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하나님이자 너의 왕이냐? 너는 내가 네 안에서 진정으로 왕권을 잡게 했느냐? 잘 성찰해 보아라. 새 빛이 왔을 때 연구하고 거부하며, 심지어는 따르지 않고 멈추지 않았더냐? 그러니 너는 심판받아 죽음으로 떨어질 것이다. 심판과 채찍질을 당하고 성령 역사를 느끼지 못할 것이며, 급히 울부짖으면서 엎드려 경배하고, 슬피 통곡할 것이다. 나는 늘 너희에게 얘기하고 말했다. 너희에게 하지 않은 말이 없다. 잘 돌이켜 보아라. 내가 당부하지 않은 것이 있더냐? 그런데도 계속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고, 의심의 구름이 해를 가려 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자기’ 뜻이 너무 강하고 관념이 너무 크기 때문 아니겠느냐? 네 안중에 내가 어디 있더냐! 네 마음속에 내 자리가 어디 있더냐! 너는 실패해 아무런 방법도 없게 되어야 나에게 간구하는구나. 네 생각대로 한번 해 봐라! 이 사람들아! 전부 네 옛 자아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새 빛을 따라가지 못한다. 늘 예전에 깨달은 것들만 교제할 뿐 새로운 것이 없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모두 자기 안에서 살면서 나를 향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 방식이 바뀐 것을 보면 너는 틀릴까 봐 늘 조심한다.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더냐? 너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구했느냐? 너는 ‘성령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며 머리로 궁리하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 역사임을 보고서도 한바탕 논평을 늘어놓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자의 관념만 잔뜩 늘어놓고, 성령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며, 대가를 치르며 내 앞에서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건성으로 대한다. 또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도 내 앞에 와서 교제하며 구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것은 무슨 속셈이냐?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지낼 때 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라는 이런 처세술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여전히 주님을 섬기거나 다 버리고 열심히 헌신하는 일들을 천국에 들어갈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이런 생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오늘 내용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거래로 삼지 말아야 한다>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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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서 이야기에서 깨우침을 얻다
부모와 아이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계산서를 내밀었는데, 그 계산서에는 아이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동생을 돌봐 준 내용과 함께 자신에게 총 50불을 줘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아이에게 50불을 주면서 계산서 한 장을 같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아팠을 때 같이 있어 주었던 일,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던 일, 아이를 위해 기도했던 일 등 아이가 지불해야 할 내역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 항목의 청구 금액은 모두 0불이었습니다. 계산서를 본 아이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엄마에게 받은 50불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저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나이 어린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를 용서 안 할 수 없지.’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물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은 가격이 매겨지고 우리도 당연하게 자신이 치른 대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어떤 때는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임에도 우리의 교환하려는 마음 때문에 무정한 거래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힘들게 사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길을 걷다
그러다가 제가 겪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교회의 일이 많아 저는 매일 바쁘게 보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피곤함도 잊은 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15km 떨어져 있는 다른 자매님의 집에 6시까지 도착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때 한 겨울은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특히 동이 틀 무렵엔 밤 사이 추위가 삼켜 버린 땅과 나무가 생기를 잃고 꽁꽁 얼어붙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두꺼운 털옷과 코트를 입었어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맞는 매서운 바람은 몸속 깊이 들어와 살을 에는 듯 얼음 동굴에 빠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에 감각을 잃어 몇 번이나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몸을 녹인 후에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일이 아니라면 누가 이 추운 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설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도 다 보고 계시겠지?’ 그러다가 하나님을 믿은 최근 몇 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헌신을 했으니 마지막에 큰 축복과 상을 받을 거고, 주님이 오셨을 때 분명 빛나는 면류관을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니, 이런 날씨도 별로 춥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에게 준 계산서’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과 이야기 속의 아이가 다른 게 뭐가 있지? 나도 겉으로 고생하고 헌신하면서 하나님께 축복과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건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게 아닌가?’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그때, 문득 예배 드릴 때 린(林) 형제님이 읽어 주었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말 마음이 찔렸습니다. 저는 제가 조금 고생하고 헌신했다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바랐다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가정과 제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청춘을 바치고 고통과 환난을 겪어 왔던 것이 제 인품이 훌륭하다거나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순종해서가 아닌, 이를 토대로 하나님께 축복과 상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한 고생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면 제 공로로 기록해 두고, 항상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복과 상을 받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며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사역의 길에는 불순물과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이익만을 좇는 비겁한 소인배였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겁했죠. 정상적인 인성에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을 섬기고, 본성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이익만 좇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보답을 받으려고 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계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바친 마음에도 개인적인 욕심과 불순물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앞으로 상과 축복을 받을 생각만 했습니다. 이는 기꺼이 봉헌한 것이 아니며 이런 행동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보답이 없고, 그저 냉혹한 거래만 있을 뿐이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헌신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다
