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menu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플랫폼배경사진 출처: https://www.holyspiritspeaks.org/special-topic/kingdom-has-descended-on-the-world/copyright_en.html
레이블이 예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예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7/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지, 자기 기분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말씀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을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6/2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지, 자기 기분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말씀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을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발췌문 21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9)








6/2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146)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에게 추구의 기준과 목표가 있어야 하고, 참도를 어떻게 구하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과연 그것이 참도인지, 하나님의 사역인지를 가늠할 줄도 알아야 한다. 참도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그 도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의 선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방면의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본질은 사실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믿는 이유도 그 육신이 하나님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믿는 것은 역시 영을 믿는 것이다. 영과 육신이 서로 구별되긴 하지만, 그 육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그러므로 참도를 구별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으로는 그 도에 진리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리란 정상적인 인성이 지닌 생명 성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모든 정상적인 인성(이성,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도를 통해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적인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 그 진리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이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사람은 정상이 되고, 사람의 인성과 이성이 온전해지며, 사람의 육체적 생활과 영 생활이 질서를 갖추고, 사람의 희로애락이 정상이 된다. 이것들이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내용 중 한 가지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사역과 진리의 체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갈수록 가깝게 하는지를 봐야 한다. 이것으로 참도인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도가 초자연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인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갖춘다면 그 도가 참도인지 확신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이 말의 의미는 너희가 이후에 체험하는 과정에서 다른 도를 받아들이라는 것도 아니고, 이후에 또 새 시대의 사역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도 아니라 너희에게 오늘날의 도가 참도임을 확신시켜 주려는 것이다. 너희가 오늘날의 사역을 꿰뚫어 보지 못하여 반신반의하지 않도록 말이다. 심지어 많은 이들은 확신하였음에도 여전히 흐리멍덩하게 따르고 있다. 그런 확신은 원칙이 없는 것이고, 이런 자들은 조만간 도태될 것이다. 아주 열성적으로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확신은 3할에 불과하고 의심은 5할이나 된다. 이것이 바로 토대가 없는 모습이다. 너희는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토대가 지나치게 얕은 탓에 분별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나님은 반복되는 사역, 비현실적인 사역은 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에게 파격적인 요구도 하지 않고, 사람의 이성 범위를 벗어나는 사역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의 범위 내에 있고, 정상 인성의 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정상적 필요에 따라 사역한다.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람은 물론 인성도 갈수록 정상이 되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과 사람의 본질에 대해 갈수록 인식이 생기고, 갈수록 진리를 사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명은 갈수록 더 성장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은 갈수록 더 변화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본래의 뜻이다. 만일 그 도가 사람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의 성품도 변화시키지 못하며, 더욱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하지 못하며, 심지어 인성이 점점 나빠지고 이성도 점점 비정상이 되게 한다면, 그것은 참도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거나 낡은 도일 것이다. 어쨌든 성령의 현실 역사는 아니다. 너희는 그토록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는 원칙과 참도를 찾는 원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이 일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말에 맞장구만 친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참도를 찾는 사람이라고 하겠느냐? 이런 자들이 또 어떻게 참도를 찾을 수 있겠느냐? 네가 중요한 몇 가지만 파악한다면, 어쨌든 미혹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분별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것이며, 사람이 체험하는 과정에 갖춰야 할 것이다. 사람이 여태껏 따르면서도 조금도 분별할 줄 모르고, 인성과 이성이 여전히 제자리라면, 이는 사람이 너무 어리석은 것이고, 그 추구가 틀리고 잘못된 것이다. 너는 여태껏 추구하였지만 조금도 분별할 줄 모른다. 네가 참도를 찾았다고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너는 얻었느냐? 분별이 조금이라도 향상되었느냐? 참도의 본질은 무엇이냐? 너는 참도 안에 있으면서도 참도를 얻지 못했고, 진리도 전혀 얻지 못했다. 다시 말해 너는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한 것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패괴 성품의 변화가 없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추구한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다. 너희가 지금까지 따른 이상 더는 의심하지 말고 자신이 가는 길이 바른길임을 확신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사소한 일 때문에 의심하고, 사소한 일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는 자, 흐리멍덩하게 따르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없다. 복받기만을 바라고 막연한 것만 추구하는 자들에게 권고하겠다.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고 하루빨리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라!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 📕 📔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성육신의 비밀 4>(발췌문 11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4)







