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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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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 ―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 · 제11편

 

말씀책

내가 너의 하나님이자 너의 왕이냐? 너는 내가 네 안에서 진정으로 왕권을 잡게 했느냐? 잘 성찰해 보아라. 새 빛이 왔을 때 연구하고 거부하며, 심지어는 따르지 않고 멈추지 않았더냐? 그러니 너는 심판받아 죽음으로 떨어질 것이다. 심판과 채찍질을 당하고 성령 역사를 느끼지 못할 것이며, 급히 울부짖으면서 엎드려 경배하고, 슬피 통곡할 것이다. 나는 늘 너희에게 얘기하고 말했다. 너희에게 하지 않은 말이 없다. 잘 돌이켜 보아라. 내가 당부하지 않은 것이 있더냐? 그런데도 계속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고, 의심의 구름이 해를 가려 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자기’ 뜻이 너무 강하고 관념이 너무 크기 때문 아니겠느냐? 네 안중에 내가 어디 있더냐! 네 마음속에 내 자리가 어디 있더냐! 너는 실패해 아무런 방법도 없게 되어야 나에게 간구하는구나. 네 생각대로 한번 해 봐라! 이 사람들아! 전부 네 옛 자아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새 빛을 따라가지 못한다. 늘 예전에 깨달은 것들만 교제할 뿐 새로운 것이 없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모두 자기 안에서 살면서 나를 향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 방식이 바뀐 것을 보면 너는 틀릴까 봐 늘 조심한다.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더냐? 너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구했느냐? 너는 ‘성령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며 머리로 궁리하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 역사임을 보고서도 한바탕 논평을 늘어놓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자의 관념만 잔뜩 늘어놓고, 성령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며, 대가를 치르며 내 앞에서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건성으로 대한다. 또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도 내 앞에 와서 교제하며 구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것은 무슨 속셈이냐?

확장 열람 : 하나님을 경외한 욥의 세 가지 모습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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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하나님 말씀 찬양 :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행할 길


⭐⭐⭐⭐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1/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간증 -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리

 샬롬!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주 안에서 평안하신가요?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지낼 때 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라는 이런 처세술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여전히 주님을 섬기거나 다 버리고 열심히 헌신하는 일들을 천국에 들어갈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이런 생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오늘 내용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거래로 삼지 말아야 한다>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 계산서 이야기에서 깨우침을 얻다

부모와 아이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계산서를 내밀었는데, 그 계산서에는 아이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동생을 돌봐 준 내용과 함께 자신에게 총 50불을 줘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아이에게 50불을 주면서 계산서 한 장을 같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아팠을 때 같이 있어 주었던 일,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던 일, 아이를 위해 기도했던 일 등 아이가 지불해야 할 내역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 항목의 청구 금액은 모두 0불이었습니다. 계산서를 본 아이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엄마에게 받은 50불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저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나이 어린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를 용서 안 할 수 없지.’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물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은 가격이 매겨지고 우리도 당연하게 자신이 치른 대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어떤 때는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임에도 우리의 교환하려는 마음 때문에 무정한 거래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힘들게 사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길을 걷다

그러다가 제가 겪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교회의 일이 많아 저는 매일 바쁘게 보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피곤함도 잊은 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15km 떨어져 있는 다른 자매님의 집에 6시까지 도착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때 한 겨울은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특히 동이 틀 무렵엔 밤 사이 추위가 삼켜 버린 땅과 나무가 생기를 잃고 꽁꽁 얼어붙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두꺼운 털옷과 코트를 입었어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맞는 매서운 바람은 몸속 깊이 들어와 살을 에는 듯 얼음 동굴에 빠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에 감각을 잃어 몇 번이나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몸을 녹인 후에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일이 아니라면 누가 이 추운 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설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도 다 보고 계시겠지?’ 그러다가 하나님을 믿은 최근 몇 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헌신을 했으니 마지막에 큰 축복과 상을 받을 거고, 주님이 오셨을 때 분명 빛나는 면류관을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니, 이런 날씨도 별로 춥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에게 준 계산서’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과 이야기 속의 아이가 다른 게 뭐가 있지? 나도 겉으로 고생하고 헌신하면서 하나님께 축복과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건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게 아닌가?’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그때, 문득 예배 드릴 때 린(林) 형제님이 읽어 주었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말 마음이 찔렸습니다. 저는 제가 조금 고생하고 헌신했다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바랐다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가정과 제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청춘을 바치고 고통과 환난을 겪어 왔던 것이 제 인품이 훌륭하다거나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순종해서가 아닌, 이를 토대로 하나님께 축복과 상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한 고생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면 제 공로로 기록해 두고, 항상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복과 상을 받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며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사역의 길에는 불순물과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이익만을 좇는 비겁한 소인배였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겁했죠. 정상적인 인성에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을 섬기고, 본성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이익만 좇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보답을 받으려고 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계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바친 마음에도 개인적인 욕심과 불순물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앞으로 상과 축복을 받을 생각만 했습니다. 이는 기꺼이 봉헌한 것이 아니며 이런 행동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보답이 없고, 그저 냉혹한 거래만 있을 뿐이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헌신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다 

보답한단 말인가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후, 인류가 패괴된 이후든 인류가 그를 따랐던 때든 상관없이 그는 인류를 자신의 둘도 없는 가까운 존재로 삼았다. 즉, 인류가 말하는 가장 친한 존재로 여겼지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창조주이고 인류를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듣기에 조금 등급의 차이를 띠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이런 관계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또한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 대해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바라는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나 다른 서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행했는지, 왜 이렇게 인류를 보살피고 있는지를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표명해 사람이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그를 찬미하게 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상심하거나 극심한 아픔을 느낄 때에도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염려를 잊지 않고 그런 ‘상심’과 ‘아픔’을 홀로 묵묵히 감내한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렇게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 설령 인류가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잘 대해 준 것을 가지고 사람에게 은혜에 대한 감사나 보답을 받으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확장 열람: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행인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망망대해에 놓여 있던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돼야 하는지 알게 해 주셔서 사탄의 고통 속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된 길에 들어서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고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조금 고생하니,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성이 다시 드러났고, 이를 조건으로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얻고 하나님께 가정이 화목하고 가족이 편안하기만을 구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복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수많은 계산서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음에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공기와 햇빛, 비와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주셔서 하나님의 공급과 자양분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인류를 수천 년 동안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후 인류는 계속 죄를 짓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 정죄당하고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죄 없는 육신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묵묵히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고, 말씀과 역사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많은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순종하기만을 바라셨죠. 하나님의 깊은 사랑 앞에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역을 위해 고생했다며 하나님께 바라고 은혜를 달라고 할 수 있지? 이건 정말 이성이 없는 생각이 아닌가?’


