니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예비한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이미 20년 넘게 사역하였다. 20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너희는 자신의 행실에 대해 다소 모호하겠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의 행실을 확실하고 진실하게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이 전하는 도를 듣기 시작해서부터 점점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본분을 이행하기까지, 사람이 이 기간에 보였던 각종 행실을 다 기록해 두었다.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환경이나 시련이 닥치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여러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등을 하나님은 기록부에 다 기록해 두었다. 이런 일들이 너희에게는 아마 무척 흐릿하겠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혀 흐릿하지 않고 매우 분명하다. 모든 사람의 결말, 모든 사람의 운명 및 앞날과 관련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심혈이 들어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는 조금도 등한시하지 않고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을 위해 이런 기록부를 작성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른 노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해 두고 있다. 이 기간 하나님을 대하는 너의 태도가 어떠했는지가 바로 너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무척 진실하지 않으냐? 지금까지 너희는 하나님이 매우 공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지 않으냐?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희의 결말을 하나님이 정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건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누가 정한다고? (하나님이요.) 여전히 모르는구나!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먼저 말해 보아라. 누가 정하느냐? (사람이 스스로 정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정한다고? 그 말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냐? 한국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행위와 가는 길에 근거해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객관적인 대답이었다. 너희에게 알려 줘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 사람에게 기준을 하나 정해 주었다. 그 기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사람의 결말을 가늠한다. 네가 하나님의 이 기준에 따라 행한다면 좋은 결말을 얻을 것이다. 반대로 이 기준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말을 누가 정하는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정하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느냐? (맞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구원 사역을 하며 아름다운 종착지를 예비해 준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역하는 대상으로, 위에서 말한 결말과 종착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는 것들이다. 사역 대상이 없다면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진다. 사람은 구원받는 대상이다. 구원받는 대상이란 게 수동적이긴 하지만 이 대상의 태도가 하나님의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으면 너는 기준도 모르고 목표도 없다. 기준과 목표가 있더라도 네가 협력하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너는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결말은 하나님과도, 사람과도 떨어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대체 누가 결말을 정하는 건지 알았겠지?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7/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인류는 비록 타락하였어도 여전히 창조주 권능의 주재하에서 살아간다

사탄이 인류를 타락시킨(직역: 패괴시킨) 몇천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며, 대대로 사람들을 미혹하며 인간 세상에서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사람을 해치고 미혹시키고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하며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등의 악행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 아래의 만물과 생명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제정한 법칙과 규율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과 비교할 때,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의 창궐은 추하기 그지없으며, 사람을 역겹게 하고 염증을 일으킨다. 또한 왜소하기 짝이 없고 보잘것없다. 비록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사탄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변화시킬 수 없다. 몇천 년이 지나오면서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내려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친히 불어 준 생기로 숨을 쉬고 있고, 하나님이 만든 꽃과 새, 물고기와 곤충들을 즐기며, 하나님이 공급해 준 만물을 만끽하고 있다. 낮과 밤은 여전히 끊임없이 교체되고, 사계절 역시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올겨울에 떠나가서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속의 물고기는 강과 호수인 그들의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땅 위의 매미는 여름날 마음껏 노래를 부른다. 풀 속의 귀뚜라미들은 가을날 가을바람을 따라 노래한다. 기러기는 무리를 이루고 송골매는 홀로 고독하게 난다. 사자 무리는 사냥하며 살아가고, 사슴들은 꽃과 풀밭을 떠나지 않는다. … 만물 가운데의 각종 생명체들은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찰나 속에서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 각자의 본능과 생존 법칙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 아래 생존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본능을 바꿀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의 생존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류는 비록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미혹되었지만, 하나님이 만든 물과 공기와 만물을 떠날 수 없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이 공간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간다. 인류의 본능은 변화가 없으며, 인류는 여전히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귀로 경청하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깨닫고, 두 다리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일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 심령의 필요는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뿌리를 찾아 돌아가려는 소망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창조주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소원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살아가면서 사탄의 피비린내 나는 학대를 견디고 있는 인류의 현주소다. 비록 사탄의 엄청난 유린을 당한 인류는 더 이상 태초에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아니고, 지식과 상상, 고정 관념 등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들이 가득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이 가득한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 섭리하에 있고, 하나님이 정한 궤적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사탄에 의해 타락된 인류는 단지 외관적으로 더럽고 굶주리고 반응도 느리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나이가 조금 많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기능과 본능은 오히려 무결하게 완전하다. 이런 인류가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이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부름을 듣고 창조주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곧 일어나 음성의 근원을 찾아 달려간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창조주를 위해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다. 인류의 마음과 영이 창조주의 마음의 소리를 깨달을 때,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창조주의 곁으로 온다. 인류가 완전히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창조주가 다시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얻을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이때의 인류는 진정으로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나라의 예포 울릴 때>(가사 버전)