6/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4)


하나님은 전체 경륜의 사역을 모두 친히 행한다. 세상을 창조한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온 인류를 구속한 두 번째 단계도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끝을 맺는 사역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더더욱 그가 친히 해야 한다. 모든 인류를 속량하고, 정복하고, 얻고, 온전케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친히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직접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신분을 대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를 얻기 위해, 또 인류가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모든 경륜과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은 그저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인식은 아무런 가치도, 의의도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얄팍한 인식이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해야만 이 사역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한다면 그를 대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설사 한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첫 번째 성육신은 속량을 위한 것, 즉 인류를 죄에서 속량해 정결케 하고 죄를 사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복 사역 역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행한다. 이 단계에서 하는 것이 예언뿐이라면 예언가, 그러니까 은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서 시켜도 그만이다. 예언만 한다면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사역,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사역이라면 사람이 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하고, 성육신하여 친히 행해야 한다. 말씀의 시대에 예언만 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할 필요 없이 이사야나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 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 단계의 사역은 예언에 그치지 않으며, 말씀 사역으로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사역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이 직접 해야 한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일부 사역만을 행한 후, 선지자를 통해 약간의 말씀과 사역을 했다. 사람이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가는 하나님을 대신해 예언을 말하고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역은 직접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의 죄와 무관했으며, 사람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여호와는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직접 모세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그들이 하나님이 하려는 말씀과 행하려는 일을 하게 하고,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게 했다. 첫 단계 사역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으로, 사탄과의 싸움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탄과 본격적으로 싸운 것은 첫 번째 성육신 때부터 지금까지이다. 첫 번째 싸움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탄을 물리치고 첫 번째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람의 생명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사람을 되찾아 오는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여호와가 처음에 행한 사역은 그저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인도한 것으로, 사역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그 어떤 싸움이나 큰 사역과도 관계가 없었지만, 훗날 싸울 사역을 위한 기반 다지기였다. 두 번째 단계인 은혜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했고, 반드시 직접 성육신해야 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육신한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직접 사탄과 대결하는 사역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그 사역을 대신하여 하게 하면 사탄과 마주했을 때 사탄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하나님이고, 또한 사람의 생명이자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신분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사역하여 사탄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사람에게 맡겨 직접 말씀을 선포하라고 해도 사람은 하지 못한다. 예언만으로는 사람을 정복할 수 없으므로 성육신을 통해 사탄을 물리치고 철저히 굴복시켜야 한다.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고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후 얻으면, 이 단계 사역은 끝이 난다. 즉, 대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경영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시대를 이끄는 사역과 새로운 사역을 여는 일은 더더욱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사람에게 계시와 예언을 주는 것 등은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 사탄과 직접 싸우는 사역은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다. 사탄과 싸우지 않은 첫 단계 사역에서 여호와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을 전했고, 또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사탄과 싸우는 두 번째 단계 사역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 사역했다. 사탄과의 싸움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성육신과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에게 시킬 수 없으며, 사람은 싸워 봤자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아직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힘이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 중립적인 존재로, 사탄 쪽으로 기울면 사탄에 속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면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니 이런 싸움의 사역을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그랬다면 진작에 목숨을 잃지 않았겠느냐? 이미 오래전에 황천으로 가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없기에 사탄과 싸우면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일부 사역을 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을 구슬릴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싸우기도 전에 사탄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다. 사람은 그것을 기초로 따르고 순종해야만 하나님께 얻어져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 그리고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한계가 있기에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을 인도하지 못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의 총명과 지혜가 사탄의 계략을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6)







