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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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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그림전 - 2천 년의 기다림, 주님이 드디어 돌아오셨어요!

2천 년의 기다림, 주님이 드디어 돌아오셨어요!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7)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대대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천 년의 소망, 2천 년의 기다림… 이 세상이 가장 어둡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사악한 세력이 가장 포악하게 날뛸 때, 세계의 동방, 중국에 서광이 비쳤습니다. 1991년, 특별하고도 예사롭지 않은 이 해는 성육신하신 인자,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정교회에 나타나 진리를 선포하시며 사역을 시작하신 해입니다. 이로써 하나님 집에서부터 하는 심판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1년 2월부터 음성을 발하기 시작하시어 2019년까지 말씀 500여 편을 잇따라 선포하셨으며, 총 글자수는 3백여 만 자에 달합니다. 이 말씀들은 대부분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에 수록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교계를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각 종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는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뒤, 모두들 그것이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인정하고 속속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뛸 듯이 기뻐하며 여기저기 소식을 알렸습니다. “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주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성경 계시록의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라는 예언을 완전히 이루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은 점점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전파되고, 증거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한데 모여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완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현과 역사에 의해 탄생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모습을 갖추었도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인한 것이라.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굳게 믿으며 영적 길을 가옵니다. 유일하신 참하나님이 성육신하셨으며, 그는 만유를 다스리시는 우주의 머리이시라. 이는 성령이 인치신 것이요, 증거가 확실한 영원불변의 사실이도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오늘날 당신께서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 주셨나이다. 소경을 눈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문둥병을 고쳐 주셨나이다. 당신께서 하늘 문을 열어 주셔서 우리는 영계의 비밀을 보게 되었나이다. 당신의 거룩한 말씀에 관통되어 사탄이 패괴시킨 인성에서 구원되었나이다. 이는 당신의 크나큰 역사와 긍휼이나이다. 우리가 바로 당신의 증인이나이다!

당신은 오랫동안 묵묵히 계시며 자신을 낮추고 감추셨나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인생의 온갖 고초, 핍박과 환난을 당하셨나이다. 인간 세상의 고통을 맛보고 시대에 버린 바 되셨나이다. 성육신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나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리를 거름 더미에서 구원하사 오른손으로 받쳐 주시고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나이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 안에 만드셨나이다. 당신께서 수고를 마다 않으시고, 당신의 심혈과 대가를 성도들에게 다 쏟으셨나이다. 우리가 바로 당신의 심혈이요, 대가이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자비와 긍휼, 당신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당신의 거룩하심과 겸손하심으로 인해, 만민이 세세토록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하리이다.

오늘날 당신께서 교회들, 즉 빌라델비아 교회를 이루셨사오며, 당신의 6천 년 경륜이 실현되었나이다. 성도들은 당신 앞에 겸허히 순종하며, 영 안이 서로 통하고 서로 사랑하며, 샘의 근원에 연결되나이다. 생명수가 끊임없이 흘러 교회의 모든 더러운 물을 씻어 없애사 당신의 성전을 다시 깨끗게 하셨나이다. 실제의 참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니, 하나님 말씀으로 행하며,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알고,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하리이다. 언제나 당신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성령의 역사에 마음을 기울이고, 당신의 뜻이 우리에게서 막힘없이 이뤄지게 하리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장점을 배워 각자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나이다. 언제나 영적으로 행하면 성령의 빛 비춤과 깨우침이 함께하나이다. 진리를 깨달으면 즉시 실천하며, 새로운 빛을 따르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리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이 권세를 잡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자기 생각, 자기 관념과 견해, 세상의 짐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리이다. 우리 영 안에서 하나님이 왕권을 잡으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초월하게 되며, 세상을 이기며, 영은 자유롭게 날며 해방받았나이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왕이 되신 결과로다. 우리 어찌 춤추며 찬양하지 않겠나이까, 어찌 찬미와 새 노래를 바치지 않겠나이까.

찬미의 방식은 실로 많도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말씀으로 기도하고 교제하며, 묵상하고 되새기고 기도를 올리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도다. 이러한 찬미에는 누림이 있고 기름 부음이 있으며, 찬미하면 능력이 있게 되며, 사명감과 믿음이 생기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게 되나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서로 조화롭게 섬기며 하나가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리이다. 하루빨리 거룩한 영체가 되어 사탄을 짓밟고 사탄의 운명을 끝내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들림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나타났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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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발췌문 105)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창세기 19:1~11)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세기 19:24~25)

소돔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 흔적도 없이 멸망당하다

소돔 성 사람들은 두 사자를 보았을 때, 그들이 거기에 온 이유를 묻는 자가 없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왔는지도 묻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무리 지어 와서 다짜고짜 미친개와 같이, 악한 이리와 같이 그 두 종을 잡으려 하였다. 당시에 일어난 일을 하나님은 다 보고 있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그런 행위와 그런 일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은 이 성을 멸하리라 뜻을 정하였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았으며 기다리지 않았고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의 날이 오면 하나님은 하고자 했던 일을 그대로 행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9장 24절과 25절에서 말씀하신바,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라는 이 두 구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성을 멸하였는지를 말해 주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멸하였는지도 알려 주고 있다. 우선, 성경에는 하나님이 불로 이 성을 태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안의 사람에서부터 땅에서 난 모든 것까지 다 멸할 정도로 불태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내린 불이 이 성을 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안의 사람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함께 멸하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성을 멸한 후, 땅에는 더 이상 생물이 살지 못하였고, 더 이상 생기가 없었으며, 더 이상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고, 정적만 흐르는 공터로 변해 버렸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행이 다시는 있을 수 없었으며, 살육과 피비린내가 다시는 없었다.