보답한단 말인가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후, 인류가 패괴된 이후든 인류가 그를 따랐던 때든 상관없이 그는 인류를 자신의 둘도 없는 가까운 존재로 삼았다. 즉, 인류가 말하는 가장 친한 존재로 여겼지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창조주이고 인류를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듣기에 조금 등급의 차이를 띠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이런 관계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또한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 대해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바라는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나 다른 서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행했는지, 왜 이렇게 인류를 보살피고 있는지를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표명해 사람이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그를 찬미하게 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상심하거나 극심한 아픔을 느낄 때에도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염려를 잊지 않고 그런 ‘상심’과 ‘아픔’을 홀로 묵묵히 감내한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렇게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 설령 인류가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잘 대해 준 것을 가지고 사람에게 은혜에 대한 감사나 보답을 받으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망망대해에 놓여 있던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돼야 하는지 알게 해 주셔서 사탄의 고통 속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된 길에 들어서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고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조금 고생하니,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성이 다시 드러났고, 이를 조건으로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얻고 하나님께 가정이 화목하고 가족이 편안하기만을 구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복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수많은 계산서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음에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공기와 햇빛, 비와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주셔서 하나님의 공급과 자양분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인류를 수천 년 동안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후 인류는 계속 죄를 짓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 정죄당하고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죄 없는 육신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묵묵히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고, 말씀과 역사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많은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순종하기만을 바라셨죠. 하나님의 깊은 사랑 앞에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역을 위해 고생했다며 하나님께 바라고 은혜를 달라고 할 수 있지? 이건 정말 이성이 없는 생각이 아닌가?’
🍄 우리가 가져야 할 이성과 추구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도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 너는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당할까 두려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거절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과 흥정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고, 우리가 상과 축복으로 바꾸는 방법도 아니라 피조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자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본분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이고, 또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가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올바른 추구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기꺼이 그를 위해 바치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뜻을 헤아려야 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인성과 이성이 있는 피조물이 되어 그의 마음에 위안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추구이며, 그렇게 살아야만 사심 없는 하나님의 공급과 베풀어 주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헌신을 다하며 사역했고, 교회들을 목양하며 자신의 평생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에게 핍박도 받았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했죠. 베드로가 한 모든 행동은 주님과 거래를 하거나 천국의 복이나 더 많은 축복과 은혜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의 뜻을 따르고 그가 맡기신 일을 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고, 주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추구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렸고 마침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묵상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정말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려면 우선 방향과 목표를 올바르게 잡고,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길을 추구해 기꺼이 그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되이 본분을 이행하며 그가 맡기신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대와 어긋나기 때문에 끝까지 믿고 나서도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유의 머리인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좌 위에서 왕권을 잡고 우주와 만유를 주관하며 온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늘 그를 가까이하고 그의 앞에 와 마음을 평온히 하라. 한순간도 놓치지 말라. 매 순간 배울 공과가 있다. 주변 환경과 사람, 일, 사물은 모두 보좌가 허락한 것이므로 절대로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질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속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조금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사탄의 생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질병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미 속에서 하나님을 누리며,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계속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그저 병뿐이지만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모금의 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스러워 하는 욥
사람들이 욥을 에워싸고 구경하다
고통속에서 욥이 하나님께 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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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하나님은 진리로 사람을 구원하신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 실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부족하니 하나님이 우리 안에 참된 믿음을 더해 주길 바란다. 하나님 말씀은 참으로 달콤하다! 하나님 말씀은 특효약이며, 마귀와 사탄을 치욕스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 의지할 곳이 생기며,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데 즉효이다! 만사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평안해진다. 믿음은 외나무다리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겁나고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사탄의 우롱으로 인한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탄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항상 자신의 생각을 보낸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해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의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훈련을 하여 하나님이 권세를 잡고 온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해야 한다.