4/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사람에게 생명 주기 위한 말세 사역>


마지막 사역은 말씀으로 결실을 맺는다
사람은 말씀으로 깊은 비밀을 많이 깨닫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행한 사역을 깨닫는다
또 말씀으로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
지금까지 사람이 열지 못했던 비밀을 깨닫고
지금까지 선지자와 사도들이 행한 일과 그 원칙을 알게 된다
사람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깨달았고
사람의 거역과 대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본질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으로 영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성육신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깨닫고 그의 모든 성품을 깨닫게 되었다
네가 인식한 하나님의 6천 년 경륜도 말씀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지난날 자신에게 어떤 견해가 있었는지 알고
그것을 내려놓게 된 것도 말씀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예수의 그 단계 사역에서는 이적을 나타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도 말씀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오늘날 하신 말씀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했던 사역을 넘어섰다
선지자가 했던 예언일지라도 이런 효과를 볼 수 없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3/2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중)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중)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7. 『지금의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그만큼만 말씀했고, 성경에 있는 그만큼의 말들은 모두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신구약 66권은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이해 방식으로, 사실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하면, 대부분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에는 사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쓴 서신은 사람이 한 일이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며, 그가 여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권면과 격려이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선지자도 아니고, 요한이 본 환상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들은 당시의 에베소, 빌라델비아, 갈라디아 등의 여러 교회에 써 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바울 서신은 바울이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이지, 성령이 묵시한 것도, 성령이 직접 한 말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서신은 다만 바울이 사역하는 기간에 여러 교회에 권면과 위로와 격려를 해 주기 위한 것이고, 당시에 그가 했던 많은 사역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써 준 것이고, 또한 당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권유를 듣고 예수의 도를 행하라는 것이기도 했다. 바울은 당시의 교회든, 그 이후의 교회든 모두 그가 써 준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했던 말들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당시 교회의 상황에 대해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권면하며, 믿음을 분발시켰을 뿐이다. 바울은 단지 설교하거나 일깨워 주고 권면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감과 연관시키며 말했고, 그런 말로 그들을 붙들어 주었던 것이다. 당시 교회들의 사도로 사역한 바울은 예수가 쓴 일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에 대해 책임지고, 교회의 사역을 담당하며, 형제자매들의 상태를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을 한 것은 모두 옳았다. 하지만 바울의 말은 성령의 말씀도, 하나님도 대변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만일 사람의 서신과 체험에 대한 기록을 성령이 여러 교회들에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법이고, 크나큰 모독이다! 특히 바울이 교회들에 보낸 서신이 그렇다. 바울은 그 당시 교회들의 상황에 근거해,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예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권유하고, 그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바울 본인이 져야 할 책임감이자 성령이 그에게 더해 준 책임감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바울은 당시에 여러 교회들을 이끄는 사도였으므로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 권면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바울의 신분은 사역하는 사도이고 보냄을 받은 사도일 뿐 선지자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대표해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했던 말은 성령의 말씀도 아니거니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바울은 피조물일 뿐,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의 신분과 같지 않다. 예수의 신분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그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바울을 어떻게 예수와 동등하게 볼 수 있겠느냐?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간주하고 또한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력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이 완전히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사람의 말과 사람의 서신 기록을 ‘성서’와 ‘천서(天書)’로 삼아 엎드릴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단 말이냐? 이러한데 바울이 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 자신의 생각이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또한 바울 자신의 뜻이 섞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바울은 자신의 체험과 생명 정도에 따라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와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의 견해는 서로 같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견해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냐? 그 누구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교회에 대해 책임감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는 그들의 분량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들의 공급과 붙들어 줌을 의미하고, 교회에 대한 그들의 책임감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사역하는 면만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네가 바울의 서신을 성령의 말씀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릇된 것이고 모독하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다른 서신은 근대 영적 인물의 전기에 해당된다. 이 서신들은 워치만 니의 책이나 로렌스의 체험 등 그들이 쓴 영적 전기와 동일시할 수 있다. 근대 인물들이 쓴 책은 단지 신약 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질은 같다. 모두 성령에게 한동안 사용되었던 인물들로,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8. 『신약 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의 첫머리에서는 예수를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다윗의 자손, 그리고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뒤에 가서는 또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낳았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도, 아브라함의 후손도, 다윗의 자손도 아니라는 말이지만, 족보의 기록은 예수와 요셉을 억지로 엮어 놓았다. 족보의 뒷부분에는 예수가 강생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족보에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족보는 예수를 위해 쓴 것으로, 요셉 세대까지 42대 인물을 기록한 후에 바로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데, 그러면 앞뒤가 모순되지 않느냐?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은 분명 요셉 가문의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요셉의 족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의 족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그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마태가 쓴 족보 같은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냐? 그것은 아주 황당한 말이다! 이러면 너는 그 책이 온전히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땅에 계실 경우 족보가 필요하므로 예수를 아브라함 가문의 제42대 인물 자리에 놓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 황당한 생각이다! 하나님이 땅에 왔다고 해서 어찌 족보가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께 족보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피조물 가운데에 나열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땅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육신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본질과는 다르다. 그런데 네가 어찌 하나님을 피조물과 같은 부류로 취급할 수 있느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당시 여호와의 사역 대상이었던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여호와에게 인정받은 충성스러운 종일 뿐이었는데 그가 어찌 예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9. 『오늘날, 너희 중 누가 감히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어째서 에스라의 예언서와 옛 선지자들이 쓴 서적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너희는 어째서 감히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냐? 너에게 성령의 역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느냐? 이 밖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많은 이야기를 없애 버렸다. 네가 만약 과거에 기록된 그 책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일부 책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전부 남겨 교회들에게 보내어 형제자매들이 보게 해야지, 사람의 생각을 더해 마음대로 취사선택해선 안 된다. 그래야 옳다. 바울, 요한 등 그들의 체험에 개인의 견해가 섞여 있다고 해서 그들의 체험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본 것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그들은 당시 현실적으로 체험한 것을 기초로 인식했다. 그것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4복음서가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어째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사람이 당시 예수의 사역에 대해 한 말이 다 다른 것이냐? 못 믿겠다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이야기를 보아라. 기록마다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사실이 다 다르고, 각각 ‘특색’이 있다. 식견이 넓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도 사람인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나 요한의 말에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다면, 그분이 하는 말씀에는 사람의 생각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단 말입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눈멀고 식견이 없는 자들이다! 4복음서에서 그들이 예수가 마친 일, 한 말씀에 대해 기록한 것을 잘 보아라. 그야말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며, 각자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약 저자가 쓴 것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전부 같고 일관되어야지, 어째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중에서