하나님은 왜 이 성을 이렇게 완전히 불태웠을까? 너희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류와 만물이 그렇게 멸해지는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을까? 네가 만약 하늘에서 떨어진 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멸망시킨 대상과 그 성이 멸망당한 정도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노한 정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성을 증오할 때는 징벌을 내릴 것이며, 하나님이 어떤 성에 염증을 느낄 때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알 수 있도록 계속 경고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성을 없애고 멸하기로 뜻을 정하였다면,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거스르는 일이 생겼다면 더 이상 징벌이나 경고를 주지 않고 곧바로 멸한다. 그리하여 완전하고 철저히 사라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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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6/2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성육신하신 인자는 하나님 자신>(가사 버전)


1
하나님의 신성이 육신으로 실체화되니 그의 존재는 뚜렷해 보고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인자의 일거일동, 말씀과 사역 통해 하나님의 뜻 생각하고 그의 신성 알 수 있게 되었다
인자는 하나님 뜻과 신성을 인성 통해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드러내사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이 보게 하였다
형상이 있는 하나님을

2
인자는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와 성품을 인간화하고 구체화하였다
인성이나 신성이나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 대변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기간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하고 말씀하였다
인자의 신분으로 인류와 마주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체험하게 하고
그의 낮춤 속 위대함과 신성 알게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인자는 하나님 뜻과 신성을 인성 통해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드러내사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이 보게 하였다
형상이 있는 하나님을
예수의 사역과 말씀할 때 위치는 영계에서의 하나님 참모습과 다소 다르겠지만
본 적 없는 하나님을 진정 대표함은 부인할 수 없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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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련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지 검증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던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베풀어 주고 진리를 알려 주었다. 이 진리들은 사람이 지키고 행해야 할 도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 역정 속에서 실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목적이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것으로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켜야 하고,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결말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어떻게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너희는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잘 모를 테지만, 많은 사람이 이미 관련된 체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 과정을 말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해서 지금껏 모든 사람에게, 즉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버림받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는 시련을 겪었으며, 어떤 사람은 잡혀가거나 고문을 받는 시련을 겪었다. 또 어떤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지위와 재물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쳤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할까? 그는 어떤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네게 시련을 주어 어떤 환경에 처하게 할 때는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 검증하려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제물을 관리하는 본분이 주어졌다고 하자. 그 본분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제물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일은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 아니냐?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너에게 닥치는 일은 다 하나님이 마련한 것이다. 너에게 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실천하는지,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은밀히 관찰하며 지켜볼 것이다. 하나님은 그 결과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결과를 통해 네가 그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렀는지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은 흔히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보려는 것이 무엇이고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대신 이런 생각만 한다. ‘나한테 이런 일이 주어졌으니 소홀히 하지 말고 신중을 기해야지! 이건 하나님의 제물이니까 손을 대선 안 돼.’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고선 책임을 다했다고 여긴다. 이 시련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만족했을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했을까?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제물을 접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신중을 기할 것입니다.) 근접했지만 아주 적절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외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일이 닥쳤을 때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책임이나 사명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이 닥쳤을 때 너는 그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준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일이 닥쳤을 때 네 마음속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일이니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방금 우리는 제물 보관에 대해 말했다. 제물과 관련 있고 또 너의 본분 및 책임과도 관련 있는 일이다. 그 책임은 마땅히 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이 주어지면서 시험도 따르지 않을까? 당연히 시험이 있다! 시험은 어디에서 오느냐? 사탄에게서 비롯되기도 하고 사람의 사악하고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시험이 있다는 것은 이 일이 사람이 굳게 서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굳게 서는 것 역시 너의 책임과 본분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작은 일을 굳이 큰 문제로 여길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일단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너에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다는 이런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천해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이 기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의 실천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치면 가볍게 생각해 그냥 흘려보낸다. 사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가 바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도를 가장 중요한 도로 삼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에 기반해 사람에게 행하는 미묘한 사역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 부주의한 사람이구나! 무엇이 큰일이고 무엇이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는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다. 이 말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네.) 사람이 보기에 매일 닥치는 일 중에 어떤 일은 아주 크고 어떤 일은 아주 작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아주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큰일이 주어져도 사람의 분량이 작고 자질이 부족한 탓에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며, 가치 있는 실제적 인식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일은 무시하면서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검증받고 시련받을 무수히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과 일, 사물과 환경을 소홀히 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고 인도하려는 것을 네가 날마다, 더 나아가 매 순간 저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너를 은밀히 관찰하고 네 마음과 모든 생각을 감찰한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려고 하는지를 본다. 만일 네가 경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한 번도 참답게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는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환경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에게 주어진 사람과 일이 진리나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너에게 이렇게 여러 차례 환경과 시련을 주었음에도 너에게서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에게 수차례의 시련이 주어졌음에도 네 마음이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하나님이 준 시련이나 검증으로도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내려 준 기회를 지속적으로 밀어내고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엄청난 패역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로 슬퍼하겠느냐? (슬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또 크게 놀랄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늘 슬퍼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퍼하지 않으신다고? 그럼 하나님은 언제 슬퍼하시는 거지?’ 어쨌든 하나님은 이 일에서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면 앞서 언급했던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하나님의 검증을 밀어내고 도피하려 할 때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태도만을 취한다. 어떤 태도일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을 증오하고 버린다. ‘증오와 버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할까? ‘증오’에는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있다. ‘버림’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있어서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포기’가 어떤 뜻인지 너희는 다 알고 있겠지? 결론적으로 ‘증오와 버림’이란 하나님이 위에서 말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에게 취하는 마지막 반응이자 태도로, 사람에게 크게 혐오감과 반감을 가져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도를 전혀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최종 결단이다. 이제 너희는 내가 한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느냐?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 알겠느냐? (날마다 다른 환경을 마련해 주시는 방식으로 정하십니다.) ‘다른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고 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하는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 출발점은 하나님이 각기 다른 시간과 지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시련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시련하는 것일까? 사람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서, 네가 듣고 보고 직접 겪는 모든 일에서 네가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고 시련하는 것이다. 이런 시련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을 몇 년간 믿어 왔는데 왜 제게는 시련이 닥치지 않은 걸까요?” 시련이 닥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네가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 시련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도 시련이 몇 번 닥쳤지만 정확한 실천의 길을 몰랐었습니다. 실천했다 하더라도 제가 과연 그 시련 가운데 굳게 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태인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내가 앞서 언급했던 그 말이다. 즉, 네가 행하고 생각하고 드러낸 것들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확정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냐? 말로야 쉽겠지만 실천하기도 쉬울까? (쉽지 않습니다.) 왜 쉽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온전케 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에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모릅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 형벌과 심판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가 있게 됩니다.) 너희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 느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지금 너희는 많은 도를 듣고 진리 실제로 많은 양육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지 이론과 의식상으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실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쉽게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실제로 해내지 못할까? 바로 사람의 본성과 본질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원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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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9)



📖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그들의 생각과 관점은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처세 원칙과 방식을 지키고 있고, 이방인과 같은 생존 법칙과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고 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취미로만 믿을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의지처로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알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들은 관심을 가지려고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늘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는 강렬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으로만 인정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 어떤 실제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현명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방인이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나요? 본분을 이행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다 외적 행실이지 사람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 행실을 보지 않고 사람의 내적 본질만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죠? 하나님은 왜 저렇게 하시죠? 난 이 일을 납득할 수 없고 저 일도 납득할 수 없어요. 이 일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아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이런 말에 나는 이같이 답할 것이다. “너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느냐? 이 일이 너와 상관이 있느냐?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흠잡을 자격이 있느냐? 네가 그를 믿기라도 하느냐? 그가 너의 믿음을 인정하느냐? 너의 믿음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그의 행사가 너와 또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 마음속에서 너의 위치가 어떤지도 모르는데, 네게 하나님과 대화할 자격이 있겠느냐?”

