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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사역으로 하나님을 알아 간다> (가사 버전)


1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신다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제압하여 탄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나타낼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이적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목양하여 순종케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것이 말씀의 목적이다
말씀으로 연단하든 훈계하든 책망하든 공급하든
여러 각도의 말씀으로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지혜와 기묘를 알게 한다

2
오늘날 하나님은 실제적인 사역을 하기에 절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의 실제적인 사역이 교란받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말씀으로 온전케 한다 하면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낸다면
사람이 진실로 믿는지를 드러내지 못하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에겐 종교적인 것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것은 그 관념과 초자연적인 것을 없애 하나님의 실제를 인식하게 하며
막연하고 비현실적이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실제에 대해 인식이 있으면 정말 보배인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해야 할 것은 진리이고
추구해야 할 것은 생명이지 표적과 기사가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 말씀 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하나님 말씀은 권병이자 심판>(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국적과 민족의 관념을 깨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라>

                       🎈 말씀 찬양 CCM <피조물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맡겨야 한다>(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본분을 다하는 것은 피조물의 사명>(가사 버전)








6/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사람을 향한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가사 버전)


성경 속의 한 장면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는 감동적이고 따뜻하다
그림에 하나님과 사람만 담겨 있지만 
그 관계는 너무나 친밀하고 사람의 부러움을 자아낸다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값없이 사람에게 주어진다
순진무구하고 얽매일 근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눈앞에서 행복하게 산다
하나님은 사람을 염려하시고 사람은 보호 속에 산다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떨어질 수 없다
인류를 창조하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을 책임지셨다
어떤 책임인가? 바로 사람을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길 바라셨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기대이다
그런 기대를 품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그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나님 뜻을 나타내는 이 간단한 말씀은
하나님 마음이 이미 인류를 염려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이 간단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 볼 수 있다
하나님 마음속에 사랑과 염려가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염려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양심과 인간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스함과 염려를 느낄 것이고 
사랑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것을 느낄 때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나님이 그립지 않겠는가? 마음으로 경외하고 사랑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겠는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5/3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본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출세해서 남들 위에 군림하면서 부러움을 사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추구 목표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나온 주인공은 교회에서도 체면이 서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본분만 맡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하찮아 보이는 본분을 맡길 때, 그는 자기 위신과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고 생각해 잘 순종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 말씀에서 어떻게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근원을 찾게 되었을까요? 또 어떻게 자신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깨닫고 모든 본분을 올바르게 대하게 됐을까요? 혹시 당신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면, 주인공의 체험을 통해 한번 답을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교회생활 간증 더보기:

      ✔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다>

      ✔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감정의 속박을 끊고 자유를 얻다>

      ✔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본분을 다하다>









4/20/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 <가장 귀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리>


그렇게 수년을 겪으며 보냈다
인류는 연단과 형벌의 고난을 통해
풍상고초를 다 겪어 본 사람으로 거듭났다
비록 과거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됨의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이 오랫동안 사람을 구원한 고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오랫동안 사람을 구원한 고심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차츰 자신의 야만성을 증오하고
순종치 못하고 하나님을 수없이 오해하며
요구했던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은
사람이 새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은
사람이 새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상처가 날마다 조금씩 아물고 몸이 강건해지면서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줄곧 내 곁에 있었다
그의 미소와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감동적이고
그는 여전히 자신이 만든 인류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은 여전히 처음과 똑같이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사람은 더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친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친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친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3/16/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워십 찬양 <하나님 인류 경영 사역의 의의> (남성 솔로)



하나님 경영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하는 인류를 얻기 위한 것
그런 인류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으나
더 이상 사탄을 아비로 삼지 않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여 내칠 수 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심판과 형벌을 받고
추악함과 거룩함의 차이를 알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사탄의 사악함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인류는 더 이상 사탄을 위해 힘쓰지 않고
사탄에게 절하지도, 사탄을 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의 의의이다
이 경영 사역에서 인류는 사탄이 패괴시킨 대상인 동시에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며
또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다투는 산물이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면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차츰차츰 되찾아 오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진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동영상 더보기: 복음 찬양 뮤직비디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전능하신하나님교회]말씀 찬양 CCM 2020 <하나님은 사람이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기만을 바라시네>


