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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느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에게 질문을 하자, 사탄은 속으로 기뻐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하나님 눈에 완전한 사람을 공격할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에게는 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가! 사탄은 이 기회를 틈타 욥의 믿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욥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언제든지 욥을 자기 수중에서 멋대로 우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신의 사악한 의도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을지라도 그의 악독한 본성은 억제할 수 없었다. 그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탄의 대답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4~5). 사탄의 이 말에서 사람은 자연히 사탄의 악독함에 대해 실제적인 인식과 느낌을 갖게 된다. 사탄의 이런 황당무계한 논리를 듣게 되면, 진리를 사랑하고 사악함을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탄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증오할 것이다. 또한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염증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욥을 위해 기도와 축원을 올릴 것이다. 정직한 자가 더 순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가 영원히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또한, 욥의 의로운 행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편달하고 격려하기를 바랄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사탄의 이러한 말 속에서 사탄의 악독한 속셈을 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주 흔쾌히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다만 사탄에게 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욥 2:6). 사탄이 이번에는 손을 뻗어 욥의 뼈와 살을 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의 뜻은 욥의 육체를 사탄의 손에 붙이지만 그의 생명은 보존해야 하며, 그의 생명을 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방식과 수단으로 욥을 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후, 사탄은 허둥지둥 욥의 앞에 이르러 손을 뻗어 그의 살가죽을 쳤으며, 그의 온몸에 악창이 나게 했다. 욥은 살가죽의 통증을 느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기묘함과 거룩함을 찬양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사탄은 더 길길이 날뛰었다. 사탄은 사람을 해치는 쾌감을 느꼈기 때문에 손을 뻗어 악창이 난 욥의 살을 움켜쥐어 곪아 터지게 했다. 그 순간 욥은 피와 살에 너무나 큰 통증을 느껴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온몸의 피부와 살을 문질렀다. 마치 그러면 육체의 통증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듯이 말이다. 욥은 하나님이 곁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강해지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또 한 번 무릎 꿇고 엎드렸다.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사람의 고통을 살피시나이다. 당신께서 어이하여 사람의 나약함까지 생각해 주시나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사탄은 욥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에 사탄은 급하게 손을 뻗어 욥의 뼈를 쳤다. 욥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욥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살가죽이 뼈에서 벗겨지는 것 같았고, 또 뼈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욥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극한에 달했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 통증을 덜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욥은 참고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욥은 사탄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욥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지만 이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욥은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그의 앞에, 그의 뒤에, 그의 좌우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가 아파할 때 아파하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그때는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숨겼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미는 고통받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욥은 눈물을 흘렸다. 욥은 몸의 통증은 억지로 참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다. ‘인간은 너무도 나약한 존재입니다.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하며 여리고 무지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어찌하여 이처럼 생각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나이까? 당신께서 저를 치시고 오히려 당신이 고통스러워하시나이다. 사람이 무슨 가치가 있어 당신께서 생각해 주고 마음에 두시나이까?’ 욥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 사탄은 수를 다 썼어도 성과가 없자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은 결코 이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욥에게서 나타낼 큰 능력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는 사탄의 퇴각으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 멋진 장면은 각 인물의 출현에 따라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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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6/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3) 욥은 시련을 어떻게 대했는가

(욥 2:9~10)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 3:3)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욥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를 귀하게 여겼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이 대화에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사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첫 번째 시련에서 보인 욥의 반응과 모습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평가는 사탄의 시험을 당하기 전의 평가와 똑같았다. 즉, 시험이 임하기 전에 욥은 하나님 눈에 순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 주었으며, 그에게 복을 내린 것이었다. 욥은 하나님 눈에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시험을 겪은 후,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었다고 해서 입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였다. 욥의 실제적인 행동에 하나님은 갈채를 보냈으며, 만점을 부여했다. 욥의 눈에는 모든 재산이든 자녀든 하나님을 버릴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그 어떤 재산이나 자녀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욥이 처음의 시험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사랑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대한 욥의 애정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는 것을 보았다. 이번 시련이 욥에게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일 뿐이었다.

욥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의 마음을 씻는 진실한 체험이었으며, 그의 인생을 충실하게 하는 생명의 세례였다.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경외심을 검증하는 한 차례의 풍성한 잔치였다. 이번의 시험으로 욥은 부자의 신분에서 무일푼의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으며, 동시에 사탄으로부터 해를 입었다. 욥은 자신이 무일푼이 되었다고 해서 사탄을 증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탄의 졸렬한 행위로 인해 사탄의 추함과 비열함을 보았으며, 사탄이 하나님께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영원히 지키겠다고 더욱 굳게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욥은 맹세했다. ‘재산, 자녀, 가족 같은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절대 사탄의 노예나 재산의 노예, 그 어떤 사람의 노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어떤 누구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욥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시험을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 역시 욥은 얻은 것이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시련에서도 얻은 바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의 인생에서 욥은 여호와의 행사를 보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 준 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복은 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더 빚진 마음이 들게 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없는데도 이와 같은 큰 복을 받아 참으로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늘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울러,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순종과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그의 순종을 검증하고 그의 믿음을 정결케 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욥은 이번에 시련이 임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이런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기에 전혀 태만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욥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소원이 실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경외심이 검증받을 수 있고, 아울러 정결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이로부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욥은 이와 같은 믿음과 추구가 있었기에 이번 시련에서 더욱 순전해질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이 내려 준 복과 은혜에 더욱 감사했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더욱 찬양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앙망하며,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위대함과 거룩함을 더 간절히 사모했다. 이때의 욥이 하나님의 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을지라도, 욥의 경험과 체험을 놓고 봤을 때 욥의 믿음과 인식은 엄청난 진보와 발전이 있게 되었다. 그의 믿음은 커졌고, 그의 순종은 목표에 도달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한층 더 깊어졌다. 비록 이번 시련으로 욥의 마음과 생명이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되었지만 욥은 이로 인해 만족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욥은 이번 시련에서 자신이 얻은 수확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고, 또 자신의 결점과 부족한 부분들을 성찰해 보았다. 아울러, 그는 묵묵히 기도하며 다음 시련을 기다렸다. 욥은 자신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하나님의 또 한 번의 시련을 통해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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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6/2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열방에서 증거되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가사 버전)


1
하나님나라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이 증거된 이후
하나님의 경륜 범위는 전 우주에 두루 펼쳐졌네
그의 현현은 중국뿐 아니라 열방에 증거되었네
모두가 그의 이름 부르고 온갖 방법으로 그와 교제하며
그의 뜻을 알려 하고 교회에서 함께 섬기네 이는 성령의 기묘한 역사
전능하신 분, 하나님나라의 왕 그가 증거되었네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 열방에 증거되었네