📖 훈계의 말씀

너희는 이 말을 듣고 무척 괴롭지 않으냐? 듣기 싫거나 받아들이기 싫을지라도 이는 다 사실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태도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알아 가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너 자신이다. 너희는 내 말이 듣기 거북하다고 탓하지 말고, 내 말이 너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고 탓하지도 마라. 내가 말하는 것은 다 사실이지 너희에게 타격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든 모두 너희가 올바른 길을 가기 바라고, 너희가 올바른 길에서 빗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그의 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올바른 길에서 엇나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명확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흐리멍덩하지 않고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믿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태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를 너희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네가 따라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는 이미 내게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이미 많은 말을 분명히 해 주었기 때문이다. 네가 자신의 결말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태도로 사람들의 결말을 대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가늠 방식이 있고, 자신만의 요구 기준이 있다. 그 가늠 기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다. 이제 안심이 되겠지?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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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6/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감찰 받아야 하리>(가사 버전)


1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한 일 내놓기 두려운 사람들
네가 그의 육신 속여도 영은 속일 수 없는 법
감찰 견디지 못하는 일은 진리에 어긋난 일이니
내던져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이라
네가 기도를 할 때든 형제자매와 교제할 때든
본분을 이행할 때든 그 앞에 네 맘 내놓으라
역할 다할 땐 네 곁에 그가 계시고
바른 맘으로 그의 사역 위하면 네가 한 일 열납하시리니 진심 다해 역할 수행하라
너의 모든 행동과 마음가짐과 말씀 먹고 마시는 것 평소의 영적 생활을 그 앞에 내놓으라
"네가 협력하여 섬기는 것과 교회 생활도 모두 하나님께 감찰받으라 
그러면 네 생명에 유리하리"

2
사람은 감찰의 과정을 통하여 정결해지니 감찰받을수록 더 정결해지고 
그의 뜻에 합당한 자 되리
그리하여 방종함에 빠져들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네 마음 두고 살 수 있게 되리라
그의 감찰 받을수록 사탄은 수치 느끼고 너는 육을 버릴 수 있으니 그의 감찰 받으라
너의 모든 행동과 마음가짐과 말씀 먹고 마시는 것 평소의 영적 생활을 그 앞에 내놓으라
네가 협력하여 섬기는 것과 교회 생활도 모두 하나님께 감찰받으라 
그러면 네 생명에 유리하리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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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해야 하는가>(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세상에 인류의 마지막 날 가져오는 하나님>(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말씀의 심판은 하나님의 권병 더욱 대변하니라>(가사 버전)







6/2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 시련을 겪은 후의 욥

(욥 42:7~9)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를 귀하게 여기고 우매한 자를 천하게 여긴다
욥기 42장 7절에서 9절에 하나님은 욥을 그의 종이라고 언급했다. 욥에게 사용했던 ‘종’이라는 이 호칭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욥의 비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에 대해 더 높은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을지라도, 이 호칭은 결코 욥이 하나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여기서의 ‘종’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애칭’이다. 하나님이 여러 차례 ‘내 종 욥’이라고 언급한 표현으로부터 하나님이 욥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종’이라는 단어의 함의를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이 말씀 구절에서 ‘종’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먼저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욥을 시련한 후, 욥의 행동과 말을 열납했음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며, 처음으로 욥의 행동과 말이 정확하고 옳았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 친구들의 정확하지 않은 그릇된 논쟁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노한 것이다. 그들도 욥처럼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도,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생활했지만, 욥이 하나님에 대해 그토록 정확한 인식을 가졌던 반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엉뚱하게 추측하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염증을 느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욥의 행동과 말을 열납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실제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 친구들에게 그들이 속죄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우매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번제를 드려 과오를 만회해야만 했던 것이다. 보통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번제는 욥에게 드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번제가 다른 것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욥은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을 증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납되었다. 동시에, 욥의 친구들은 욥이 시험을 받던 기간에 다 드러났다. 그들은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정죄받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다. 이 ‘징벌’이 바로 욥 앞에서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를 풀어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욥의 순전함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을 열납하지 않으나 욥의 행동은 흔쾌히 열납하고 기뻐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고,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의 눈에 천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이 두 측면은 하나님이 두 부류 사람에 대해 내린 정의이고, 이 두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다. 또한 이 두 부류 사람의 값어치와 지위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욥을 종이라 불렀을지라도 이 ‘종’이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에게서 권병을 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과오를 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고 존귀한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종’의 진정한 함의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런 ‘특별한 영광’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종’이라 불리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2가지 완전히 다른 태도는 이 두 부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는 것이다. 반면, 우매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날 수 없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며, 늘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하나님의 정죄를 받으며, 하나님께 천하게 보이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다

욥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 욥의 기도에 하나님은 그들의 우매함대로 그들에게 갚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들을 벌하지 않고 그들에게 어떤 응징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종인 욥이 그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욥의 기도를 열납했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한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한 사람을 축복할 때 그에게 많은 것을 내려 주는데, 그것은 물질적인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또 그에게 권병을 주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자격이 있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그 몇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고 따지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욥에게 준 권병이다. ‘욥의 기도로 타인이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 이런 방식으로 그 우매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엘리바스 등 친구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징벌이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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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7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14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은 사람을 새 시대로 데려가셨네>(가사 버전)