사람은 수천 년의 패괴를 겪고 나서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고,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배반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성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고, 사람의 양심도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보인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너희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에 물들었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뒤처진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하게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심하게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나날이 더 악랄해져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거나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반면에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쾌락을 찾아 즐기고, 진흙탕에서 마음껏 자신의 육체를 패괴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설령 진리를 듣더라도 실천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이 이미 나타난 것을 보아도 찾으려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이렇게 부패한 인류가 어떻게 빛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본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의 사상, 본성, 정신 면모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성품이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의 패괴된 성품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에게 해를 입고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도덕, 식견, 이성이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근본적인 것들이 이미 모두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이 만든 원래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우선 사람의 사상, 식견, 이성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진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가장 심하게 패괴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더더욱 모른다. 사람은 심하게 패괴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더 알지 못하고, 이성과 식견이 더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사람은 양심이 무감각하고 도덕이 부패하고 사상이 진부하고 정신 면모가 뒤처지게 된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이후로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전부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사랑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이성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성품도 짐승처럼 변해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 점점 많아지고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사람이 드러내는 성품은 곧 사람의 이성, 식견, 양심의 발현이다. 사람은 이성과 식견이 건전하지 못하고, 양심이 극도로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품이 된 것이다. 사람의 이성과 식견을 바꾸지 못하면 성품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것도 말할 나위가 못 된다. 사람은 이성이 건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정상적인 이성이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스러우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이고 양심적이며, 하나님에 대해 일편단심이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이성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졌으며,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게 되었다. 양심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판단하며, 순종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이 계속 하나님께 달라고 하고 요구하기만 한다. 이처럼 이성이 비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열한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패역한 행위를 통회하지도 못한다.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성이 조금은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성이 더 건전하지 못하다.
사람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근본 원인은 사람의 무감각한 양심, 악독한 본성과 건전하지 못한 이성에 있다. 사람의 양심과 이성이 정상으로 회복된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양심이 줄곧 무감각한 상태에 있고, 사람의 이성이 한 번도 건전했던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세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문전 박대 하며, 하나님의 육신을 정죄하고, 또 하나님의 육신이 비천하다고 여긴다. 사람에게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잔혹하게 대할 수 없고,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악독하게 대할 수 없으며, 정말로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육신 하나님께 이같이 ‘감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온 것을 욕하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쩌면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이 온 것을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하나님은 싫은 기색 없이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한다. 사람이 그를 조금도 환영하지 않고, 그에게 계속 뭔가를 요구하더라도 말이다. 사람의 성품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성은 극도로 무감각해졌으며, 사람의 양심은 이미 악한 자에게 짓밟혀 원래 가지고 있던 양심은 진작에 사라져버렸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준 이처럼 많은 생명과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해 하나님을 혐오하고, 진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님에게조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서 ‘기름을 짜내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자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이런 양심과 이성을 가졌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너무 많고 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푼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 한 그릇을 주고는 우유 두 그릇 값의 금화를 달라고 손을 내밀고, 내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이보다 몇 배 넘는 숙박비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런 인성과 양심을 갖고도 생명을 얻으려 하느냐? 