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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2천 년 전, 예수님은 속히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은 두 번째로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어 우리에게 천국에 가는 길, 영생을 얻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하고 천국에 들림 받을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와 사역하는 것을 뜻한다. 즉, 그만의 신분으로, 그만의 성품으로, 그리고 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사람들 가운데에 강림하여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떠한 의식도, 징조도 아니요, 한 폭의 그림이나 이적, 큰 이상(異象)도 아니며, 종교적 과정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누구나 만질 수 있고 목격할 수 있는 실제 사실이다.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은 과정을 거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단기간의 사역을 위한 것도 아니며, 그의 경륜의 한 단계 사역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은 다 의의가 있고, 그의 경륜과 관계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타나는 것’이란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고 이끌고 깨우칠 때 ‘나타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매번 나타날 때마다 큰 사역을 하는데, 그 사역은 그 어떤 시대에 했던 사역과도 다르다. 그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체험해 본 적도 없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기존의 시대를 끝내는 사역이며, 인류를 구원하는, 더 새롭고 높은 한 단계 사역이자 인류를 새 시대로 인도하는 사역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의 의의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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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보기: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추천: 워십 찬양 뮤직비디오/MV <국적과 민족의 관념을 깨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라> (영어 찬양)

5/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사람답게 사니, 참 좋다!>


현재 점점 더 큰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여기 나눔의 창구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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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영상 더보기:



4/20/2020

기독교 영상 <우린 주님을 맞이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오신 하나님을 기쁘게 맞이하다(복음 만담)


2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주님을 맞이하여 들림 받아 천국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맞이하려면 무엇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한복음 10:2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복음 16:13)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만담 <우린 주님을 맞이했어요>를 통해 두 교파의 성도가 주님을 맞이한 경험을 만나볼 수 있으며, 여러분도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추천동영상: 교회 만담 모음

4/1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기독교 영상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 영생의 도를 가져오신 말세 그리스도 (복음 만담)


성경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고 말합니다. 수웨 자매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아들을 믿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때, 샤오링 자매는 수웨 자매보고 그녀가 아는 것은 반만 맞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수웨 자매와 샤오링 자매의 변론… 과연 진정한 아들을 믿는 것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란 무엇을 말할까요?

📺동영상 추천: 교회 꽁트/성극 <잠복> 크리스천은 왜 집에도 가지 못하는가?

3/27/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기독교 영상 <말세의 심판> 교회 만담

         기독교 영상 <말세의 심판> 교회 만담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2~13)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언은 모두 예수님이 말세에 오시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믿는 자들 가운데서 심판을 시작하신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필요 없이 주님 오실 때 바로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생각이 하나님 말씀에 부합할까요? 죄 사함을 받으면 천국에 갈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과연 어떤 사역일까요? 우리가 들려 천국에 가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만담 <말세의 심판>을 감상하며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동영상 보기: 기독교 영상 <말세의 심판> 교회 만담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말세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은 말씀 사역>


1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 은혜시대를 끝마치시고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시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생각 없애시네
예수님은 다른 사역 하셨네 기적 행하셨고 천국 복음 전하셨네 
인류 구속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네
하나님이 항상 이러실 거라 생각하네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모든 것 이루시고 나타내시네
말씀에서 그의 속성 보고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이심을 아네

2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 사람의 막연한 생각 없애시네
말씀과 사역 통해 실제 하나님 알고 막연한 하나님 믿지 않네
육신에서 하신 말씀으로 사람과 모든 걸 온전케 하시네
이것이 하나님이 말세에 이루실 사역이네 사역이네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모든 것 이루시고 나타내시네
말씀에서 그의 속성 보고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이심을 아네