하나님 사역은 전 우주를 이끄는 것 번개는 동방에서 서방까지 번쩍이네

1
하나님이 이방에서 사역 펼치시고 그의 영광 우주 아래 번쩍이네
별처럼 흩어진 사람들에게 하나님 뜻이 깃들어 있고
모두가 그의 계획대로 맡겨진 일을 하네
이제 하나님은 새 시대로 들어가셨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 펼쳐 더 많은 새사람을 새 시대로 데려가고
도태시킬 더 많은 사람들 버리셨네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2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신 후
사람이 그를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계획의 다른 부분 사역 시작하셨네
하나님이 우주 전체 바라보니 마침 사역하기 좋은 때이기에
곳곳을 분주히 다니며 사람에게 새 사역 행하시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 펼쳐 더 많은 새사람을 새 시대로 데려가고 도태시킬
더 많은 사람들 버리셨네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3
하나님은 큰 붉은 용 나라에서 사람을 바람에 흔들리게 하는 측량할 수 없는 사역 하셨네
그 바람에 많은 이가 조용히 날아가 버리네 (날아가 버리네)
이는 하나님이 깨끗이 날려 보내시려는 ‘키질’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바람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 펼쳐 더 많은 새사람을 새 시대로 데려가고
도태시킬 더 많은 사람들 버리셨네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이것은 새 시대, 이것은 새 시대 이것은 새 시대이기 때문이라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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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온 우주 위아래에서 새 사역을 한 하나님>(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하나님나라의 왕권 잡은 하나님>(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을 알아야만 그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날 수 있으리>(가사 버전)








6/1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4)


하나님이 하는 말씀과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다르다. 시대가 달라지면 하나님이 하는 말씀도 달라진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고, 같은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며, 지나간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또한, 그는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기에 날마다 새 말씀을 한다. 너는 오늘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책임이자 본분이다. 실행을 할 때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빛과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말씀하면서 자신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낸다. 영의 관점에서 말씀하든, 사람의 관점에서 말씀하든, 또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말씀하든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그가 사람의 관점에서 말씀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말씀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관념이 생기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항상 같은 관점에서만 말씀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규정하도록 하나님이 놔두겠느냐? 그가 어떤 관점에서 말씀하든 거기에는 그의 목적이 있다. 만일 하나님이 늘 영의 관점에서만 말씀을 한다면 네가 접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는 때때로 제삼자의 관점에서 말씀하고 공급함으로써 네가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것은 다 적합하다. 어쨌든 모두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니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하나님이라면, 어떤 관점에서 말씀하든 여전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어떻게 사역하든 그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했어도 하나님은 그가 주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본질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사역 방식을 통해 성과를 내고, 사람이 그를 더 잘 알게 한다. 그의 사역 방식은 하나하나 다 사람이 그를 알아 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역하든 그 목적은 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 있다. 어떨 때는 한 가지 사역 방식이 오랜 기간 계속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람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니 의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역 절차이므로 너희 모두 순종해야 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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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6)


하나님의 본질은 그 자체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권병에서 나온 모든 것에 순종할 수도 있다. 영의 사역과 육신의 사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에 대한 권병을 지니고, 하나님의 본질이 있는 육신 역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고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그의 권병에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고, 이를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사역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같은 뜻을 이루려 하며, 같은 사역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이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는 하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발현이자 모든 사랑의 발현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해져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며 거역하는 일은 더더욱 저지르지 않는다.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는 똑같이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본질만 있을 뿐 하나님의 본질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존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고, 하나님의 경영을 자신의 당연한 본분으로 삼아 이행할 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공존할 수 없으므로 사탄의 속성을 가진 자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앞날을 위함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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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발췌문 7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5)







6/1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발췌문 28)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열고, 말씀으로 사역의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이 시대의 사역을 행한다. 이것이 말씀 시대에 하나님이 사역하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각기 다른 위치에서 말씀함으로써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진정으로 보게 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을 보게 한다.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며 도태시키기 위한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 시대에 말씀으로 사역하는 진정한 함의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알고, 사람의 본질을 알며,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 시대에 행하려는 모든 사역을 이루는 한편,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고 사람에게 시련을 준다. 사람은 말씀을 보고 들었기에 말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 나아가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게 된 것이다. ‘말씀’이라는 단어는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천지를 진동시키고, 사람의 마음과 고정 관념, 그리고 옛 성품을 변화시켰으며, 온 세상의 낡은 면모를 변화시켰다. 지금까지 이렇게 사역하고 말씀하며 사람을 구원한 분은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밖에 없다. 이로부터 사람은 말씀의 인도 아래에서 살고, 말씀의 양육과 공급으로 살게 되었다. 또한 말씀의 세계에서 살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러한 말씀과 사역은 다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옛 창조 세계의 원래 모습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말씀으로 온 우주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구원하며, 마지막에는 말씀으로 옛 세상을 끝낸다. 이렇게 해야 전체 경륜의 모든 부분이 완성된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역하고, 말씀으로 사역의 성과를 거둔다. 이적이나 기사를 나타내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만 사역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양분을 얻고 공급을 받으며, 인식을 얻고 진실한 체험을 하게 된다. 말씀 시대의 사람은 육체적 고통도 겪지 않고 풍성한 하나님 말씀을 누리기만 하면 되니 참으로 크나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찾을 필요도, 뛰어다닐 필요도 없이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현현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공급을 받고, 그가 친히 행하는 사역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역대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이고, 얻을 수 없었던 축복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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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6)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대가를 치르고 외적 행위가 아주 좋아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 행위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고 확정할 수 있느냐?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흔히 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을 가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있다고 여기느냐? 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가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보았을 때 영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사람,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에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말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들의 일을 하는 본질과 원칙,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인성 본질을 전혀 분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탄복하고 우러러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숭상하는 우상,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사람, 참으로 좋은 결말과 좋은 종착지가 있을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런 ‘생각’은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냐?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이냐? 이 일로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먼저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에서 언급한 사람의 관점과 실행법, 사람이 스스로 취한 실행 원칙,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에 중시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요구와 무관하다.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이 깊든 얕든, 글귀의 이치이든 실제이든,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사람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름길로 가면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고 알고 있는 좋은 행위와 방법을 종합해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직접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인위적인 좋은 행위로 진리 실행을 대체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항하는 밑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밑천이 생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서슴없이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고 자신의 마음속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다. 사람에게 이런 미련한 행위와 우매한 사고방식, 혹은 단편적인 사고방식과 실행법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오늘 알려 주겠다. 그 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에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혐오하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무엇을 버리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람에게 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안다면, 사람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멋대로 다른 사람을 숭상할 수 있겠느냐? 또 일반 사람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사람의 견해는 다소 이성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괴된 사람을 함부로 자신의 우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 제멋대로 몇 가지 간단한 규례나 원칙을 지키는 것을 진리 실행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6)