1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는 과거와 달리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사람이 알 수도, 할 수도 없는 사역을 하나님이 강림해 친히 사역하시네
하나님나라 건축되기 시작할 때
성육신께서 직분 시작하시고 왕권 잡으시니 하나님나라 이 세상에 임했네
2
모든 이는 그의 자비와 긍휼 (자비와 긍휼) 심판과 시련 속에 있네
사람이 패괴됐을지라도 자비와 긍휼 베푸셨고 (베푸셨고) 복종했을지라도 형벌 내리셨네
그 누가 피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내리신 고난과 연단
하나님나라 예포 울릴 때가 ‘일곱 우레 울리는’ 때이니
하늘과 땅과 궁창을 뒤흔들고 모든 사람의 심금도 울리네
하나님나라 축가 울려 퍼지네
바로 큰 붉은 용 나라에서 하나님은 큰 붉은 용 나라 멸하시고 그의 나라 세우셨네
3
하나님은 다음 사역 위해 천사들을 내려보내
그의 아들들과 백성들 목양하게 하시네
큰 붉은 용 소굴에서 ‘겨루시네’
모든 이가 육신 통해 하나님 알고 그의 행사 볼 때 큰 붉은 용 소굴은 사라지리
하나님이 강림하셨네 큰 붉은 용 그 나라에
온 우주를 마주하시니 궁창이 흔들리네
그 어느 곳이 그의 심판 그가 내리신 재난 속에 살지 않는가?
하나님은 가시는 곳곳마다 재난의 씨를 뿌리셨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구원과 사랑
하나님은 더 많은 이들이 그를 알고 보게 하여
뵌 적 없으나 오늘날엔 실제의 하나님 경외하게 하시리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 말씀 찬양 더보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우주 궁창에 가득한 하나님의 행사>(가사 버전)


1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만물 살피시고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만물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구원을 땅에 베푸셨고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은밀하게 지켜보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잘 아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잘 아신다
은밀한 곳은 하나님의 처소요 궁창은 하나님의 침상이다
사탄의 세력이 가까이 못 하는 위엄과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은 만유를 거니시고 온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신다
사람들 가운데 다니면서 세상의 달콤함, 씁쓸함 맛보셨지만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다니실 때 그를 보지도 못했다
하나님이 기적 행하지 않고 잠잠히 계셨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서 창세 이래 사람이 보지 못했던 일을 행하시고
역대 사람들이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육신의 하나님 알길 바라신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 말씀 찬양 더보기:









6/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3) 욥은 시련을 어떻게 대했는가

(욥 2:9~10)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 3:3)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욥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를 귀하게 여겼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이 대화에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사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첫 번째 시련에서 보인 욥의 반응과 모습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평가는 사탄의 시험을 당하기 전의 평가와 똑같았다. 즉, 시험이 임하기 전에 욥은 하나님 눈에 순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 주었으며, 그에게 복을 내린 것이었다. 욥은 하나님 눈에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시험을 겪은 후,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었다고 해서 입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였다. 욥의 실제적인 행동에 하나님은 갈채를 보냈으며, 만점을 부여했다. 욥의 눈에는 모든 재산이든 자녀든 하나님을 버릴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그 어떤 재산이나 자녀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욥이 처음의 시험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사랑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대한 욥의 애정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는 것을 보았다. 이번 시련이 욥에게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일 뿐이었다.

욥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의 마음을 씻는 진실한 체험이었으며, 그의 인생을 충실하게 하는 생명의 세례였다.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경외심을 검증하는 한 차례의 풍성한 잔치였다. 이번의 시험으로 욥은 부자의 신분에서 무일푼의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으며, 동시에 사탄으로부터 해를 입었다. 욥은 자신이 무일푼이 되었다고 해서 사탄을 증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탄의 졸렬한 행위로 인해 사탄의 추함과 비열함을 보았으며, 사탄이 하나님께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영원히 지키겠다고 더욱 굳게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욥은 맹세했다. ‘재산, 자녀, 가족 같은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절대 사탄의 노예나 재산의 노예, 그 어떤 사람의 노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어떤 누구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욥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시험을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 역시 욥은 얻은 것이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시련에서도 얻은 바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의 인생에서 욥은 여호와의 행사를 보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 준 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복은 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더 빚진 마음이 들게 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없는데도 이와 같은 큰 복을 받아 참으로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늘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울러,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순종과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그의 순종을 검증하고 그의 믿음을 정결케 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욥은 이번에 시련이 임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이런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기에 전혀 태만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욥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소원이 실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경외심이 검증받을 수 있고, 아울러 정결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이로부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욥은 이와 같은 믿음과 추구가 있었기에 이번 시련에서 더욱 순전해질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이 내려 준 복과 은혜에 더욱 감사했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더욱 찬양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앙망하며,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위대함과 거룩함을 더 간절히 사모했다. 이때의 욥이 하나님의 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을지라도, 욥의 경험과 체험을 놓고 봤을 때 욥의 믿음과 인식은 엄청난 진보와 발전이 있게 되었다. 그의 믿음은 커졌고, 그의 순종은 목표에 도달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한층 더 깊어졌다. 비록 이번 시련으로 욥의 마음과 생명이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되었지만 욥은 이로 인해 만족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욥은 이번 시련에서 자신이 얻은 수확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고, 또 자신의 결점과 부족한 부분들을 성찰해 보았다. 아울러, 그는 묵묵히 기도하며 다음 시련을 기다렸다. 욥은 자신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하나님의 또 한 번의 시련을 통해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6/29/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창조주의 권능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다

1.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다

(창 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6~7)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 1:9~11)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창 1:14~15)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20~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다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3. 하나님의 축복