3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사역인 말씀만 하시네
말씀에서 그의 전능과 그의 낮추심을 알 수 있네 알 수 있네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사역인 말씀만 하시네
말씀에서 지극히 높은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네 알 수 있네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모든 것 이루시고 나타내시네
말씀에서 그의 속성 보고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이심을 아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3/2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상)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상)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1. 『오랫동안 사람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방식(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떠나면 사이비이자 이단이라 한다.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 해석이 밑바탕이 된 책을 봐야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주를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을 탐독해야 하며,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을 숭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성경이 생긴 후, 사람이 주를 믿는 것은 바로 성경을 믿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탓에 사람이 주를 믿는다기보다는 성경을 믿는다는 것이 낫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낫고,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더 낫게 되어 버렸다. 이처럼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처럼 여겨 숭배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여기게 되었다. 성경이 없어진다면, 이는 생명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보며, 심지어 하나님보다 더 우러러보기도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거나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성경책이 없거나 성경의 유명한 장절이나 문구 없이 살아야 한다면 생명이라도 잃는 줄 안다. 그러기에 사람은 주를 믿으면서부터 성경을 보고 외우기 시작한다. 성경을 잘 외울수록 주를 사랑하고 믿음이 크다는 것을 더 잘 증명할 수 있으며, 성경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형제자매라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주에 대한 충성심이나 믿음을 가늠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도,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덮어놓고 성경 구절을 풀이할 수 있는 단서만 찾고 있다. 그들은 성령 역사의 동향을 좇지 않고, 줄곧 고생스럽게 성경만 연구하고 조사한다. 그 누구도 성경 밖에서 성령의 더 새로운 역사를 찾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 누구도 성경을 떠날 수 없으며, 누구도 감히 성경을 떠나지 못한다. 사람은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견해도 천차만별이고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에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성경에서 명인들의 해석이나 더 심오한 비밀들을 찾아내려 하고, 성경을 탐구하려 한다. 또한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의 배경이나 예수가 유대에서 했던 사역의 배경, 혹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비밀을 성경에서 찾아내려 한다. 사람이 성경을 대하는 관점은 ‘탐닉’과 ‘믿음’밖에 없었고, 성경의 실상과 본질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성경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묘함을 느끼며, 성경에 더욱더 ‘탐닉’하고, 더욱더 ‘믿음’을 가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세 사역의 예언을 찾고자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세에 어떤 사역을 하고,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를 찾아내려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성경을 숭상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고, 말세가 될수록 성경의 예언, 특히 말세에 관한 예언을 더욱 맹신하게 되었다. 사람이 성경을 이처럼 맹신하고 신뢰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를 찾으려는 마음은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다음과 같은 관념이 존재한다. ‘오직 성경에서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 사역의 비밀이 감춰져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과 모든 사역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다른 책이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성경은 하늘의 사역을 땅에 가져올 수 있고, 시대를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이런 관념이 생기고 나서 성령의 역사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지난날에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든,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이 없었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발걸음은 모두 성경에 ‘통제’되었고, 그로 인해 최신 사역을 확장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져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모두 성경의 유명한 장절과 문구, 그리고 수많은 예언으로 초래된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 마음속의 우상이 되었고, 사람들 머릿속의 ‘탐닉’이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경 밖에서 별도로 사역할 수 있다는 사실과 사람이 성경을 떠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믿을 수 없어 한다. 또한 하나님이 최종 사역에서 성경을 떠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믿을 수 없어 한다. 이런 사실은 사람이 생각하기도 어렵고, 믿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었고, 하나님이 더 새로운 사역을 확장하는 데에 난관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2. 『성경은 한 권의 역사책이다. 물론 그 안에는 선지자의 예언도 어느 정도 들어 있다. 선지자의 예언은 결코 역사(歷史)가 아니다. 성경은 단지 예언이나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바울이 쓴 서신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라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는 성경이 몇 부분으로 구성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 그리고 선지자들이 쓴 예언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있는 말라기로 구약 성경 전체가 마무리된다. 즉, 여호와가 인도했던 율법시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걸쳐 구약 율법시대의 모든 사역이 종합적으로 기록되었다. 즉,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인도를 받았던 사람들이 그 당시 겪었던 일들을 모두 구약에 기록한 것이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예언하게 하여 각 나라와 족속의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였다. 자신이 행하려는 사역을 예언하게 한 것이다. 여호와가 일으킨 이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가 베풀어 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은 그 환상과 음성에서 계시를 받아 예언들을 기록했다. 그들이 행했던 이런 사역도 다 여호와의 음성을 선포한 것인데, 이는 여호와를 대신해 행한 예언 사역이다. 여호와는 그 당시 사역할 때 성육신하지 않고 영으로만 사람들을 인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그의 사역을 했으며, 그들이 묵시를 받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과 족속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 그들의 사역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알려 준 말씀을 모두 기록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을 일으킨 것은 예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후에 행할 사역이나 당시에 아직 행하지 않은 사역을 예언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기묘함과 지혜를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매우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한 말이거나 기록해 놓은 말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 이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모두 마친 후에 기록한 것으로,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하고 많은 말을 했다. 은혜시대의 일이나 말세에 세상을 멸한다는 일을 예언했다. 바로 여호와가 앞으로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 이외의 책은 모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주로 여호와가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역사했는지를 보게 된다. 구약 성경에는 주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인도한 사역이 기록되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게 함으로 바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광야로 들어가게 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 가나안에 입성한 후 그곳에서 살았던 내용도 기록되었다. 그 외에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각지에서 사역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땅인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이다. 하나님은 노아 이후부터 지상의 사람을 정식으로 인도했는데, 그때부터는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만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행한 사역은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지역이 인류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최초에 이스라엘 외에 다른 나라가 없었던 데다가 여호와가 다른 곳에서 역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 당시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이다.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했던 말은 땅에서 행할 다른 사역, 즉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성령의 역사이다. 그 선지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당시 사람들이 여호와의 역사를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세상을 창조한 것은 인류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창세기는 인류가 생겨난 후에 있게 된 책으로, 모세가 율법시대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너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후대가 볼 수 있게 기록해 놓는다면, 이것을 그들이 봤을 땐, 너희가 기록한 것이 지나간 시대에 일어난 일이므로 그들은 그저 역사(歷史)로 취급할 것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은 구약에 기록되었고,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했던 사역은 신약에 기록되었다. 그런 기록들은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하나님이 행했던 사역들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다.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행했던 사역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므로 한 권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신약은 은혜시대 사역의 산물이지만,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면 그 또한 이미 시대에 뒤처진 책이 된다. 그러므로 신약 역시 한 권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신약의 내용은 구약만큼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기록된 양도 많지 않다.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한 수많은 말씀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었지만, 예수의 말씀은 4복음서에만 일부가 기록되었다. 물론 예수도 매우 많은 사역을 했지만 상세하게 기록되지는 않았다. 신약에 기록된 내용이 적은 이유는 예수가 한 사역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지상에서 3년 반 동안 행한 사역과 다른 사도들이 한 사역은 여호와가 행한 사역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내용이 구약보다 적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3. 『신약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20~30년이 지난 뒤에 기록한 것이다.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 성경이었다. 신약 성경은 은혜시대가 되어서야 생긴 것으로, 예수가 사역할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기록하고 나서야 4복음서가 생겼다. 그리고 거기에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까지 추가되었다. 예수가 승천하고 3백여 년이 지난 뒤, 후세 사람들이 다시 그 자료들을 편집하여 하나로 묶으면서 비로소 신약책이 생겨났다. 신약은 당시 사역이 끝난 후에야 생겨난 것이지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사도 바울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그리고 후에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까지 함께 모았다. 거기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아주 큰 환상(원문: 異象)을 기록한 내용을 맨 마지막 책으로 묶었다. 그것은 말세에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후세 사람들이 배열한 것으로, 지금의 말씀과는 다르다. 지금은 사역하는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사역과 말씀이다. 또한 사람이 손댈 필요 없이 영에서 비롯된 말씀을 직접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으며, 이는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는 다르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그들의 지식 수준과 자질에 근거해 기록한 사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나 인식이 다르므로 기록한 내용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처럼 숭배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왜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역을 찾지 않느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일 뿐, 성경이 아니다. 사람이 수천 년간 성경을 읽어 왔어도 변화가 전혀 없었다.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4.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이냐?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했던 사역에 관한 것이다. 구약 성경은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뿐만 아니라 여호와가 창세한 사역도 기록한 책으로,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사역에 대한 기록은 마지막 부분인 말라기로 끝난다. 구약은 하나님이 행했던 두 가지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하나는 세상을 창조한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반포한 사역이다. 그 사역들은 모두 여호와가 행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대변하는 사역이며, 전반 사역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가 한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이는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이루어진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고, 그가 행했던 사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부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이스라엘에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게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지상에서 살 수 있게 인도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선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여호와가 지상에서 처음으로 택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며, 또한 처음으로 친히 인도해 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는 바로 여호와가 택한 첫 번째 선민이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시대 사역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들에게 역사했다. 제2단계의 사역은 신약 은혜시대의 사역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한 지파인 유대 족속에게 행해졌다. 이렇게 사역 범위를 좁힌 이유는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 전역에서만 사역하였으며, 그것도 3년 반 동안만 사역했다. 그러다 보니 신약에 기록된 내용의 양이 구약의 내용에 훨씬 못 미쳤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5. 『성경은 신구약 전서로도 불린다. 너희는 무엇을 ‘언약’이라고 하는지 아느냐? ‘구약’을 ‘언약’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여호와가 애굽 사람을 쳐서 이스라엘 사람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구원할 때, 이스라엘 사람과 세운 언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그 ‘언약’은 문 인방에 바른 ‘양의 피’를 증거로 삼았다. 여호와는 그것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면서 문 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가 있으면 모두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고, 모두 그가 남겨 둘 대상이라고 알려 주었다(그때 여호와가 애굽의 모든 장자와 처음 난 우양을 치려고 했기 때문임). 그 ‘언약’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애굽의 사람과 가축은 모두 여호와가 구원할 대상이 아니므로 애굽의 장자들과 처음 난 우양을 모두 죽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예언서에서 애굽 백성을 중하게 벌한다고 예언한 것은 모두 여호와가 세운 언약 때문이다. 이것이 ‘언약’의 첫 번째 의미이다. 여호와는 애굽의 장자들과 처음 난 모든 가축을 죽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 남겨 두었다. 다시 말해, 여호와는 이스라엘 땅의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여호와가 그들을 전부 보존하려 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오래도록 사역하기 위해서였고, 그들과 ‘양의 피’로 언약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치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그의 선민이라고 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서 율법시대의 모든 사역을 펼치고 그의 모든 율법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열어 놓으려고 했다. 또한 그들 가운데서 선지자와 사사들을 택해 이들을 중심으로 사역하려 했다. 여호와는 시대가 바뀌지 않는 한, 자신이 택한 백성들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별도로 사역하지 않겠다고 그들과 약속을 하였다. 여호와가 세운 언약 또한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가 피로 맺은 언약이자, 그의 선민들과 맺은 언약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여호와가 사역할 적합한 범위와 대상을 택하여 자신의 시대 전체의 사역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언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언약’의 두 번째 의미이다. 전체 구약 성경에서 언약을 세우기 전의 창세기를 제외한 다른 책들은 모두 언약을 세운 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간혹 이방 족속의 일들도 일부 기록되었지만, 구약에 전반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이다. 율법시대에 기록된 책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구약’이라 불렸다. 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으로 명명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맺은 약속으로 명명한 것이다. 예수의 약속은 사람이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흘린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그것으로 예수에게서 구원을 얻고 거듭나서 더 이상 죄인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의 은혜를 받게 되고, 죽은 후에 지옥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 은혜시대에 기록된 책은 모두 약속을 맺은 후에 생겼고, 모두 약속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사역과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예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벗어나지도 않고 약속의 범위도 넘어서지 않았으며, 모두 주 안에서 체험한 형제들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들 또한 약속으로 명명하여 ‘신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두 ‘언약’은 율법과 은혜의 두 시대에만 해당될 뿐, 마지막 시대와는 무관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2> 중에서