3단계 사역은 전체 경영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이 모두 3단계 사역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는 방식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도 모르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다양한 방식과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모른다. 3단계 사역은 인류 구원 사역을 오롯이 나타내므로 3단계 사역을 모르면 성령이 역사하는 다양한 방식과 원칙도 알 수 없다. 한 단계 사역에서 남겨진 규례만을 고수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규례에 국한하는 자들이자 막연한 신앙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만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구원의 전 과정을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얻은 증거이자 하나님이 승리한 증거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현이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의 사역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 알 뿐이다. 그나마 알고 있는 그 한 단계도 사람의 관념 속에서 규례로 변질되어 하나님을 규정하기 쉽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체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까지 가득 뒤섞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 지혜와 사역의 원칙을 유한한 범위에 단단히 국한시킨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 번 그리한 것은 영원히 그러할 것이며, 영세까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3단계 사역을 알고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정확하고 전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최소한 하나님을 이스라엘인의 하나님이나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단계 사역으로만 하나님을 안다면, 그런 앎은 그야말로 백사장의 모래 한 알과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원로 종교가들이 왜 하나님을 무참히 십자가에 못 박았겠느냐? 하나님을 한 범주 안에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냐?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지식과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했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은 체험이 얄팍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성령의 징계를 등한시한다. 또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낡은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스스로 학식이 높다고 믿으며 온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자는 모두 성령께 혐오받아 버림받는 자이자 새 시대에 도태되는 자임을 어찌 알지 못한단 말이냐?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얄팍한 지식으로 경망을 떠는 소인배들 아니냐? 얼마 되지도 않는 성경 지식으로 세상의 ‘학술계’를 휘어잡으려 하고, 겨우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이치로 성령의 역사를 돌려세우려 하고 자기 생각대로 주무르려는 야심을 품으며, 좁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6천 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다 꿰뚫어 보려고 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이성이 있다고 하겠느냐! 사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을 쉽사리 평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을 좀 말할 뿐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분수를 모르며, 또한 하나님의 어떠함에 대해 실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론만 멋대로 떠벌릴 뿐이다. 이런 사람은 가장 무가치한 자이다. 성령의 역사를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모두 경박한 자들이다! 이들은 성령의 새 역사를 마주하고도 신중하게 대하기는커녕 함부로 지껄이고 멋대로 평가하며, 자기 성미대로 성령 역사의 정확성을 부인하고, 모욕적인 말과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오만불손한 자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알지 못하고, 천성이 거만하며 방자한 사람이 아니냐? 그런 자는 언젠가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용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그런 악당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사함 받지 못할, 영원히 지옥에 멸할 대상이다. 그 오만하고 방종한 자들은 또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행정을 더 쉽게 거스른다. 천성적으로 방종하고 복종할 줄 모르는 교만한 자들은 모두 그런 길을 가지 않더냐? 모두가 이렇게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을 끊임없이 대적하지 않더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5)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3)








6/0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1)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해서부터 인류와 접하기 시작했고, 인류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으며, 인류에게 자신의 성품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즉, 하나님은 인류와 접하면서부터 인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소유와 어떠함과 본질을 공개한 것이다. 과거의 사람이나 오늘날의 사람이 볼 수 있든 없든,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요컨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자신의 성품과 본질을 나타낸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이 인류와 접하고 사역하면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고, 표출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사람에게 뭔가를 숨기거나 감춘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내보였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은 인류가 그를 알고 그의 성품과 본질을 이해하길 바라지, 인류가 그의 성품과 본질을 영원한 비밀로 삼거나 하나님을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로 여기길 바라지 않는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인류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포하는 말씀과 나타내는 성품은 그의 뜻을 대변하고,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접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성품을 나타냈든지, 또 사람이 본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과 본질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다. 인류가 얼마나 느끼고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깨달을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다 하나님의 뜻, 즉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요구하였는데, 이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요구는 하나님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으냐?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어떤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이 있는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할 때 나타낸다. 거기에는 그 어떤 거짓이나 위장도, 숨김이나 포장도 없다. 그런데도 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늘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냐? 왜 사람은 늘 하나님의 뜻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나타내고 보여 주는 것이 다 하나님 자신의 소유와 어떠함이고 다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성품의 구석구석 면면인데, 왜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냐? 왜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냐?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창세 이래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러니까 막 창조한 사람에게 무엇을 하든, 사람은 그저 하나님을 동반자이자 의지할 대상으로 삼았을 뿐, 하나님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즉,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사람에게 ‘동반자’로 보이는 이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라는 사실 역시 알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 당시의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천지 만물이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으며, 하나님이 어디서 왔는지는커녕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몰랐다. 물론 하나님도 그 당시에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행한 일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인류가 창조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 사역의 준비 단계부터 사람에게 일부 사역을 했으며, 사람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제사 드리는 법,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제야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간단한 개념이 생겼고,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하나님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 많이 알고, 얼마만큼 깊게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 절차에 맞춰서 사역의 진행 상황에 따라 사람에게 다양한 요구를 한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아주 진실하지 않으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으냐? 그는 인류가 창조된 초기에는 사람에게 정복 사역을 하지 않았고, 온전케 하는 사역도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는 아주 낮았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심지어 그를 거스르는 일을 해도 그는 모두 용서하고, 따져 묻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사람에게 어떤 요구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때의 요구 기준이 아주 낮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 위대하지 않다거나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이 허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을 알려면 길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발걸음을 따르고, 하나님이 인류에게 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과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된 다음에도 하나님의 참모습이 인류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겠느냐? 사람은 그러지 않을 것이며, 그럴 엄두를 내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됐다면 그것은 이미 진정한 하나님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참모습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결과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은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 그에 따라 하나님은 무지개를 증거로 삼아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운 후, 자신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땅에서 자신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점점 더 간절히 원했다. 특히, 땅에서 흑암 세력과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증거할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을 얻기 원했다. 그러한 한 무리의 사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바라던 것이자 창세 이래 줄곧 기대해 마지않던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든 사람과 언약을 세우든,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계획과 소원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 창세전부터 오래도록 바라던 것은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 즉 그의 성품을 알고, 그의 뜻을 이해하고, 그를 경배할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을 얻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그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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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3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9)