1
수천 년 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 땅에서 수많은 사역 하셨네
세상에서 수없이 버림받고 비방 겪으셨네
하나님의 오심 반기는 이 없었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네
수천 년 동안 고초 겪으며 사람의 행위로 인해 마음에 모진 상처 입으셨네
이제는 사람의 패역 보시지 않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는 계획 세우셨네
그는 사람이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고 그의 육신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거역하지 않길 바라실 뿐이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길 바라실 뿐이네

2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은 조롱과 배척을 수없이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인간 세상의 갖은 고난을 겪으셨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차마 그 모습 볼 수 없어
고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사랑하는 아들 돌아오길 기다리시네
그는 사람이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고 그의 육신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거역하지 않길 바라실 뿐이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길 바라실 뿐이네

3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사람에게 더 많은 걸 바라지 않으셨네
하나님이 치르신 대가가 아주 많지만
사람은 여전히 편안히 있으며 하나님의 사역 신경 쓰지 않네
그는 사람이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고 그의 육신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거역하지 않길 바라실 뿐이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길 바라실 뿐이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동영상 더보기: 경배와 찬양 뮤직비디오 <각 나라의 하나님 백성이 함께 마음을 표현하네>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3/13/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세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란?

기도하는 베드로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현재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을 추구하는 것이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네가 교제하는 내용도, 진입하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이므로 절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따라오는 사람을 원한다. 과거에 네가 깨달은 것들이 아무리 순수하고 좋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앞으로 너의 진입에 큰 방해가 될 것이다. 성령의 현재 빛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 있는 사람이다. 만세와 만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랐지만, 오늘날까지 따라오지는 못했다. 그러니 이는 말세 사람들의 복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성령의 사역은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갈수록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 내일의 깨우침은 오늘보다 더 높고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듯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면 언제라도 도태될 것이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끝까지 따라갈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지나가고 지금은 새로운 시대다. 새 시대에는 새 사역을 한다. 특히 사람을 온전케 하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은 더 새로운 사역을 더 빠르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어느 단계의 사역도 영원불변한 사역으로 여기지 않고 언제나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한다. 그의 사역은 갈수록 더 실제적이고, 사역을 할수록 점점 더 사람의 실제적인 요구에 부합하게 된다. 사람은 이런 사역을 체험해야만 최종적인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다. … 하나님의 사역은 시대마다 다르다. 네가 이 기간의 사역에 잘 순종했더라도 다음 기간의 사역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거나 순종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버릴 것이다. 하나님이 이 단계로 올 때 네가 따라왔다면 다음 단계로 갈 때에도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시종일관 변함없이 순종해야 한다. 기분이 좋을 때만 순종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런 순종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만약 내가 새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네가 따라오지 못하고 과거의 견해를 고집한다면 너의 생명이 성장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말씀을 통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네가 순종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사역할 것이다. 성령은 내가 말하는 대로 역사하므로 너희가 내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면 성령은 바로 너희에게 역사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너에게 이상이 없다면 네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이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에서 너는 이상을 갖추지 않으면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믿는 이는 누구냐? 너는 어째서 그를 믿느냐? 너는 어째서 그를 따르느냐? 그저 장난으로 믿는 것이냐? 스스로 네 목숨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것이냐? 오늘날의 하나님이 바로 가장 큰 이상인데, 너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또 얼마나 깨달았느냐? 오늘날의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탄탄한 토대가 생겼느냐?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따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이 흐려진 것을 기회로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쉽겠느냐? 오늘날의 하나님이 하는 말씀에 대해 네 관념을 얼마나 내려놓았느냐? 오늘날의 하나님에 대한 이상을 갖추었느냐? 오늘날의 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너는 항상 따르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보기만 하면 얻을 수 있으며, 아무도 너를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따르는 일이 그렇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그를 알아야 하고 그의 사역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고난받고 목숨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에게 온전케 되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너에게 필요한 이상이다. 항상 은혜를 누리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누리게 하고 은혜를 베풀기만 하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목숨을 버리고 따를 수 없다면,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없다면, 결단코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흐리멍덩하게 따르지 말고 사역에 대해 알아야 한다!> 중에서