6.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알고 해석할 수 있다면 참도를 찾은 것으로 여긴다. 사실, 그것이 정말 그렇게 간단한 것이냐? 사람은 성경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사역의 증거일 뿐이다. 너는 성경에서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두 단계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즉 창세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사역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신약 4복음서에는 예수가 땅에서 행했던 사역이 기록되어 있고, 바울이 행한 사역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모두 역사 기록에 속하지 않느냐?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한다.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일 뿐이다. 역사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역사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현재 행하려는 사역은 모르거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이유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함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네가 죽은 글귀나 역사(歷史)를 알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이상, 반드시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무방하겠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4> 중에서



3/1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세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외식하는 것이란?

                                                  외식하는 바리새인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 관련된 하나님 말씀:

바리새인’이라는 호칭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바로 외식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모든 일에 가식적이어서 언제나 훌륭한 사람인 양,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인 양 위장한다. 그들의 본모습이 정말로 그러하겠느냐?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태도와 모습이 진실하지 않은 거짓되고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진실한 면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채 드러내지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종교적 지식과 이론들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입에 달고 다니는 글귀상의 도리가 되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렇듯 ‘올바른 것 같은’ 도리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포장한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올바르고 훌륭해 보이며,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경건하고 겸손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포용할 줄 알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껍데기를 들춰 보면 전부 거짓과 위장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뒤에서는 건성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고생을 마다치 않으며 헌신하는 것 같지만 뒤로는 교회 밥을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전부 거짓이다. 그런 자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바리새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이방인 가운데서 생겨났겠느냐? 그렇지 않다.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났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겠느냐? 설마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느냐? 그들이 그렇게 변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를 무장하는 도구로 삼고, 그것을 밑천으로 밥벌이를 하며 밥을 얻어 먹었다. 그들은 종교적 도리를 전했을 뿐, 단 한번도 하나님의 도를 행한 적이 없다. 그들의 그 소위 ‘올바른’ 행동과 태도, 버림과 헌신 등은 다 사람의 의지로 억누르고 꾸며낸 것으로, 전부 거짓이며 위장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티끌만큼도 없다. 아니, 경외심은커녕 참된 믿음조차 없다. 게다가 그들은 불신파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런 길에 들어서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두렵지 않으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지표> 중에서

겉으로 보기에 좋은 행동을 하는 것, 어떻게든 영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영적인 사람으로 행세하고 말과 행동으로 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 사람의 관념과 생각에 맞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영적인 척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외식하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글귀나 도리를 말하는 한편, 남에게는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진리 추구를 중시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을 처리하거나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진리를 찾지도,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 또한, 진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고, 일이 닥치면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이 같은 외적 행동과 내적 상태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믿어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없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게 되겠느냐? 늘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겠느냐?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채우지 않겠느냐? 늘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포장하며, 바리새인이나 이른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행하는 것은 어떤 행실이냐?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을 내세워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일 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다른 꿍꿍이를 부린다. 이들이 종교 바리새인과 다를 바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며, 양심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일을 지혜로이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원칙 있게 일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말로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온종일 울상을 짓고, 능청스럽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니 정말 못 봐줄 노릇이다! “왜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겉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줘야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성의하게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은 모두 위선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이들은 종교 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나 슬픔의 눈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자들이 발전성이 있겠느냐? 어떤 자는 겸손해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말한다. 또 어떤 자는 순한 양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 힘도 없는 양 행동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정말 그렇단 말이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활발하고 자유로우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또한, 정직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존엄성을 갖추어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새 신자들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아 한동안 훈계와 깨뜨림을 받아야 한다. 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네가 매일 여기저기 복음만 전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에만 급급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규례와 도리 속에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외식하는 사람이다.