6/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8)



하나님 자신이 행한 사역은 사람이 알아야 할 이상(異象)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 경영의 전부이자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상이다. 사람이 이 가장 큰 이상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아 가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어려우며, 또한 이 길을 간다 할지라도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사람에게 이상이 없다면 오늘날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상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지켜 주었고, 이상은 사람에게 최대의 보호막이 되었다. 너희는 앞으로도 더욱 깊이 알아 가야 한다. 3단계 사역에 담긴 하나님의 모든 뜻과 그의 지혜로운 사역의 본질을 알아야만 그것이 너희의 진실한 분량이 된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앞 두 단계 사역과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 사역만으로는 구원 사역을 전부 완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으로 사람을 철저히 구원할 수 있다 할지라도, 앞 두 단계의 사역 없이 마지막 단계 사역만으로 인류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단계 사역 중 어느 단계의 사역도 단 하나만 가져와서 온 인류가 유일하게 알아야 할 이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구원 사역은 총 3단계로 이루어진 사역이지, 그중의 어느 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이 하루라도 완성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경영은 절대로 끝날 수 없다. 하나님의 어떠함과 성품, 지혜는 모든 구원 사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미리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의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구원 사역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 성품과 어떠함의 일부를 발현하는 것이지, 매 단계에 곧바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함을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이 완성되어야 구원 사역이 모두 끝나는 이상, 사람이 하나님의 전부를 알아 가는 것 역시 3단계 사역을 떠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 단계 사역에서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부 사역에서 발현된 성품에 불과하므로 그 전이나 그 후에 발현된 성품과 어떠함은 대변하지 못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한 시기나 한 장소에서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인류의 발전 상황에 따라 점차적으로 심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은 한 단계씩 하는 것이지 한 단계에서 바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닌 모든 지혜의 결정체는 어느 한 단계가 아닌 3단계 사역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모든 어떠함과 지혜는 3단계 사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단계마다 하나님의 어떠함이 있고, 하나님 사역의 지혜가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3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모든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 어떠함은 온 인류에게 실로 중요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이런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상을 경배하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은 모두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3단계의 구원 사역을 행한 이상, 사람은 이 3단계의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춘 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라면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자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 3단계 사역 중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 사역을 바탕으로 행한 것이지, 구원 사역 이외의 다른 사역을 따로 행한 것은 아니다. 시대나 사역의 내용이 크게 다를지라도 사역의 핵심은 변함없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구원 사역을 점차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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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사역이 효과가 없는 진정한 이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사역이 효과가 없는 진정한 이유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산시성 신이
얼마 전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리더와 사역자에게 자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한 후 소극적이고 연약하여 추구할 열의를 잃은 형제자매도 있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힘들어 하나님을 오해하는 형제자매도 있으며, 저를 안 봤을 때는 내적 상태가 괜찮다 저만 보면 압박감과 괴로움을 느낀다는 형제자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서글프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한 번 할 때면 며칠이 훌쩍 지나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나님 말씀을 수도 없이 뒤적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어.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가 있을 줄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분명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일 텐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하시어 제 부족함을 알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깨우침을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기도를 한 뒤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하던 광경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역 지침에 의구심을 가지는 형제자매를 발견하면 그들의 교만한 본성을 분석했고, 교만함이 초래할 결과와 피할 수 없는 징벌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교회에서 리더를 선출하는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적임자를 선출하지 못하면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줄 것이고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끊길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혐오를 불러일으켜 내쳐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를 보면 출교된 자의 사례를 들어 형제자매들이 기만 행위를 하고 있고,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실패한 자의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을 대거 잡아들이고 탄압하는 중국 정부로 인해 복음 전파를 꺼려 하는 형제자매를 보면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광경이 하나씩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맙소사! 이것이 어떻게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이란 말입니까! 저는 형제자매를 겁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설교 교제 중의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섬김이란 모든 일, 즉 모든 문제에 있어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교제해 주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하는 것이지, 사람의 이치, 규례, 견해에 따라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주신 사명은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와 문제의 본질을 짚어 주는 것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분명하게 교제하여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형제자매들의 본성과 일 처리 성질만 분석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습니다. 형제자매에게 겁을 주고, 자신을 알라고 강요하면서 하나님의 뜻, 생각, 기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결부해 상응하는 진리를 교제한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참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소극적인 상태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저의 섬김이 제멋대로 한 것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형제자매를 이끌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반발심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더 많은 과오를 범하여 교회 사역에 극심한 피해를 초래하고, 생명 진입에도 방해가 된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를 붙들어 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보고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사람을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문제의 근원을 깨닫도록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된 본질을 확실히 깨닫고, 스스로를 증오하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행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섬김이며, 그렇게 행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진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따라 진리를 구했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실행하라고 요구하시는 이유, 사람을 위해 애쓰시는 마음, 거두시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후 하나님의 축복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시는지 깨달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패역한 본성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고,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체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참된지를 실감했습니다. 제 뜻대로 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실제로는 대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때에 저의 부족함을 드러내셨고, 제가 사역을 하면서 한 실수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형제자매들을 어디로 인도했을지, 형제자매들을 언제까지 해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 당신의 놀라운 행사와 저를 구원한 사실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진리와 당신의 요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이로써 당신의 뜻을 구해 모든 일에서 당신의 뜻대로 행하고, 당신의 뜻대로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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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6)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려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려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다

