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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 <하나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했다>



생명력을 가진 하나님 말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의 어조와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심혈을 쏟아부었고
우리 때문에 침식을 잊었고 우리 때문에 울었으며
우리를 위해 탄식하고 우리를 위해 병으로 신음하셨다
또한 그는 우리의 종착지와 구원을 위해 굴욕을 견뎠으며
우리의 무감각과 패역 때문에
마음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셨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하심은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자
패괴된 사람은 절대 갖출 수도, 이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고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고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고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고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갖추지 못한 것이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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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8)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하지만, 그가 땅에 온 목적은 사람에게 그가 입은 육신의 형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를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친히 사람을 인도하여 새 시대로 진입시키려 온 것이다. 그리스도가 입은 육신의 역할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을 위한 것이지, 사람에게 육신의 본질을 완벽히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육신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으며, 모두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으로 한다. 그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모습을 모두 나타내지는 않는다. 또한 육신이 행하는 사역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초자연적이거나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행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행사를 대대적으로 퍼뜨리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을 낮추고 감추어 육신에 거할 뿐이다. 그리스도 이외에 그를 사칭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속성이 없다. 교만하고 스스로를 높이는 거짓 그리스도의 성품을 통해 어떤 육신이 그리스도인지 판별할 수 있다. 거짓 그리스도일수록 자신을 드러내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속성이 없다. 또한 그리스도에게는 거짓 그리스도의 성분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육신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지, 사람에게 그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고, 그가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본질을 증명한다. 그의 본질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분은 그가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본질로 결정된다. 그는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지니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행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는 영과는 다른 육신이며, 영의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의 외형을 지닌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나 정상적이고 연약하든,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든 그의 신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성육신 하나님에게는 정상 인성과 정상 인성의 연약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성의 기묘함과 측량 불가능함, 그리고 육신의 모든 행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확실히 지니고 있으며, 조금도 공허하거나 초자연적이지 않다. 그가 이 땅에 온 주요 목적은 사역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의 위력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인성이 그의 본질은 아니다. 그의 본질은 신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서 직분을 행하기 시작할 때 신성의 어떠함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의 인성은 그저 육신의 정상 생활을 유지함으로써 신성이 육신에서 정상적으로 사역하게 할 뿐이고, 사역을 지배하는 것은 오롯이 신성이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면 자신의 직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의 모든 사역이며, 사람은 사역을 통해 그를 알게 된다. 그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신성의 어떠함을 완전히 나타낸다. 거기에는 인성의 성품이 들어 있지 않고, 사유나 사람의 어떠함 또한 들어 있지 않다. 그의 모든 직분이 끝날 때, 그는 자신이 나타내고자 했던 성품을 완벽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의 사역은 어느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으며, 그의 성품 역시 아주 자유롭게 나타난다. 머리로 지배하거나 생각을 통해 가공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이 열악하거나 조건이 여의치 않아도 그는 적절한 때에 그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나타내지만 그리스도가 아닌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그를 대적하거나 그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가 나타낸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 진심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절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것을 이유로 그리스도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아주 어리석지만, 무엇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는 알고 있다. 단지 많은 사람이 본인의 속셈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할 뿐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가 나타내는 신성은 분명 존재하며, 사람은 육안으로 직접 그의 사역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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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2)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9)

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2)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2)