정말 비열한 소인배들이구나! 사람의 이런 인성과 양심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은 기거할 곳 없이 곳곳을 떠돌게 된 것이다. 정말로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그가 아무런 사역을 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그를 경배하고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이것은 이성이 건전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사람의 본분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도 조건을 내건다. 그런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인지 사람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조건만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만 한다. 너희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면 품값을 요구하고, 나를 위해 다리품을 팔면 수고비를 요구하며, 나를 위해 사역하면 사역비를 요구하고, 나에게 빨래를 해 주면 세탁비를 요구하며, 교회에 공급하는 일을 하면 몸보신 비용을 요구한다. 말하는 자는 강의료를 요구하고, 책을 배부하는 자는 책 배부 비용을 요구하며, 글을 쓰는 자는 원고료를 요구한다. 심지어 내게 책망받은 사람은 내게 보상금을 요구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은 명예 훼손 배상금을 요구하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혼수비와 청춘을 바친 대가를 요구한다. 또한 닭 잡은 사람, 요리를 만든 사람, 국을 끓인 사람 등 다 그에 따른 수고비를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고상하고도 위대한 인성이며, 너희의 그 따뜻한 양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너희의 이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 같은 인면수심의 무리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구원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이런 짐승들을 위해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등을 돌리는 날은 바로 너희가 죽는 날이고, 어둠이 너희에게 임하는 날이며, 광명이 너희를 버리는 날이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나는 너희처럼 짐승보다도 못한 무리에게 큰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일하는 데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너희의 인성과 양심이 이러하니 나는 더 많은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너무 양심이 없고, 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상하게 했으며, 너희의 비열한 행위는 나를 너무 역겹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성과 양심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 나는 이렇게 흉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날이 올 때, 나는 나를 크게 진노하게 했던 이 패역한 자식들에게 영원히 불사름의 불을 쏟을 것이고, 예전에 나를 욕하고 저버린 이 짐승들에게 영원히 징벌을 내릴 것이며, 나와 함께 먹고 함께 지냈지만 나를 믿지 않고 모욕하고 배반한 그 패역한 자식들을 영원히 나의 분노의 불길로 태울 것이다. 나를 분노하게 한 모든 사람을 나의 징벌 속에 내던질 것이고, 나와 동등해지고 싶어 하며 나를 전혀 경배하지 않고 내게 순종한 적이 없는 짐승들에게 나의 모든 분노를 쏟을 것이며, 내 입에서 나온 말의 비밀과 나의 보살핌을 누리고 나에게서 물질적인 누림을 다투었던 짐승들을 나의 채찍으로 칠 것이다. 나는 내 지위를 빼앗으려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투는 자는 그 누구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지금은 별 탈 없이 평안하고, 점점 더 큰 욕심을 내며 내게 요구하고 있지만, 분노의 날이 오면 더는 내게 요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나는 너희가 마음껏 ‘누리게’ 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입으로 진흙을 씹게 할 것이고, 너희는 영원히 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조만간 이 빚을 너희에게 모두 ‘되갚을’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너희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비열한 인간들이 정말로 사치스러운 욕망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다면 그래도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정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정이 있어서도, 사람이 얻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아서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에게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가 있더냐? 이성이 건전하고 양심이 예민한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가 있더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 중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불사름 당한 이가 있더냐?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한 사람 중에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집 밖으로 쫓겨난 이가 있더냐? 하나님을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징벌 속에서 살게 된 이가 있더냐?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린 사람 중에 빈털터리가 된 이가 있더냐?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기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기 일생의 정력을 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너희 같은 이런 인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너희는 자신이 인류 중의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인성이 가장 비천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존칭’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너희를 늑대의 아비나 어미, 늑대의 자식이나 손자, 늑대의 후예, 늑대의 민족이라고 한다. 너희는 자기 신분을 알고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며, 스스로를 상등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악랄한 한 무리의 비인류이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의 이성이 정상을 되찾지 못하고, 너희의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늑대’라는 호칭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저주와 징벌의 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너희는 출생이 비천하고, 본래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본래 한 무리 굶주린 늑대이고, 한 무더기 잡동사니나 쓰레기다. 내가 너희에게 사역하는 것은 너희처럼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거역한다면 나는 나의 사역을 그만둘 것이며, 앞으로 다시는 너희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옮겨 가서 사역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게 된다. 나는 나와 적이 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마음에 합하길 원하느냐, 아니면 나와 적이 되길 원하느냐?