10.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역사책에 속한다. 그 안에는 많은 옛 선지자들의 예언과 여호와가 당시에 사역했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책을 ‘성스럽다’고 여긴다(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임). 물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칭한 이유는 단지 피조물에게 창조주를 경모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천서(天書)’라고까지 했다. 사실, 그 책은 사람의 기록일 뿐이지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지도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다.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칭한 것은 사람들이 그 책을 높여 부르는 것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함께 논의한 후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뜻일 뿐이다. 그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도,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 사도, 예언자들의 기록을 후세 사람들이 수집하여 편찬한,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거룩한 고서(古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 속에 측량하기 어려운 수많은 비밀이 있어 후세들이 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책을 더욱더 ‘천서’라고 여겼다. 거기에다 신약 성경의 4복음서와 계시록까지 더해지니 그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떤 책보다 각별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감히 그 ‘천서’를 분석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 책이 너무나 ‘신성’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4> 중에서

11. 『너희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이는 너무나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너는 성경을 볼 필요가 없다. 성경에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고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역사책에 속한다. 네가 구약 성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가 먹고 마시거나,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은혜시대에 가져다가 실행한다면, 예수는 너를 버리고 정죄할 것이다.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틀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지금 네가 신약과 구약을 한데 묶어 먹고 마시며 실행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은 너를 정죄할 것이고, 너는 오늘날의 성령 역사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네가 구약도 신약도 모두 먹고 마신다면, 너는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에 속한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당시 성령이 그에게 하는 사역에 따라 유대인들을 인도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도했다. 예수가 행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든 예수는 상관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인도할 때 성경에서 길을 찾지 않았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의 도를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예수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고, 그의 사역과 가르침, 그의 말씀의 권병과 능력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새로운 사역만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구약 성경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 성경을 넘어섰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했던 사역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가 온 이유는 단지 자신의 직분을 다하여 자신이 오기를 갈망하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고, 그의 사역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사역은 성경의 근거 유무를 전혀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구약의 예언들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구약에서 어떻게 말했든, 그것이 자신의 사역과 부합하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어떻게 정죄하든 자신이 행해야 할 사역만 계속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그를 정죄했을지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가 하는 사역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수없이 많았다. 그것은 모두 사람의 불찰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역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또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한단 말이냐? 성경이 크냐, 하나님이 크냐?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하느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구약의 계명과 안식일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니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은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12. 『당시 예수는 말씀하거나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았으며, 성경의 구약 율법의 사역대로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했을 뿐이다. 그는 그가 가져온 사역에 따라 행했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행했으며, 그의 직분에 따라 사역했을 뿐,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일을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각 단계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고자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는 일이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교란하지는 않았으며, 그의 이전 사역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가 하는 사역의 특이점은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도, 예언가도 아니라, ‘실무가’이다. 그는 매우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함으로써 새로운 기원을 열고 새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예수의 사역으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하는 사역으로도 구약의 옛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단지 오늘날 너와 그 ‘오래된 책력’을 펼쳐 보면서 따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사역이 많고, 너희에게 해야 할 말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과 말은 그런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런 사역은 너희에게 그다지 큰 의미도, 가치도 없고, 너희에게 도움이 되거나 너희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새 사역을 할 것이며,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이루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성경에 나오는 옛 선지자들의 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크겠느냐, 옛 선지자들이 크겠느냐? 그렇다면 옛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냐?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중에서