2
나라마다 언어는 서로 달라도 영은 오직 한 분
교회에서 소통하며 하나님과 하나인 분 어떤 차이도, 의심도 없네
그들을 일깨우는 성령의 음성 하나님 긍휼의 음성
모두 그의 신성한 이름 부르짖네! 찬미하고 노래하네
성령의 역사는 오차가 없으니 모두 바른길로 나아가고 절대 물러서지 않네
이는 기묘하기 그지없고 사람이 상상하거나 추측할 수 없는 일
전능하신 분, 하나님나라의 왕 그가 증거되었네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 열방에 증거되었네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 생명의 왕!
영광의 보좌에 앉아 세계를 심판하시고 만국을 다스리시네
만백성 무릎 꿇고 그에게 기도하며 가까이하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지위 얼마나 높고, 관록 얼마나 크든
마음으로 하나님 맞서는 자 반드시 심판받으리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애원하리
이는 정말 자업자득이라네
그 애원의 소리는 유황불 못에서 고통받는 소리 하나님의 철장에 맞아 울부짖는 소리
이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의 심판
전능하신 분, 하나님나라의 왕 그가 증거되었네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 열방에 증거되었네
전능하신 분, 하나님나라의 왕 그가 증거되었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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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찬양 더보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지, 자기 기분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말씀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을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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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발췌문 21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9)








6/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9)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에게 감춰진 적이 없고 다만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은 함께했으며, 사람에게 감춰진 적이 없이 전부 공개되었고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으며, 사람이 점점 더 심하게 패괴됨에 따라 사람과 하나님의 거리도 점차 멀어졌다. 서서히, 사람은 하나님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관련된 ‘소식’을 전부 다 잃게 되었다. 나아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조차 모르게 되었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으며,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사람은 늘 하나님을 피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멀어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사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간직한 채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보여 드리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저의 마음을 감찰하소서.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라고 늘 기도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을 어기면 벌을 받겠다고 맹세할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라고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께 어떤 맹세를 하고 다짐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이 보기에 너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너는 하나님께 너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허락했지, 너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놓지도 않았으며, 그저 듣기 좋은 말만 하고는 각종 간사한 속셈은 다 감춘 것이다. 너는 자신의 의도와 타산, 계획을 전부 숨기고, 앞날과 운명을 하나님이 빼앗아 갈까 두려워 자기 손안에 꼭 쥐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라 사람이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볼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며,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단지 살펴볼 권리만 있지 다스릴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주관적인 의식 안에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길 생각이나 계획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폐쇄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마음을 감추고, 감언이설로 허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신임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감추어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간수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생각하든 다 자신이 계획하고 타산하며 결정하고 싶은 것이지 하나님의 ‘참여’와 간섭이 필요치 않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이나 당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그 당시의 자신의 상태와 처한 환경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의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자신의 머리로 자기가 나아갈 길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하나님이 간섭하고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본 사람의 마음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뿐이었다. 즉, 모든 생물 가운데서,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밖에 없다. 사람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언어가 있고 생각과 자유 의지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이 맡겨 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바람을 모두 사람에게 두었다. 그는 사람을 그와 동심합의하고 그와 동행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게 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경영을 시작한 후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을 정결케 하고 채워 주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러한 결과를 줄곧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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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2)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3)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감찰 받아야 하리>(가사 버전)


1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한 일 내놓기 두려운 사람들
네가 그의 육신 속여도 영은 속일 수 없는 법
감찰 견디지 못하는 일은 진리에 어긋난 일이니
내던져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이라
네가 기도를 할 때든 형제자매와 교제할 때든
본분을 이행할 때든 그 앞에 네 맘 내놓으라
역할 다할 땐 네 곁에 그가 계시고
바른 맘으로 그의 사역 위하면 네가 한 일 열납하시리니 진심 다해 역할 수행하라
너의 모든 행동과 마음가짐과 말씀 먹고 마시는 것 평소의 영적 생활을 그 앞에 내놓으라
"네가 협력하여 섬기는 것과 교회 생활도 모두 하나님께 감찰받으라 
그러면 네 생명에 유리하리"

2
사람은 감찰의 과정을 통하여 정결해지니 감찰받을수록 더 정결해지고 
그의 뜻에 합당한 자 되리
그리하여 방종함에 빠져들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네 마음 두고 살 수 있게 되리라
그의 감찰 받을수록 사탄은 수치 느끼고 너는 육을 버릴 수 있으니 그의 감찰 받으라
너의 모든 행동과 마음가짐과 말씀 먹고 마시는 것 평소의 영적 생활을 그 앞에 내놓으라
네가 협력하여 섬기는 것과 교회 생활도 모두 하나님께 감찰받으라 
그러면 네 생명에 유리하리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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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6)