종교인들은 함께 모이면 “자매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마디, 몇 자의 말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힌 더러운 것을 뱉어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혐오스럽고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 거기엔 솔직함만 있을 뿐 거짓도, 체면치레도, 꾸밈도 없고 세속적인 규율도 없다. 하지만 겉면의 열정이 많고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누가 찬송가를 부르면 춤추느라 밥솥의 밥이 다 타 버린 것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함과 존귀함이 없고 너무나 경박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제가 없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제할 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죄스러워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표면적인 열의나 행동이 아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인 좋은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육을 의미한다. 외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의 성품만을 의미할 뿐, 생명을 의미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공급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영적인 것이라 여기겠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기호가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요, 너의 습관은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고 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겉으로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좋은 행위만 있을 뿐 실제가 없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종교 인사이다! 외적인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가식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정상적인 영 생활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을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게 해 준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현재 하나님이 하려는 일에 대해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옛것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모든 실행이 생명 성장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기도는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중얼거리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번 대성통곡함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운용하는 훈련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범사에 말씀의 인도를 구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소극적으로 되지도, 게을러지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한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이 다 행위만 중요시할 뿐, 생명의 성장을 위해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는 치우친 것이다. 새로운 빛은 받아들이지만 실행법을 바꾸지 않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하나님 말씀을 과거의 종교 관념과 결합해 받아들인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 관념을 띤 도리이지, 순전한 오늘날의 빛이 아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실행에는 불순물이 끼어 있으며, 형식만 바꿨을 뿐 내용은 그대로이다. 그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행해도 그것은 외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매일 사람을 인도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낡아 빠지고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견해와 인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네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겉으로만 열정적이고 바쁠 뿐, 행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제 하나님과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목적이 있어야 사람에게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 생기게 된다면 이런 순종은 조건부 순종이자, 개인의 앞날을 전제로 한 순종이며,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네가 그저 장래와 운명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낫다. 너의 그런 ‘믿음’은 자기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고, 자기 위안이며 자아도취다. 너의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지를 구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네 본심이 정말 이러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높이고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이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만약 네 본심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말하고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심지어 너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너의 말투가 부드럽고, 태도가 온화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의 일거수일투족과 표정이 적절해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너의 본심과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서 본다면 네가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양과 같이 순종하면서 마음속에는 악의를 품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이며, 직접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는다. 성령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들을 한 명씩 드러낼 것이다. 외식하는 자는 반드시 성령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벌하고 해결할 것이니 모두 조급해하지 말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중에서

💁 참고 설교:

『목회자가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아닌지 알아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그들의 표면적인 태도가 아닌, 주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봐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신자들을 꽤나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에게는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랑으로 가득하지만, 주님과 진리를 대하는 마음은 미움과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외식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언뜻 보기에 그들은 사역하느라 몹시 고생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면류관과 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주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외식하는 사람을 가려내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속, 곧 마음가짐을 봐야 합니다. 이런 판단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지 알아보려면 가장 먼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준행하는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지를 봐야 하며, 나아가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지 봐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배할 때 늘 성경을 가르칩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일에 있어 성경의 규례를 지킬뿐더러 사랑으로 다른 이를 대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 23:5)라고 그들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한참 동안 기도합니다. 금식을 할 때는 짐짓 얼굴을 흉하게 해서 모두에게 자신이 금식 중이라는 것을 알리지요. 이 밖에도 그들은 남들에게 보여 주려고 거리에서 구제를 행하고 의를 행하며,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 밥을 먹어선 안 된다’와 같은 옛사람들의 종교 의식까지 대대로 지켰습니다. …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옹호와 존경을 받기 위해 사소한 일들을 크게 부풀려 스스로를 포장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이끌어 종교적인 예배와 찬송, 찬미를 하거나 조상의 유전을 고집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진리의 실제에 들어가는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겉면의 행위로 신자들을 미혹하고 속였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 때, 경건한 척하던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등을 돌렸습니다. 또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거짓 증거를 날조하며, 미친 듯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모함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자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막았으며, 결국에는 집권자들과 결탁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외식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바리새인들의 민낯이 낱낱이 폭로되었고, 적그리스도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바리새인의 본질은 외식하고, 음험하고, 간사하고, 악독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도에 등을 돌린 채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는 거짓 목자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을 미혹하고 억압했으며, 교계를 통제해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광기 어린 사람들처럼 성육신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정죄하고 증오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들이 독립 왕국을 세우려는 적그리스도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리새인의 외식하는 갖가지 양상을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들을 오늘날 교계 목회자들에게 대입해 보면, 그들이 바리새인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며, 주님을 받들거나 증거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을 믿고 숭배하며 높이 떠받드는 사람들에 불과하지요. 그들은 때에 맞춰 예배하고, 새벽기도를 하고, 떡을 떼고, 성찬을 하는 등 갖가지 종교 의식들을 지킬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겸손과 인내, 경건과 사랑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더더욱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그들의 사역과 설교는 오직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에만 치중할 뿐,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행하고 체험해야 하는지, 주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널리 알리고 증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등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에 대해서는 찾지도,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도 않고, 나아가 사람들을 말씀대로 실천하고 준행하는 길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말합니다. 스스로를 자랑하고 치켜세워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얻기 위해서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자, 목회자들은 교계에서 신자들을 영원히 장악하고 통제해 독립 왕국을 세우겠다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 공공연히 예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판단하고 공격하고 모독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도를 찾는 신자들을 가로막았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신랑이로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맞으라고 일러 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 힘을 다해 교회를 봉쇄하고 신자들을 가로막아 참도를 찾거나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는 형제자매들을 비방하고 욕하고 폭행하라고 신자들을 부추겼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은 이웃에 대하여 거짓말과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목회자들은 각종 유언비어를 지어내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했으며, 심지어 마귀 중국 공산당과 결탁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계 목회자들의 모든 언행은 주님의 가르침에 완전히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소경된 인도자이자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에 관한 대표적인 문답(선집)≫ 중에서


2/0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샹  애

아침 7시, 왕설는 딸 혜민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30분 전, 장 목사가 왕설의 집을 방문해 딸과 사위가 벌써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왕설에게는 너무나 뜻밖이라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동방번개’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한다던데, 말씀을 선포하고 한 단계 심판 사역으로 인류를 정결케 하신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어.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이미 끝난 건데, 또 어떻게 새로운 사역을 하실 수 있지? 딸과 사위는 성경을 잘 알고, 신앙생활도 열심이야. 생각도 있고, 똑똑한 애들이 맹목적으로 선택할 리 없을 텐데, 어떻게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거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왕설는 도통 알 수가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어서 빨리 알아보려고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30분 후, 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왕설는 단도직입적으로 혜민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장 목사님이 날 찾아왔단다. 너희들이 이미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니?”