베드로는 여러 해 동안 예수를 따르면서 그에게서 사람에게 없는 수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일 년을 따르자 예수는 베드로를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로 뽑았다(물론, 이것은 단지 예수의 마음속 일이니 사람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음). 생활 속에서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베드로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베드로는 특히 예수가 전하는 도를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베드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해 주었고, 그에게 매우 충성했으며, 그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곳곳을 다니는 예수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었다. 베드로는 예수의 가르침과 온유한 말씀, 그리고 먹고 입고 자고 행하는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고, 다방면으로 예수를 본받았다. 베드로는 자신의 것이 옳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지난날 자신의 모든 낡은 것들을 벗어던지고 예수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본받았다. 그때에야 베드로는 천지 만물이 모두 전능자의 수중에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자신의 선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모든 어떠함을 받아들여 본보기로 삼았다. 베드로는 삶 속에서 예수가 자신이 한 것만이 옳다고 한 적이 없고, 자신을 자랑한 적도 없으며, 도리어 사랑으로 사람을 감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러 일에서 예수의 어떠함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모든 것은 베드로가 본받을 대상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베드로의 인생에 관하여> 중에서

베드로는 삶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흡족하게 하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하면 통회했으며, 그 후에 적합한 길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 위해 힘써 노력했다. 그는 생활 속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자신의 옛 성품에 대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진리에 깊이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고자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하고자 했다. 그는 형벌,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 환난, 궁핍한 생활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냐? 형벌이든 심판이든 환난이든 너는 죽기까지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경지이자,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 참고 설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란 하나님의 현재의 사역을 좇으며,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성령의 역사와 인도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궁극적으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자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겉으로만 성경 말씀을 따르고 성경을 높이면서, 실제로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의 말과 가르침대로 실행하고 체험할 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거나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으며 그저 종교 의식과 규례를 지키기만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키고 실행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힘을 잃게 하고 등한시하며 예수님의 계명 또한 전혀 지키지 않는다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께 미움받아 내쳐지고 저주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 영적 위인이나 목사, 장로들을 맹신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추앙합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기든 다 목회자에게 의견을 구하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참도를 알아보는 일조차 목회자에게 물어보지요. 그 결과,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나 종교계의 지도자들에게 미혹되고 잘못된 길로 인도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따른 결과이자 결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오직 성령의 역사와 현재의 하나님 말씀,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르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데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실 때, 종교계가 성령 역사를 잃고 황무지로 변해 어쩔 수 없이 참도를 찾게 될 때, 우리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하나님의 음성, 성령의 역사를 찾는 데 더 힘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말씀과 역사를 찾지 않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하나님의 최신 말씀으로 공급을 받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도태되고 버림받을 것이며, 어둠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늘 종교계의 목회자를 추앙하는 사람은 모두 사람에게 순종하고 사람을 따르는 자이니, 결국엔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 드러나고 도태되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라고 외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합니다. 은혜시대에 유대교 신도들과 베드로, 요한 등이 예수님을 대할 때 보인 각기 다른 태도에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고 진리를 선포하셨으며, 회개의 도를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대부분 신도들은 제사장과 바리새인의 가르침만 따랐을 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구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만 내세웠을 뿐, 실제는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요한, 마태, 빌립 등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권병과 능력이 있음을 보았고, 그의 말씀은 다 진리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임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곧장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말세에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는 계시록의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에 관한 대표적인 문답(선집)≫ 중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을 따른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진리에 따라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생명 체험의 길을 찾는 한편,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본분을 이행하며, 성령의 인도에 따라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문제가 놓인 전환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구하고, 사람이 말하는 이치에 미혹되지 않도록 경계심을 높여 사람의 통제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전부 순종하고 따르겠지만,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결연히 거부하겠다. 리더와 일꾼들이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안배에 반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람의 생각을 밀어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하나님의 배치와 뜻에 부합한다면 따르겠다.’라고 생각하며 실행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상부의 교제 중에서