욥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오해

욥이 겪은 고통스러운 일은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이 직접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욥이 고통받은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욥은 자신이 평소에 마음속에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 평소의 행동 원칙과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전부 드러냈다. 그것은 다 진실한 것이었다. 만일 욥에게 시험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에게 시련을 주기 전에, 욥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말을 했다면, 너는 욥이 매우 위선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아주 많은 재산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만일 욥이 시련을 받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는 말을 했다면, 너는 욥이 큰소리치기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그가 늘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임하면 분명 하나님의 이름을 버릴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욥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고, 보고 싶지도 않아 하고, 자신에게 임하지 않았으면 하며, 임할까 두려워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차마 볼 수 없었던 그런 지경에 처해 있을 때에도 여전히 그의 순전함을 지킬 수 있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욥의 그때의 반응에, 공리공론을 즐기며 글귀만 늘어놓기 좋아하던 자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지만 하나님에게서 오는 시련을 받아들인 적이 없던 자들은 욥이 지켜 낸 순전함에 의해 정죄받았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지킬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자들도 욥의 증거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 욥이 시련 속에서 보여 준 행동과 그의 말을 두고 혹자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혹자는 질투를 하며, 혹자는 의혹을 품는다. 심지어 무시하는 태도로 욥의 증거에 대해 코웃음 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욥이 시련 속에서 받았던 고통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욥이 했던 말도 들었고, 시련이 임했을 때 그가 보여 준 인간성의 ‘나약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나약함’은 그들이 생각하는 욥의 이른바 순전함 중의 순전하지 않은 부분인 동시에, ‘하나님 안중의 순전한 자’의 흠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순전한 자는 완벽한 사람, 즉 흠도 없고 오점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약함이 없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며, 또한 아파하고 슬퍼하는 정서도 없고, 증오도 없으며, 과격한 행동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욥이 진정으로 순전한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욥이 시련 속에서 보여 준 많은 행동들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 욥은 사람들의 상상처럼 재산과 자녀를 잃었다고 대성통곡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러한 ‘예상을 벗어난 행동’은 사람들에게 그를 냉혈 인간으로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에게서는 눈물도 혈육의 정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처음에 욥이 사람들에게 남긴 ‘나쁜 인상’이었다. 이어지는 욥의 일련의 행동들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겉옷을 찢는’ 행동을 하나님에 대한 불경한 행동으로 보았으며, ‘머리털을 미는’ 행동을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께 대드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욥이 말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이 말 외에 사람들은 욥에게서 하나님이 칭찬한 그 어떤 의로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욥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그저 이해되지 않아 하거나 오해하거나 의심하거나 정죄하거나 도리적으로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욥에 대해 위와 같은 인상을 받은 데다가 욥의 의로움에 한층 더 의구심을 품었다. 욥이 했던 것과 성경에 기록된 그의 행동은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도 울릴 만큼 큰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는 사람의 상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장거’를 이룩하기는커녕, 고작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던 것이다. 이 행동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욥의 의로움에 의혹을 품게 하고, 심지어는 부정하는 태도를 갖게 하였다. 욥은 몸을 긁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맹세한 적이 없었고, 통곡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욥에게서 그의 나약한 모습만 보았을 뿐, 다른 것은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욥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 말에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거나 일치된 결론을 내릴 수 없었으며, 욥의 말에서 그의 의로움을 볼 수 없었다. 시련의 고통을 겪고 있던 욥이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대체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 이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보지 못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과 그가 어떤 원칙으로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고 있는지를 보지 못했다. 그의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이 그저 빈말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 역시 그저 전설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그의 ‘나약함’에 대해서는 인상이 깊었다. 또한 그 ‘나약함’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의했던 순전하고 정직한 자를 ‘다시 보게’ 되었으며, 심지어 ‘새롭게 이해’하기까지 했다.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 때, 내가 말한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과 ‘새로운 이해’가 여기에서 입증되었다.

아무도 욥이 고통받은 정도를 상상하거나 느낄 수 없지만, 욥은 ‘대역무도’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몸의 고통을 줄여 보고자 성경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뿐이다.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욥 3:3). 아무도 이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너희가 보기에 이 말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뜻이 있느냐? 이 말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뜻이 있느냐? 나는 너희 대부분이 욥의 이 말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너희는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면 그 어떤 나약함을 보여서도 안 되고 슬퍼해서도 안 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탄의 모든 공격에 직면해야 하고, 심지어 웃으면서 사탄의 시험을 마주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사탄이 욥의 육체에 어떤 고통을 가해도 욥은 마땅히 아무런 반응도 없어야 하고, 자신이 느꼈던 어떤 것도 표현하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하나님께 더 강력한 시련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강직한 자가 마땅히 보여 주고 갖춰야 할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욥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그저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을 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뜻은 더욱 없었다. 이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진짜로 행하기는 아주 어렵다. 예부터 지금까지 욥과 같은 시험을 받아 본 자가 없을뿐더러, 욥과 같은 상황을 겪어 본 자도 없기 때문이다. 왜 욥과 같은 시험을 받은 자가 아무도 없겠느냐? 이는 하나님이 보기에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으며, 욥이 해낸 것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욥처럼 이러한 고통이 임했을 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지금 욥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욥의 행위를 칭찬하는 것이냐? 의인인 자, 이처럼 하나님을 증거한 자, 사탄으로 하여금 머리를 감싸고 도망쳐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지 못하게 한 자를 칭찬한다고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느냐? 설마 너희의 요구 기준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것이냐? 너희는 시련이 닥쳤을 때 욥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냐? 하나님도 칭찬했는데 너희가 무슨 이견이 있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2)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70)






6/2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 시련을 겪은 후의 욥

(욥 42:7~9)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를 귀하게 여기고 우매한 자를 천하게 여긴다
욥기 42장 7절에서 9절에 하나님은 욥을 그의 종이라고 언급했다. 욥에게 사용했던 ‘종’이라는 이 호칭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욥의 비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에 대해 더 높은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을지라도, 이 호칭은 결코 욥이 하나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여기서의 ‘종’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애칭’이다. 하나님이 여러 차례 ‘내 종 욥’이라고 언급한 표현으로부터 하나님이 욥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종’이라는 단어의 함의를 언급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이 말씀 구절에서 ‘종’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먼저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욥을 시련한 후, 욥의 행동과 말을 열납했음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며, 처음으로 욥의 행동과 말이 정확하고 옳았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 친구들의 정확하지 않은 그릇된 논쟁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노한 것이다. 그들도 욥처럼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도,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생활했지만, 욥이 하나님에 대해 그토록 정확한 인식을 가졌던 반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엉뚱하게 추측하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염증을 느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욥의 행동과 말을 열납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실제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 친구들에게 그들이 속죄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우매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번제를 드려 과오를 만회해야만 했던 것이다. 보통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번제는 욥에게 드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번제가 다른 것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욥은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을 증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납되었다. 동시에, 욥의 친구들은 욥이 시험을 받던 기간에 다 드러났다. 그들은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정죄받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다. 이 ‘징벌’이 바로 욥 앞에서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를 풀어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욥의 순전함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을 열납하지 않으나 욥의 행동은 흔쾌히 열납하고 기뻐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고,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의 눈에 천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이 두 측면은 하나님이 두 부류 사람에 대해 내린 정의이고, 이 두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다. 또한 이 두 부류 사람의 값어치와 지위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욥을 종이라 불렀을지라도 이 ‘종’이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에게서 권병을 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과오를 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고 존귀한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종’의 진정한 함의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런 ‘특별한 영광’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종’이라 불리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2가지 완전히 다른 태도는 이 두 부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는 것이다. 반면, 우매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날 수 없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며, 늘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하나님의 정죄를 받으며, 하나님께 천하게 보이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다