첫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는 육신이 해야 할 첫 단계의 사역만 마쳤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끝내기 위해 다시 한번 육신으로 돌아와서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모습과 실제를 살아 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정상적이고 평범한 육신으로 나타냄으로써 육신으로 끝내지 못한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입은 육신은 첫 번째의 육신과 본질 면에서 같지만, 더 실제적이고 정상적이다. 이로 인해 두 번째의 성육신이 받아야 할 고난은 첫 번째 때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난은 육신의 직분으로 인해 생긴 것이지, 타락한(직역: 패괴된) 인간이 받아야 할 고난과는 다르다. 또한, 그 고난은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가장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으로 직분을 이행해야 하기에 그 육신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일수록 직분을 이행할 때 겪는 고난은 더 커진다. 하나님의 사역은 지극히 평범한 육신에서 발현되므로 초자연적인 모습이 조금도 없다. 육신이 평범한 데다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까지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겪는 고난은 초자연적인 면을 가진 육신이 겪는 고난보다 훨씬 더 크다. 그 고난은 모두 육신이 실제적이고 정상적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이 직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고난을 통해 성육신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겪는 고난이 더 크고, 실제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사람의 관념은 더욱 심해지며,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나 실제적인 육신일수록, 그리고 정상인의 완전한 이성과 요구를 지닌 육신일수록 하나님이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더 잘 담당할 수 있다. 예수는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육신으로 속죄 제물이 되었다. 즉,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사람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구원한 것이다. 두 번째의 성육신은 완전한 육신으로 정복 사역을 하며, 사탄을 물리친다. 완전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만이 완전한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고, 강력하게 증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과 정상적인 면을 통해 이루는 성과이지, 초자연적인 이적과 계시를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번에 성육신한 하나님이 이행해야 하는 직분은 말씀을 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다. 즉,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하여 행하는 사역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며, 육신의 기본 사역 또한 말씀 선포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드러내며, 온전케 하고, 내치는 목적을 이룰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정복 사역의 과정에서 철저히 완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의 속죄 사역은 성육신의 초기 사역에 불과했다. 정복 사역을 하는 육신이야말로 성육신의 모든 사역을 보완할 수 있다. 성별을 봐도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졌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본질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가 남자를 만들고 여자도 만들었으나 그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계 사역에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는 말씀을 통해 성과를 얻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이번 성육신의 사역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능은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정상 인성으로 하는 사역은 표적을 보이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보기에 두 번째의 성육신은 첫 번째의 성육신보다 훨씬 정상적으로 보인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번 성육신은 예수의 성육신과는 다르다. 똑같이 하나님의 성육신이기는 하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예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번 성육신에게서는 사람의 병을 고쳐 준다거나 귀신을 쫓는다거나 물 위를 걷는다거나 40일 동안 금식하는 등의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 어떤 표적과 기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예수가 했던 것과 같은 사역을 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입은 육신의 본질이 예수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직분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의 사역을 망가뜨리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실제의 말씀으로 정복하면 기적으로 사람을 탄복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이 단계는 성육신의 사역을 완전케 하기 위한 사역이라고 한다. 오늘날, 네가 볼 수 있는,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완전한 육신으로, 어떤 초자연적인 면도 지니고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병도 앓고 의식주 활동도 하는 완벽한 육신이라는 말이다. 만약 이번 성육신도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누군가에게 죽으라 명해 그 사람이 바로 쓰러진다면 어떻게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이방으로 확장하는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자 구속 사역의 첫걸음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했기에 더 이상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말세에 예수와 동일한 ‘하나님’이 와서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그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같아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악령이 입은 육신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한 번 끝낸 것을 영원히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행한 사역과 다르다. 하나님은 말세에 정복 사역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육신에 실체화하였다. 그는 사람을 위해 병을 고쳐 주지도,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으며, 그저 육신으로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할 뿐이다. 이런 육신만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며,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을 완전케 할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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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6/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2)