3/10/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가>


1
육신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장엄하지도, 신비하지도 않다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숨기지도, 기만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참된 걸 보게 되고 실제적인 인식과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의 사역이 끝날 때 그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질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이런 사역 효과는 중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전 인류를 정복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2
이 육신과 육신의 사역
그리고 육신의 모든 것이 전 인류를 정복하는 사역에 유리하다
그가 하는 사역에 오늘도, 내일도 유리할 것이다
이 육신은 모든 사람을 정복하고 얻을 것이다
그의 사역은 전 인류가 하나님을 보고, 알고 순종하는 데에 가장 좋은 사역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이런 사역 효과는 중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전 인류를 정복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동영상 더보기: 기독교 영화 <뒤늦게 찾아온 행복>크리스천의 진실한 간증 (2019)


2/18/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은 말씀 따르고 순종하는 자 아끼시네>


1
사람이 위대하든 보잘것없든 하나님 말씀 따르며
그의 명령과 분부에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사역, 계획에 협력하여
그의 뜻과 계획이 원만히 이뤄지게 한다면
이러한 행실은 하나님이 기억하실 만한 것이니
축복받을 자격 있네 축복받을 자격 있네

2
하나님은 이런 자, 이런 행실 소중히 아끼시고
그 마음, 그 사랑 귀히 여기시네 이는 하나님의 태도라네
그의 뜻과 계획이 원만히 이뤄지게 한다면
이러한 행실은 하나님이 기억하실 만한 것이니
축복받을 자격 있네 축복받을 자격 있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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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

교회 찬양 CCM 2020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하리>


1
하나님, 저에게 심판 사역 하사 저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켜 주소서
범사에 당신의 뜻을 깨닫고 당신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
저를 구원하심은 당신의 큰 사랑이고 당신의 뜻이 있나이다
저를 구원하심은 당신의 큰 사랑이고 당신의 뜻이 있나이다

2
거역하고 타락한(직역: 패괴된) 성품과 배반하는 본성 갖고 있지만
사람을 구원하시는 당신 뜻을 깨달았나이다
저에게 더 큰 시련을 주사 더 많은 고난을 주사
이 고난 속에서 당신 손길과 행사를 보게 해 주소서

3
저에게 시련과 연단 주시나 당신의 사랑임을 아나이다
저의 분량에, 분량에 따라 공급해 주소서
어떤 시련과 고난에도 당신을 배반하거나 원망하지 않도록
당신 뜻을 깨닫고 완전히 순종하여 당신을 흡족게 하도록 하소서
당신을 흡족게 하도록 하소서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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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020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누구인가(하)


열흘 후, 제 몸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셋째 언니와 골수도 정확히 맞아 의사 선생님이 제게 골수 이식을 해 주셨습니다. 온몸에 관이 꽂혀 있고 특히 의사 선생님이 가슴에 2mm를 째고 혈관부터 폐까지 관을 연결했을 때 제 두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저는 욥이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위해 증거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생사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욥에게 사탄의 시련이 닥쳤을 때 욥은 온몸에 악창이 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도 욥의 목숨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기꺼이 욥을 본받겠습니다. 저를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오늘 제 목숨도 모두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부디 제 마음을 지켜 주시어 제가 겁먹거나,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당신을 위해 굳게 증거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렇게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저와 셋째 언니가 깨어났을 때 의사 선생님은 기쁜 듯 말했습니다. “이식은 성공적이에요! 마침 이식할 수 있는 양이 딱 환자분이 필요한 골수의 양이었어요. 1ml만 더 뽑았어도 언니분은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그럼 두 분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겠죠. 그리고 제가 수술 경력만 몇 년인데 이렇게 강한 환자분은 처음 봤어요. 아팠을 텐데 소리 한 번 안 지르시다니. 정말 용감하세요.” 의사의 말을 듣고 그건 제가 용감하거나 제 분량 때문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계속 저와 함께하시면서 저를 지켜 주신 덕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힘을 주시고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저의 감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감격의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습니다.