서재에서 독서 중이던 이준은 장모님의 말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혜민은 어머니의 표정이 약간 심각한 것을 보고 손을 잡아 끌어 앉히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 엄마, 우리는 벌써 ‘동방번개’를 받아들였어요. 그동안 저와 이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진리와 비밀을 열어 놓은 것을 모두 보았어요. 예를 들면 6천년 경륜의 비밀,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비밀, 하나님께서 말세 심판 사역과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방법,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 등등 을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록 이 말씀이 진리고, 권능과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엄마,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예수님이 정말 돌아오셨어요. 바로 성육신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엄마도 어서 같이 알아봐요!”

왕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는 표정이 조금 누그러져서 말했습니다. “혜민, 지금 교회가 황량하다 보니 너희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아가는 건 엄마가 반대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동방번개’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셔서 심판 사역과 인류를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셨다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분명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어. 그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이미 끝났다는 의미란다.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어.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우리를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 주실 테니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은 있을 수 없단다. 목사님과 장로님이 항상 설교하신 걸 너희가 잊지는 않았겠지? 어떻게 또 ‘동방번개’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이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장모님, 저희는 그동안 교계의 목사와 장로의 말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끝났다는 의미로 알았어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직접 천국으로 데려가 주실 것이고, 다른 새로운 사역은 없을 거라고요. 이 관점이 주님이 말씀하신 원래 뜻과 맞을까요? 하나님의 사역에 맞는 사실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지 ‘다 이루었다’라고만 말씀하셨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완전히 끝났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목사와 장로는 주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놓고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끝났다고 단정 지었어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이 없다고요. 이런 주장은 너무 독단적이지 않나요? 자기 마음대로 주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장모님,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끝났다는 의미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염소와 양, 알곡과 가라지, 선한 종과 악한 종을 구별하시겠다는 예언과 사역은 어떻게 이루시죠? 게다가 예수님은 또 이런 예언도 하셨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베드로도 이렇게 말했죠.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이런 말씀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만약 목사와 장로의 말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예수님이 이미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끝내서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이 필요 없다고 믿는다면, 이 예언들을 또 어떻게 이루시겠어요? 예수님이 예언한 재림 후에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말씀이 다 허사가 되는 게 아닌가요? 이렇게 보면, 교계의 주장은 주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주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도 부인하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다 끝났다고 규정할 수 없어요. 그건 우리들의 상상이고, 주님의 뜻에도 맞지 않거든요.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한다면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요!”

왕설는 이준이 말한 성경 구절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래! 요즘 난 목사와 장로의 말만 듣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끝났다는 줄 알고, 앞으로 새로운 사역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방금 아이들이 말한 주님의 예언은 확실히 주님이 다시 와서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거야.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여기까지 생각한 왕설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왕설가 진리를 찾기 시작한 걸 본 후,혜민과 이준은 기뻐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엄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사실 은혜시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끝났다는 의미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는 주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누릴 수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이뤄낸 효과예요.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이로써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봐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말하면서 혜민은 침실에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을 한 권 가져와 펼쳐 놓고 읽었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하나님의 성육신 사역을 끝마친 것이고, 온 인류를 구속한 것이며, 음부의 열쇠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은 부족함 없이 완성되었다고 여겼다.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는 그가 작은 부분의 사역만 완성했을 뿐이다. 그는 인류를 구속하였을 뿐 정복하지는 않았고, 사람의 사탄스러운 추한 몰골을 바꾼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성육신한 몸은 죽음의 고통을 겪었으나 이는 내가 성육신한 목적이 아니다. 예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나의 사역 중 일부만 완성하였을 뿐 모든 사역을 완전히 끝낸 것은 아니다.”』(〈사역과 진입 6〉 중에서), 『사람은 구속되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고, 사람의 과오대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체에서 살며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짓고 끊임없이 사함 받는 사람의 삶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자백한다. 그러므로 속죄제가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하다고 해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해 낼 수 없다. 그것으로는 구원 사역의 절반만 완성되었을 뿐인데, 이는 사람에게 아직도 타락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혜민이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고 계세요. 예수님이 하신 구속의 사역은 다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의 절반만 끝냈을 뿐이라고요.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으로 죄 사함을 받고 뚜렷이 드러난 죄는 짓지 않으며 겉으로 좋은 행동들을 하지만,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우리는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하고, 간사한 등등 타락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서 항상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보호하려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여요.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 질투하고 인정하지 않죠. 우리의 이익을 해치는 사람은 미워하고 복수까지 하려고 해요. 게다가 세상의 사악한 조류를 따르며 돈을 사랑하고, 허영을 탐하고, 명리를 사모해요. 천재와 인재가 닥치거나 불행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또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기도 해요. 심지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의 사역을 비난하고 정죄하기까지 하죠. 우리의 이런 모습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 안의 사탄의 본성과 타락한 성품은 여전히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이것이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죠. 우리의 범죄의 본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어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계세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위기 11:45) 또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도 말씀하셨어요.‘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서 천국은 더러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항상 범죄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겠어요?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하시는 한 단계 새로운 사역으로 우리 안의 범죄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가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고, 구원받을 수 있어요. 이것 또한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거예요.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하면서 혜민이 《말씀이 육신에 나타남》의 한 페이지를 펼쳐 놓고 왕설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거예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처럼 이제 막 구속된 죄인들은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구속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중에서),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을 뿐, 사람의 타락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으로 인류는 더 높은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게 되고,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앞에 쓴 말씀〉 중에서)”

왕설는 여기까지 듣더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권능이 있구나! 원래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구속의 사역이었어.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의 범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은 거지. 그래서 우리가 온종일 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거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기도하고 자제해도 다 소용없었어. 그러고 보니,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말 하나님께서 한 단계 사역을 다시 하시는 것뿐이구나!’