(창 17:4~6)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창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이상 세 부분의 성경 말씀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권능을 행사할 때 원칙이 있다는 것을 보았느냐? 예컨대, 하나님은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는데,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며 사람에게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지금 사람들이 보는 ‘무지개’가 하나님이 당시에 말씀하였던 그 ‘무지개’가 아니냐? 그 무지개의 성격과 의미에 변화가 있느냐? 확신하건대 어떤 변화도 없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그 일을 행하였고, 사람과 세운 언약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언약’이 언제 변할지는 물론 하나님이 결정한다.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한 후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언약’을 지키고 있다. 이 일에서 너희는 또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권세와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일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고 원칙이 있으며 신용을 지킨다. 그의 신중함과 그가 일하는 원칙은 창조주를 거스를 수 없고 그의 권능을 초월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권능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모두 그의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계획을 파괴한 적도 방해한 적도 없다. 그는 권능을 행사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정확하게 진행한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는 만물 역시 하나님 권능의 행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의 권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고, 그의 권능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다. 그가 보기에 복받는 자는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 권세 아래에 있을지라도,주받는 자 역시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능의 주재하에, 하나님 권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며, 하나님 권능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다. 창조주의 권능은 그 어떤 요인의 변화로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권능의 행사 원칙 역시 그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격변한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능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 권능의 본질인 것이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성인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과 마주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고 있는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욥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언급하겠느냐?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설명하기 전에 너희에게 하나 묻겠다. 욥은 하나님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일까?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깊이 패괴되었다’는 것은 문제의 표면적인 현상일 뿐 나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너희들은 평소 ‘깊이 패괴되었다’, ‘하나님을 거역한다’,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없다’, ‘순종하지 않는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와 같은 도리와 글귀를 곧잘 말한다. 이런 실속 없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것으로 모든 문제의 본질을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실천법이다. 다른 성질의 문제들을 똑같은 답으로 해석하는 것은 진리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답을 듣길 원치 않는다. 잘 생각해 보아라! 이 일에 대해 너희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만 나는 여기서 날마다 보고 느낀다. 그래서 너희는 행하고 있고 나는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가 행하고 있을 때 너희는 이 일의 본질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이 일의 본질을 볼 수 있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본질은 무엇일까? 왜 지금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에서 떠나지 못할까? 너희의 답은 이 문제의 본질을 전혀 해석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여기에 너희가 모르는 근본 원인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너희가 무척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럼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려 주겠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고 그의 사역 대상으로 여겼으며 정복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할 대상으로 여겼다.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람에 대해 가졌던 태도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대했을까? 사람은 하나님을 생소하게 느끼며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에 대해 갈피를 못 잡는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고,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대하고 행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점도 없었다. 사람의 관점이란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말한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받아들이고 부합하지 않는 것이면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극력 저항하고 반대했다. 이것이 처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낯선 사람으로 대했다. 그러나 일정 기간 하나님이 사역한 후,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참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여겼느냐? 생명줄로 여겼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약속을 받기를 원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검증하고 시련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보았고,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는 종착지를 얻을 기회가 있음을 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 조금이나마 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표면적인 도리상의 인식도 조금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해 점차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한 도, 선포한 진리, 행한 사역에 대해서도 서서히 ‘익숙’해졌다. 그런 이유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낯설지 않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진리의 도를 많이 들었고 하나님의 사역도 무수히 많이 체험했다. 하지만 수많은 요인, 그리고 상황의 방해와 저지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은 진리를 실천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했다. 사람은 점점 태만해지고 믿음을 잃어 갔으며 점차 자신의 결말이 불확실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사치스러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발전하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마지못해 따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사람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나님은 단지 진리와 그의 도를 사람에게 부어 준 뒤 여러 환경을 마련하고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시련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말씀과 진리와 그가 행하는 사역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이루는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많은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도리와 글귀와 규례로만 삼아 지킬 뿐, 일을 처리하고 말하거나 또는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도를 자신이 지켜야 할 도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 크나큰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방향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나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극도의 반감과 혐오감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차례, 심지어 수백 차례 시련을 준 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겠다!’라는 결심을 드러내는 그 어떤 명확한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이런 결심과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전처럼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 포용과 인내를 베푸는 대신 극도의 실망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실망’은 누가 초래한 것이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행한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적지 않은 요구를 했고 사람에게 많은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실천했고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목표에 따라 명확하게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로 종합한 말로 방금 우리가 언급했던, 사람이 왜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즉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해석해 보겠다. 이 말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대상이자 사역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원수이자 대립적인 상대로 여겼다는 말이다. 지금 이 사실에 대해 분명히 깨달았느냐? 사람의 태도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분명하다. 너희는 스스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는 것,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것,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내용들을 종합해 냈다. 하지만 너희가 도를 얼마나 많이 들었든지 상관없이, 너희가 스스로 종합한 내용들은 내 입장에서 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도를 의식 있게 행한 것이 아니다. 그 내용들은 그저 너희가 어떤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경로일 뿐이다. 너희는 그런 목적들을 위해 억지로 규례들을 지키는데, 바로 그런 규례들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와 더욱 멀어지고 또다시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얘기하는 주제가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너희가 앞으로의 체험과 시간 속에서 방금 내가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해 필요할 땐 존재한다 느끼고 불필요할 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말기를 바란다. 네가 잠재의식 속에서 그렇게 인식할 때는 이미 하나님을 노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는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범위와 원칙 기준에 맞게 실천했지 제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실천 방식은 맞다! 하지만 일이 닥쳤을 때 너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일이 닥치면 어떻게 실천했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때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여기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하나님은 공기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불쑥 드러내며 자신의 뜻대로 행하려 한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는 하나님이 존재해야 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뜻대로 실행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하나님의 도를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지금 이런 상황과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위험한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위험한 경계에 있든 어쨌든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믿어 왔으니 하나님은 저를 버리실 수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차마 버리지 못하실 테니까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오십 년간 주님을 믿었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저는 가장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가장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오십 년간 저는 가정과 직장,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돈, 지위, 향락과 가족의 단란함 같은 것도 버렸습니다. 오랜 시간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고, 재미있는 것도 즐긴 적이 없으며 좋은 곳에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일반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는 고통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냐?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너희에게 실정을 알려 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상상으로 자기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 상상과 규정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대체했고, 하나님의 진실한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실한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매일의 하나님 말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발췌문 217)