욥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 욥의 기도에 하나님은 그들의 우매함대로 그들에게 갚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들을 벌하지 않고 그들에게 어떤 응징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종인 욥이 그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욥의 기도를 열납했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한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한 사람을 축복할 때 그에게 많은 것을 내려 주는데, 그것은 물질적인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또 그에게 권병을 주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자격이 있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그 몇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고 따지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욥에게 준 권병이다. ‘욥의 기도로 타인이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 이런 방식으로 그 우매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엘리바스 등 친구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징벌이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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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7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14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70)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구세주의 강림을 보기를 소망했다. 구주 예수가 수천 년 동안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 왔던 사람들 가운데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보기를 소망해 온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구세주가 돌아와 자신들과 재회하기를 소망했다. 바로 수천 년 전에 사람들을 떠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유대인 가운데서 했던 구속 사역을 또 행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대신 짊어지며, 심지어 사람의 모든 과오를 대신 짊어지고 죄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친절하며 존경스러운 구세주가 되어 사람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고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대신 짊어지며 심지어 사람을 위해 예전처럼 십자가에서 죽기를 소망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물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 그를 그렇게 간절히 그리워하고 그의 강림을 고대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말세의 기쁨이 넘치는 어느 날에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임하여 만인에게 나타나기를 소망했다. 물론, 이 또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소망하는 바이다. 온 우주에서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그가 세상에 있을 때 했던 “나는 떠난 그대로 다시 돌아오리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으로 돌아간 것처럼, 여전히 유대인의 모습을 하고 유대인의 옷을 입은 채 흰 구름(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탄 흰 구름)을 타고 수천 년간 그를 애타게 기다려 온 인류 가운데 강림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에게 나타나 양식을 베풀어 주고 생수가 솟게 하며, 은혜와 자비로 충만한 예수가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고정 관념이다. 하지만 구주 예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게 하였다. 그는 자신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흰 구름을 타고 만인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강림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고만 있다. 사실 그는 이미 ‘흰 구름’(그의 영과 그의 말씀, 그리고 그의 모든 성품과 속성을 뜻하는 흰 구름)을 타고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비로 가득한 거룩한 구주 예수라 하더라도, 더럽기 그지없고 더러운 귀신들이 떼를 지어 사는 그런 ‘성전’ 안에서는 사역할 수 없음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사람들이 예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가 어찌 또 불의한 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또 그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를 모르고 계속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내려는 그런 자들 앞에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자비와 긍휼로 충만하고 구원으로 가득한 속죄 제물이라는 것만 알 뿐, 공의와 위엄, 진노, 심판을 가득 지닌, 권능이 있는 존엄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간절히 바라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자신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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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145)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146)







6/1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이 두 번 성육신하신 의의>(가사 버전)


1
첫 번째 성육신은 예수의 육신 통해 사람을 속량하고 구원하셨네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하셨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의 사탄 성품
하나님은 성육신해 사람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고통 느끼고 실제의 말씀 주시네
사람이 온전한 구원 받게 된 것은 기도가 아닌 성육신 때문이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영을 볼 수 없고 하나님 영에 접근할 수 없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건 육신뿐 육신 통해야만 진리 깨닫고 구원받네

2
사람을 정결케 하는 두 번째 성육신 성육신의 의의 완전케 하셨네
이제 육신의 모든 사역 끝내셨으니 다시는 육신으로 돌아오시지 않으리
사람을 부류로 나누고 선민을 얻었으니 더는 성육신의 구원 사역 하시지 않으리
두 번째 성육신은 속죄 제물 되지 않고
속량된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시네
그들은 성품이 변화되고 정결해지며 사탄 권세에서 벗어나네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온 그들 완전하게 성결해진 사람이 되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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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말세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여 준 모든 성품>(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가장 큰 복>(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하나님께 얻어진 인류는 영원한 복을 누린다> (가사 버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6)


하나님의 본질은 그 자체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권병에서 나온 모든 것에 순종할 수도 있다. 영의 사역과 육신의 사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에 대한 권병을 지니고, 하나님의 본질이 있는 육신 역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고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그의 권병에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고, 이를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사역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같은 뜻을 이루려 하며, 같은 사역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이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는 하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발현이자 모든 사랑의 발현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해져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며 거역하는 일은 더더욱 저지르지 않는다.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는 똑같이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본질만 있을 뿐 하나님의 본질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존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고, 하나님의 경영을 자신의 당연한 본분으로 삼아 이행할 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공존할 수 없으므로 사탄의 속성을 가진 자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앞날을 위함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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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발췌문 7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5)







6/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8)


하나님이 주는 시련에 대해 그 어떤 걱정도 하지 마라

욥의 시련이 끝나고 욥에게서 증거를 얻은 다음, 하나님은 욥과 같은 사람들을 한 무리 혹은 더 많이 얻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이상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걸며 욥을 시험하고 공격하고 해쳤던 그 방식으로 또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하나님은 사탄이 나약하고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욥에게 했던 그 한 번의 시험으로 이미 충분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제멋대로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이 보기엔 욥 한 사람이 사탄의 시험과 상해를 받은 것으로 이미 충분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그러한 짓을 하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생명과 그들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주재하며, 사탄에게는 하나님의 선민을 함부로 지배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너희가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나약함을 생각해 주고,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완전하게 구원받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늘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으며, 사람이 늘 고난받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은 천경지위(天經地緯)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책임이고, 만유를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제멋대로 사람을 해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사탄이 온갖 방법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는 데에 사탄이 끼어드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는 법칙을 사탄이 짓밟고 깨트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이처럼 큰 사역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의 사역의 핵심이자 결정체이다. 또한, 하나님이 6천 년 사역에 기울인 심혈의 대가이기도 한데, 하나님이 어떻게 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사탄에게 넘기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까 봐 늘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굴레에 묶여 살고, 사탄의 공격과 상해의 위험 속에서 살면서도 두려운 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는 어찌 된 일이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그저 보이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배려에 대해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시련,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에 대해서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 느낄 뿐, 하나님의 고심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시련을 언급하면, 사람은 하나님께 아마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저의를 품고 있어 사람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오히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극력 반발하고 저항한다. 이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람이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잘못 인도’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르며, 심지어 목숨도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탄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사탄이 사람을 해칠까 걱정한 적이 없었고, 사탄에게 해를 입으면서도 사탄에게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반면, 사람은 말끝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겠다고 외치지만 하나님을 신뢰한 적이 없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탄의 마수에서 구원하리라는 것을 믿은 적도 없었다. 사람이 욥처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다면, 사람의 결말은 욥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종한다고 해서 사람에게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권고하는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너의 신변에 임하는 모든 일들을 신중히 대하라. 경솔하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혈기와 천연적인 본능, 혹은 상상과 생각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이나 일, 사물들을 대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구하라. 명심했겠지?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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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발췌문1)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속시대 사역의 실상>(발췌문 23)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0)






