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바리새인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 관련된 하나님 말씀:
『‘바리새인’이라는 호칭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바로 외식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모든 일에 가식적이어서 언제나 훌륭한 사람인 양,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인 양 위장한다. 그들의 본모습이 정말로 그러하겠느냐?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태도와 모습이 진실하지 않은 거짓되고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진실한 면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채 드러내지 않는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종교적 지식과 이론들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입에 달고 다니는 글귀상의 도리가 되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렇듯 ‘올바른 것 같은’ 도리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포장한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올바르고 훌륭해 보이며,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경건하고 겸손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포용할 줄 알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껍데기를 들춰 보면 전부 거짓과 위장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뒤에서는 건성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고생을 마다치 않으며 헌신하는 것 같지만 뒤로는 교회 밥을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전부 거짓이다. 그런 자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바리새인’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이방인 가운데서 생겨났겠느냐? 그렇지 않다.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났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겠느냐? 설마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느냐? 그들이 그렇게 변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를 무장하는 도구로 삼고, 그것을 밑천으로 밥벌이를 하며 밥을 얻어 먹었다. 그들은 종교적 도리를 전했을 뿐, 단 한번도 하나님의 도를 행한 적이 없다. 그들의 그 소위 ‘올바른’ 행동과 태도, 버림과 헌신 등은 다 사람의 의지로 억누르고 꾸며낸 것으로, 전부 거짓이며 위장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티끌만큼도 없다. 아니, 경외심은커녕 참된 믿음조차 없다. 게다가 그들은 불신파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런 길에 들어서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이것이 두렵지 않으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지표> 중에서
『겉으로 보기에 좋은 행동을 하는 것, 어떻게든 영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영적인 사람으로 행세하고 말과 행동으로 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 사람의 관념과 생각에 맞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영적인 척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외식하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글귀나 도리를 말하는 한편, 남에게는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진리 추구를 중시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을 처리하거나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진리를 찾지도,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 또한, 진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고, 일이 닥치면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이 같은 외적 행동과 내적 상태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믿어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없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게 되겠느냐? 늘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겠느냐?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채우지 않겠느냐? 늘 글귀나 도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포장하며, 바리새인이나 이른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행하는 것은 어떤 행실이냐?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을 내세워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일 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다른 꿍꿍이를 부린다. 이들이 종교 바리새인과 다를 바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어떤 일에 맞닥뜨렸을 때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며, 양심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모든 일을 지혜로이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원칙 있게 일한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말로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온종일 울상을 짓고, 능청스럽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니 정말 못 봐줄 노릇이다! “왜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겉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줘야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무성의하게 말로만 하나님을 대하는 자들은 모두 위선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령의 감동이 없음에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이들은 종교 의식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겉으로 보이는 경건함이나 슬픔의 눈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자들이 발전성이 있겠느냐? 어떤 자는 겸손해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말한다. 또 어떤 자는 순한 양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 힘도 없는 양 행동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정말 그렇단 말이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활발하고 자유로우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또한, 정직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존엄성을 갖추어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새 신자들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아 한동안 훈계와 깨뜨림을 받아야 한다. 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겉으로는 티 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네가 매일 여기저기 복음만 전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에만 급급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규례와 도리 속에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종교 인사에 속하며 외식하는 사람이다.