6/2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9)



📖 창조주 권능하의 만물은 다 완전무결하다

새와 어류, 나무와 화초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없는 것,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집짐승, 곤충, 들짐승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하나님이 보기에 다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보기에 그 모든 일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졌고, 그의 기준에 도달하였다. 창조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하고자 한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이루었다. 그가 창조하고자 한 것들이 한 가지씩 나타났고, 나타난 것마다 모두 창조주 권능의 구현이자 그의 권능이 가져온 결정체였다. 이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들로 창조주의 은혜와 공급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가 나타남으로 이 세계는 점차 하나님이 만든 만물로 풍요로워졌다. 혼돈하고 캄캄했던 세계가 맑고 깨끗하게 변화되었고, 적막하던 세계가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세계로 변화되었다. 창조된 만물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세한 것까지,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모든 피조물은 그것만이 갖는 정해진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다르든지 간에, 창조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면, 그것은 모두 창조주의 권능하에 생존하게 된다. 간혹 사람은 못생긴 곤충을 보면 “왜 이리도 못생겼어?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생긴 것을 만드셨을 리 없으니 이건 절대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야.”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곤충은 유난히 못생기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니 분명히 이것만의 특별한 쓰임새가 있을 거야.”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모든 생물들이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각양각색의 기능과 용도가 있도록 다 생각해 두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외형부터 내면의 구조까지, 생활 습관부터 각자 차지하고 있는 위치까지 다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나귀는 나귀의 생김새가 있으며,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누가 제일 예쁘고 누가 제일 못생겼다고 하겠느냐? 누가 가장 쓸모가 있고, 누가 가장 불필요한 존재라고 하겠느냐? 어떤 이는 코끼리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코끼리를 이용해 밭을 가는 자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만물 가운데 가장 위엄 있게 생겼다며 사자, 호랑이의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사자와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느냐? 요컨대, 만물을 대함에 있어, 사람은 창조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즉,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규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현명한 것이다. 또한, 창조주의 초심을 찾고 순종하는 태도야말로 창조주의 권능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에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이때에 이르러, 창조주 권능하의 만물은 창조주의 주재에 새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새날의 사역에 눈부신 서막을 열 것이며, 창조주도 그 순간 자신의 경영 사역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만물은 창조주가 정한 ‘봄에 싹트고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이 법칙과 창조주의 경영 계획에 따라 서로 함께 호응할 것이다. 그들은 각자 새로운 날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생명 여정을 맞이할 것이고, 또한 창조주 권능의 주재 아래에서의 하루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쉼 없이 성장하고 번성할 것이다. …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1)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6)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1)