​🍄 우리가 가져야 할 이성과 추구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도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 너는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당할까 두려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거절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과 흥정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고, 우리가 상과 축복으로 바꾸는 방법도 아니라 피조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자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본분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이고, 또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가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올바른 추구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기꺼이 그를 위해 바치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뜻을 헤아려야 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인성과 이성이 있는 피조물이 되어 그의 마음에 위안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추구이며, 그렇게 살아야만 사심 없는 하나님의 공급과 베풀어 주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헌신을 다하며 사역했고, 교회들을 목양하며 자신의 평생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에게 핍박도 받았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했죠. 베드로가 한 모든 행동은 주님과 거래를 하거나 천국의 복이나 더 많은 축복과 은혜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의 뜻을 따르고 그가 맡기신 일을 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고, 주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추구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렸고 마침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묵상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정말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려면 우선 방향과 목표를 올바르게 잡고,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길을 추구해 기꺼이 그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되이 본분을 이행하며 그가 맡기신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대와 어긋나기 때문에 끝까지 믿고 나서도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추천 : 말씀 찬양 CCM 2019 <하나님의 부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라>


⭐⭐⭐⭐⭐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7/0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이 승리하고 돌아오셨네>(가사 버전)


1
하나님의 본체가 우주를 마주하고 그의 본체가 동방에 나타났네!
무릎 꿇고 경배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그를 참되신 하나님이라 칭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경외하며 우러러보지 않을 자 있겠는가? 찬양하고 환호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 듣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음성 듣네!

2
하나님은 모든 것에게 경외와 찬양 하게 하시네
이것이 그의 6천 년 경영 계획의 마지막 목적 이것이 그가 정하신 것
하나님은 위엄과 심판과 권능을 지니셨기에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산으로 돌아가 그에게 항복하리라

3
그에게는 모든 것이 쉽네 모든 것은 그의 말씀으로 훼멸되거나 세워지고 이뤄지네
이것이 하나님 권세와 능력 아무도 막지 못하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기셨고 거역하는 자를 모두 이기셨네

4
산천과 만물이 기쁨으로 환호하며 아무도 떠나가지 못하네
어떤 사람도, 사물도 대적하지 못하네 이것이 하나님의 기묘하심과 능력이네!
시온아, 환호하라! 시온아, 노래하라! 하나님이 승리하고 돌아오셨네!
만민아, 어서 모여라! 만물아, 고요하라! 하나님이 승리하고 돌아오셨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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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하나님나라의 축가 1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사람을 지으신 의미를 되찾으실 하나님>(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그리스도는 영의 본래의 어떠함 나타내시네>(가사 버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나라의 축가 1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가사 버전)


1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충만하고도 완벽한 하나님의 완벽한 하나님의 본체
누군들 경축하지 않을까? (경축하지 않을까?)
누군들 기쁨의 기쁨의 춤을 추지 않을까?
시온이여! 승리의 깃발 들고 경축하라!
개선가를 불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전파하라!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2
온 땅에 있는 만물이여! (온 땅의 만물이여!) 정결히 씻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하늘의 별들이여! 제자리로 돌아가 하늘에서의 하나님 권병 나타내라!
하나님 귀를 기울이시니 온 땅의 백성들 노랫소리엔 
하나님 향한 한없는 경외와 사랑 담겨 있다네!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3
만물이 소생하는 날 (소생하는 날) 하나님 친히 세상에 임하셨네 (세상에 임하셨네)
이때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며 만물은 기뻐하네!
사탄의 나라는 하나님나라의 축포 소리와 축가 소리에 무너져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리!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4
이 땅에서 누가 감히 대적할까? (대적할까?)
이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은 진노와 재난과 불사름 가져오셨네
세상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 되었도다!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나고 호수는 곡조를 연주하네
쉬고 있던 동물, 굴에서 나오고 잠자던 만백성, 하나님이 깨우셨네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왔도다!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노래 바치네!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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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찬양 더보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사람을 지으신 의미를 되찾으실 하나님>(가사 버전)