종교인들은 함께 모이면 “자매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마디, 몇 자의 말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힌 더러운 것을 뱉어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혐오스럽고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 거기엔 솔직함만 있을 뿐 거짓도, 체면치레도, 꾸밈도 없고 세속적인 규율도 없다. 하지만 겉면의 열정이 많고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누가 찬송가를 부르면 춤추느라 밥솥의 밥이 다 타 버린 것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함과 존귀함이 없고 너무나 경박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제가 없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제할 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죄스러워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표면적인 열의나 행동이 아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인 좋은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육을 의미한다. 외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의 성품만을 의미할 뿐, 생명을 의미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공급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영적인 것이라 여기겠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기호가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요, 너의 습관은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것들이다. 하나님께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고 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겉으로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좋은 행위만 있을 뿐 실제가 없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종교 인사이다! 외적인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가식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정상적인 영 생활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을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게 해 준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현재 하나님이 하려는 일에 대해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옛것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모든 실행이 생명 성장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기도는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중얼거리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번 대성통곡함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운용하는 훈련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범사에 말씀의 인도를 구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소극적으로 되지도, 게을러지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한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이 다 행위만 중요시할 뿐, 생명의 성장을 위해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는 치우친 것이다. 새로운 빛은 받아들이지만 실행법을 바꾸지 않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하나님 말씀을 과거의 종교 관념과 결합해 받아들인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 관념을 띤 도리이지, 순전한 오늘날의 빛이 아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실행에는 불순물이 끼어 있으며, 형식만 바꿨을 뿐 내용은 그대로이다. 그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행해도 그것은 외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매일 사람을 인도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낡아 빠지고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견해와 인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네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겉으로만 열정적이고 바쁠 뿐, 행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제 하나님과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목적이 있어야 사람에게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 생기게 된다면 이런 순종은 조건부 순종이자, 개인의 앞날을 전제로 한 순종이며,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네가 그저 장래와 운명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낫다. 너의 그런 ‘믿음’은 자기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고, 자기 위안이며 자아도취다. 너의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지를 구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네 본심이 정말 이러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높이고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이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만약 네 본심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말하고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심지어 너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너의 말투가 부드럽고, 태도가 온화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의 일거수일투족과 표정이 적절해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너의 본심과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서 본다면 네가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양과 같이 순종하면서 마음속에는 악의를 품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이며, 직접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는다. 성령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들을 한 명씩 드러낼 것이다. 외식하는 자는 반드시 성령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벌하고 해결할 것이니 모두 조급해하지 말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중에서
💁 참고 설교:
『목회자가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아닌지 알아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그들의 표면적인 태도가 아닌, 주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봐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신자들을 꽤나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에게는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랑으로 가득하지만, 주님과 진리를 대하는 마음은 미움과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외식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언뜻 보기에 그들은 사역하느라 몹시 고생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면류관과 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주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외식하는 사람을 가려내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속, 곧 마음가짐을 봐야 합니다. 이런 판단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지 알아보려면 가장 먼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준행하는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지를 봐야 하며, 나아가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지 봐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배할 때 늘 성경을 가르칩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일에 있어 성경의 규례를 지킬뿐더러 사랑으로 다른 이를 대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 23:5)라고 그들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한참 동안 기도합니다. 금식을 할 때는 짐짓 얼굴을 흉하게 해서 모두에게 자신이 금식 중이라는 것을 알리지요. 이 밖에도 그들은 남들에게 보여 주려고 거리에서 구제를 행하고 의를 행하며,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 밥을 먹어선 안 된다’와 같은 옛사람들의 종교 의식까지 대대로 지켰습니다. …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옹호와 존경을 받기 위해 사소한 일들을 크게 부풀려 스스로를 포장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이끌어 종교적인 예배와 찬송, 찬미를 하거나 조상의 유전을 고집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진리의 실제에 들어가는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겉면의 행위로 신자들을 미혹하고 속였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 때, 경건한 척하던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등을 돌렸습니다. 또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거짓 증거를 날조하며, 미친 듯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모함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자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막았으며, 결국에는 집권자들과 결탁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외식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바리새인들의 민낯이 낱낱이 폭로되었고, 적그리스도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바리새인의 본질은 외식하고, 음험하고, 간사하고, 악독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도에 등을 돌린 채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는 거짓 목자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을 미혹하고 억압했으며, 교계를 통제해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광기 어린 사람들처럼 성육신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정죄하고 증오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들이 독립 왕국을 세우려는 적그리스도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리새인의 외식하는 갖가지 양상을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들을 오늘날 교계 목회자들에게 대입해 보면, 그들이 바리새인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며, 주님을 받들거나 증거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을 믿고 숭배하며 높이 떠받드는 사람들에 불과하지요. 그들은 때에 맞춰 예배하고, 새벽기도를 하고, 떡을 떼고, 성찬을 하는 등 갖가지 종교 의식들을 지킬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겸손과 인내, 경건과 사랑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더더욱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그들의 사역과 설교는 오직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에만 치중할 뿐,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행하고 체험해야 하는지, 주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널리 알리고 증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등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에 대해서는 찾지도,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도 않고, 나아가 사람들을 말씀대로 실천하고 준행하는 길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말합니다. 스스로를 자랑하고 치켜세워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얻기 위해서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자, 목회자들은 교계에서 신자들을 영원히 장악하고 통제해 독립 왕국을 세우겠다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 공공연히 예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판단하고 공격하고 모독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도를 찾는 신자들을 가로막았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신랑이로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맞으라고 일러 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 힘을 다해 교회를 봉쇄하고 신자들을 가로막아 참도를 찾거나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는 형제자매들을 비방하고 욕하고 폭행하라고 신자들을 부추겼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은 이웃에 대하여 거짓말과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목회자들은 각종 유언비어를 지어내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했으며, 심지어 마귀 중국 공산당과 결탁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계 목회자들의 모든 언행은 주님의 가르침에 완전히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소경된 인도자이자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에 관한 대표적인 문답(선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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