이어서 저는 무균실에서 48일을 보냈습니다. 그 후 주치의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살아나실 줄은 몰랐는데 이건 기적이에요! 이제 말씀 드리는 건데 환자분은 급성 림프샘 백혈병에 걸리셨었어요. 우리 병원에 환자분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총 14분이었어요. 그런데 환자분만 살아났습니다. 축하드려요.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사랑하시는군요. 당신께서 저를 구하시고 제게 두 번째 삶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 말씀의 빛 비춤으로 마침내 깨닫다
퇴원 후, 딸이 제 모든 생활을 돌봐 주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딸에게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 읽어 달라고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사람이 항상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의 종착지는 모두 창조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 그때 저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너무 패역했었던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관점으로 살아왔고 제가 노력하면 아름다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았으며 돈 버는 일에 급급해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시간조차 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원했던 삶을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몸까지 망가뜨려 벌었던 돈을 모두 쓰고 말았습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을 뻔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 지켜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진작 병마에 잡아먹히고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묘한 행사를 다시 볼 기회도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며,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장면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의 에너지를 운명과 맞서 싸우는 데에 쓰고, 자기가 가진 모든 시간을 가족을 부양하고 번갈아 가며 부와 지위를 좇는 데에 다 써 버린다. 사람들은 가족, 돈, 명예, 이익과 같은 것들을 소중히 아끼고,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운명이 기구하다고 불평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마음속 저편에 미루어 둔다. 그 일이란 사람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생이 얼마나 되든 명성이나 부만 좇다가 젊음을 보내고 흰 머리와 주름살을 발견한다. 그제서야 명성이나 부도 나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돈이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으며, 누구도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도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사람은 어디서 왔으며, 삶의 이유는 무엇이고, 누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며, 누가 인류를 생존하게 하고 인류의 생존을 주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삶의 자산이며, 사람 생존의 근본이다. 어떻게 가족을 부양할지, 어떻게 명성과 부를 좇을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성공할지, 어떻게 더 부자가 될지, 어떻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경쟁해서 남들을 이길지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추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며 가장 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앞에 살아야 하며 명예와 이익, 부를 좇거나 남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고 공허한 것들이며 사탄의 타락과 미혹, 괴롭힘입니다. 앞날과 운명을 위해 수년간 바쁘게 뛰어다니며 ‘돈으로는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와 같은 사탄의 법칙으로 살았던 나날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돈이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집을 사고 더 나은 물질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저와 남편은 밤낮없이 물건을 배송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돈도 아까워했습니다. 결국 제게 남은 것은 노동에 지쳐 병든 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돈을 벌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병 한 번으로 집의 모든 저축을 쓰고 빚더미에 앉기까지 했으며 하마터면 목숨도 잃을 뻔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탄이 바로 돈과 명예, 물질적인 즐거움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괴롭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우리의 욕심을 이용하여 우리를 타락시키고 우리가 돈과 명예의 늪에 빠져 체면과 허영심, 그리고 육적인 즐거움만을 위해 바삐 살아가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다가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며 결국은 명예와 이익만 추구하다가 죽게 되고, 사탄의 덫에 걸려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정말 음험하고 사악합니다! 하나님께서 셋째 언니를 통해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어 저를 일깨워 주시고 위로해 주시어 계속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이 아니었다면 제가 아무리 부자고, 의사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제 병은 결코 호전되거나 회복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저는 마음속 깊이 제게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소중한 말씀과 하나님 사역이 이끌어 주신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저는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타락시키는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동안 갖고 있었던 그릇된 생각도 고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는 사탄의 그 어떤 사악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이 행하고 나타내는 모든 것은 사람에게 이롭고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부가 공급이 되고, 생명이 되며, 길이 되고, 방향이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사역마다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냐? 모두 긍정적인 것이고 사랑이며, 모두 진리이고 실제이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한줄기 따뜻한 바람처럼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친근함과 사랑스러움,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본질과 함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모두 사랑이며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며 사람을 해치려는 성분은 조금도 없습니다. 과거 저는 사탄의 생존 법칙대로 살아갔습니다. 사탄은 제 영혼을 가렸고 인생의 목표를 잃게 만들었으며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제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이 저를 지금까지 살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저는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만을 바랄 뿐입니다.