6천 년 경영 사역은 율법시대, 은혜시대,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3단계로 나뉜다. 이 3단계 사역은 모두 인류, 즉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구원 사역이 3단계로 나뉘고 사탄과의 싸움도 3단계로 나뉘며, 이 두 부분의 사역은 동시에 진행된다. 사실,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한 단계 사역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사탄과의 싸움도 단계와 시기를 나누어 진행되며, 인류의 필요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정도에 따라 사탄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싸움’이라고 하면 사람은 두 군대가 맞붙어 싸우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탄 간에 벌어지는 전쟁을 상상한다. 이것은 그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구상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은 바로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3단계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3단계로 나뉘며, 이를 통해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게 된다. 하지만 사탄과 싸우는 모든 사역의 실상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등의 몇 단계 사역을 통해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탄과의 싸움은 사탄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즉,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켜 사탄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사탄을 물리치고 나면, 그러니까 사람을 철저히 구원하고 나면 수치당한 사탄을 단단히 결박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의 본질은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사탄과의 싸움은 대부분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사람을 정복하는 최종 단계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마지막 사역, 즉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하여 창조주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면 철저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마지막 사역이자 사탄을 물리치는 마지막 단계의 경영이다. 이 단계의 사역이 없다면 최종적으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도,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도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사람은 사탄에게 속박당해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탄은 경영 사역에서 물리칠 대상이 되었다. 사탄이 사람을 점령했고, 사람은 또 전체 경영의 밑천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즉,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사람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켜 본래 이성으로 회복시킴으로써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로잡혀 간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벗어나면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결국 사람을 빼앗아 오고, 사탄은 패하게 된다. 사람은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겠지만, 사탄은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사역도 끝을 맺게 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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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3)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9)





6/2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1)


어째서 늘 3단계 사역을 언급하겠느냐? 시대의 변천과 사회의 발전, 자연의 변모는 모두 이 3단계 사역의 변화에 따라 바뀐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에 따라 바뀔 뿐, 스스로 발전하지 못한다. 3단계 사역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피조물과 각 종교 각 교파, 각계의 인사들이 다 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어느 교파에 속하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순종해야 한다. 이 사역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교주도 행하지 못한다. 세상이 몇 개의 큰 종교로 나뉜다고는 하나 종교마다 교주와 통솔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 또한 지구상의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 국가에도 여러 종교가 존재한다. 대국이든 소국이든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지만, 세계 각지의 종교 종류가 얼마나 되든 결국 전 우주의 모든 사람은 한 분의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어떤 종교의 교주나 통솔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류를 이끄는 이는 어느 교주나 통솔자가 아니라 천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이다. 이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몇몇 큰 종교가 있지만, 그 종교가 얼마나 크든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그 어떤 종교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발전과 사회의 교체, 자연 과학의 발전은 다 창조주의 안배를 떠날 수 없다. 이 사역들은 어느 한 교주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주는 어느 종교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이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교주는 그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교주는 통솔자일 뿐 하나님(창조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만물은 창조주의 수중에 있기에 마지막에는 모두 창조주의 수중으로 돌아올 것이고, 인류는 본디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기에 어느 교파든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가운데 지극히 높은 분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류를 적합한 종착지로 인도할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여 각기 부류대로 나눴으니 마지막에도 그가 자신의 사역을 행하여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행한 3단계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고, 또한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다. 3단계 사역의 사실은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도한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단계 사역이 끝나면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전 우주 위아래에 오직 이 하나님 한 분만이 존재하며 다른 종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할 수 없는 자는 세상을 끝낼 수 없고, 세상을 창조한 이는 틀림없이 세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시대를 끝낼 수도 없으면서 다른 이에게 심신을 수양하고 교양을 쌓으라고만 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도, 인류의 주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이처럼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행하는 이는 오직 한 분뿐이며, 이 사역을 행할 수 없는 자는 분명 하나님이 아닌 원수이다. 사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다. 모든 사역은 다 이 참하나님 한 분이 행하고, 온 우주도 다 이 하나님 한 분이 주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든 중국에서 사역하든, 영으로 사역하든 육신으로 사역하든, 모두 그 자신이 행한 것이며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전 인류의 하나님이기에 그 어떤 조건의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이상(異象)이다. 피조물로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사역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야 하며 나아가 하나님이 사역하는 모든 의미까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합격된 피조물이 아니다! 피조물로서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인류의 역사(歷史)와 하나님의 모든 사역도 모르며, 더욱이 인류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누가 전 인류를 다스리는지도 모른다면, 본분 이행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해 왔고, 땅에서 사람을 창조한 이래로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 성령은 끊임없이 역사하고 사람을 인도하며 한시도 사람과 떨어진 적이 없으나,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일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깨닫지 못한다. 피조물인 네가 자신의 역사(歷史)를 모르고,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누가 이끌어 주었는지도 모르며, 하나님이 행한 사역도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모른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오늘날 창조주가 또 친히 모든 사람을 이끌어 주면서 그의 지혜와 전능, 구원과 기묘함을 보여 주었는데도 결국 네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너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 아니겠느냐? 사탄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사람이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도태될 대상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사역을 알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자는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려거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3단계 사역이 모두 끝날 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만들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들이고, 3단계의 구원 사역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는 마지막에 이루려는 사역이다. 그들은 6천 년 경영 사역의 결정체이자 최후에 사탄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마지막에 살아남을 자들이다. 너희 모두가 이 사람들 중의 일원이 될 수도 있고, 절반 혹은 몇 명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너희의 의지와 추구에 달려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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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발췌문 132)