6/11/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6)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대가를 치르고 외적 행위가 아주 좋아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 행위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고 확정할 수 있느냐?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흔히 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을 가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있다고 여기느냐? 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가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보았을 때 영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사람,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에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말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들의 일을 하는 본질과 원칙,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인성 본질을 전혀 분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탄복하고 우러러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숭상하는 우상,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사람, 참으로 좋은 결말과 좋은 종착지가 있을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런 ‘생각’은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냐?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이냐? 이 일로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먼저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에서 언급한 사람의 관점과 실행법, 사람이 스스로 취한 실행 원칙,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에 중시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요구와 무관하다.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이 깊든 얕든, 글귀의 이치이든 실제이든,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사람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름길로 가면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고 알고 있는 좋은 행위와 방법을 종합해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직접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인위적인 좋은 행위로 진리 실행을 대체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항하는 밑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밑천이 생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서슴없이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고 자신의 마음속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다. 사람에게 이런 미련한 행위와 우매한 사고방식, 혹은 단편적인 사고방식과 실행법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오늘 알려 주겠다. 그 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에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혐오하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무엇을 버리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람에게 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안다면, 사람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멋대로 다른 사람을 숭상할 수 있겠느냐? 또 일반 사람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사람의 견해는 다소 이성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괴된 사람을 함부로 자신의 우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 제멋대로 몇 가지 간단한 규례나 원칙을 지키는 것을 진리 실행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6/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사역이 효과가 없는 진정한 이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사역이 효과가 없는 진정한 이유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산시성 신이
얼마 전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리더와 사역자에게 자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한 후 소극적이고 연약하여 추구할 열의를 잃은 형제자매도 있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힘들어 하나님을 오해하는 형제자매도 있으며, 저를 안 봤을 때는 내적 상태가 괜찮다 저만 보면 압박감과 괴로움을 느낀다는 형제자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서글프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한 번 할 때면 며칠이 훌쩍 지나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나님 말씀을 수도 없이 뒤적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어.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가 있을 줄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분명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일 텐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하시어 제 부족함을 알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깨우침을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기도를 한 뒤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하던 광경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역 지침에 의구심을 가지는 형제자매를 발견하면 그들의 교만한 본성을 분석했고, 교만함이 초래할 결과와 피할 수 없는 징벌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교회에서 리더를 선출하는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적임자를 선출하지 못하면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줄 것이고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끊길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혐오를 불러일으켜 내쳐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를 보면 출교된 자의 사례를 들어 형제자매들이 기만 행위를 하고 있고,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실패한 자의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을 대거 잡아들이고 탄압하는 중국 정부로 인해 복음 전파를 꺼려 하는 형제자매를 보면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광경이 하나씩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맙소사! 이것이 어떻게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이란 말입니까! 저는 형제자매를 겁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설교 교제 중의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섬김이란 모든 일, 즉 모든 문제에 있어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교제해 주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하는 것이지, 사람의 이치, 규례, 견해에 따라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주신 사명은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며,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와 문제의 본질을 짚어 주는 것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분명하게 교제하여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형제자매들의 본성과 일 처리 성질만 분석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습니다. 형제자매에게 겁을 주고, 자신을 알라고 강요하면서 하나님의 뜻, 생각, 기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결부해 상응하는 진리를 교제한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참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소극적인 상태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저의 섬김이 제멋대로 한 것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형제자매를 이끌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반발심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더 많은 과오를 범하여 교회 사역에 극심한 피해를 초래하고, 생명 진입에도 방해가 된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를 붙들어 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보고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사람을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문제의 근원을 깨닫도록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된 본질을 확실히 깨닫고, 스스로를 증오하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행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섬김이며, 그렇게 행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진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따라 진리를 구했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실행하라고 요구하시는 이유, 사람을 위해 애쓰시는 마음, 거두시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후 하나님의 축복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시는지 깨달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패역한 본성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고,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체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참된지를 실감했습니다. 제 뜻대로 사역을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실제로는 대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때에 저의 부족함을 드러내셨고, 제가 사역을 하면서 한 실수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형제자매들을 어디로 인도했을지, 형제자매들을 언제까지 해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 당신의 놀라운 행사와 저를 구원한 사실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진리와 당신의 요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이로써 당신의 뜻을 구해 모든 일에서 당신의 뜻대로 행하고, 당신의 뜻대로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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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말씀 찬양 CCM <질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사랑>(가사 버전)


1
전능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인이 보좌에서 왕권을 행사하시네
모든 것 다스리시고 우릴 인도하시네
그의 앞에 나아와 항상 배우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모든 사람, 사물과 일들이 허락된다네
질병이 닥쳐도 그의 선한 뜻이니 원망하는 자 은혜받지 못하네
육체가 고통을 받아도 사탄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네
질병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찾을 때 하나님은 빛을 비춰 주시네

2
욥을 보라 그가 얼마나 신실했는가?
병에 살면 아프지만 영에 살면 평안하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의사이시네! 숨 쉬는 한 우릴 죽게 하지 않으시네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으나 믿음이 부족하네 
우리 안에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그의 모든 말씀은 아주 달다네!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은 치료하는 약이네!
마귀와 사탄에게 수치를 주라! 말씀이 빠르게 우리를 구원할 것이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의지처 모든 나쁜 것을 물리치시고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시네
믿음이란 외나무다리와 같으니 겁쟁이는 그곳을 건널 수 없으나 
희생하는 자는 건널 수 있다네
사탄은 두려움으로 우릴 속이네 사탄은 우리에게 나쁜 생각들을 심고자 
여러 방법을 꾀한다네
하나님의 빛을 위하여 기도하면 그가 우리의 독소를 씻어 주시네
하나님께 가까이 와라 우릴 다스리시도록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5/2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가사 버전)