               🎣  율법시대의 조문

               🎣  율법시대의 규례는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도한 확실한 증거다

               🎣  인류는 영원히 하나님의 가르침과 공급을 떠날 수 없다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6)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6/2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6)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나타내는 행사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심과 시련 속에서 한 증거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았고, 기뻐했으며, 칭찬했다. 사람들 역시 부러워했고, 경탄했으며, 더욱이 칭찬이 자자했다. 그의 일생은 위대하지 않고 평범했다.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평범한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그는 보통 사람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도를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보통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주재를 느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어떤 보통 사람보다 총명한 것도 아니고, 막강한 생명력을 지닌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정직함과 선함과 올곧음, 그리고 공평과 공의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는 인성과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었으며, 강한 의지와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평범치 않은 일들을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 공의로움을 보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총과 보호를 보았으며,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존귀함과 권병을 보았다. 욥이 일반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했으며, 그의 마음이 창조주에게 끌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욥의 추구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추구했으며,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악에서 떠나는 자가 되고자 추구했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갖추고 추구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을 깨달았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지혜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지만 사람에게 복을 주고 사람에게서 거두어 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가 지나온 세월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아주 평범한 일상은 그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결코 영향을 주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데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의 눈에 하나님의 행사는 만물의 운행 법칙 가운데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주재 역시 사람의 삶 속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행사의 무소부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평범한 날들 속에서, 삶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비범하고 오묘한 행사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기묘한 안배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음’과 ‘침묵’은 욥이 하나님의 행사를 체험하는 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욥의 일생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만물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또한 욥은 평범한 날들 속에서, 만물 가운데 침묵하고 계시지만 만물의 운행 법칙을 주재하면서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고 욥처럼 추구하면, 욥과 같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욥처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지 않았고 욥에게 말씀하지 않았지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람이 만물 가운데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행사와 주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사람이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욥같이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었다면,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이 논리적 추론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물의 법칙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욥만 가지고 있는 특허처럼 보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욥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욥’이란 이름이 붙어 있어 그 일이 다른 사람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욥만이 정직하고 선하고 올곧고,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과 품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마 너희도 깨달았을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은 정직함과 선함과 올곧음, 그리고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사지도 못하고, 시련에서 굳게 설 수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욥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사탄의 속박과 굴레에 묶여 있으며, 모두 사탄이 참소하고 공격하고 해치고 삼키려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얻지 못한 자들이고, 사탄에 의해 구금된 죄수들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련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지 검증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던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베풀어 주고 진리를 알려 주었다. 이 진리들은 사람이 지키고 행해야 할 도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 역정 속에서 실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목적이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것으로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켜야 하고,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결말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어떻게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너희는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잘 모를 테지만, 많은 사람이 이미 관련된 체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 과정을 말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해서 지금껏 모든 사람에게, 즉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버림받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는 시련을 겪었으며, 어떤 사람은 잡혀가거나 고문을 받는 시련을 겪었다. 또 어떤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지위와 재물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쳤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할까? 그는 어떤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네게 시련을 주어 어떤 환경에 처하게 할 때는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 검증하려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제물을 관리하는 본분이 주어졌다고 하자. 그 본분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제물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일은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 아니냐?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너에게 닥치는 일은 다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다. 너에게 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실천하는지,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은밀히 관찰하며 지켜볼 것이다. 하나님은 그 결과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결과를 통해 네가 그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렀는지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은 흔히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보려는 것이 무엇이고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대신 이런 생각만 한다. ‘나한테 이런 일이 주어졌으니 소홀히 하지 말고 신중을 기해야지! 이건 하나님의 제물이니까 손을 대선 안 돼.’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고선 책임을 다했다고 여긴다. 이 시련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만족했을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했을까?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제물을 접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신중을 기할 것입니다.) 근접했지만 아주 적절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외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일이 닥쳤을 때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책임이나 사명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이 닥쳤을 때 너는 그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준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일이 닥쳤을 때 네 마음속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일이니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방금 우리는 제물 보관에 대해 말했다. 제물과 관련 있고 또 너의 본분 및 책임과도 관련 있는 일이다. 그 책임은 마땅히 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이 주어지면서 시험도 따르지 않을까? 당연히 시험이 있다! 시험은 어디에서 오느냐? 사탄에게서 비롯되기도 하고 사람의 사악하고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시험이 있다는 것은 이 일이 사람이 굳게 서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굳게 서는 것 역시 너의 책임과 본분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작은 일을 굳이 큰 문제로 여길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일단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너에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다는 이런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천해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이 기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의 실천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치면 가볍게 생각해 그냥 흘려보낸다. 사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가 바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도를 가장 중요한 도로 삼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에 기반해 사람에게 행하는 미묘한 사역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 부주의한 사람이구나! 무엇이 큰일이고 무엇이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는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다. 이 말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네.) 사람이 보기에 매일 닥치는 일 중에 어떤 일은 아주 크고 어떤 일은 아주 작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아주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큰일이 주어져도 사람의 분량이 작고 자질이 부족한 탓에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며, 가치 있는 실제적 인식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일은 무시하면서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검증받고 시련받을 무수히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과 일, 사물과 환경을 소홀히 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고 인도하려는 것을 네가 날마다, 더 나아가 매 순간 저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너를 은밀히 관찰하고 네 마음과 모든 생각을 감찰한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려고 하는지를 본다. 만일 네가 경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한 번도 참답게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는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환경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에게 주어진 사람과 일이 진리나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너에게 이렇게 여러 차례 환경과 시련을 주었음에도 너에게서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에게 수차례의 시련이 주어졌음에도 네 마음이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하나님이 준 시련이나 검증으로도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내려 준 기회를 지속적으로 밀어내고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엄청난 패역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로 슬퍼하겠느냐? (슬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또 크게 놀랄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늘 슬퍼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퍼하지 않으신다고? 그럼 하나님은 언제 슬퍼하시는 거지?’ 어쨌든 하나님은 이 일에서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면 앞서 언급했던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하나님의 검증을 밀어내고 도피하려 할 때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태도만을 취한다. 어떤 태도일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을 증오하고 버린다. ‘증오와 버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할까? ‘증오’에는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있다. ‘버림’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있어서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포기’가 어떤 뜻인지 너희는 다 알고 있겠지? 결론적으로 ‘증오와 버림’이란 하나님이 위에서 말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에게 취하는 마지막 반응이자 태도로, 사람에게 크게 혐오감과 반감을 가져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도를 전혀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최종 결단이다. 이제 너희는 내가 한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느냐?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 알겠느냐? (날마다 다른 환경을 마련해 주시는 방식으로 정하십니다.) ‘다른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고 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하는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 출발점은 하나님이 각기 다른 시간과 지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시련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시련하는 것일까? 사람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서, 네가 듣고 보고 직접 겪는 모든 일에서 네가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고 시련하는 것이다. 이런 시련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을 몇 년간 믿어 왔는데 왜 제게는 시련이 닥치지 않은 걸까요?” 시련이 닥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네가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 시련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도 시련이 몇 번 닥쳤지만 정확한 실천의 길을 몰랐었습니다. 실천했다 하더라도 제가 과연 그 시련 가운데 굳게 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태인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내가 앞서 언급했던 그 말이다. 즉, 네가 행하고 생각하고 드러낸 것들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확정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냐? 말로야 쉽겠지만 실천하기도 쉬울까? (쉽지 않습니다.) 왜 쉽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온전케 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에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모릅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 형벌과 심판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가 있게 됩니다.) 너희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 느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지금 너희는 많은 도를 듣고 진리 실제로 많은 양육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지 이론과 의식상으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실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쉽게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실제로 해내지 못할까? 바로 사람의 본성과 본질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원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 🎀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속시대 사역의 실상>(발췌문 1)