제가 아프고 나서 회복될 때까지 제 곁에 항상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 딸도 저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딸은 ‘사형 선고’를 몇 번이나 받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저를 보면서 감동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엄마를 구해 주셨어요! 엄마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면서 하나님께서 엄마에게 두 번째 삶을 주셨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제게 엄마를 주셨고 제게 완벽한 가정을 주셨어요! 앞으로 저도 엄마와 함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어요.” 딸의 말을 들은 저는 놀라움과 함께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저희를 사랑하십니다! 저희를 택해 주시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제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끝)

1/20/2020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누구인가 (상)

한 크리스천의 간증 -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기댈 사람은 누구인가 (상)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멍 리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은 저희에게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만들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고생을 마다치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많은 돈을 벌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된 후 주변 사람들에게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으로는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런 말만 믿고 돈을 숭배하는 이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013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등 사탄의 논리 법칙대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돈을 벌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조차 아까워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저는 급성 림프샘 백혈병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 다가가고 나서야 제 생각은 바뀌었으며 제가 의지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 병으로 쓰러져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
당시 저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남편과 상의한 후 화물차를 사서 배송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기사도 고용하지 않고 낮에는 남편이 운전하고 밤에는 제가 운전했습니다. 보통 한 번 배달하면 기본이 사나흘이었고 길면 일주일까지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내에 집을 사고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저는 그 어떤 고난도 견뎌 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무리한 데다가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고 자지도 못하다 보니 몸이 견디지 못해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2015년 6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종일 정신이 멍해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일주일이나 링거를 맞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열만 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염증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며 피검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결과가 나오자 의사 선생님은 검사표를 들고 “정상 사람들의 백혈구는 1만 개 정도인데 환자분 백혈구 수치는 7만 개가 넘어요. 심각한 초과 수준이에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제 마음은 ‘덜컥’ 가라앉았고 낯빛도 확 바뀌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하라니? 내가 무슨 큰 병에 걸린 건가? 정말 심각한 병이면 대체 돈이 얼마나 드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권유로 마지못해 시내에 위치한 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저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제가 불치병에 걸리진 않았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잠시 후 결과가 바로 나왔고 의사 선생님은 검사표를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지금 환자분 백혈구 수치가 9만이 넘어요. 백혈구는 계속 적혈구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입원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하자 저는 더 긴장되었고 제가 큰 병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긴장한 제 모습을 본 의사 선생님은 절 위로하면서 “열심히 치료만 받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저는 모든 검사를 받았습니다. 10센티가 넘는 긴 바늘이 제 몸을 찌르고 골수를 빼낼 때는 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견디기 힘들었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눈물이 주룩주룩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허리와 뼈에 관을 꽂은 후 저는 힘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온몸에 관이 꽂혀 있었고 기력이 딸려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치료 과정에서 화학 치료가 끝나자마자 저는 계속 구토하며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먹은 대로 토했고 위액까지 모두 토해냈습니다. 위가 텅 빈 것 같았고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딸과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는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제게 등을 돌린 채 눈물을 닦아 냈습니다.