실속 있는 사람이 되고 실제적으로 일을 하고
매사에 기도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생명이 얼마나 크든지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크든지
진리에 얼마나 진입했든지 하나님을 멀리해선 안 된다
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를 갖춰야 하나님이 네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해 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너무 멀리 떠나지는 않겠다 하는데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이미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어떠한 결과가 있을까?
수시로 사탄에게 노략을 당하게 된다
이때면 사람이 일을 잘못하고 거역하고 방해를 할 것인데
수시로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노략을 당할 위험이 있다
늘 하나님의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를 갖춰야 하나님이 너를 보호해 줄 수 있다
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를 갖춰야 하나님이 네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해 줄 수 있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5/2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많은 사람이 오직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말씀을 읽는 것에만 신경 쓸 뿐,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진리를 얻을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중시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춰 자기 생각과 모든 행동을 성찰하고,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는 진리를 구해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할 때, 정말 작은 일에서도 깨닫고 얻는 것이 생겼습니다. 주인공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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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관한 말씀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관한 말씀 사진제공 :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의 공의운 성품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증오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관용과 긍휼을 베푸는지,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든지, 얼마나 많은 긍휼과 자비를 베풀든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 하나님의 존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지만 총애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 관용을 베풀지만 한 번도 지나치게 사랑한 적은 없다. 하나님께는 자신의 원칙과 범위가 있다. 너는 아무리 크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어도 절대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긴다면, 피조물과 같은 한 사람이나 친구, 혹은 숭상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감추고 너를 버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니 그 누구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해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자주 볼 수 있다. “네가 얼마나 먼 길을 달렸든, 네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든, 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든,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면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친척이나 친구로 여기거나 하나님을 단짝 대하듯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네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얼마나 많이 느꼈든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너의 친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7> 중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의 본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의 신분과 지위를 뜻하며, 그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의 본질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바뀌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고유의 성품은 하나님의 고유의 본질이다. 그가 누구에게 사역하든 간에 그의 본질과 공의로운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원래의 성품이다. 이때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지위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노하는 이유는 그의 본질에 변화가 생기거나 그의 성품에 다른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사람이 공공연히 하나님께 도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이 봤을 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자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할 때, 하나님과 겨룰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노를 시험할 때가 바로 죄악이 범람할 때이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적대 세력이 멸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진노이다. 하나님의 존엄과 거룩함이 도전을 받을 때, 정의의 힘이 저지당하고 사람이 정의를 찾아볼 수 없을 때는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낼 때이다. 하나님의 본질 때문에 땅에서 하나님과 겨루고 대적하고 맞서는 세력들은 모두 사악하고 패괴되고 정의롭지 않은 세력이며,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사탄에 속하는 세력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빛이며, 흠이 없이 거룩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악하고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게 되면 모두 소멸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은 불로 소돔 성을 멸망시켰다. 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나 물체를 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불을 이용해 인류를 멸한 것은 그 육체뿐 아니라 영, 혼, 육 전부를 멸하여 소돔 성 사람들이 물질세계와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진노를 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런 발현은 하나님의 진노 본질의 일면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할 때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어떤 이유도 하나님이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할 수 없고, 다시 긍휼과 관용을 베풀도록 설득할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 없이 그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고 또한 깔끔하고 마음에 들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는 방식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걱정하고 사랑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볼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없는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오직 긍휼, 관용, 사랑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와 위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고, 피조물이 아닌 어떤 것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사칭이나 모방은 더욱 불가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하나님 성품을 인류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성품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런 성품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공의로운 성품을 갖춘 것은 하나님이 사악함, 암흑, 패역, 인류를 패괴시키고 집어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고 무결한 본질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하나님이 긍휼히 여겼던 자일지라도, 설령 하나님이 택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슬렀다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주저하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측면의 표현이지만 하나님은 절대 원칙 없이, 대상의 구분 없이 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 쉽게 노하지 않고, 진노와 위엄을 쉽게 나타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상당한 정도와 기준이 있다. 이는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쏟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성경에는 사람과 하나님의 대화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는 하는 말이 깊이가 없고 우매하여 어린아이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치지 않았고 정죄하지도 않았다. 특히, 욥이 시련을 겪는 동안 욥의 세 친구와 사람들이 욥에게 한 말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느냐? 그들을 정죄했느냐? 그들에게 노했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하라 하였고, 그들의 과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는 패괴되고 무지한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주요 태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절대 감정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를 총체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어서도, 울분이 극에 달해 쏟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발현이자 참된 표현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분이어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유와 원칙 없이 노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이유도 원칙도 없이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오히려 패괴된 인류의 전유물이다. 사람은 어떤 위치에 오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트집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이유 없이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어떤 자리에 오르지 못한 패괴된 인류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항상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항상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쏟아 내고 교만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표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여기에는 불순함, 음모와 계략, 패괴와 사악함, 심지어 야심과 욕망이 가득하다. 정의와 사악의 싸움에서 사람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화내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의의 힘이 위협당하고 박해당하고 공격당할 때, 사람은 이를 무시하고 회피하거나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사악한 세력 앞에서는 비위를 맞추고 비굴하게 굽실거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분풀이하는 것은 사악한 세력의 출구이며, 이는 육에 속한 사람의 악행이 넘쳐 나고 억제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때 모든 사악한 세력과 사람을 해하는 죄악은 저지당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모든 적대 세력은 드러나고 분리되고 저주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적대시한 사탄의 모든 공범자들은 징벌받고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그에 반해 하나님의 사역은 막힘없게 되고, 하나님의 경륜은 정해진 대로 한 단계씩 앞으로 진행된다. 또한 하나님의 선민은 사탄의 교란도 미혹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자생하고 판치지 못하도록 보장하며, 모든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이 존재하고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다.