이준이 일어나 왕설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장모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말세에 왜 심판 사역을 하시고 심판 사역으로 얻는 효과까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세요. 우리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죄 사함은 받았지만 사탄의 본성이 아직 뿌리 깊게 남아서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에 타락한 인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반으로 한 단계 말씀으로 심판 형벌의 사역을 하셔서 우리의 범죄 본성을 해결하고 우리를 죄로부터 철저히 구원해 내시려고 하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사탄에게 타락 당한 본인의 진짜 모습을 똑바로 보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기 안의 사탄의 본성을 알게 되요. 또한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미워하고 육적인 것을 등지며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탄의 속박에서 서서히 벗어나 정결케 되고, 변화되며, 구원받아 온전케 되어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경륜이 완전히 완성되요. 하나님의 일이 다 성사되면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에요.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계시록 21:5~6)”

이준과 혜민의 나눔은 왕설의 생각 밖이었고 새로웠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나눈 것은 모두 성경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부합하구나, 들어보니 아주 투명해. 주님이 다시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은 완전히 우리의 필요 때문이었구나. 우리를 죄에서 철저히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되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엄마, 무슨 생각 하세요?” 혜민은 왕설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안 하자 가볍게 왕설의 팔을 흔들고 물었습니다.

왕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이준과 혜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진리를 알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구나. 오늘 너희들의 나눔을 들으니 엄마도 조금은 알 것 같구나. 예수님은 단지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의 일부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여서 죄 사함을 얻었지만 우리의 범죄의 본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할 자격도 없고, 천국으로 가지도 못하는 거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한 단계 심판 사역이 더 필요하구나!”

혜민과 이준은 왕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무척 감격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왕설는 딸과 사위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자책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그동안 난 목사와 장로의 말만 듣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이 이미 끝났다는 걸로 생각해서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기만 바라고 있었어.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주님이 돌아오셨다고 간증하는 걸 듣고도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관념과 상상만 고집했어. 너희들에게도 계속 주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권하러 온 건데,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해서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놓칠 뻔했구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대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기회를 놓치겠구나! 우리가 정결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하지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대체 어떻게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구나. 나도 계속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더 읽어보고 싶구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침 내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하기로 했는데 와서 들어보시겠어요?”혜민이 말했습니다.

“그러자꾸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때 창밖의 햇빛은 찬란하게 비추고, 방 안에서는왕설 가족의 유쾌한 대화 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습니다….

                            

1/30/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안식이란 무엇인가?

중청

🔗 안식의 유래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태초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질병의 고통도, 노동의 수고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며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안식을 잃어버리다

그러나, 아담, 하와에게는 진리가 없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부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했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고,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원래 근심 걱정 없이 살던 삶을 잃고, 안식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면서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고통당했으며, 사람들끼리 서로 시기 질투하고 싸우며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시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서서히 인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간사하고, 사악해져 갔습니다. 도둑질, 강도, 간음, 살인 등 저지르는 죄도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까지 타락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홍수로 사악하고 타락한 인류를 멸망시켰고, 노아의 여덟 식구와 함께 방주에 탄 각 생물들만 살아남았습니다.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다

홍수가 세상을 멸한 후 노아의 후손들은 계속 이 땅에서 번식하며 살아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만 알았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창조주를 만족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바랐지만, 당시의 인류는 하나님의 요구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경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안식하고 있었다. 그때 땅에는 인류도 없고 만물도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 어떤 사역도 행하지 않았다. 인류가 생기고 또 인류가 타락한 뒤에야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고 인류 가운데서 바빠지기 시작했다.』(<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당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1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섬겨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입니다. 이로써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무엇이 죄인지,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게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류가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인류가 율법과 계명을 지킴으로써 행동이 제한되고 규범화되어 인류의 죄는 효과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율법의 구속을 받았지만 사탄에 의해 타락됨으로 점점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죄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결국 그들의 죄를 속죄할 충분한 속죄제가 없게 되면서 그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고 죽음에 처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시대가 이어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율법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지고 무심해져 차츰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멀어졌다. 그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게 되었으며, 그들의 생활은 성전에서 제단을 지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류가 멸망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시 사람의 필요에 따라 2단계 사역,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율법과 계명의 기초 위에서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실행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하며,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고 사람됨의 원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분의 죄 없는 육신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자격이 생겼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람들의 마음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예수님과 사람들이 얘기하는 장면[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2천 년 동안 계속되었고, 우리는 죄를 저지르고 주님께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는 여전히 존재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간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한 사탄의 본성은 뿌리가 깊어서 항상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명예와 지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거짓말하고, 남을 속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항상 사람을 따르고 우러러봅니다. 또한, 지위가 생기면 우리는 항상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숭배하게 하고 우러러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판단하며,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집안에 천재지변의 화가 닥치거나 평안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한 단계 더 높은 구원 사역이 필요합니다.