1
이 땅에 사람을 지으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 
속죄 제물 되심으로 사람을 구원하셨네
마지막엔 사람을 정복하고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네 이것이 처음부터 그가 행하신 사역
그가 그의 나라를 세우시고 사람을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건
땅에서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의 그의 권병을 회복시키겠다는 뜻
마지막에 패역한 자를 멸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고 
땅에서 더 잘 살게 하시네
그가 세우실 나라는 자신의 나라
그가 원하시는 인류는 바로 그를 경배하는 자 온전히 순종하며 그의 영광이 있는 자
2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과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어버렸네
하나님께 패역한 원수 되고 사탄의 지배와 권세 아래 살게 되었네
하나님은 피조물의 경외를 잃었고 그들 가운데서 사역하시지 못하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함이 마땅하나
하나님께 등 돌리고 오히려 사탄 경배해 사탄이 사람 마음에서 우상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사람 마음에서의 지위와 사람을 지으신 의미를 잃으셨네
그 의미를 되찾으려면 사람을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패괴된 성품을 제거해야만 하네
마지막에 패역한 자를 멸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고
땅에서 더 잘 살게 하시네
그가 세우실 나라는 자신의 나라
그가 원하시는 인류는 바로 그를 경배하는 자 온전히 순종하며 그의 영광이 있는 자
3
사탄에게서 사람을 빼앗아 오려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셔야 하고
그래야만 서서히 사람의 본래 모습과 기능을 되찾을 수 있으며
마지막에, 마지막에, 마지막에 하나님 나라 회복시킬 수 있다네 회복시킬 수 있다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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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느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에게 질문을 하자, 사탄은 속으로 기뻐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하나님 눈에 완전한 사람을 공격할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에게는 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가! 사탄은 이 기회를 틈타 욥의 믿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욥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언제든지 욥을 자기 수중에서 멋대로 우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신의 사악한 의도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을지라도 그의 악독한 본성은 억제할 수 없었다. 그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탄의 대답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4~5). 사탄의 이 말에서 사람은 자연히 사탄의 악독함에 대해 실제적인 인식과 느낌을 갖게 된다. 사탄의 이런 황당무계한 논리를 듣게 되면, 진리를 사랑하고 사악함을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탄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증오할 것이다. 또한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염증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욥을 위해 기도와 축원을 올릴 것이다. 정직한 자가 더 순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가 영원히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또한, 욥의 의로운 행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편달하고 격려하기를 바랄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사탄의 이러한 말 속에서 사탄의 악독한 속셈을 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주 흔쾌히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다만 사탄에게 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욥 2:6). 사탄이 이번에는 손을 뻗어 욥의 뼈와 살을 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의 뜻은 욥의 육체를 사탄의 손에 붙이지만 그의 생명은 보존해야 하며, 그의 생명을 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방식과 수단으로 욥을 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후, 사탄은 허둥지둥 욥의 앞에 이르러 손을 뻗어 그의 살가죽을 쳤으며, 그의 온몸에 악창이 나게 했다. 욥은 살가죽의 통증을 느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기묘함과 거룩함을 찬양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사탄은 더 길길이 날뛰었다. 사탄은 사람을 해치는 쾌감을 느꼈기 때문에 손을 뻗어 악창이 난 욥의 살을 움켜쥐어 곪아 터지게 했다. 그 순간 욥은 피와 살에 너무나 큰 통증을 느껴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온몸의 피부와 살을 문질렀다. 마치 그러면 육체의 통증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듯이 말이다. 욥은 하나님이 곁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강해지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또 한 번 무릎 꿇고 엎드렸다.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사람의 고통을 살피시나이다. 당신께서 어이하여 사람의 나약함까지 생각해 주시나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사탄은 욥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에 사탄은 급하게 손을 뻗어 욥의 뼈를 쳤다. 욥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욥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살가죽이 뼈에서 벗겨지는 것 같았고, 또 뼈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욥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극한에 달했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 통증을 덜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욥은 참고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욥은 사탄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욥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지만 이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욥은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그의 앞에, 그의 뒤에, 그의 좌우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가 아파할 때 아파하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그때는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숨겼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미는 고통받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욥은 눈물을 흘렸다. 욥은 몸의 통증은 억지로 참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다. ‘인간은 너무도 나약한 존재입니다.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하며 여리고 무지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어찌하여 이처럼 생각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나이까? 당신께서 저를 치시고 오히려 당신이 고통스러워하시나이다. 사람이 무슨 가치가 있어 당신께서 생각해 주고 마음에 두시나이까?’ 욥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 사탄은 수를 다 썼어도 성과가 없자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은 결코 이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욥에게서 나타낼 큰 능력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는 사탄의 퇴각으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 멋진 장면은 각 인물의 출현에 따라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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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7/0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욥은 사탄을 이겨 하나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이 그의 소유를 거두어 간 것에도 순종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보여 준 것이며,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을지라도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의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과 증거한 것 역시 또 한 번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순종을 변하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욥의 믿음으로 사탄은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사망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은 인생에 더욱 풍부한 경험이 생겼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해지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부터 욥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 추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욥은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끼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욥이 일찍이 계획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슬퍼하거나 상심하는 것은 물론, 괴로워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변함없는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은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고, 또한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쳤으며 굳게 섰다. 그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빛 속에서 살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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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7/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나라의 예포 울릴 때>(가사 버전)


1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는 과거와 달리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사람이 알 수도, 할 수도 없는 사역을 하나님이 강림해 친히 사역하시네
하나님나라 건축되기 시작할 때
성육신께서 직분 시작하시고 왕권 잡으시니 하나님나라 이 세상에 임했네
2
모든 이는 그의 자비와 긍휼 (자비와 긍휼) 심판과 시련 속에 있네
사람이 패괴됐을지라도 자비와 긍휼 베푸셨고 (베푸셨고) 복종했을지라도 형벌 내리셨네
그 누가 피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내리신 고난과 연단
하나님나라 예포 울릴 때가 ‘일곱 우레 울리는’ 때이니
하늘과 땅과 궁창을 뒤흔들고 모든 사람의 심금도 울리네
하나님나라 축가 울려 퍼지네
바로 큰 붉은 용 나라에서 하나님은 큰 붉은 용 나라 멸하시고 그의 나라 세우셨네
3
하나님은 다음 사역 위해 천사들을 내려보내
그의 아들들과 백성들 목양하게 하시네
큰 붉은 용 소굴에서 ‘겨루시네’
모든 이가 육신 통해 하나님 알고 그의 행사 볼 때 큰 붉은 용 소굴은 사라지리
하나님이 강림하셨네 큰 붉은 용 그 나라에
온 우주를 마주하시니 궁창이 흔들리네
그 어느 곳이 그의 심판 그가 내리신 재난 속에 살지 않는가?
하나님은 가시는 곳곳마다 재난의 씨를 뿌리셨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구원과 사랑
하나님은 더 많은 이들이 그를 알고 보게 하여
뵌 적 없으나 오늘날엔 실제의 하나님 경외하게 하시리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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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3) 욥은 시련을 어떻게 대했는가

(욥 2:9~10)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 3:3)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욥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를 귀하게 여겼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이 대화에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사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첫 번째 시련에서 보인 욥의 반응과 모습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평가는 사탄의 시험을 당하기 전의 평가와 똑같았다. 즉, 시험이 임하기 전에 욥은 하나님 눈에 순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 주었으며, 그에게 복을 내린 것이었다. 욥은 하나님 눈에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시험을 겪은 후,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었다고 해서 입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였다. 욥의 실제적인 행동에 하나님은 갈채를 보냈으며, 만점을 부여했다. 욥의 눈에는 모든 재산이든 자녀든 하나님을 버릴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그 어떤 재산이나 자녀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욥이 처음의 시험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사랑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대한 욥의 애정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는 것을 보았다. 이번 시련이 욥에게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일 뿐이었다.