주인공은 무엇을 하든 성의 없고 대충대충 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면은 교회에서 번역문 감수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죠. 마음을 기울이면서 꼼꼼하게 검토해야 하는 파일을 받고도 귀찮게 여기며 성급하게 대충 넘어갔습니다. 그로 인해 결과물에서 계속 실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주인공은 속상해하며 자책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말씀으로 심판받은 후에야,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자세의 근본 원인은 불량 기질이 깊이 자리 잡고 있고, 육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본성 때문에 항상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공은 믿음성이 없고 품위가 없고 존엄성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증오하면서, 진리를 실천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마음 들여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찾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깨달은 것은 온전케 되지 않은 역대의 그 누구보다 높다. 시련에 대한 인식이든 또는 믿음에 대한 인식이든 하나님을 믿는 그 누구보다 높다. 너희가 깨달은 것은 모두 환경의 시련을 겪기 전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의 실제 분량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으며 모든 깨달음이 실천에 앞선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복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만을 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너희가 삶에서 보여 주는 행동은 그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불순물도 너무 많다. 많은 이가 평안과 이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익이 없으면 믿지 않고 은혜를 받지 못하면 입을 삐쭉거리니, 너의 말이 어찌 너의 실제 분량을 대표하겠느냐? 아이의 질병, 가족의 입원, 농작물의 수확 감소, 가족의 핍박 등 평소에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가정의 변고, 즉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을 너는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부분 하나님을 원망하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너를 속였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너를 조롱했다고 원망한다. 너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느냐? 이런 일들이 너희 가운데서 드물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온종일 이런 일들에 빠져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너희의 실제 분량은 너무나 작아서 그야말로 병아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사업이 손해를 봐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도 원망하고, 심지어 집에 있는 병아리가 죽거나 외양간의 소가 병들어도 원망하고,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집에 돈이 없어도 원망한다. 접대하며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도 원망한다. 너의 뱃속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어 때로는 그것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도 않으며, 기약 없이 부정적인 상태로 지낸다. 지금 임한 이런 일들은 너의 미래나 운명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일어났을 일들이다. 그러나 너는 이 일들의 책임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는 하나님이 너를 도태시켰다고 우긴다. 너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정말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느냐? 오늘날 나를 따르는 너희에게 욥과 같은 시련을 준다면 단 한 명도 굳게 서지 못하고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와 욥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오늘날 내가 너희의 재산 중 반을 빼앗는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자녀를 거둬 간다면 길거리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욕할 것이고, 얼마 안 되는 네 생계의 길을 막아 버리면 하나님과 결판을 내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왜 그렇게 많은 말로 엄포를 놓았느냐며 너희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너희는 참된 깨달음이 없고, 참된 분량 또한 전혀 없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는 시련이 큰 것이다. 아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데 진정한 깨달음은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의 천 분의 일도 안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깨닫고 이해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참되게 실행할 수 있는지,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행으로 자신의 의지를 실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너는 자신의 분량과 실행을 참답게 대해야지,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네가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쳐 추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하려고만 할 뿐 그를 조금도 알지 못한다. 성령의 내적 깨우침과 빛 비춤을 간과하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밑거름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체험하다 보면 열의는 곧 사그라진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은 예전에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소극적이고, 연약하고, 눈물을 흘리고, 낙심하고, 실망하는 일이 다반사였을지라도 지금은 체험하면 할수록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 책망과 깨뜨림, 시련과 연단을 겪고 나면 크게 성장하게 되고, 그런 소극적인 상태가 적어지며, 생명 성품에도 변화가 조금 생긴다. 또 연단을 많이 겪게 되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법칙이 있다. 즉, 취할 만한 부분을 통해 깨우침을 줌으로써 실행의 길을 열어 주고, 모든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영이 해방되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데, 이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게 한다. 네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알려고 하며, 진리를 실행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너를 축복해 줄 것이다. 또한, 네가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될 때 너를 더 깊이 깨우쳐 스스로를 더 잘 알게끔 하고, 자신을 더욱 뼈저리게 뉘우치며, 자신이 실행해야 할 것을 더 잘 실행하게끔 할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된다. 평소에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설령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양심이나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바로 돌려세울 수 있다. 사람의 성품은 모두 자신의 실제 상태,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깨달을 때 변화한다. 자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 자기 속내를 다 털어놓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깊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이자 사람이 얻은 것으로, 사람 자신이 거둔 성과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기틀이 잡히고, 이상(異象)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육신, 말씀, 사역에 대해 확신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고 말씀하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방해하든, 자신의 주관을 세우고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더욱 잘 실행한다. 항상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다 보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원히 증거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다.
교회생활 간증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실제 체험한 크리스천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그들이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자신들의 패괴된 성품이 변화되었다는 증언을 여러분에게 들려 줍니다.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 깨닫고 정결해지는 길을 찾아 천국으로 들어가십시오.