(창 6:9~14)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 6:18~22)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 성경 말씀을 통해 노아라는 사람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지 않느냐?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느냐? 본문에 이렇게 나와 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지금 사람들의 이해에 의하면 그 당시 ‘의인’은 어떤 사람일까? ‘의인’은 완전한 자여야 한다. 완전한 자란 사람의 눈에 완전한 자인지, 하나님의 눈에 완전한 자인지, 너희는 아느냐? ‘완전한 자’란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눈에 완전한 자이지 사람의 눈에 완전한 자가 아니다. 이건 분명하다! 사람은 눈이 멀어 보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온 땅을 감찰하고 모든 사람을 감찰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노아가 완전한 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할 계획은 노아를 부른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노아가 부름을 받은 일은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 기록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 알게 되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부른 사람은 하나님이 보기에 어떤 사람일까? 분명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의 명령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다해야 할 책임과 본분으로 여겨 완수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까? 아니다. 당시 노아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듣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역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적었다. 성경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과연 노아가 하나님의 본체를 본 적이 있을까? 분명히 말하지만 본 적이 전혀 없었다! 당시 사람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말을 하고 일을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본체가 직접 사람에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이 성경 말씀에서 기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노아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과 노아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타내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세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어느 사건 혹은 현상이 발생했을 때 그에게는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그는 이 기준에 따라 계획하고 처리할지 혹은 어떤 식으로 이 일과 현상을 대할지를 결정한다. 그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거나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멸하려고 한 대상이 사람뿐이라고 했느냐?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혈육 있는 생물을 멸하겠다고 하였다. 왜 멸하려고 했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즉,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 모든 혈육 있는 자의 더러움과 강포, 패역을 대할 때 그의 인내에는 한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한도는 어디까지일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여기에서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는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적이 있는 사람, 말로 하나님을 인정할 뿐 아니라 찬미하기까지 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 이들의 행위가 심히 패괴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패괴함을 어느 정도까지 인내한다는 것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이 바른길을 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하나님은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가 그저 도덕이 부패하고 사악으로 가득 찬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재하고 사람에게 광명과 바른길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하나님은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오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하나님은 인내하지 않는다. 인류의 패괴가 일단 이런 정도에까지 이르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내 대신 무엇이 임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노와 징벌이 임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일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기에 의인이 있을까? 하나님이 보기에 완전한 자가 있을까? 하나님의 눈에 이 시대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한 시대가 아니냐? 이 시대에 하나님이 온전케 하려는 사람과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인류 이외에 혈육 있는 자는 모두 하나님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지 않느냐? 이 세상에서 매일 너희 주변에서 발생하는, 너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직접 경험하는 모든 일들엔 강포가 가득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보기에 이와 같은 세상과 시대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의 시대적 배경과 노아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인류의 패괴를 보는 하나님의 심정이나 분노는 그때와 같다. 하나님이 인내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역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상황과 조건을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기에 일찍 멸했어야 했다. 홍수로 세상을 멸했던 그 시대의 상황과 비교하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하지만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 역시 하나님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부분으로, 너희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할 때 하나님은 노아를 불러 방주를 짓게 할 수 있었다. 이로써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에 앞서 필요한 일을 예비한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라는 사람을 불러 하나님을 위해 일련의 일을 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왜 그럴까?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내가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말하면 모두들 면목도 없고 괴로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의인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자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명하신다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큰 재난이 닥칠 거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양식과 재난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에 아주 잘 협력한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취한 행동은 노아와 비견할 만하지 않나요? 설마 우리의 이런 행동이 진실한 순종이 아니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한 게 아니란 말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말씀대로 행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상심하시는 건가요? 왜 부를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하시는 건가요?” 이런 사람들과 노아의 행위는 차이가 있지 않으냐? 어떤 차이가 있느냐? (오늘날 우리가 재난용 식품을 준비한 건 우리 스스로의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의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었습니다.)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노아가 한 일과 지금 사람들이 한 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대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고,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는지도 몰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하여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했을 뿐 많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명대로 행했지 사사로이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고 두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졌던 신념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대함에 있어 그토록 명쾌하고 단순했다. 노아의 본질, 즉 그 행위의 본질은 순종이다. 의심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개인적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다고 말씀하자 그게 언제냐고 묻지 않았고, 상세한 내용도 묻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왜 세상을 멸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대로 행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으라고 명한 대로 그는 일일이 행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겠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 노아는 자신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냐?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얼마 후 세상을 멸할 것인지 물어보았느냐?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방주를 짓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하나님께 물어보았느냐? 아니면 노아 스스로 알고 있었느냐? 노아도 몰랐다. 그는 단순하게 순종하고 명령대로 행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간의 조짐이라도 보이면 불안해하면서 성급한 행동을 취한다.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 가며 살아남기 위해 먹고 마시고 쓸 것들을 준비한다. 심지어 재난이 닥쳤을 때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로드맵까지도 잘 예비해 둔다. 정말 재미있는 점은 사람의 두뇌는 중요한 시기가 되면 엄청난 ‘효용 가치’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뒷일을 잘 예비해 놓는다. 그 행동은 ‘완벽’이라는 단어로 묘사될 수 있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고 이해하려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람과 노아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노아 이야기의 기록 가운데 너희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을 보았겠지? 인류의 패괴와 더러움과 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점에 달하면 그는 더 이상 인내하지 않고 새로운 경영과 계획을 시작하고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여 그의 행사와 다른 측면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의 ‘행함’은 그의 거스를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고, 그에게 권병과 진노가 가득함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며, 그가 인류를 멸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성품과 그의 거룩한 본질이 더 이상 패괴된 인류가 그의 앞에서 사는 것을, 그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을 용납하거나 인내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온 인류가 그와 적대적이고 온 땅에 그가 구원할 만한 대상이 하나도 없을 때, 그는 이런 인류를 더 이상 인내하지 않고 주저 없이 멸할 계획을 시행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자 하나님의 권세하에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이 응당 감내해야 하는 결과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그의 계획을 완성하고, 그가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를 아예 따르지 않거나 본래 그와 적대적이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고 그에게 대항하는지, 혹은 인류가 어떻게 그를 비방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는 오로지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경륜 속에서 그가 구원할 대상이 그에 의해 온전케 되었는지, 그가 흡족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끔 소소한 ‘징계’를 내려 그의 진노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해일, 지진, 화산 폭발 등과 같은 징계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를 잘 따르고 곧 구원받을 사람을 힘써 보살핀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가 온전케 하려는 인류에 대해 엄청난 인내와 관용을 베풀고, 최대한도로 기다린다. 또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를 따르지 않고 그와 적대적인 사탄의 부류를 극도로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는 사탄의 부류가 그를 따르는지, 그를 경배할 수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사탄의 부류에 대해 인내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또한 사탄 부류의 결말을 정하는 동시에 그의 경륜의 시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5/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0)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지 감추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의도적으로 어느 누군가를 피한 적도 없고, 스스로를 숨긴 적도 없다. 도리어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공개되어 있고, 숨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마주한다. 또한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 행해진다. 그는 이런 사역들을 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고,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인도하며 공급하고 있다. 좋은 환경이든 열악한 환경이든, 각 시대와 각 단계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다. 그의 생명이 쉼 없이 사람에게 공급되고 사람을 붙들어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은 감추어져 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살고 있고 하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이해해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자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면 바로 그의 결말이 임박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성품에 의해 심판받고 정죄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의식적인 협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 자기 마음속으로 상상한 하나님과 관념 속의 하나님,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만 믿는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또한 그에게 등을 돌리고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기 좋게 꾸미고 포장한다. 이러면서 자신의 믿음이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자신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 자신은 이들과 무관하며, 이들을 인도하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관념과 상상,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 내린 규정들이다. 일단 이들이 참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이들의 행위와 믿음과 추구하는 것이 정죄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깨닫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하며 기도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차라리 하나님이 허구적이고 공허하며 막연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차라리 하나님이 그들이 상상한 바와 똑같아서 그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끝없이 채워 줄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을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도록 하고, 축복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축복을 내리도록 하며, 역경이 닥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담대함을 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도록 말이다.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은혜와 축복의 범위에만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역시 상상과 글귀상의 말에만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또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 자신을 분명히 보고 싶어 하며, 하나님의 성품, 소유와 어떠함을 확실히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정복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바란다. 이 사람들은 심혈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마련해 준 환경과 하나님이 배정한 사람과 일, 사물들을 체험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구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본질을 가장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체험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참된 일면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확실히 거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생겨 그들이 더 이상 상상과 관념 속에서, 막연한 상태에서 살지 않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사람의 체험 과정에서 언제든 필요하고, 사람에게 평생토록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더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두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보이는 태도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할 생각이 없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싶고 하나님 자신을 알고 싶고,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고 싶고 하나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차라리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패권을 다투고, 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심지어 부인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참된 하나님 자신이 자신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상상과 야심을 충족시키길 원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집과 생업까지 버릴지라도 악행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저지른다. 심지어 제물을 훔쳐 먹는 자들, 제물을 함부로 쓰는 자들도 있다. 또 어떤 자들은 뒤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어떤 자들은 지위를 이용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며 사람이나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여러 가지 방식과 수단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사람을 통제할 생각만 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고의로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대하게 한다. 이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저는 패괴된 사람입니다. 저 역시 패괴되어 교만하니 저를 우러러보지 마세요. 제가 일을 잘했다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이 저를 높여 주셨기 때문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무척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인 적도, 증거한 적도 없다. 그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껏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이라는 주제에 나오는 단어들은 간단해 보이지만 각자가 받는 의미는 서로 다른 것이다. 걸핏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죄일 것이고, 진리와 실제를 추구하고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기에 너희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멍해지면서 반발심이 잔뜩 생겨난다. 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주제라고 느낀다. 그 이유는 이는 그들에게 무척 유익한 주제로, 그의 생명 체험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자, 핵심 중의 핵심이며, 하나님을 믿는 근간이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 주제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새겨듣고,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네가 이 주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취급하며, 어떻게 깨닫든지 간에 결코 이 주제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5/2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워십 찬양 뮤직비디오MV <하나님의 자취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영어 찬양)