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패괴된 인류의 화는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행동은 하나같이 다 패괴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고 패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저지당하고 사악한 사물은 멸망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이유는 정의롭지 않고 부정적이고 사악한 사물이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거나 교란시키거나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롭고 긍정적이며 아름답고 선한 사물의 존재를 수호하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규칙과 법칙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의 노는 하나님의 성품이 매우 정당하고 자연스럽게, 또 진실하게 나타난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 이면에 다른 속셈이나 교활함이나 음모가 없고 패괴된 인류에게 공존하는 욕망, 간사함, 악랄함, 폭력성, 사악함 등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기 전에 이미 모든 일의 본질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았고, 이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정의와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한 목표와 태도가 아주 명확하다. 두루뭉술하거나 맹목적이지 않고, 충동적이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며, 원칙이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또한 하나님 진노의 실제적인 면이다. 인류는 바로 하나님 진노의 이 실제적인 면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인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 추락하게 되고,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선한 모든 사물은 멸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피조물의 생존 법칙과 규칙이 파괴되고 심지어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진 후, 하나님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계속해서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지키고 유지하였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진노와 위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악한 사람과 사물,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은 징벌받고 통제되고 멸망된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서 그에게 대항하는 자, 사탄의 공범자 그리고 사탄의 종이 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끊임없이 치고 멸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앞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 가운데 가장 정의로운 일이 지금까지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든 간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져 뜻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을 멸할 것이라 선포하기 바로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하나의 일에서 동시에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되지 않음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완전히 다른 두 본질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과 후에 하나님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본질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낌없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는 자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니느웨 성 사람들도 소돔 성 사람들처럼 패괴되고 사악하고 아주 폭력적이었지만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렸고 그들을 멸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대하는 태도는 소돔 성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순종하고 회개하였고, 그리고 여러 면에서 진실하고 간절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 상을 주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상을 주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 그리고 인류에 대한 진심은 그 누구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위인이나 슈퍼맨 중에 높은 위치, 즉 위인의 입장이나 지고한 위치에 서서 인류나 피조물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느냐? 인류 중에 누가 인류의 생존 현황을 손금 보듯 환히 알 수 있겠느냐? 누가 인류의 생존에 부담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겠느냐? 누가 성을 멸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겠느냐? 또 누가 성의 죄를 사할 자격이 있겠느냐? 누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아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오직 창조주밖에 없다!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아끼고, 이 인류를 사랑하며, 창조주에게만이 이 인류를 내버리지 못하는 참된 마음이 있다. 또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모든 피조물을 아낀다. 그의 마음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끌린다. 그는 인류의 사악하고 패괴된 모습에 분노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인류가 회개하고 신복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을 되돌리고 축하한다. 그의 모든 마음과 생각은 인류를 위해 생기고 움직이며,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인류를 위해 발현된다. 또한 그의 희로애락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인류를 위해 조용하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바치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의 일분일초를 기여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은 아낄 줄 몰랐지만 자신이 손수 창조한 인류는 늘 아껴 왔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에게 주었다…. 그가 조건도 보상도 없이 긍휼과 관용을 베푸는 것은 오로지 인류가 그의 눈 아래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 아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언젠가 인류가 다시 그의 앞에 돌아와 그가 바로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만물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그분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요나가 명을 받들고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긴 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성안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염려와 기대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요나를 질책함으로써 그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 있었다. 즉, 인류는 하나님이 손수 만든 것이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심혈을 기울였고, 모든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며, 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 공급을 누리고 있고, 하나님이 자신이 기울인 심혈로 그 모든 사람을 바꾸어 왔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가 박 넝쿨을 아끼는 것처럼 하나님도 손수 만든 인류를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더군다나 그 성안에는 수많은 아이와 무고한 가축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철없는 나이대인 창조된 인류의 생명을 그렇게 쉽게 끝내거나, 그들의 결말을 그렇게 쉽게 정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장하여 다시는 조상들이 갔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받지 않으며, 니느웨 성의 과거를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하나님은 회개한 후의 니느웨와 니느웨의 미래를 보고, 다시 하나님의 긍휼 아래에서 사는 니느웨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서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창조된 인류가 곧 니느웨의 미래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언급하기 싫은 니느웨 성의 과거를 짊어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 있는 니느웨 성의 과거와 미래를 증언하는 중차대한 일을 책임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 참된 고백에서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 창조주의 마음을 완전히 볼 수 있다. 이는 인류에게 ‘창조주의 긍휼’이 알맹이 없는 단어나 헛된 약속이 아니라 여기에는 구체적인 원칙과 방식, 목표가 있다는 것과 그는 거짓이나 가식이 없고 진실하고 참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그는 모든 시기와 시대에 끊임없이 인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다. 하지만 요나와의 대화는 창조주가 왜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지, 어떻게 긍휼히 여기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관용과 진심을 베풀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창조주가 언어로 표현한 유일한 내용인 것이다. 이 짧은 대화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표현한 것이고, 인류를 향한 자신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긍휼을 많이 베풀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류의 선조에게 긍휼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예전과 같이 오늘날의 후손에게도 한 세대 또 한 세대 긍휼을 베풀고 있다. 비록 하나님의 진노가 종종 인류의 어떤 구석, 어떤 시대에 임했더라도 하나님은 긍휼을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긍휼로 창조된 인류를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끌고 인도하며 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에 대한 그의 참된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한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라는 말씀처럼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손수 만든 만물을 아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에 있는 긍휼이다. 이것 또한 틀림없는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은 니느웨 성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모호함도 없었고, 순수한 진노에서 순수한 관용에 이르렀다. 여기서 하나님의 본질이 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노한 것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안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고 그들에게 다시 관용을 베풀었을 때도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로 인해 바뀐 것이다. 그 기간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본질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지만,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려 진노를 거둔다. 그러나 사람이 완고하게 하나님께 계속 대항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멸할 때까지 노를 멈추지 않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또한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성품이 진노든, 긍휼과 자비이든 모두 사람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기인한다. 만약 하나님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노한다면,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거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인’ 적이 없고 진심으로 신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항상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신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시한 적이 없을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늘 임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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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 기: 