주인공은 교회에서 동역자들과 협력하며 사역하는 과정에서, 한 자매가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형제자매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질투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옹졸한 책략을 꾸미고 명예를 좇습니다. 그건 무척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그녀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으면서, 자신이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야비한 사탄의 본성으로 살았다는 걸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으로 질투심을 해결하고 패괴한 본성을 벗어던질 수 있는 길을 얻게 됩니다. 육을 버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진리를 실천하자, 그녀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주인공은 늘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길 기다리던 경건한 젊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엄마를 통해 주님이 이미 재림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목사가 늘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알아보자니 혹시 잘못 빠질까 봐 두렵고, 또 알아보지 않자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혹시 재림하신 주님이 맞다면,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놓치게 될까 걱정하게 됩니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진리를 알아보는 열쇠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이며, 늘 경계만 해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알아보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하나님 음성을 듣게 되고 나타나신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면서도 주님을 맞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영상을 통해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중신밍은 교회의 리더였습니다. 그녀는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본분을 잘 이행해 왔습니다. 지병인 허리 디스크가 심했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본분을 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디스크는 심해졌고, 검사 결과 4~5번째 마디 사이의 디스크가 터져 빨리 치료를 해야 했고, 늦어지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중신밍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런 병이 생기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믿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믿음과 충성심을 검증하시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치료하면서 계속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이 다 낫게 해 주시고 지켜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하는데…. 과연 중신밍은 이런 연단과 시련을 어떻게 겪어 나갈까요? 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쁨을 얻게 될까요? 영화 <고통 속에서 얻은 기쁨>에서 확인하세요!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이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된 일인지 아니면 사탄의 역사에서 비롯된 일인지를 어떻게 분별해야 하겠느냐? 사람의 상태가 정상이면 영 생활과 육적 생활이 정상이며, 이성도 정상적이고 질서 있게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 체험한 일이나 얻게 된 인식은 성령의 감동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깨달음이나 얕은 인식을 얻는 것, 또는 어떤 일에서 충성하거나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힘 있게 사랑하는 것은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임).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할 때는 매우 정상적이라 사람은 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 같지만 사실은 성령이 역사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역사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자질이 뛰어난 사람은 이해가 빠르기 때문에 성령이 특별히 깨우쳐 주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는 이해가 느리지만 성령이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면 그 역시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한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거역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정도로 역사한다. 감동을 주거나 깨우침을 주며, 믿음과 힘을 준다. 또한 사람이 나태해지지 않고, 육적인 쾌락을 탐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는 이런 적극적인 면에서 진입하도록 감동을 준다. 이러한 것은 전부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의 상태가 비정상일 때 성령은 버리고 떠난다. 사람 안에 있는 원망의 마음, 삐뚤어진 마음가짐, 나태하고 육체를 방종하며 진리를 배반하는 마음과 같은 이런 것은 전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의 상태가 비정상일 때, 내면이 어둠에 빠져 정상적인 이성을 잃어버리고, 성령께 버림받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되어 사탄이 사람에게 역사한다. 사람이 내적으로 계속 힘이 넘치고,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태에 있으면 보통 어떤 일이 임하든 그것은 다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사람을 마주치든 다 하나님의 안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너의 상태가 정상일 때, 그리고 성령이 크게 역사할 때, 사탄은 너를 흔들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기본으로 뒷받침되면 일체 모든 것이 성령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옳지 못한 생각이 들더라도 충분히 그 생각을 따르지 않고 저버릴 수 있다. 이는 전부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떤 상황에서 개입하느냐? 너의 상태가 비정상이고, 너에게 하나님의 감동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도 없을 때, 내면이 메마르고, 기도해도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말씀을 먹고 마셔도 별다른 깨우침이나 빛 비춤을 얻지 못할 때 사탄이 쉽게 내면에서 역사한다. 다시 말해, 성령이 떠나고 네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면 많은 일이 사탄의 시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할 때 동시에 사탄도 역사한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면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교란한다. 하지만 이때 성령 역사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므로 정상적인 상태의 사람은 모두 이를 이겨 낼 수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사탄의 역사를 이긴 것이다. 성령이 역사할 때 사람 내면에는 여전히 패괴 성품이 존재한다. 하지만 성령이 역사할 때면 사람은 자신의 패역과 속셈, 불순물을 쉽게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은 후회하고 회개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패역과 패괴 성품은 하나님 역사 가운데서 점차 벗어 버릴 수 있다. 성령은 매우 정상적으로 역사하므로, 역사하는 동안에도 사람은 내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눈물도 흘리고, 고통스러워하고, 연약해지기도 하며, 알 수 없는 많은 일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뒷걸음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괴롭고 눈물 흘리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는 매우 정상적이며,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이 성령이 역사하기만 하면 사람의 상태가 바뀌고 본질적인 것들도 벗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할 때도 사람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분량 또한 전과 같다. 다만 성령의 빛 비춤과 깨우침이 있어서 적극적인 요소가 많아지고, 사람의 내적 상태가 정상으로 바뀌며, 변화가 빨라질 뿐이다. 사람이 실제로 체험하는 것은 주로 성령의 역사나 사탄의 역사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실제적인 체험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성품의 변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함에 있어 관건은 이러한 일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잘 체험할 수 있다.