6/1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4)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원본 그대로의 기록이다. 말씀은 아주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아주 풍성하다. 그 속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이유와 배경,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할 때의 기쁨과 벅찬 심정이 담겨져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기를 희망한다’는 간절한 마음도 담겨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긍휼히 여긴다는 것을 보았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와 고심을 보았다. 더욱이 이번 경륜 사역의 뒤에서 하나님이 혼자 감당하고 있는 슬픔과 아픔이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는 이 말씀에서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뜻깊은 말씀이자, 후세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와 크나큰 영향력을 주는 말씀이다.

사람은 진심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여기에서 보게 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복은 크지 않으냐? 어느 정도로 크냐? 여기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전무후무한 복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의 외아들을 ― 그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주: 여기서 ‘바치다’라는 말 대신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로 말해야 한다.]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복을 내렸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한 복은 무엇이냐? 바로 그의 자손을 많아지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많아지게 한다는 것이냐?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어떤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냐?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느냐?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고 조금의 원망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구대로, 명령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에게 그러한 복을 약속한 것이다. 그 약속에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그 당시의 하나님의 마음과 관련된다. 그 중요한 말씀을 너희는 보았느냐? 아마 너희는 주의 깊게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하였다. 그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할 때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보통 어디를 가리켜 맹세하느냐? 다 하늘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을 향해 맹세하고 서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했다는 이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정확한 해석을 해 주면 너희는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번 외로움을 느꼈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혹은 ‘무의식적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을 취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자기 자신에게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는 이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이 행동으로부터 너는 너 자신을 연상해 볼 수 있다. 네가 가슴에 손을 대고 자신에게 말할 때, 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알고 있지 않느냐? 너의 태도는 아주 진지하지 않겠느냐? 너는 아주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지 않겠느냐? 여기에서 보여진 것같이,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할 때의 태도가 아주 진지하고 진실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며 약속을 주었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에게 ‘나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할 것이다. 그는 내 말에 순종했으며, 내가 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는 이 말씀을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라엘 선민들이 나오게 하고, 그다음 그 선민들을 이끌어 그의 사역에 발맞춰 함께 나아가게 하기로 뜻을 정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담당하게 하려 했다.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이 선포하고자 하는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지게 하며, 그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바람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이것은 복받은 일이 아니냐? 인류에게 있어서 이보다 큰 복은 없으니, 이것이 가장 큰 복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받은 이 ‘복’은 그의 자손이 많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그의 경영, 그의 당부와 사역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했을 때,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했을 때, 하나님은 이미 뜻을 정하였다. 하나님이 이렇게 뜻을 정한 과정은 매우 진실하지 않으냐? 아주 실제적이지 않으냐? 하나님은 그때부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심혈을 기울이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 그의 모든 것, 더 나아가 그의 생명까지 그들에게 베풀어 주기로 정한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서부터 그의 행사를 보여, 사람들에게 그의 지혜와 그의 권병과 능력을 보게 하리라 뜻을 정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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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사람의 패역함은 하나님을 진노케 한다> (솔로 찬양)