                  
                         ✔ 말씀 찬양 CCM <하나님 성품의 상징>(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위대하고 고상한 하나님의 성품>



5/1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을 느낀 적 있는가>(가사 버전)



1
이 아득한 세상에서 누가 하나님의 검열을 받았는가?
너희 가운데 누가 욥인가? 누가 베드로인가?
하나님은 왜 욥과 베드로를 여러 번 언급하셨겠는가?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을 느낀 적 있는가?
이것을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2
많은 이들이 어둠 속에서 구하고 환난 속에서 기도한다
많은 이들이 사탄에게 묶여 있고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앙망한다
많은 이들이 갈 곳을 모르고 행복에 잠겨 하나님을 배신한다
많은 이들이 은혜를 잊고 사탄의 간계에 충성한다
너희 가운데 누가 욥인가? 누가 베드로인가?
하나님은 왜 욥과 베드로를 여러 번 언급하셨겠는가?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을 느낀 적 있는가?
이것을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너희 가운데 누가 욥인가? 누가 베드로인가?
하나님은 왜 욥과 베드로를 여러 번 언급하셨겠는가?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을 느낀 적 있는가?
이것을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생각해 봐야 한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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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천 : 





4/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한 크리스천의 간증 -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불안해 하는 크리스천 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허난성 진루
최근 들어 저는 형제자매들이 제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제 의견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 때면 못마땅해하거나 그 자리에서 반박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반성했지만, 막상 또 일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패괴 성품을 드러냈지요. 저는 이것 때문에 무척 고민했고, ‘나는 왜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화를 내는 걸까? 하나님을 따른 지 8년이나 됐는데, 왜 내 패괴 성품은 변화되지 않는 거지?’라며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고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 여러 차례 기도했습니다. 제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 근본 원인을 알게 해 달라고 깨우침을 구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영 생활을 하다가 설교 교제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오만 방자함과 교활함, 간사함을 증오합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어느 정도 변화를 이루지만, 오만 방자하고 비이성적이며 교활함과 간사함이 몸에 밴 극소수의 사람들은 변해도 극히 일부만 달라지는 데 그칩니다. 그들이 드러내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지닌 본연의 모습이며, 오만 방자함과 교활함, 간사함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체험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성품 변화를 추구한 적이 없으며, 오직 다른 이의 생명 진입을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그 결과 정작 자신의 변화에는 지장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사람들은 너무 오만 방자해.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 마땅하지.’라고만 여길 뿐, 자신은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은 다른 사람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이렇게 특이하니 변화가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상부의 교제 중에서) 이 설교 교제를 읽고 저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따랐는데도 패괴된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했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다른 이의 생명 진입을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할 뿐 진리를 추구하지도, 자신의 생명 진입을 중시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교회에서 사역할 때 경솔하게 행동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을 제 내적 상태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고, 그들의 상태에 맞춰 보았지요. 또 예배할 때는 진리를 교제해도 다른 사람의 문제와 어려움 해결을 목표로 삼았을 뿐, 저 자신이 진입해야 할 진리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람의 패괴된 본질을 드러내는 하나님 말씀을 교제할 때면 늘 실패한 형제자매들의 사례를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하라고만 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저 자신의 상태에 비추어 인식하거나 진입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 또 한 해가 지났지만, 제 생명 진입은 거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저는 스스로 사랑이 있다고, 형제자매들의 생명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착각했지요. 이러한 점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교회에서 안배받은 본분을 이행할 때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저는 어린 자매님 한 분과 같이 협력하여 본분을 이행했는데, 이에 ‘부담’을 갖고 그 자매님의 생명 진입을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자매님이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을 드러낼 때면 얼른 하나님 말씀과 연관 지어 교제해 주었지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사람 정말이지 건방지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자매님이 앞날과 운명에 연연하며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으면, 저는 해당하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그 자매님과 함께 읽으며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소리를 하지? 복받겠다는 마음이 아직도 저렇게 크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자매님이 마음을 열고 자기는 사람을 너무 잘 의심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저는 입으로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교제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 자질구레한 걸 다 따지네.’라며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자매님이 부정적인 상태의 원인을 찾지 못할 때, 저는 자신을 성찰하고 본성을 해부하라고 알려 주었지만, 막상 제게 일이 임하자 제가 드러내는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 지어 스스로를 인식하고 해부하는 데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은 ‘사람들은 너무 패괴되었어. 그러니 마땅히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 해.’라고만 생각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하나님 말씀 밖에 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진입에만 신경을 쓰면서 저 자신의 진입은 그르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온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모두 같은 본성과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연관 지어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며 생명 진입을 이루는 것은 중시하지 않고, 시종일관 다른 사람에게만 눈길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교만한 행동 아니겠습니까? 해야 할 일을 회피한 것 아닐까요? 바로 그때, 저는 저 자신이 길거리의 거지처럼 가난하고 가련하며,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샌가 마음이 통회로 가득 차게 되었지요.

훗날,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앞날에 대한 미련은 내려놓고, 현실을 이야기하자.”라는 말을 한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복받으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 하면서 스스로는 어떠하냐? 설마 다른 사람은 단념시키면서 자신은 복을 구하겠다는 것이냐? 다른 사람은 복받지 못하게 하면서 자신은 몰래 바라다니 대체 무슨 인간이 그러냐? 정말 사기꾼이로구나! 그렇게 하면 양심에 참소를 받지 않느냐? 빚진 마음이 들지 않느냐? 그건 사기범이 아니냐? 다른 사람의 속말을 유도해 놓고 자신의 속내는 전혀 말하지 않다니, 정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천박한 존재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42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예리한 칼날처럼 마음을 찌르자 저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사기범의 행위였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듯 행동했지만, 사실은 열성으로 하나님께 신뢰를 얻어내 죽음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또 겉으로는 진리를 교제하여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은 글귀와 도리로 형제자매들의 존경과 앙망을 끌어냄으로써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앉으려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지위의 복을 탐내거나 교만하게 굴지 말라고 교제했지만, 정작 저 자신은 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 했으며, 형제자매들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들이 제 부족한 점을 꼬집을 때면 못마땅한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이 밖에도 저는 사람들에게 복받으려는 속셈을 버리고, 장래나 운명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저 자신은 앞날과 퇴로를 생각하고 계산하며, 이해득실만 따졌습니다. 사람들의 간사함과 의심 많은 태도를 혐오하면서 정작 저는 수시로 남의 눈치를 보고, 저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신경 썼고요. 또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인식하라고, 생각을 다잡고 본성을 해부하는 데 집중하라고 했지만, 제 마음에는 티 나지 않는 악의를 품고 있었으며, 모든 언행에 있어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 일거수일투족을 반성하면서 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늘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면서 글귀와 도리를 가르치는 것에 만족했고,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것은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스스로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생명 성품도 이렇다 할 변화를 이루지 못했지요. 제 성품은 오히려 갈수록 교만해졌습니다. 『알고 있는 도리가 많을수록 성품은 더욱 교만해진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저는 줄곧 제가 지닌 도리를 제 밑천으로 여기면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과 제 생명 진입은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이런 체험이 어떻게 생명 성품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은 실질적인 사역과 말씀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를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본분 이행의 기회를 통해 그 진리들을 실생활로 가져가 체험하고 진입하는 한편, 형제자매들에게 공급할 수 있게 해 주시지요. 그런데 저는 글귀와 도리를 갖추는 것만 중시하며,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제 직책으로 여겼습니다. 남들에게는 진리를 실행하라고 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진입하지 않았지요. 그 결과,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는데도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으니, 남들에게는 물론, 저 자신에게도 해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글귀와 도리로 무장한 채, 다른 사람을 가르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데만 집중할 뿐,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거나 체험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자신의 진입으로 연결하지도 않았지요. 그 결과, 그는 오랜 세월 사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교만해져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심각하게 거슬렀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었지요. 제가 걸어온 길이 바울의 길과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대로 계속 회개하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 저 역시 마지막에는 바울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기도 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여기까지 깨닫고 나자 통회와 자책,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제가 사역하는 것, 글귀와 도리로 무장하는 것만 중시하고 생명 진입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음에도 성품이 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겠지요. 저는 제 교만과 무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증오합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진리에 진입하고 성품이 변화될 기회를 많이 놓쳤으니까요. 앞으로 저는 당신의 말씀 속에서 더 많은 진리를 구하고 깨달으며, 저 자신을 더 깊이 인식하도록 하겠습니다.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진리에 진입하고, 진정한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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