13.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도를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을 봐야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알고 싶다면 신약 성경을 봐야 한다. 그렇다면 너는 말세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늘날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오늘날의 사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라 성경에 미리 ‘기록’해 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따로 중국에서 다시 선민들을 택해 이들에게 사역하며 땅에서의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가 본 적이 없는 길이고,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도이며, 아직까지 한 적이 없는 사역이다. 즉, 하나님의 땅에서의 최신 사역이다. 그러므로 행한 적이 없는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는 현재고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땅에서, 이스라엘 밖에서 더 크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행하였으며, 이미 이스라엘의 범위와 선지자의 예언을 뛰어넘었음을 모르고 있다. 이는 예언에 없는 새로운 사역이고, 이스라엘 밖에서 행하는 더 새로운 사역이며, 사람이 꿰뚫어 볼 수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사역이다. 이런 사역을 어떻게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할 수 있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을 그 누가 하나도 빠짐없이 미리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관례를 깨는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이 사역을 그 누가 오래되어 곰팡내 나는 책에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현시점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사역에도 진입할 수 있다. 너는 지금 왜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왜 성경 밖에 또 다른 사역이 있는지, 왜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구체적인 실행에 대해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 밖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너희가 알아야 할 것들이다. 너는 이전 사역과 새로운 사역의 차이를 알아야 하며, 성경을 보지는 않아도 분석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계속 숭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새로운 사역에 진입하기도, 새롭게 변화하기도 쉽지 않다. 더 높은 도가 있는데 굳이 낮고 시대에 뒤처진 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느냐? 더 새로운 말씀과 사역이 있는데 굳이 케케묵은 역사(歷史)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있느냐? 새로운 말씀이 너에게 공급할 수 있으면 그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옛날의 기록이 너의 배를 불리지 못하고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사역이 아니라 역사(歷史)라는 것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바로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면,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모두 사람에게 추억의 역사(歷史)로 남고, 아무리 참고할 가치가 있을지라도 옛 도에 불과하다. 옛 도는 ‘성서’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역사(歷史)이고, 새로운 도는 ‘성서’에 한 쪽도 기록되지 않아도 현실이다. 이 도가 너를 구원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 추천 동영상: 「족쇄를 풀고 달려라」명장면 (2)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인가?


3/08/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발췌문 2)