나의 전체 경륜, 즉 6천 년 경륜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구속시대),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 총 세 시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나의 사역 내용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이뤄졌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탄과 싸울 때 사탄이 꾸민 간계에 따라 행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물리쳐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사탄의 간계를 드러내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아가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또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고, 추하기 그지없는 사탄의 몰골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아가 피조물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다. 즉, 나는 피조물로 하여금 내가 만물의 주재자임을, 사탄은 인류의 원수이자 변절자이고 악한 자임을 분명히 알게 하는 한편,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뚜렷이 구분하게 하려 했다. 나는 이 무지한 인류가 나를 증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인류를 타락시킨(직역: 패괴시킨) 건 ‘내’가 아니며, 오직 창조주인 나 자신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것들을 베풀어 준다는 사실을, 또한 내가 바로 만물의 주재자이며, 사탄은 창조된 후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6천 년 경륜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사역한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피조물이 나를 증거하고, 나의 뜻을 깨달으며, 내가 진리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6천 년 경륜의 첫 사역을 율법 사역으로 시작했다. 이는 여호와가 백성들을 인도한 사역이었다. 두 번째 단계인 은혜시대에는 유대의 각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예수는 은혜시대의 모든 사역을 대표한다. 그는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또한 은혜시대를 열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완성했고,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열었기에 ‘대원수’, ‘속죄 제물’, ‘구속주’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예수와 여호와가 행한 사역의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원칙은 동일한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열어 땅에서 사역할 근거지, 즉 발원지를 세웠으며 계명도 반포하였다. 이는 여호와가 행한 두 가지 사역으로, 율법시대를 대표한다. 한편 예수가 은혜시대에 행한 사역은 계명을 반포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은혜시대를 열면서 2천 년간 지속된 율법시대를 끝냈다. 그는 은혜시대를 열러 온 개척자이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뭐니 뭐니 해도 구속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행한 사역 또한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새 시대를 연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사역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났다. 그때부터 인류는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 📖 📕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5)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8)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그들의 생각과 관점은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처세 원칙과 방식을 지키고 있고, 이방인과 같은 생존 법칙과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고 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취미로만 믿을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의지처로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알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들은 관심을 가지려고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늘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는 강렬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으로만 인정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 어떤 실제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현명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방인이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나요? 본분을 이행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다 외적 행실이지 사람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 행실을 보지 않고 사람의 내적 본질만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죠? 하나님은 왜 저렇게 하시죠? 난 이 일을 납득할 수 없고 저 일도 납득할 수 없어요. 이 일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아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이런 말에 나는 이같이 답할 것이다. “너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느냐? 이 일이 너와 상관이 있느냐?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흠잡을 자격이 있느냐? 네가 그를 믿기라도 하느냐? 그가 너의 믿음을 인정하느냐? 너의 믿음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그의 행사가 너와 또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 마음속에서 너의 위치가 어떤지도 모르는데, 네게 하나님과 대화할 자격이 있겠느냐?”

📖 훈계의 말씀

너희는 이 말을 듣고 무척 괴롭지 않으냐? 듣기 싫거나 받아들이기 싫을지라도 이는 다 사실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태도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알아 가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너 자신이다. 너희는 내 말이 듣기 거북하다고 탓하지 말고, 내 말이 너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고 탓하지도 마라. 내가 말하는 것은 다 사실이지 너희에게 타격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든 모두 너희가 올바른 길을 가기 바라고, 너희가 올바른 길에서 빗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그의 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올바른 길에서 엇나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명확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흐리멍덩하지 않고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믿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태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를 너희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네가 따라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는 이미 내게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이미 많은 말을 분명히 해 주었기 때문이다. 네가 자신의 결말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태도로 사람들의 결말을 대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가늠 방식이 있고, 자신만의 요구 기준이 있다. 그 가늠 기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다. 이제 안심이 되겠지?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 📕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6/2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8)