땅에 있을 때, 나는 사람 마음속의 실제 하나님이고, 하늘에 있을 때, 나는 만물의 주재자이다. 나는 높디높은 산을 넘고 깊디깊은 물을 건너기도 했으며, 표연(飄然)히 사람들 가운데를 거닐기도 했다. 그 누가 감히 공개적으로 ‘실제 하나님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감히 전능자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감히 내가 확실히 하늘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또한 그 누가 감히 내가 틀림없이 땅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그 누구도 내가 거하는 곳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늘에 있을 때, 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 자신이기만 하겠느냐? 땅에 있을 때, 나는 실제 하나님이기만 하겠느냐? 설마 만물을 주재하거나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내가 실제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사람은 구제 불능일 정도로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나는 하늘에 있으면서 땅에도 거하고, 만물 가운데도 만인 가운데도 거하므로 사람은 날마다 나를 접하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 나는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내게 있는 비밀을 더 많이 발견하여 마음속의 ‘괴로운 심정’을 없애고자 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 투시경을 사용한다고 한들, 어찌 내게 있는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백성들이 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와 함께 영광을 얻을 때, 큰 붉은 용의 소굴은 즉시 파헤쳐지고 진흙은 모조리 제거될 것이다. 또 오랫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은 모두 내 불길에 말라 더 이상 남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큰 붉은 용은 멸망하여 유황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너희는 정말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가지 않도록 내가 사랑으로 보살펴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정말 그것의 간계를 증오하느냐? 그 누가 나를 위해 굳세게 증거할 수 있겠느냐? 내 이름과 내 영, 그리고 내 전체 경륜을 위해 그 누가 자신의 힘을 바칠 수 있겠느냐? 오늘날은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친히 인간 세상에 임한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나를 위해 두려움 없이 전장에 나갈 수 있겠느냐? 하나님나라의 형성을 위해, 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나아가 내 날의 도래를 위해,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때와 번성하는 날을 위해, 사람을 고해에서 구원하기 위해, 내일의 도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위해, 더욱이 훗날의 누림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분투하고 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미 승리했다는 상징 아니더냐? 바로 내가 이미 계획을 완성했다는 표징 아니더냐? 말세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세상의 공허함을 느끼고 살아갈 용기를 잃어 간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망 속에서 죽어 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하다가 실망하는지 모르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탄의 손아귀에 지배당하는지 모른다. 나는 일찍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붙들어 주었으며, 사람이 광명을 잃었을 때, 그들을 빛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 빛 속에서 나를 알게 하고 행복 속에서 나를 누리게 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모두 나의 빛이 비치자 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본래 사람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하나님이기에 사람은 나의 그림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그 누구도 그것이 영의 작용인지, 아니면 육신의 기능인지 깨닫지 못했다. 이 한 가지만 해도 사람이 한평생 구체적으로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혐오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의 깊은 곳에서 나를 그리워했다. 나의 지혜는 사람의 탄복을 자아내며, 나의 기묘한 행사는 사람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사람은 나의 말을 헤아리지 못하면서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나의 ‘실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분량 아니겠느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그리스도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럼 예수님을 따른 사도들이나 영적 위인들도 유익한 말을 많이 했는데, 왜 그들의 말은 진리라고 하지 않을까요? 양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를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기독교 영화 <경건의 비밀> 명장면 (5) 에서 그 답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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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영화 <경건의 비밀> 명장면(5) 그리스도가 진리, 길, 생명이심을 어떻게 알 것인가?