욥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의 마음을 씻는 진실한 체험이었으며, 그의 인생을 충실하게 하는 생명의 세례였다.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경외심을 검증하는 한 차례의 풍성한 잔치였다. 이번의 시험으로 욥은 부자의 신분에서 무일푼의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으며, 동시에 사탄으로부터 해를 입었다. 욥은 자신이 무일푼이 되었다고 해서 사탄을 증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탄의 졸렬한 행위로 인해 사탄의 추함과 비열함을 보았으며, 사탄이 하나님께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영원히 지키겠다고 더욱 굳게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욥은 맹세했다. ‘재산, 자녀, 가족 같은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절대 사탄의 노예나 재산의 노예, 그 어떤 사람의 노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어떤 누구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욥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시험을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 역시 욥은 얻은 것이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시련에서도 얻은 바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의 인생에서 욥은 여호와의 행사를 보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 준 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복은 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더 빚진 마음이 들게 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없는데도 이와 같은 큰 복을 받아 참으로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늘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울러,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순종과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그의 순종을 검증하고 그의 믿음을 정결케 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욥은 이번에 시련이 임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이런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기에 전혀 태만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욥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소원이 실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경외심이 검증받을 수 있고, 아울러 정결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이로부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욥은 이와 같은 믿음과 추구가 있었기에 이번 시련에서 더욱 순전해질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이 내려 준 복과 은혜에 더욱 감사했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더욱 찬양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앙망하며,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위대함과 거룩함을 더 간절히 사모했다. 이때의 욥이 하나님의 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을지라도, 욥의 경험과 체험을 놓고 봤을 때 욥의 믿음과 인식은 엄청난 진보와 발전이 있게 되었다. 그의 믿음은 커졌고, 그의 순종은 목표에 도달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한층 더 깊어졌다. 비록 이번 시련으로 욥의 마음과 생명이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되었지만 욥은 이로 인해 만족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욥은 이번 시련에서 자신이 얻은 수확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고, 또 자신의 결점과 부족한 부분들을 성찰해 보았다. 아울러, 그는 묵묵히 기도하며 다음 시련을 기다렸다. 욥은 자신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하나님의 또 한 번의 시련을 통해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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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6/2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과 마주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과 마주하고 있는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욥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언급하겠느냐?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설명하기 전에 너희에게 하나 묻겠다. 욥은 하나님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일까?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깊이 패괴되었다’는 것은 문제의 표면적인 현상일 뿐 나는 절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너희들은 평소 ‘깊이 패괴되었다’, ‘하나님을 거역한다’,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없다’, ‘순종하지 않는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와 같은 도리와 글귀를 곧잘 말한다. 이런 실속 없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것으로 모든 문제의 본질을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실천법이다. 다른 성질의 문제들을 똑같은 답으로 해석하는 것은 진리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답을 듣길 원치 않는다. 잘 생각해 보아라! 이 일에 대해 너희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만 나는 여기서 날마다 보고 느낀다. 그래서 너희는 행하고 있고 나는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가 행하고 있을 때 너희는 이 일의 본질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이 일의 본질을 볼 수 있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본질은 무엇일까? 왜 지금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에서 떠나지 못할까? 너희의 답은 이 문제의 본질을 전혀 해석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여기에 너희가 모르는 근본 원인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너희가 무척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럼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려 주겠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고 그의 사역 대상으로 여겼으며 정복하고 구원하고 온전케 할 대상으로 여겼다.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람에 대해 가졌던 태도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대했을까? 사람은 하나님을 생소하게 느끼며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에 대해 갈피를 못 잡는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고,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대하고 행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점도 없었다. 사람의 관점이란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말한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이면 받아들이고 부합하지 않는 것이면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극력 저항하고 반대했다. 이것이 처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낯선 사람으로 대했다. 그러나 일정 기간 하나님이 사역한 후,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참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여겼느냐? 생명줄로 여겼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약속을 받기를 원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검증하고 시련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보았고,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는 종착지를 얻을 기회가 있음을 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 조금이나마 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표면적인 도리상의 인식도 조금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해 점차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한 도, 선포한 진리, 행한 사역에 대해서도 서서히 ‘익숙’해졌다. 그런 이유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낯설지 않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진리의 도를 많이 들었고 하나님의 사역도 무수히 많이 체험했다. 하지만 수많은 요인, 그리고 상황의 방해와 저지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은 진리를 실천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했다. 사람은 점점 태만해지고 믿음을 잃어 갔으며 점차 자신의 결말이 불확실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사치스러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발전하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마지못해 따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사람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나님은 단지 진리와 그의 도를 사람에게 부어 준 뒤 여러 환경을 마련하고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시련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말씀과 진리와 그가 행하는 사역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이루는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많은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도리와 글귀와 규례로만 삼아 지킬 뿐, 일을 처리하고 말하거나 또는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도를 자신이 지켜야 할 도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 크나큰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방향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나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극도의 반감과 혐오감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차례, 심지어 수백 차례 시련을 준 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겠다!’라는 결심을 드러내는 그 어떤 명확한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이런 결심과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전처럼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 포용과 인내를 베푸는 대신 극도의 실망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실망’은 누가 초래한 것이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행한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적지 않은 요구를 했고 사람에게 많은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실천했고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목표에 따라 명확하게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로 종합한 말로 방금 우리가 언급했던, 사람이 왜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즉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해석해 보겠다. 이 말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대상이자 사역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원수이자 대립적인 상대로 여겼다는 말이다. 지금 이 사실에 대해 분명히 깨달았느냐? 사람의 태도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분명하다. 너희는 스스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는 것,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것,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내용들을 종합해 냈다. 하지만 너희가 도를 얼마나 많이 들었든지 상관없이, 너희가 스스로 종합한 내용들은 내 입장에서 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도를 의식 있게 행한 것이 아니다. 그 내용들은 그저 너희가 어떤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경로일 뿐이다. 너희는 그런 목적들을 위해 억지로 규례들을 지키는데, 바로 그런 규례들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와 더욱 멀어지고 또다시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얘기하는 주제가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너희가 앞으로의 체험과 시간 속에서 방금 내가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해 필요할 땐 존재한다 느끼고 불필요할 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말기를 바란다. 네가 잠재의식 속에서 그렇게 인식할 때는 이미 하나님을 노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는 하나님을 공기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범위와 원칙 기준에 맞게 실천했지 제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실천 방식은 맞다! 하지만 일이 닥쳤을 때 너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일이 닥치면 어떻게 실천했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때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여기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하나님은 공기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불쑥 드러내며 자신의 뜻대로 행하려 한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는 하나님이 존재해야 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뜻대로 실행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하나님의 도를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지금 이런 상황과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위험한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위험한 경계에 있든 어쨌든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믿어 왔으니 하나님은 저를 버리실 수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차마 버리지 못하실 테니까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오십 년간 주님을 믿었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저는 가장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가장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오십 년간 저는 가정과 직장,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돈, 지위, 향락과 가족의 단란함 같은 것도 버렸습니다. 오랜 시간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고, 재미있는 것도 즐긴 적이 없으며 좋은 곳에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일반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는 고통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냐?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너희에게 실정을 알려 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상상으로 자기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 상상과 규정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대체했고, 하나님의 진실한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실한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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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매일의 하나님 말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발췌문 217)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 욥은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았고 더 이상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은 어떤 말을 했느냐? 바로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말이다. 또한 욥기에 기록된 그 많은 분량의 말들이다. 그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말들을 보면, 욥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원망도 의심도 없었으며, 오직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기다림은 바로 그의 순종하는 태도였다. 그의 태도로 말미암아, 그가 하나님께 한 말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열납하였다. 그가 시련을 겪을 때,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그의 곁에 있었다. 하나님이 곁에 있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을 보았고, 듣고자 한 것을 들었다. 욥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고, 그의 모든 말은 하나님 귀에 상달되었다. 하나님은 다 들었고 보았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때, 그 시기 하나님에 대한 욥의 앎과 마음속의 생각은 사실 지금 사람들처럼 그렇게 구체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당시의 배경에 따라 그가 말한 것을 인정해 주었다. 그것은 욥의 마음속 생각과 모든 행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과 드러낸 것들이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욥이 시련을 겪는 동안, 그의 마음속 생각과 다짐을 통해 하나님은 결과를 보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보기에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뒤이어 하나님은 시련을 거두어 갔다. 그 후 욥은 고통 속에서 벗어났으며, 욥의 시련은 그때부터 사라져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욥은 이미 시련을 겪었고 또한 시련 속에서도 굳게 서고 사탄을 완전히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당한 복을 그에게 내린 것이다. 욥기 42장 10절과 1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욥은 또 한 번 하나님의 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많이 받았다. 이때, 사탄은 물러가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의 방해와 공격을 받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준 것 역시 더 이상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았다.