🔗 어떻게 안식에 들어가는가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먼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에 들어가는 삶이란 싸움도 더러움도 없고 불의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이다. 다시 말해, 사탄(적대 세력)의 방해도 사탄의 파괴도 없으며, 하나님과 적대되는 세력의 침해가 없는 것이다. 또한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뉘어 창조주를 경배하고, 하늘과 땅이 모두 평온한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안식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갈 때 땅에는 더 이상 불의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어떤 적대 세력의 침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또한 새로운 경지에 들어가는데, 그들은 더 이상 사탄이 타락시킨 인류가 아니라 사탄에 의해 타락했다가 다시 구원받은 인류이다. 인류가 안식하는 날은 하나님이 안식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안식을 잃은 것이지 처음부터 안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고 해서 만물이 활동하지 않거나 만사가 발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더 이상 사역하지 않거나 사람이 더 이상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바로 사탄이 멸망하고, 사탄과 한통속인 악인들이 모두 징벌받아 멸절하며, 하나님과 적대하는 모든 세력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인류가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전 인류가 하나님의 빛과 축복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이 타락시키는 일도 없고, 불의한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두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과 인류가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즉, 마지막 하나님의 경륜이 끝난 후에, 만물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고, 사탄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인은 다 멸망해서 이 땅에는 더 이상 더러움과 타락함, 불의함이 없어지고, 사탄의 타락과 방해도 없어집니다. 사람은 모두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며,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이 땅에서 창조주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안식에 들어가서 사는 삶입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말씀을 먹고 마시다.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지금, 우리의 몸은 더러움과 타락함, 불의함으로 가득 차 있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과 사탄에 속한 모든 적대 세력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시고,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은 또 한 단계의 말씀 심판으로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또한 예수님이 말세에 염소와 양, 가라지와 알곡, 선한 종과 악한 종 등을 구별하시는 사역을 하신다는 예언도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수백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6천 년의 경륜,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비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의 타락한 성품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지, 또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도태시키는지, 인류의 이후 결말과 종착지 등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심판 사역하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며, 온전케 하는 동시에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근원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실을 간파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보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이심을 알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미천함과 비열함, 추악함을 보게 되었고,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 하나님에게 점점 충성하고, 순종하게 되며, 성품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사람이 될 때, 사탄도 다시는 우리를 타락시키지 못하며, 우리도 다시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 사탄 및 모든 사악한 세력도 하나님이 내리시는 대재난에 멸망하고,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해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끝나고,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을 누립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며,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희롱당하고, 해를 입으며, 결국에는 사탄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고,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말세에 심판과 형벌을 하는 사역, 즉 정결케 하는 마지막 사역에서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마지막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정결케 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거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진다. 마지막에 얻어지는 그 사람들은 마지막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형벌과 심판 사역의 본질은 인류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자 최종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없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를 모두 정결케 하고, 형벌과 심판을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 이로써 구원할 수 있는 사람과 구제 불능인 자를 모두 구분해 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자를 모두 구분해 낸다.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케 되어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서 땅에서 제2의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며,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과 심판을 받고서 본색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뒤에 모두 멸망하여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이런 부류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부류의 자들은 마지막 안식처에 들어갈 자격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을 맞이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의인이 아니라 징벌받을 대상이자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1/28/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부활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아시나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한샤오
📌 부활절이란 무엇인가 부활절의 유래
부활절, 주님의 부활절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보통 매년 춘분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다음의 일요일입니다. 매년 3월에서 4월이면 세계 각지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가져다주신 은혜와 희망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일 당일 경축 행사를 엽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인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과 함께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셨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의미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나타내신 의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한 후의 예수가 해야 했던 첫 번째 일은 바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와 죽음에서 부활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사람과의 관계를 그가 육신에서 사역하던 시기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리스도와 사람과의 관계로 회복시켜 놓는 것이었다. 그래야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과 예수가 인류를 구속한 사역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을 터였다. 한편, 부활한 예수가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났다는 이 사실은, 사람들을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은혜시대에 자리 잡게 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예수가 ‘사라지거나’ 혹은 ‘말없이 떠나도’ 지난 율법시대로 퇴보하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로써 은혜시대의 사역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율법 아래 있던 인류도 이때부터 정식으로 율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원에 진입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한 예수가 사람 앞에 나타난 사건이 가진 다양한 의미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부활한 예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였다. 그들에게 요구 사항을 제시하고,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기대를 남겼다. 즉, 성육신 하나님은 육신으로 지냈던 기간이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여 영체가 된 다음이든 인류에 대한 염려와 요구에 변함이 없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도 제자들을 염려했다. 모든 사람의 상태를 훤히 알고 있었고, 각자의 부족한 부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체가 되었지만 육신에 거할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신분에 대해 사람들이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육신으로 있던 기간 동안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부활한 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확신시켰다. 그의 현현과 부활은 사람이 평생 추구하는 최대의 이상(異象)과 원동력이 되었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은 그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확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은혜시대의 사역이 인류 가운데 완벽하게 실현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은혜시대 예수의 구원 복음은 점차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예수가 부활한 후에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에는 아주 큰 의미가 있지 않으냐?… 그의 나타남으로 인해, 사람들은 또 한 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함과 보살핌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하나님은 시대를 개척하고 열어 나가며, 또 시대를 종식시키는 분임이 강력하게 입증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남으로써 모든 사람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었고, 세상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증거를 얻게 하였으며, 새 시대의 사역 국면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여러 차례 제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을뿐더러 하나님의 고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 그분을 따르던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본 후 입으로는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했지만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정부에 체포되고 병사에게 채찍질 당하며 농락당하셨을 때 주님을 따르던 많은 자는 예수님의 신분을 의심했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이 점점 작아졌고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 많은 사람은 주님께 크게 실망하고, 의심의 불씨는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주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것이며 다시 율법시대로 돌아가 구약 율법을 계속 지켰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나약함과 분량이 작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여러 차례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고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으며 부활 후 그분의 영체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정말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그분이 바로 과거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시던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이 바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고 성경에 예언된 인류를 구속하시는 메시야라는 것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확신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거나 부인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사람에게 모습을 나타내시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믿음을 굳건히 해 주셨으며,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가깝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오시어 현현 사역을 하셨고 율법시대를 완전히 끝내시고 은혜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확실히 심어 주었습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죄와 죽음을 이겨 내고 사탄을 이겨 내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원을 여시어 사람들을 구약 율법 시대로부터 완전히 꺼내셨고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은혜시대에 자리 잡게 하시어 사람들에게 은혜시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이끌어 주심과 목양 및 양육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신 다음 사람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며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경우,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시자 그들의 믿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기 위해 그들은 어려움과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복음을 널리 확장하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으며 심지어 주님을 위해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복음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모든 가정과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시고 사람과 말씀을 하시며 마음을 나누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사람을 돌봐 주시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며 성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은혜시대에 자리 잡게 해 주셨으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이로 인해 널리 퍼져 세계 곳곳에 닿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하심도 숨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의 깨우침과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를 통해 저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역에서 사람을 염려하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1/26/2020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목차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일까

주님의 은혜를 받은 후 저는 마태복음 3장 17절에 기록된 성경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설교하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내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천 년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다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형제자매님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된 것을 보았습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시니 주님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한복음 14:9~10) 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30) 그래서 일부 형제자매님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데 왜 주님께서는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라고 하신 걸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마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아버지와 아들로 나눌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인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 자신일까요?” 오늘 이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목자이신 예수님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펼치신 후 율법시대가 막을 내리고 은혜시대가 시작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직접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지내셨습니다. 당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증거하셨고 예수님 역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이 이때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들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일까