하나님의 진노가 산과 강을 뒤흔들 때는
사람이 ‘겁낸다’ 하여 다른 지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크게 노할 것이며
그 어떤 존재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리고
그들에게 합당한 보응을 내릴 것이다
그 순간 천둥 번개는 성내는 파도 같고
무너지는 많은 산 같을 것이며
사람은 패역으로 인해 모두 번개에 맞아 죽고
사물은 우렛소리로 인해 모두 소멸할 것이다
전 우주가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만물은 원래의 생기를 되찾을 수 없고
만인은 우렛소리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빗발치는 번개 속에서 사람은 한 무리씩 급류에 쓰러져
산에서 밀려오는 물에 휩쓸려 가고
어느새 사람의 ‘종착지’에는
또 ‘사람’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바다 위에는 사람의 시체가 떠다니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로 그에게서 매우 멀어진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영의 본질을 거스르고
패역함으로 하나님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는 사람의 시체가 떠다니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로 그에게서 매우 멀어진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영의 본질을 거스르고
패역함으로 하나님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땅에서
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이 준 약속을 누리고 있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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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6)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대가를 치르고 외적 행위가 아주 좋아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 행위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고 확정할 수 있느냐?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흔히 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을 가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있다고 여기느냐? 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가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보았을 때 영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사람,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에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말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들의 일을 하는 본질과 원칙,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인성 본질을 전혀 분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탄복하고 우러러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숭상하는 우상,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사람, 참으로 좋은 결말과 좋은 종착지가 있을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런 ‘생각’은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냐?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이냐? 이 일로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먼저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에서 언급한 사람의 관점과 실행법, 사람이 스스로 취한 실행 원칙,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에 중시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요구와 무관하다.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이 깊든 얕든, 글귀의 이치이든 실제이든,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사람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름길로 가면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고 알고 있는 좋은 행위와 방법을 종합해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직접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인위적인 좋은 행위로 진리 실행을 대체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항하는 밑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밑천이 생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서슴없이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고 자신의 마음속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다. 사람에게 이런 미련한 행위와 우매한 사고방식, 혹은 단편적인 사고방식과 실행법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오늘 알려 주겠다. 그 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에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혐오하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무엇을 버리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람에게 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안다면, 사람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멋대로 다른 사람을 숭상할 수 있겠느냐? 또 일반 사람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사람의 견해는 다소 이성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괴된 사람을 함부로 자신의 우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 제멋대로 몇 가지 간단한 규례나 원칙을 지키는 것을 진리 실행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5/19/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너는 믿음으로 많은 것 얻었네>(가사 버전)


1
너는 이런 정복 속에서 바른길 찾았고
‘사람’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으며
그의 고운 얼굴도 보았고
사람의 근원, ‘불후의 역사’도 알았네
너는 ‘믿음’ 때문에 수많은 심판과 저주 받았지만
진실한 믿음 생겼기에 가장 참되고 소중한 것 얻었네
진실한 믿음, 그 믿음 때문에

2
너는 이런 정복 속에서
인류의 조상과 인류가 패괴된 기원을 알았고
축복과 받아야 할 화를 입었네
기쁨과 위안도 얻었고 질책의 말씀과 징계도 받았네
너는 ‘믿음’ 때문에 수많은 심판과 저주 받았지만
진실한 믿음 생겼기에 가장 참되고 소중한 것 얻었네
진실한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너는 심판 속에서 피조물의 종착지 보았고
창조주의 사랑스러움 보았네
이런 정복 사역에서 너는 인생을 분명히 알았고
하나님의 팔을 보았네
그 작은 믿음 때문에 이 모든 걸 얻었으니
네 믿음도 커지지 않았는가?
네가 얻은 것이 많지 않은가?
진실한 믿음, 그 믿음 때문에
그 믿음, 믿음 때문에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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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 <진리 있는지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시는 하나님> (솔로 찬양)