👉 욥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비록 그때의 복은 소와 양, 낙타, 재산 등에 국한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욥에게 주고자 했던 복은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하나님이 욥에게 어떤 영원한 약속을 주려 한다는 기록이 있느냐? 욥에 대한 하나님의 복에 결말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또 그 복은 결말과 연관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욥의 비중과 지위가 얼마나 되든지 간에,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에는 매우 적당한 선이 있었다. 그는 결말에 대해 선포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의 결말을 선포할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았을 때, 즉 사역을 끝내는 단계가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물질적인 축복만 좀 주었을 뿐 사람의 결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욥은 여생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보냈다.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점이다. 같은 점은 그도 정상인처럼 늙어 가고 어느 날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 42:17). 여기서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는 무슨 의미이냐? 하나님은 결말을 선포하지 않은 그 시대에 욥에게도 수명을 정해 주었으며, 그 수명이 다 찬 후 욥은 자연스럽게 세상과 이별했다. 그가 두 번째로 복을 받은 후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은 그에게 그 어떤 고통도 주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보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무슨 선고도 아니었고, 정죄도 아니었다. 욥은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그가 죽고 난 후에 어떤 결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았고, 그 어떤 평가도 없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일할 때 매우 적당한 선이 있다. 그가 하는 말씀과 일의 내용과 원칙은 그의 사역 단계와 사역 시기를 근거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욥의 결말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 마음속에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지도 않았고 알려 줄 생각도 없었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욥이 기한이 차서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일생이다.

👉 욥이 살아 낸 삶의 가치

욥의 일생은 가치가 있는 삶이 아니냐?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왜 그의 삶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느냐? 사람 쪽에서 볼 때, 그의 가치는 무엇이냐?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를 대표해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했다. 또한 그는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다 이행했고,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본보기가 되어 인류에게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탄을 완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볼 때, 욥의 삶의 가치는 그가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찬양하여 하나님께 위안을 안겨 드리고 기쁨을 얻게 한 것에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삶의 가치는 또한 욥이 살아생전에 겪은 그 시련에서 사탄을 이겼고,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한 데에 있다. 그리고 인류 중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얻게 하였고, 하나님께 위안을 안겨 드렸으며, 절박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께 결과를 보게 하고 희망을 보게 한 데에 있다. 그의 증거는 하나님의 인류 경영 사역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고 사탄을 부끄럽게 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이러한 것이 욥의 삶의 가치가 아니냐? 그는 하나님께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하고 영광받은 기쁨을 미리 맛보게 했으며, 하나님의 경륜이 거기서 완벽한 시작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욥의 이름은 이로부터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상징이 되었으며, 인류가 사탄을 이긴 표징이 되었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 낸 것과 그가 사탄을 이긴 위업은 하나님께 영원히 소중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는 완전무결하고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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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발췌문 21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1)