📌 다가오는 죽음, 벗어날 수 없는 무력함
며칠 후, 베개에 머리카락이 잔뜩 빠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 보니 한 움큼씩 머리가 빠졌습니다. 손에 있는 머리카락을 보며 제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고 너무 슬펐습니다. ‘풍성했던 검은 머리카락이 모두 떨어지다니! 이렇게 가다간 대머리가 되는 건 시간 문제겠어! 난 고작 42살인데! 아직 죽기 싫은데! 대체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공포와 두려움이 제게 엄습해 왔고 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눈물만 떨구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셋째 언니가 문병 왔습니다. 언니는 제 옆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생,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려. 하나님께서 죽게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네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거야! 하나님 말씀 잊었어?” 그리고 언니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 있고 약속이 있는 말씀은 절망에 빠졌던 제게 위로가 되어 주셨고 한 줄기 희망을 보여 주셨으며 기댈 곳 없던 제게 의지할 곳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병마 앞에서도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저와 함께하시고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 번째 치료가 끝난 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환자가 보양식을 먹으며 보양하는 모습을 본 딸이 제게 갈비탕을 사다 주었습니다. 결국 소화 기관이 좋지 않았던 저는 갈비탕을 먹고 위출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제 상태가 좋지 않다며 위독하다는 통지서를 내렸고 즉시 저를 응급 치료했습니다. 응급 치료 덕분에 피는 멈췄지만, 기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침 때문에 폐가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진 제 모습을 보며 남편에게 응급 치료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고 살 수 있을지는 운명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때 시아버지와 시동생이 병실 밖에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치료를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 병은 고치기도 힘들다던데. 옆 방에서 이 병으로 죽은 사람만 몇인데. 게다가 치료비로 벌써 수십만 위안(한화 약 몇 천만 원) 을 썼다고. 우리도 할 만큼 했어. 돈도 잃고 사람도 잃으면 어떡해?” 이 말을 들은 저는 병실 침대에 누워 슬픔과 절망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서 나만 고통받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고 있구나. 저들도 나처럼 고통받고 있어.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래야 가족들도 짐을 덜 수 있지. 하지만 두 딸이 아직 학생인데.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 게다가 집에 계신 노모가 이런 슬픔을 견디실 수 있을까? 이렇게 저들을 떠나야 하는 건가? 그럴 수 없어. 난 죽기 싫어! 하지만 다른 사람은 수십만 위안을 쓰고도 죽었다던데. 돈이 아무리 많고 의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 목숨을 살릴 수는 없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죽음 앞에서 돈은 휴짓 조각에 불과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 죽음의 문턱을 무사히 넘기다
절망으로 무력해졌을 때 셋째 언니가 며칠 전 제게 읽어 주었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오며 육적인 것 역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육과 영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주권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목숨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려고 한다면 그 누구도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이 역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상면의 설교 교통> 중에서)

이 설교 교통은 제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목숨이 저 자신이나 가족, 의사나 과학의 힘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죽음을 허락하신다면 저는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목숨을 살릴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게 죽음을 허락지 않으신다면 제가 아무리 심각한 병에 걸린다고 해도 저는 죽지 않습니다. 제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이곳에 눕고 나서야 아무리 많은 돈도 제 목숨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제 목숨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를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기도드린 후 제 마음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날 하나님께 얼마나 많이 기도드렸는지 모릅니다.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이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응급 치료로 되살아났습니다. 기적처럼 되살아난 제 모습을 본 딸은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믿는 하나님이 엄마를 지켜 주셨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선 정말 엄마를 사랑하세요!” 딸의 말을 들은 제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과거 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배나 하나님 말씀을 보는 것도 소홀히 했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명의 불씨가 꺼져갈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게 깨우침을 주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꺼이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저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셋째 언니가 제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한번 저를 격려해 주었고, 제게 큰 믿음과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기꺼이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이어진 네 차례의 화학 치료에서 다른 사람은 피와 혈소판을 몇 팩씩 쓰고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지만 저는 혈액 두 팩과 혈소판 한 팩으로 정상적으로 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 같은 구원이 저를 살리신 것입니다. 저는 조용히 제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과 가호에 감사드렸습니다.


1/15/2020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하나님의 권병(2) - 다섯 번째 관문, 자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하나님의 권병(2) - 다섯 번째 관문, 자녀 [사진제공:전능하신하나님교회]

사람은 결혼 후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 어떤 자녀를 몇 명 둘지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운명과 창조주의 정하심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거쳐야 할 다섯 번째 관문이다.