너희는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며 이런 말씀을 간과했음이라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많은 이가 진리를 얻고도
하나님의 자취를 찾았다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나타남이라 인정치 않음이라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과 요구대로 나타나실 리 없음이라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목표에 따라 사역하시니라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찾아야 하리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그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자취가 있는 곳에 그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그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사람과 의논할 필요도
사람에게 알릴 필요도 없으심이라
이는 하나님의 성품이자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그의 발걸음을 따르려면
먼저 자기 관념에서 나와야 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말며
그를 네 관념에 가두지 말아야 하리
어떻게 그의 자취를 찾고 그의 나타남을 받아들이며
그의 새 사역에 순종해야 할지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리
사람은 진리가 아닐뿐더러 갖추지도 않았기에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하리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찾아야 하리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그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자취가 있는 곳에 그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그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5/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7)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홍수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내린 축복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홍수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내린 축복


(창세기 9:1~6)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여 방주를 지은 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날들을 보냈고, 그의 여덟 식구는 살아남았다. 노아의 여덟 식구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되었고, 땅의 생물들도 모두 멸망되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축복을 내렸다.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아들에게 어떤 말씀들을 하였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베풀어 주려는 것이자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주는 축복이고 약속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보기에 노아가 완전한 자이든 의인이든 상관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든 상관없었다. 결국,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하나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했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하여 홍수로 세상이 멸망된 뒤에도 하나님을 위해 인류와 각종 생물이 보존될 수 있게 하였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경륜을 위해 혁혁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바로 노아의 이 모든 행위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내린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사람에게 있어 노아의 행위는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노아도 한 일은 없잖아. 하나님이 노아를 남기겠다고 결정하셨으니 그는 당연히 남을 수 있었겠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야. 하나님이 이렇게 이루려고 하셨던 거지. 사람은 피동적이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기에 위대한 사람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과 받은 사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순조롭게 완수될 수 있도록 한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이런 행위는 하나님이 기억할 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런 행위를 아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런 정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태도다. 그러니 하나님이 왜 노아를 축복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이런 행위와 순종을 아끼고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노아를 축복한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따르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면 하나님은 당연히 사람을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이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 어떤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왜 안 되는 것이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말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들였을 때, 사람의 행위의 좋고 나쁨, 순종했는지,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렸는지, 그리고 그의 행위들이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하나님은 한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어떻게 행하든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축복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오해이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발전 과정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사람의 마음에 순종함이 있는지, 헤아림이 있는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는 염원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당시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너희가 지금 알고 있는 이치보다 많이 알고 있었을까? 하나님에 관한 개념이나 앎, 이런 진리에 대해 너희보다 더 많은 양육과 목양을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인의 의식과 사상 속, 심지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하나님에 관한 개념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명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노아의 마음과 의식 속에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노아는 이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노아의 순종에는 불순물이 없어 검증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순결했고 하나님께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수많은 이치상의 인식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르라고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실들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노아와 현대인들의 본질적인 차이다. 또한 하나님 보기에 완전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해석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노아와 같은 사람을 원하고 인정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대상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본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람이 그를 조금이라도 등한시하고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 어떤 추측이나 시험도 용납하지 않는다. 현대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고 있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과 패괴된 본질,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사람이 하나님을 참되게 믿지 못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준 것과 같은 축복을 받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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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7)
      홍수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내린 축복


🌸 더 보 기 :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