6/2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6)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나타내는 행사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심과 시련 속에서 한 증거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았고, 기뻐했으며, 칭찬했다. 사람들 역시 부러워했고, 경탄했으며, 더욱이 칭찬이 자자했다. 그의 일생은 위대하지 않고 평범했다.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평범한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그는 보통 사람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도를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보통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주재를 느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어떤 보통 사람보다 총명한 것도 아니고, 막강한 생명력을 지닌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정직함과 선함과 올곧음, 그리고 공평과 공의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는 인성과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었으며, 강한 의지와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평범치 않은 일들을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 공의로움을 보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총과 보호를 보았으며,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존귀함과 권병을 보았다. 욥이 일반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했으며, 그의 마음이 창조주에게 끌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욥의 추구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추구했으며,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악에서 떠나는 자가 되고자 추구했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갖추고 추구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을 깨달았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지혜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지만 사람에게 복을 주고 사람에게서 거두어 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가 지나온 세월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아주 평범한 일상은 그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결코 영향을 주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데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의 눈에 하나님의 행사는 만물의 운행 법칙 가운데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주재 역시 사람의 삶 속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행사의 무소부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평범한 날들 속에서, 삶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비범하고 오묘한 행사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기묘한 안배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음’과 ‘침묵’은 욥이 하나님의 행사를 체험하는 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욥의 일생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만물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또한 욥은 평범한 날들 속에서, 만물 가운데 침묵하고 계시지만 만물의 운행 법칙을 주재하면서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고 욥처럼 추구하면, 욥과 같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욥처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지 않았고 욥에게 말씀하지 않았지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람이 만물 가운데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행사와 주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사람이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욥같이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었다면,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이 논리적 추론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물의 법칙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욥만 가지고 있는 특허처럼 보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욥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욥’이란 이름이 붙어 있어 그 일이 다른 사람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욥만이 정직하고 선하고 올곧고,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과 품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마 너희도 깨달았을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은 정직함과 선함과 올곧음, 그리고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사지도 못하고, 시련에서 굳게 설 수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욥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사탄의 속박과 굴레에 묶여 있으며, 모두 사탄이 참소하고 공격하고 해치고 삼키려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얻지 못한 자들이고, 사탄에 의해 구금된 죄수들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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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련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지 검증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던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베풀어 주고 진리를 알려 주었다. 이 진리들은 사람이 지키고 행해야 할 도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 역정 속에서 실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목적이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것으로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켜야 하고,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결말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어떻게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너희는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잘 모를 테지만, 많은 사람이 이미 관련된 체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 과정을 말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해서 지금껏 모든 사람에게, 즉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버림받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는 시련을 겪었으며, 어떤 사람은 잡혀가거나 고문을 받는 시련을 겪었다. 또 어떤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지위와 재물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쳤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할까? 그는 어떤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네게 시련을 주어 어떤 환경에 처하게 할 때는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 검증하려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제물을 관리하는 본분이 주어졌다고 하자. 그 본분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제물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일은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 아니냐?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너에게 닥치는 일은 다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다. 너에게 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실천하는지,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은밀히 관찰하며 지켜볼 것이다. 하나님은 그 결과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결과를 통해 네가 그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렀는지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은 흔히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보려는 것이 무엇이고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대신 이런 생각만 한다. ‘나한테 이런 일이 주어졌으니 소홀히 하지 말고 신중을 기해야지! 이건 하나님의 제물이니까 손을 대선 안 돼.’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고선 책임을 다했다고 여긴다. 이 시련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만족했을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했을까?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제물을 접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신중을 기할 것입니다.) 근접했지만 아주 적절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외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일이 닥쳤을 때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책임이나 사명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이 닥쳤을 때 너는 그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준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일이 닥쳤을 때 네 마음속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일이니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방금 우리는 제물 보관에 대해 말했다. 제물과 관련 있고 또 너의 본분 및 책임과도 관련 있는 일이다. 그 책임은 마땅히 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이 주어지면서 시험도 따르지 않을까? 당연히 시험이 있다! 시험은 어디에서 오느냐? 사탄에게서 비롯되기도 하고 사람의 사악하고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시험이 있다는 것은 이 일이 사람이 굳게 서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굳게 서는 것 역시 너의 책임과 본분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작은 일을 굳이 큰 문제로 여길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일단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너에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다는 이런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천해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이 기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의 실천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치면 가볍게 생각해 그냥 흘려보낸다. 사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가 바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도를 가장 중요한 도로 삼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에 기반해 사람에게 행하는 미묘한 사역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 부주의한 사람이구나! 무엇이 큰일이고 무엇이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는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다. 이 말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네.) 사람이 보기에 매일 닥치는 일 중에 어떤 일은 아주 크고 어떤 일은 아주 작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아주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큰일이 주어져도 사람의 분량이 작고 자질이 부족한 탓에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며, 가치 있는 실제적 인식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일은 무시하면서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검증받고 시련받을 무수히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과 일, 사물과 환경을 소홀히 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고 인도하려는 것을 네가 날마다, 더 나아가 매 순간 저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너를 은밀히 관찰하고 네 마음과 모든 생각을 감찰한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려고 하는지를 본다. 만일 네가 경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한 번도 참답게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는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환경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에게 주어진 사람과 일이 진리나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너에게 이렇게 여러 차례 환경과 시련을 주었음에도 너에게서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에게 수차례의 시련이 주어졌음에도 네 마음이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하나님이 준 시련이나 검증으로도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내려 준 기회를 지속적으로 밀어내고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엄청난 패역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로 슬퍼하겠느냐? (슬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또 크게 놀랄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늘 슬퍼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퍼하지 않으신다고? 그럼 하나님은 언제 슬퍼하시는 거지?’ 어쨌든 하나님은 이 일에서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면 앞서 언급했던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하나님의 검증을 밀어내고 도피하려 할 때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태도만을 취한다. 어떤 태도일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을 증오하고 버린다. ‘증오와 버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할까? ‘증오’에는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있다. ‘버림’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있어서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포기’가 어떤 뜻인지 너희는 다 알고 있겠지? 결론적으로 ‘증오와 버림’이란 하나님이 위에서 말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에게 취하는 마지막 반응이자 태도로, 사람에게 크게 혐오감과 반감을 가져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도를 전혀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최종 결단이다. 이제 너희는 내가 한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느냐?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 알겠느냐? (날마다 다른 환경을 마련해 주시는 방식으로 정하십니다.) ‘다른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고 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하는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 출발점은 하나님이 각기 다른 시간과 지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시련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시련하는 것일까? 사람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서, 네가 듣고 보고 직접 겪는 모든 일에서 네가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고 시련하는 것이다. 이런 시련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을 몇 년간 믿어 왔는데 왜 제게는 시련이 닥치지 않은 걸까요?” 시련이 닥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네가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 시련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도 시련이 몇 번 닥쳤지만 정확한 실천의 길을 몰랐었습니다. 실천했다 하더라도 제가 과연 그 시련 가운데 굳게 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태인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내가 앞서 언급했던 그 말이다. 즉, 네가 행하고 생각하고 드러낸 것들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확정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냐? 말로야 쉽겠지만 실천하기도 쉬울까? (쉽지 않습니다.) 왜 쉽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온전케 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에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모릅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 형벌과 심판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가 있게 됩니다.) 너희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 느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지금 너희는 많은 도를 듣고 진리 실제로 많은 양육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지 이론과 의식상으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실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쉽게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실제로 해내지 못할까? 바로 사람의 본성과 본질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원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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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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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5)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또 다른 모습은 범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이다

욥이 사탄의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그의 아내가 나서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사탄의 역할을 하며 욥을 공격했다. 성경 말씀은 이와 같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이것은 사탄이 사람의 모습으로 한 말이었다. 이 말은 공격과 참소의 의미를 띠고 있었고, 유혹과 시험과 훼방의 의미도 띠고 있었다. 사탄은 욥의 육체를 공격해도 소용이 없자 직접 욥의 순전함을 공격하였다. 이를 통해, 욥이 그의 순전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게 하여 계속 살아가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사탄은 또한 이러한 말을 빌려 욥을 유혹하고자 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을 버린다면 그 모든 고통을 참지 않아도 되고 그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니라.’ 아내의 권고를 듣고 욥은 이렇게 질책하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이 말은 욥이 오랫동안 쌓아 온 인식이다. 다만 욥이 이 말을 인식한 것에 대한 진실성이 이때 입증되었을 뿐이다.