여섯째 날, 창조주가 말씀하니 그의 생각 속 각종 생물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부지불식간에,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는 사역이 벌써 닷새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곧이어 그 여섯째 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자 또 하나의 평범하지 않은 날이었다. 새날이 왔을 때, 창조주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까? 또 어떤 새로운 피조물이 생기고 만들어졌을까? 들으라. 이것은 창조주의 음성이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4~25). 이들 생물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말하자면, 이날 땅 위에는 각종 생물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그 종류대로 분류되었는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앞의 다섯 날과 마찬가지로, 창조주는 여섯째 날에도 똑같은 어조로 그가 원하는 생물이 생겨나라 명하니 그들이 땅 위에 나타났으며, 각기 종류대로 되었다. 창조주의 권능이 행사되자,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 창조주가 만들고자 계획한 모든 생물들이 예정대로 생겨났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라는 창조주의 이 말씀이 있자, 뭍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땅 위는 순식간에 각종 생물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가득 찼다. … 초록 풀빛을 잔뜩 머금은 들판에는 튼실하게 살찐 소들이 꼬리를 흔들며 속속 등장하고, 양들이 메에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무리를 짓고, 말들이 울부짖으며 질주해 왔다. … 순식간에, 고요하던 광활한 들판이 시끌벅적해졌다. … 각종 가축들의 출현으로 조용하기만 하던 들판에 아름다운 볼거리가 더해졌고 더없는 활기가 넘쳤다. … 그들은 들판을 벗 삼고, 들판의 주인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 것이고, 들판의 파수꾼이 될 것이다. 들판 역시 그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그들이 영원히 생존하게끔 자양분을 공급해 줄 것이다. …
이들 가축들과 같은 날에 태어난 각종 곤충들도 창조주의 말씀에 따라 잇따라 나타났다. 비록 그들이 피조물 중 가장 작은 생명체일지라도 그들의 생명력 역시 창조주의 오묘한 창조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결코 늦게 온 것이 아니다. … 참으로 다양한 것이,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도 있고, 천천히 기어 다니는 것도 있으며, 또 어떤 것은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한다. 비틀거리며 걷는 것도 있고,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재빠르게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옆으로 걷고, 어떤 것은 위로 뛰어오른다. … 그들은 각자 바쁘게 자신의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은 풀숲에 들어가고, 어떤 것은 땅에 굴을 파느라 분주하고, 어떤 것은 큰 나무에 날아올라 숲속에 몸을 감춘다. … 몸집은 작아도 그들 모두 배고픔을 참지 못하니, 각자 집을 마련하고는 배를 채울 먹이를 급하게 찾아 나선다. 어떤 것은 여린 풀잎에 기어올라 먹고, 어떤 것은 흙을 물어 한 입씩 삼키는데,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정말 즐거워한다(흙은 오히려 그들의 맛있는 먹이가 되었다). 어떤 것은 숲속에 숨어서도 결코 쉬지 않는데, 나무 위 진초록 잎사귀의 진액은 그들 입맛에 맞는 아주 좋은 음식이 되었다. … 배를 실컷 채운 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그들은 작지만 에너지도 활력도 아주 넘쳐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물 가운데 가장 많이 활동하고 가장 부지런한 피조물이다. 그들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편안함을 탐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배를 채운 후에도 여전히 앞으로 살날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그들의 내일과 생존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 그들은 다양한 선율과 다채로운 박자의 노래들을 조용히 흥얼거리며 스스로에게 힘찬 기운을 북돋아 준다. 또한 온 풀숲, 숲속, 모든 토양에도 즐거움울 선사하며, 언제나 특별한 하루, 남다른 한 해를 만들어 준다. … 그들은 각자의 언어와 각자의 방식으로 땅 위의 각종 생물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또한 각자 특별한 생존의 궤적으로 다른 만물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며 족적을 남긴다. … 그들은 흙과 풀과 숲과 매우 친밀하여 이들에게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창조주가 각각의 생물에게 한 당부와 안부를 전해 주기도 한다. …
창조주가 자신이 만든 만물을 두루 살피고 있던 그 시각, 그의 두 눈은 숲에, 큰 산 사이에 머물렀으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무성한 숲속에, 그리고 산속에는 이전의 피조물과는 다른 부류의 피조물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들짐승’이다. 그들은 예사롭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보라, 털이 난 것이 있는가 하면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이를 드러내고 어떤 것은 입을 벌리고 있다. 또 목이 긴 것이 있는가 하면 꼬리가 짧은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두 눈에 살기를 띠고 있고, 어떤 것은 두려워하는 눈빛을 띠고 있다. 몸을 굽히고 풀을 뜯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이 있고, 또 나무에 기어 올라가 멀리 바라보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숲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고, 어떤 것은 쉴 만한 동굴을 찾는가 하면 어떤 것은 또 평원을 내달리며 장난치고, 어떤 것은 수풀을 헤치며 다닌다. … 포효하는 것도, 으르렁대는 것도 있고, 미친 듯이 짖어 대는 것도, 울부짖는 것도 있다. … 그들이 내는 소리는 높은 것도, 나지막한 것도 있고, 우렁찬 것도, 맑고 청아한 것도 있다. … 어떤 것은 무섭게 생겼고, 어떤 것은 예쁘장하고, 어떤 것은 역겹게 생겼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름다워 호감 가게 생겼고, 어떤 것은 그 생김새가 공포감을 주고, 어떤 것은 귀여움이 철철 넘친다. … 그들이 하나하나 속속 걸어 나온다. 보라. 그들 모두 의기양양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누구를 상대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눈길 한 번 주려 하지 않는다. … 그들은 각자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별한 생명을 받아, 거친 야수성과 난폭성을 지니고 숲과 산속에 나타났다. 그들이 그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기세가 등등해도 그들이 산과 숲의 진정한 주인인 것을 어쩌겠느냐? 창조주가 그들에게 나타나라 명령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숲과 산을 ‘강점’했다. 창조주가 이미 그들의 경계를 정하고 그들의 생존 범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산과 숲의 진정한 제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처럼 야수성을 지니고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야수’로 불리는 까닭은, 만물 가운데 그들만이 진정으로 야수성과 난폭성을 지니고 있는 길들이기 어려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길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사육될 수 없고, 인류와 화목하게 살 수 없으며,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다. 그들이 사육될 수 없고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인류를 멀리해야 하고, 인류도 그들을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인류를 멀리하고 인류가 그들과 가까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한 책임, 산과 숲을 지키는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야수성은 산과 숲을 지키는 것이며, 그들의 번식을 위한 최적의 보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의 야수성은 또 만물의 균형을 보장하고 유지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의 출현은 산과 숲에 의지처를 제공했으며, 적적하고 쓸쓸하던 산과 숲에 생기와 활력이 넘치게 하였다. 그때부터 산과 숲은 그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었고,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집을 잃지 않게 되었다. 산과 숲은 그들을 위해 생기고 존재하며, 그들은 장차 산과 숲을 지키기 위해 맡은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당부한 것, 그들의 영토를 지키고 그들의 야수성을 유지함으로 창조주가 정한 만물의 균형을 유지하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2)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9)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2)