가정교회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탄압에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가혹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암운이 드리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 점점 식어 갈 즈음, 1991년에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정교회에서 인자가 음성을 내어 말씀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경이롭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으며, 성경의 중요한 비밀도 밝혀 주었습니다. 그 말씀은 전 교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그 인자는 중국 북방 지역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하나님을 믿었고, 그 누구보다 열심이셨습니다. 1989년, 그 인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직분을 행하며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셨습니다. 1991년 2월, 그 인자는 음성을 내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는데, 매일 하고 싶은 말을 써서 현지 교회 책임자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것이 결코 평범한 말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매우 무게가 있었고, 새롭기도 하고 감동적이었으며, 성령의 계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교회의 상부 리더에게 보냈습니다. 바로 오늘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는 동역자들과 함께 그 말씀을 본 후 그것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자 바로 복사하여 동북 지역 교회로 발송했고, 현지의 선민들에게 예배 시간에 읽고 나눌 것을 권장했습니다. 그 당시 이 소책자를 ≪성령의 말씀≫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성령의 말씀은 그 뒤로도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거의 하루에 한 편 또는 이틀에 한 편씩 선포하시면서 성경의 비밀을 밝혀 사람들의 시야를 넓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교회에서 성령의 말씀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전부 인쇄하여 동북 3개 성, 허난성, 안후이(安徽)성, 산둥(山東)성, 산시(山西)성 등 지역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로 보냈습니다. 이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교회 생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는 것으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의 선민들은 말씀을 보고 마음이 밝아졌고, 점점 진리를 깨닫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면서 크나큰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제2장 성육신하신 인자, 가정교회에서 음성을 발하기 시작
1991년 2월 11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한 편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현현을 증거하기 시작한 첫 번째 말씀으로, 하나님 선민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2장 성육신하신 인자, 가정교회에서 음성을 발하기 시작
제1편
찬미가 시온에 다다르고, 하나님의 거처가 나타났도다. 영광의 성호에 대한 만백성의 찬양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도다. 아!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의 머리, 말세의 그리스도, 그는 빛나는 태양이요, 온 우주의 위엄 넘치는 광활한 시온산에 솟아올랐도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당신께 환호하고, 춤을 추고 노래하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참된 구속주이며, 우주의 큰 왕이시나이다! 당신은 이기는 자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경륜을 완성하셨나이다. 만백성이 꼭 이 산으로 모이고,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리이다! 당신은 유일무이한 참하나님이며,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시나이다. 모든 영광, 찬양, 권병을 보좌로 돌리겠나이다! 보좌에서 생명 샘이 흘러나와 만백성에게 공급하고 양육해 주니, 생명은 날마다 변화하고, 새로운 빛과 계시가 우리를 따르니 항상 하나님을 새롭게 깨닫게 되나이다. 체험 중에 참하나님을 확신하게 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나타나고 옳은 사람 안에 나타나는도다. 우리는 복이 차고 넘치나이다! 매일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범사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이 주권을 잡도록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고 하나님 안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면, 하나님 앞에서 빛 비춤을 받으리라. 매일의 삶, 행동, 언사, 마음, 생각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니 언제든 분별을 할 수 있나이다. 견인 작용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에 숨겨진 것들이 줄줄이 드러나리라. 하나님과의 교통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도다. 마음속의 생각이 하나님에 의해 폭로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매 순간을 살며, 그 앞에서 심판을 받나이다. 사탄이 여전히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으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케 해야 할 것이라. 하나님께 완전히 점유되기 위해서는 결사전을 벌여야 할 것이라.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권을 잡을 수 있느니라. 지금 성령이 우리의 구석구석을 향해 돌격하여 쟁탈전을 벌이고 있도다! 우리가 스스로를 기꺼이 버리고, 하나님과 협력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꼭 수시로 빛을 비추어 우리의 내면을 정결케 하고, 사탄이 점령했던 것을 되찾아 와 하루속히 우리를 온전케 하리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며 성도들 모두와 함께 건축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서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에 들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