욥의 아내가 욥에게 권고하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이렇게 대하는데 어찌하여 그 하나님을 버리지 않느냐? 당신이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렇게도 불공평한데 당신은 계속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받을지라고 말하다니, 그의 이름을 찬송하는데 왜 당신에게 화를 입게 하느냐? 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버려라. 다시는 그 하나님을 따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당신의 재앙은 사라지리라.’라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이 보고자 했던 욥의 증거가 또다시 나왔다. 이런 증거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며, 우리가 성경의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욥이 이러한 말들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보았다. 단지 하나님은 이번 기회에 욥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맞다는 것을 실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내의 그런 권고를 듣고도 욥은 자신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을 버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이 말은 매우 무게가 있지 않으냐? 여기에는 이 말이 매우 무게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딱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칭찬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원하고 듣고 싶어 했던 말이며 보고 싶어 했던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 역시 욥이 증거한 것 중의 정수에 해당한다. 여기서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욥의 귀함은 바로 그가 시험을 받고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 즉 가장 고통스러울 때 그의 아내와 친족들의 권고에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시험이나 아무리 큰 환난과 고통이 찾아와도, 설사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하나님의 자리가 가장 크며,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욥에 대한 이러한 평가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은 입술로 범죄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은 하나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다. 그의 마음과 입은 일치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본 참된 욥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이 욥을 귀하게 여겨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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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2)







6/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9)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에게 감춰진 적이 없고 다만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은 함께했으며, 사람에게 감춰진 적이 없이 전부 공개되었고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으며, 사람이 점점 더 심하게 패괴됨에 따라 사람과 하나님의 거리도 점차 멀어졌다. 서서히, 사람은 하나님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관련된 ‘소식’을 전부 다 잃게 되었다. 나아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조차 모르게 되었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으며,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사람은 늘 하나님을 피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어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간직한 채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보여 드리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저의 마음을 감찰하소서.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라고 늘 기도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을 어기면 벌을 받겠다고 맹세할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라고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께 어떤 맹세를 하고 다짐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이 보기에 너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너는 하나님께 너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허락했지, 너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놓지도 않았으며, 그저 듣기 좋은 말만 하고는 각종 간사한 속셈은 다 감춘 것이다. 너는 자신의 의도와 타산, 계획을 전부 숨기고, 앞날과 운명을 하나님이 빼앗아 갈까 두려워 자기 손안에 꼭 쥐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라 사람이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볼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며,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단지 살펴볼 권리만 있지 다스릴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주관적인 의식 안에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길 생각이나 계획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폐쇄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마음을 감추고, 감언이설로 허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신임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감추어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간수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생각하든 다 자신이 계획하고 타산하며 결정하고 싶은 것이지 하나님의 ‘참여’와 간섭이 필요치 않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이나 당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그 당시의 자신의 상태와 처한 환경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의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자신의 머리로 자기가 나아갈 길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하나님이 간섭하고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본 사람의 마음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뿐이었다. 즉, 모든 생물 가운데서,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밖에 없다. 사람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언어가 있고 생각과 자유 의지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이 맡겨 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바람을 모두 사람에게 두었다. 그는 사람을 그와 동심합의하고 그와 동행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게 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경영을 시작한 후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을 정결케 하고 채워 주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러한 결과를 줄곧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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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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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3)



하나님의 검증을 받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 하나님께 온전히 얻어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공급해 주고 붙들어 주는 사역을 하는 기간에 그의 뜻과 요구를 모두 알려 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여 주었다. 그 목적은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갖추게 하고자 함이며, 하나님을 따르는 기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진리를 얻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한 진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예리한 무기이다. 사람이 이러한 장비를 갖추려면 하나님의 검증에 직면해야 한다. 하나님의 검증은 여러 가지 방식과 경로가 있지만, 모든 경로와 방식에는 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탄과 싸울 예리한 무기를 준 다음, 사람을 사탄의 손에 넘겨 사탄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분량을 ‘검증’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탄이 설치한 진영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포위 공격에서 살아 나오게 되면 이 검증을 통과한 것이다. 만일 사탄의 진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탄에게 항복하게 되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어떤 부분을 검증하든지 간에, 검증의 기준은 사람이 사탄의 공격에서 굳게 설 수 있는지의 여부, 사탄의 올무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기를 버리고 사탄에게 굴복하는지의 여부이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지,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있다. 사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는 사람이 독립적으로 하나님이 준 무기를 들고 사탄의 결박을 끊고 사탄에게 사람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접고 포기하게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사탄이 사람을 단념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두고 더 이상 하나님과 싸우지 않고, 그 사람을 참소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더 이상 제멋대로 그 사람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자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사람을 얻는 전 과정이다.