첫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는 육신이 해야 할 첫 단계의 사역만 마쳤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끝내기 위해 다시 한번 육신으로 돌아와서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모습과 실제를 살아 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정상적이고 평범한 육신으로 나타냄으로써 육신으로 끝내지 못한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입은 육신은 첫 번째의 육신과 본질 면에서 같지만, 더 실제적이고 정상적이다. 이로 인해 두 번째의 성육신이 받아야 할 고난은 첫 번째 때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난은 육신의 직분으로 인해 생긴 것이지, 타락한(직역: 패괴된) 인간이 받아야 할 고난과는 다르다. 또한, 그 고난은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가장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으로 직분을 이행해야 하기에 그 육신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일수록 직분을 이행할 때 겪는 고난은 더 커진다. 하나님의 사역은 지극히 평범한 육신에서 발현되므로 초자연적인 모습이 조금도 없다. 육신이 평범한 데다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까지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겪는 고난은 초자연적인 면을 가진 육신이 겪는 고난보다 훨씬 더 크다. 그 고난은 모두 육신이 실제적이고 정상적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이 직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고난을 통해 성육신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겪는 고난이 더 크고, 실제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사람의 관념은 더욱 심해지며,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나 실제적인 육신일수록, 그리고 정상인의 완전한 이성과 요구를 지닌 육신일수록 하나님이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더 잘 담당할 수 있다. 예수는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육신으로 속죄 제물이 되었다. 즉,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사람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구원한 것이다. 두 번째의 성육신은 완전한 육신으로 정복 사역을 하며, 사탄을 물리친다. 완전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만이 완전한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고, 강력하게 증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과 정상적인 면을 통해 이루는 성과이지, 초자연적인 이적과 계시를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번에 성육신한 하나님이 이행해야 하는 직분은 말씀을 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다. 즉,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하여 행하는 사역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며, 육신의 기본 사역 또한 말씀 선포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드러내며, 온전케 하고, 내치는 목적을 이룰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정복 사역의 과정에서 철저히 완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의 속죄 사역은 성육신의 초기 사역에 불과했다. 정복 사역을 하는 육신이야말로 성육신의 모든 사역을 보완할 수 있다. 성별을 봐도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졌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본질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가 남자를 만들고 여자도 만들었으나 그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계 사역에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는 말씀을 통해 성과를 얻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이번 성육신의 사역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능은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정상 인성으로 하는 사역은 표적을 보이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보기에 두 번째의 성육신은 첫 번째의 성육신보다 훨씬 정상적으로 보인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번 성육신은 예수의 성육신과는 다르다. 똑같이 하나님의 성육신이기는 하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예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번 성육신에게서는 사람의 병을 고쳐 준다거나 귀신을 쫓는다거나 물 위를 걷는다거나 40일 동안 금식하는 등의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 어떤 표적과 기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예수가 했던 것과 같은 사역을 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입은 육신의 본질이 예수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직분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의 사역을 망가뜨리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실제의 말씀으로 정복하면 기적으로 사람을 탄복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이 단계는 성육신의 사역을 완전케 하기 위한 사역이라고 한다. 오늘날, 네가 볼 수 있는,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완전한 육신으로, 어떤 초자연적인 면도 지니고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병도 앓고 의식주 활동도 하는 완벽한 육신이라는 말이다. 만약 이번 성육신도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누군가에게 죽으라 명해 그 사람이 바로 쓰러진다면 어떻게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이방으로 확장하는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자 구속 사역의 첫걸음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했기에 더 이상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말세에 예수와 동일한 ‘하나님’이 와서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그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같아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악령이 입은 육신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한 번 끝낸 것을 영원히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행한 사역과 다르다. 하나님은 말세에 정복 사역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육신에 실체화하였다. 그는 사람을 위해 병을 고쳐 주지도,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으며, 그저 육신으로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할 뿐이다. 이런 육신만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며,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을 완전케 할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