매일의 하나님 말씀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발췌문 2)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 영광을 주었다가 거두어 갔다. 또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사람을 동방으로 데려왔으며, 모두에게 ‘빛’을 주어 다시 빛을 만나고, 빛과 사귀고, 더 이상 빛을 찾아다니지 않도록 했다. 나는 빛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빛을 보게 하고 이스라엘에서의 내 영광을 보게 할 것이다. 또 내가 일찍이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왔음을 보게 하고, 뭉게뭉게 떠 있는 흰 구름과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를 보게 할 것이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과 유대인의 ‘선생’과 사람이 간절히 바라 왔던 메시야를 보게 하고, 역대 왕들에게 핍박받았던 나의 전모도 보게 할 것이다. 나는 전 우주의 사역을 행하고,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나의 모든 영광과 모든 행사를 말세의 사람에게 보여 줄 것이다. 또 내 모든 영광의 얼굴을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 온 사람들, 내가 흰 구름 타고 오기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내가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스라엘과 나를 핍박하고 있는 전 인류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로써 내가 이미 영광을 동방으로 옮겨 왔으며, 유대에는 더 이상 영광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할 것이다. 말세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 전체에서 나의 사역을 하고 있다. 동방에서 끊임없이 우레 같은 음성을 발하여 각 나라와 교파를 뒤흔들었으며, 나의 음성으로 사람을 오늘까지 이끌어 왔다. 나는 사람을 나의 음성으로 정복하고, 모두를 이 흐름 속으로 빠지게 하며, 내 앞에 복종시킨다. 이는 내가 이미 온 땅에서 영광을 거두어 동방에서 새롭게 비추었기 때문이다. 누군들 내 영광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누군들 내가 돌아오기를 갈망하지 않겠느냐? 누군들 내가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누군들 나의 사랑스러움을 그리워하지 않겠느냐? 누군들 빛을 따라오지 않겠느냐? 누군들 가나안의 풍요로움을 보지 않겠느냐? 또 누군들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누군들 위대한 능력자를 흠모하지 않겠느냐? 나의 음성은 온 땅에 전해질 것이다. 나는 선민을 향해 더 많은 음성을 발하고, 큰 우레처럼 산천을 뒤흔들 것이다. 나는 온 우주와 인류를 향해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진귀한 보물로 귀히 여긴다. 번개가 동방에서 서방까지 번쩍인 것이다. 사람은 나의 말을 떠나지 못하고 그 뜻을 헤아리지도 못하겠지만, 갓 태어난 아기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내가 돌아온 것을 경축할 것이다. 나는 음성을 발해 모든 사람을 내 앞으로 이끌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인류 가운데 들어가 모든 사람이 내게 와서 예배하게 할 것이다. 나는 영광을 비춤으로써, 또 입으로 말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내 앞에 오게 하여, 번개가 동방에서 나타났고 나 역시 동방의 ‘감람산’에 강림해 땅에 왔음을, 나는 더 이상 ‘유대의 아들’이 아니라 동방의 번개임을 보여 줄 것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부활하였고 또한 사람을 떠났다가 다시 영광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만세 전에 사람들이 경배했던 자이고, 만세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버렸던 ‘아기’이며, 더욱이 영광으로 충만한 이 시대의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사람을 나의 보좌 앞으로 데려와 내 영광의 얼굴과 내 행사를 보여 주고, 내 음성을 들려줄 것이다. 이는 나의 모든 뜻이자 내 계획의 마지막이고 절정이며, 내 경영의 근본 취지이다. 나는 모든 나라가 예배하게 하고, 모든 입이 인정하게 하며, 만인이 신뢰하게 하고, 만민이 복종하게 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동영상 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발췌문 2)

11/11/2019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었다?!>명장면(5) 하나님의 새 이름 –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까?
이 영상을 통해 계시록의 예언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의 ‘새 이름’입니다!
빨리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받으십시요!




10/06/2019

기독교 영화 <문을 두드리다> 명장면(2)주님을 맞이하려면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교계의 많은 신도들은 목사와 장로의 말만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성경에 있고, 성경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리 없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성경의 근거가 있나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나요? 계시록 여러 곳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3장 참고)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다시 오셔서 음성을 발하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서 우리가 성경을 벗어나지 않고 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지 않는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10/05/2019

기독교 영화 <문을 두드리다> 명장면(1)주님을 맞이하려면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라고 하셨고, 계시록 여러 곳에서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3장 참고)라고 예언했습니다. 성령께서 발하신 음성이 바로 주님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주님을 영접함에 있어 크리스천이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동방번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재림하신 예수님, 곧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으로 인해 생겼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 교회는 완전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솔하시고 목양하시는 것이지 절대 어떤 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곧 진리ㆍ길ㆍ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미 나타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사항: 본 영상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제작한 공익 영상입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연기자는 무료로 출연한 것이고 어떤 보수도 받지 않았습니다. 본 영상물은 무료로 배포하실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동의 없이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 혹은 개인은 본 영상을 수정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본편 영화 보기: https://kr.godfootsteps.org/videos/knocking-at-the-door-2.html