욥의 증거가 후세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와 계시

사람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완전히 얻는 전 과정을 깨달은 동시에,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넘긴 목적과 의미도 알게 되었다. 또 더 이상 욥이 받았던 고난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고 욥이 받은 고통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이 생겼다. 사람은 더 이상 욥과 같은 시험이 올까 걱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하나님이 주는 시련에 반발하고 저항하지 않게 되었다. 욥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욥이 사탄을 이긴 증거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도움과 격려가 되었다. 욥에게서 사람들은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사람이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에 의지하면 사탄을 완벽하게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보았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만 있다면, 사탄에게 실패와 수치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도 보았다. 또한 목숨을 버릴지언정 굳게 서겠다는 결심과 의지만 있다면, 사탄은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져서 황급히 도망간다는 것을 보았다. 욥의 증거는 후세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었다. 이 경고는 사탄을 이기지 못하면 영원히 사탄의 참소와 방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한 영원히 사탄의 공격과 상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욥의 증거는 또 후세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었다. 이 계시를 통해,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해야만 영원히 사탄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에서 살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구원받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욥의 인성과 품격, 그가 인생에서 추구한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 낸 것과 그가 시련 속에서 보여 준 행동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욥의 증거에서 하나님이 위안을 받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욥은 사랑스러운 자라고 말하면, 너희는 아마도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내가 왜 이러한 일들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너희가 욥과 같은 혹은 비슷한 시련을 겪게 될 때, 너희가 환난을 겪게 될 때,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위해 마련해 놓은 시련을 겪게 될 때, 시험 속에서 사탄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치욕과 고통을 이겨 내게 될 때, 너는 내가 한 이 말들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너는 욥과 비교했을 때 너 자신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욥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얼마나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욥이 말한 그 멋진 말들이 패괴된 사람에게 있어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욥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해내기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네가 해내기 어렵다고 느낄 때,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얼마나 걱정스러워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하나님이 인류에게 한 것과 인류를 위해 바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교제했으니 너희들은 욥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 마음속에 있는 욥은 진정으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맞느냐?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마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욥이 했던 그런 일들은 사탄을 포함한 그 어떤 사람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들은 욥이 사탄을 이긴 가장 유력한 증거이다. 이 증거는 욥에게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얻은 첫 번째 증언이다. 그러므로 욥이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을 증거했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마음 역시 욥으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창세부터 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처음으로 무엇이 위안인지, 무엇이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받는다는 것인지 진정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은 무엇이 진정으로 그를 증거하는 것인지를 보았고 또 그것을 얻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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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0)



시련 속에서 보여진 욥의 인성(시련 속에서 보인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에 대해 알아보다)

욥은 재산을 약탈당하고, 자녀들이 목숨을 잃고, 종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욥 1:20). 이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욥이 이 소식을 듣고 난 후 놀라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으며, 소식을 알리러 온 종을 꾸짖지도 않았다. 더욱이 현장에 가서 조사하지도 않았고, 어떤 상황인지 사실 확인을 해서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잃은 재산을 아까워하거나 그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자녀와 가족들을 잃은 것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 욥의 이러한 행동은 일반 사람들의 행동과 달랐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으며,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냉혈 인간’이라는 비난을 사게 되었다.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져 아무것도 없게 될 때, 일반 사람들은 괴로움이나 절망감을 느낄 것이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에게 재산은 사람이 일생 동안 흘린 피땀이며, 사람이 생존을 위해 의지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희망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재산이 사라졌다는 것은 자신의 피땀 흘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고, 희망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미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정상인들이 재산을 대하는 태도이고, 재산과 사람의 밀접한 관계이다. 또한 사람이 재산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다수의 사람은 욥이 재산을 대하는 이러한 냉담한 태도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오늘 욥의 마음을 해석함으로써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혹을 풀어 가도록 하자!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욥에게 풍부한 재산을 주었으니 욥은 재산을 잃고 하나님께 죄송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하나님이 준 재산을 제대로 간수하지도 못했고, 보살피지도 못했으며, 지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산이 약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욥의 첫 번째 반응은 마땅히 현장으로 달려가 각종 물건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다음,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어야 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욥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은 다 본인이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받은 복을 밑천으로 삼는 대신 자기가 지켜야 할 도를 전심전력으로 지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욥은 하나님이 베풀어 준 복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더 많은 복을 탐하거나 더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재산을 대하는 태도였다. 욥은 복받기 위해 무엇을 하지는 않았으며, 복이 없거나 복을 잃었다고 걱정하거나 상심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복으로 말미암아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모든 것을 망각하는 일이 없었고, 항상 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를 소홀히 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일도 없었다. 재산을 대하는 욥의 태도를 통해, 사람들은 욥의 참된 인성을 볼 수 있다. 첫째, 욥은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물질생활에 대한 요구 기준이 아주 낮았다. 둘째,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갈까 걱정한 적도 없고 두려워한 적도 없다. 이것은 그가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태도이다. 즉, 하나님이 언제 거두어 가든 혹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든 가지 않든, 어떤 요구도 원망도 없었다. 그는 이유도 묻지 않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기만을 바랐다. 셋째, 욥은 본인의 재산은 하나님이 준 것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이다. 즉, 욥의 확신을 가리킨다. 욥에 대한 이상의 3가지 개괄을 통해 욥의 인성과 그가 평소에 진실로 추구한 것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욥이 재산을 잃었을 때 그처럼 냉정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욥의 그러한 인성과 그의 추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욥은 평소에도 그렇게 추구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준 시련 속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분량과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욥이 한 이 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그가 갑작스러운 생각이 떠올라 만들어 낸 말도 아니다. 이는 그가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보고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바라기만 하고, 하나님이 거두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며 원망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욥의 순종은 아주 실제적이지 않으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만 믿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욥은 아주 성실하고 정직하지 않으냐?

욥의 이성

욥은 실제 체험이 있었고 정직하고 성실한 인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 가장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이성적인 선택은 그가 평소에 추구했던 것과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욥은 정직했기 때문에 만물은 다 여호와가 주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으며, 그 믿음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했고, 또 순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더 진실하게 경외할 수 있었으며, 그 경외심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실제적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었다. 결국,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온전해진 것이다. 그의 온전함은 그를 지혜롭게 만들었으며, 그를 가장 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성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문자적 해석은 이성과 생각이 논리에 맞아 터무니없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적절한 언행과 판단, 적절한 규범을 가진 도덕적 기준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욥의 ‘이성적’은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될 말이 아니다. 여기서 욥이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인성과 그가 하나님 앞에서 보인 행동과 관계가 있다. 욥은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재를 믿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도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욥은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한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인식을 통해, 욥은 자신에게 임한 일을 더욱 정확하게 분별하고 판단하며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것들을 더욱 정확하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즉, 그의 언행과 일 처리 원칙과 방침은 맹목적이거나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았고, 매우 규범적이고 명확하며 아주 구체적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임하든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았고, 각종 복잡한 사건의 관계들을 어떻게 균형 잡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알았다. 또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를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도 알았으며,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줄 때와 거두어 갈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이성’인 것이다. 이러한 이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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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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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9)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9)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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