지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결말을 정하실 때이지
사람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가 아니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말과 행위
그들이 따라온 과정, 원래 지닌 속성이나 최종적인 태도를
하나하나 그의 기록부에 적으시리
그러니 누구든 하나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뉘리
그러니 누구든 하나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뉘리
하나님은 사람의 종착지를 정하실 때
그 사람의 나이나 관록, 겪은 고난의 양을 보시지 않고
더욱이 가련한 정도를 보시지 않음이라
진리가 있는지만 보실 뿐, 다른 선택 기준은 없음이라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됨을 알아야 하리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는 것이고
저지른 온갖 악행 때문에 죗값을 치르는 것임이라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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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 천 :








3/23/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2)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2)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내가 사람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결말을 확정할 때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위, 그리고 그가 따라온 과정과 원래 지니고 있는 속성, 혹은 그의 최종적인 태도를 하나하나 나의 기록부에 적어 놓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내 손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모두 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는 것이고, 그들 스스로 저지른 갖가지 악행으로 인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나의 계획은 시종일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저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말하는 대상이 점점 줄어들고, 진정으로 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내 계획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으며, 반대로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 계속 변하고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빌붙어 아부하던 모든 사람이 내게 냉담해져 결국에는 나를 문밖으로 쫓아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너희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미온적이던 데서 반감과 혐오로 바뀌어 결국에는 너희를 징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희를 징벌하는 날이 되면 나는 여전히 너희를 볼 수 있지만 너희는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 속에서 사는 것이 무료하고 답답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생활 환경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너희의 악한 말에 상처받지 않고 더럽기 짝이 없는 너희의 행위를 멀리함으로써 너희가 계속 나를 속이거나 건성으로 대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너희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너희에게 권할 것이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고,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모두에게 이로운 일과 자신의 종착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재난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 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동영상 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2)

 

8/09/2019

제19편 (3)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만물은 나의 존재로 말미암아 자기 자리에서 순종하며, 나의 징계가 없다고 해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은 땅에서 각 나라의 경계를 이루었고, 물은 땅 사이에서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공기는 땅의 공간에서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물체가 되었다. 오직 사람만이 진심으로 내 요구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만물 중에 패역한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나에게 진정으로 순종한 적이 없으므로 나는 계속 사람을 엄격히 다스리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 정말 나의 영광을 온 우주 아래에 두루 퍼지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모든 영광을 사람에게 보일 것이다. 사람은 더러워서 나의 영광을 볼 자격이 없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나를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감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광을 사람에게 보인 적이 없었고, 사람은 계속 타락하여 죄의 심연 속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사람의 불의를 용서해 준 적이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보호할 줄 모른 채 언제나 ‘죄’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고 ‘죄’ 때문에 해를 입어도 방치하였다. 이것이 사람에게 자애심(自愛心)과 자존감이 결여된 것이 아니란 말이냐? 사람들 속에 진실한 사랑이 있느냐? 사람의 충성심은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진실이라는 것 속에는 가짜가 섞여 있지 않느냐? 사람의 충성심은 모두 혼합물이 아니냐?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순수한 사랑이다.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하고, 또 나를 알고자 해도 내게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은 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에게 ‘충성심’을 바친다면 나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나를 신뢰하지 못해 내게 자신을 조금도 헌신하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로 인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사람을 처리하여 적합한 종착지를 주면 그만이다. 하늘에서 천둥이 칠 때 사람을 쳐서 쓰러뜨리고, 큰 산이 무너질 때 사람을 파묻을 것이다. 맹수가 굶주릴 때 사람을 통째로 삼켜 버리고, 바닷물이 세차게 불어날 때 사람을 수몰시킬 것이다. 세상에서 서로 잔인하게 죽일 때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난 재해로 인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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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