성경을 본 형제자매님이라면 모두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께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음을 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시대 사역을 하실 때도 아들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제자들에게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9~11),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펼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정상적인 인성뿐만 아니라 완전한 신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본질은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어떤 책에 적힌 내용처럼 말입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은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분은 하나님 영이 실제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실 때 긍휼과 자애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게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었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3:2)와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의 가르침과 함께 사람이 새롭게 실천해야 할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권능과 능력이 있어 사람의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또 말 한 마디로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시고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역사 중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속성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생생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나타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

예수님의 기도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주 예수 기도
어쩌면 형제자매님들이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라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왜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을까요?” 이 문제에 관하여 한 단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당시 예수가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단지 창조된 사람의 관점에서 부른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영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을 입었고, 피조물의 외형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여전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가 스스로를 ‘인자’라고 말한 것도 포함된다. 인자라고 말한 이상, 인자는 바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남자든 여자든, 결국 모두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이다. 바로 창조된 사람의 관점에서 부른 것이다. 너희가 외웠던 예수가 가르쳐 준 주기도문을 기억하느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는 모든 사람으로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그 또한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너희와 평등한 선상에 서서 하늘의 하나님을 부른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이상, 예수는 자신을 너희와 평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자 하나님이 땅에서 택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으로 여긴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것 또한 너희가 피조물이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땅에서 얼마나 큰 권능을 가졌든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자 땅의 피조물의 일원이었다. 그는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하늘의 영)을 그렇게 불렀다고 해서 그가 바로 하늘의 하나님 영의 아들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취한 관점이 다른 것이지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을 때는 단지 피조물의 입장, 다시 말해 사람의 입장에서 부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영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의 신분은 인자이시고 정상적인 인성이 있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으며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 자며,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낮추심과 순종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말투나 호칭으로 기도드렸건 그분의 본질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또한 정상적인 인성과 함께 완전한 신성도 갖추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사역을 하시는 기간에는 말씀을 선포하시거나 이적을 나타내신 것 모두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신분으로 모든 진리를 선포하실 수 있었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시어 사람에게 진리와 길, 생명을 베풀어 주셨으며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사역하신 것입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일까

예수님이 세례를 받다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 세례
또 일부 형제자매님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마태복음 3장 17절에 기록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다음 단락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고 한 것은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말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단지 다른 관점으로 그 자신을 증거한 것이고, 하늘에서 영의 관점으로 그가 입은 육신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는 그가 입은 육신이지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이해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들의 영이 원래 하나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위아래로 분리된 것이 아니냐? 사실, 여전히 하나이다. 어쨌든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하늘의 영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을 뿐,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어떻게 독생자가 있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성육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렸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단지 하늘과 땅에 있는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다.』(<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령께서 말씀하신 ‘사랑하는 아들’은 하나님께서 영의 관점에서 그분이 성육신하시어 인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자신을 위해 증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만약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직접 증거하셨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막 접했고 성육신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인자가 바로 하나님 영의 화신이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임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선포하고 역사를 하시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그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고 엘리야이며 선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의 분량을 생각하시어 예수님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잠시나마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생각과도 맞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도 쉬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구속 사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칭하건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으면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신 선택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분량과 무지함으로 우리의 나약함을 살피시는 하나님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긴다면 그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한 사람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교제한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사역하신 몇 년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끝내신 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없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 동영상 추천 :<경건의 비밀 (속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 자신인가?

10/19/2019

기독교 영화 <내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명장면(4)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이 다시 나타났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고수하면서 주님의 사역을 정죄했고,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에 불과하다고 논단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신도들을 극력 가로막았으며,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시고 사역하시자 교계의 목사들은 계속 성경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정죄하며, 참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신도들을 극력 방해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비극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명장면 더보기: 기독교 영화 <내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명장면(5)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의 진상을 밝히다

10/17/2019

기독교 영화 <내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명장면(3)주님의 죄사함을 받기만 하면 들림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가?


교계의 목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다 끝났다고 단정 지으며 주님이 오신다면 신도들을 바로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니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목사들의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과연 무엇을 가리켜 하신 말씀일까요? 하나님은 왜 말세에 다시 오셔서 진리를 발표하시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실까요? 어떤 사람이라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명장면 더보기: 기독교 영화 <내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명장면(4)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이 다시 나타났다!

7/23/2017

동방번개-말씀카드(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



『하나님이 발표하고 유로한 말씀과 성품은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실질도 대표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접촉할 때, 어떤 말씀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품을 유로했든,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어떤 소유소시와 어떤 실질을 보게 되었든, 그것은 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 인류가 느낀 것이 얼마나 되든, 이해한 것이 얼마나 되든, 깨달은 것이 얼마나 되든, 모두 하나님의 뜻, 즉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하는지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실질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지, 하나님에게 어떤 소유소시가 있는지는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를 할 때 발표된 것인데, 거짓이 없고 가식이 없으며, 감춘 것이 없고 꾸민 것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항상 분명하게 보지 못할까? 왜 사람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할까? 하나님이 유로한 것, 발표한 것은 다 하나님 자신의 소유소시이고, 다 하나님 자신의 참된 성품의 세부적인 것과 각 방면인데, 왜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투철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다. 어떤 원인일까? 바로 창세 이래로 사람은 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즉 갓 지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였든, 사람은 그저 하나님을 동반자로 여기고 의지할 대상으로 여겼을 뿐, 결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나 이해가 없었다. 바로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이러한 대상, 사람이 보기에 ‘동반자’인 그분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실질이라는 것을 사람은 몰랐고, 그분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라는 것도 사람은 몰랐던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선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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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2016

동방번개-문답카드(예수님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한 분의 하나님이신 이상, 예수님을 믿어도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보기엔하나님이 십자가에  박혀 이미 하나님 도성육신의 사역을 끝마치고  인류를  구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음부의 열쇠도 잡은 것이다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철저히 이루어졌다고 여긴다사실 하나님이 보기엔그의 사역을 단지 일부분만 완성한 것이다그는 인류를 구속만 하였을  정복하지 않았고 더욱이 사람의 사탄의 추악상도 변화시키지 않았다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육신이 비록 사망의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내가 말씀이 육신  모든 목적이 아니다예수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박혔지만 그는 나의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지 않고 일부분만 하였다.”라고 말씀하였다이리하여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사역을 잇는  번째 계획을 시작하였다하나님의 최종 뜻은 사탄 손아귀에서 구원해낸 사람을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재차 위험을 무릅쓰고 육신에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6)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