7/14/2019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태초에 인류를 창조한 후 이스라엘 사람을 사역할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모든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행하는 사역의 근거지가 되었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율법을 정해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하며,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여호와를 정상적으로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처음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을 인도하고 가르치며 목양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에 대한 상식이었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구원 사역의 첫걸음이며 최초의 구원 사역으로, 사람의 생명 성품 변화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그러므로 최초의 구원 사역부터 육신을 입고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즉, 도구를 통해 사람과 접촉해야 했다. 그리하여 피조물 가운데서 여호와를 대신해 사역하고 말씀을 전할 사람들을 세움으로써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인자와 선지자가 생기게 되었다. ‘인자’란 여호와를 대변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사람을 말하며, 여호와께 ‘인자’라 칭함 받았다. 이 호칭에는 여호와를 대변하여 율법을 반포하는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이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여호와가 보살피고 지키며 여호와의 영이 역사하고 있는 제사장이라는 뜻과 여호와를 직접 섬기는 백성들의 지도자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리고 선지자는 전적으로 열방과 모든 족속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주는 대언자이자 여호와의 사역을 예언하는 사람이다. 인자와 선지자는 모두 여호와의 영이 친히 세운 사람들이자 여호와의 사역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또한 백성들 가운데서 여호와를 직접 대변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단지 여호와가 세웠기에 사역한 것이지, 성령이 친히 성육신해서 사역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똑같이 하나님을 대변하여 사역하고 말씀을 전했다 할지라도, 율법시대의 선지자와 인자들은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은혜시대와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정반대이다. 사람을 구원하고 심판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친히 사역하는 것이므로 선지자와 인자를 다시 세워 그의 사역을 대신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역은 본질과 방식 면에서 실질적인 차이가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을 선지자나 인자의 사역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겉모습을 봐서는 선지자나 인자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더군다나 선지자보다 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사람은 양자 간의 차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기 때문에 사역하고 말하는 것이 똑같아도 그 속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람은 분별력이 너무 부족해 단순한 문제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이렇게 복잡한 문제는 더욱 분별하지 못한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들과 선지자들의 말과 사역은 모두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의 외형이 피조물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사역은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본분은 피조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직분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한다 함은 단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역한다 함은 경영을 하고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사도들이 성령께 쓰임 받고, 많은 선지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사역하고 말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예언이 성육신 하나님이 한 생명의 말씀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그들의 인성이 성육신 하나님보다 훨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기능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이행하는 직분은 경영과 관련된 일로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든, 사역하든, 아니면 이적을 나타내든 간에, 한마디로 말해 그가 행하는 것은 경영 사역 중의 큰 사역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행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어느 단계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이 없다면, 즉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이 없어진다면 피조물의 본분도 없어지게 된다. 하나님이 사역하고 직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고, 창조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의 고유한 본질인 영에게 있어서는 경영을 하는 것이고, 성육신하여 피조물의 외형을 갖춘 하나님께 있어서는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사역을 하든지 모두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그의 경영 범위 내에서, 그의 인도하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7/07/2019

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당시 예수는 말씀하거나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았으며, 성경의 구약 율법의 사역대로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했을 뿐이다. 그는 그가 가져온 사역에 따라 행했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행했으며, 그의 직분에 따라 사역했을 뿐,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일을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각 단계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고자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는 일이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교란하지는 않았으며, 그의 이전 사역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가 하는 사역의 특이점은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도, 예언가도 아니라, ‘실무가’이다. 그는 매우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함으로써 새로운 기원을 열고 새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예수의 사역으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하는 사역으로도 구약의 옛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단지 오늘날 너와 그 ‘오래된 누런 달력’을 펼쳐 보면서 따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사역이 많고, 너희에게 해야 할 말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과 말은 그런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런 사역은 너희에게 그다지 큰 의미도, 가치도 없고, 너희에게 도움이 되거나 너희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새 사역을 할 것이며,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이루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성경에 나오는 옛 선지자들의 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크겠느냐, 옛 선지자들이 크겠느냐? 그렇다면 옛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냐?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말씀 더보기: 
호칭과 신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