한 사람의 출생이 자녀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두 가지 역할이 바뀌면서 인생의 각 시기를 경험하게 되고,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게 된다.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면서 창조주의 변함없는 주재를 체험하게 되고, 또한 창조주가 정한 운명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1. 자녀의 일은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출생, 성장, 결혼에 불만을 가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가정이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성장 환경에 큰 불만을 터뜨리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결혼만큼 불만스러운 것은 없다. 출생, 성장, 결혼에 있어 여의찮은 일이 얼마나 많았든 경험자는 출생 시점과 장소, 외모, 부모, 배우자를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사람은 자녀를 양육할 때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모든 꿈을 자녀를 통해 이루고 남은 미련을 해소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자녀에게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 딸은 예쁘고 아들은 잘생기기를 바란다. 딸은 예술적인 재능을 두루 갖추고, 아들은 공부와 운동에 능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길 바란다. 딸은 부드럽고 현명하며 교양과 지성을 겸비하기를 바라고, 아들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이해심이 많기를 바란다. 딸과 아들 모두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모두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때 인생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짐과 동시에 더 많은 욕심을 부리게 된다. 변변찮은 능력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자신이 못 이룬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넘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그리고 그 자녀의 외모나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사람은 자녀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지만 어떤 자녀를 몇 명 두게 될지는 계획이나 바람처럼 되지 않는다. 즉, 무일푼임에도 많은 자녀를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부자임에도 슬하에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딸을, 어떤 이는 아들을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녀 덕분에 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를 입는 사람도 있다. 부모는 똑똑한데 자녀는 멍청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지런한 부모와는 달리 자녀가 게으른 경우도 있다. 정직하고 선한 부모가 간사하고 악한 자녀를 두는가 하면 건강한 부모가 장애아를 두는 경우도 있다. 평범한 부모가 비범한 아이를 두는 경우도 있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낮지만 자녀가 대성하는 경우도 있다….

2. 다음 세대를 키운 후 사람은 운명을 새로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지만, 삶의 그 지점에서 운명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 역시 이전 세대의 삶과 모든 경험들을 되풀이하는 것을 목격한다. 아이들의 삶과 경험 속에 비치는 자신의 과거를 보며, 그들은 자신의 삶이 꼭 그랬듯 다음 세대가 걸어가는 길 또한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과 마주하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운명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임을 인정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망을 차츰 내려놓게 된다. 욕망의 불길도 조금씩 꺼진다…. 이 시기는 삶의 중요한 몇 고비를 이미 지나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고,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갖게 되는 시기이다. 그 나이에 사람이 미래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아직도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50세 여성이 있을까? 50세 남성이 아직도 백설 공주를 찾고 있을까?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되길 바라는 중년 여성이 있을까? 대부분의 나이 든 남성들이 사업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과연 젊은 사람들과 같을까? 한마디로 말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정도 나이가 들면 결혼, 가족, 아이들에 대해 비교적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 나이가 되면 거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운명에 도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경험상 그 나이가 되면 사람은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해. 자식에게는 자식의 운명이 따로 있지.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는 거야.’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세상의 갖은 우여곡절과 좌절과 고난을 겪은 많은 사람들은 종종 “다 운명이야!”라는 한 마디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총결한다. 이 표현은 일생 운명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결론과 깨달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람의 무력함을 보여 주는데, 투철하고 정확하다 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창조주의 주재를 인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이를 깨달았다고 해서 창조주의 권병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3. 운명을 믿는다고 해서 창조주의 주재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긴 세월 하나님을 따른 너희는 운명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너희는 창조주의 예정과 창조주의 주재를 진실로 알게 되었느냐? 어떤 사람들은 “다 운명이야.”라는 표현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끼지만 하나님의 주재를 전혀 믿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없다. 바다에서 어쩔 수 없이 파도에 떠밀려 가야 하는 사람처럼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단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재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도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재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삶,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삶, 더 이상 운명에 맞서지 않는 삶,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하는 것과는 다르다. 운명을 믿는 것은 창조주의 주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표면 현상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주재하는지를 알거나 그가 만물의 운명을 주재하는 근원임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며, 인류의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과는 더더욱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운명을 믿고 이를 마음 깊이 느낌에도 인류의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비극일 것이며, 헛되고 공허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 돌아오지 못하고,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참다운 인류가 되지 못한다. 진실로 창조주의 주재를 알고 경험한 사람은 소극적이거나 무력하지 않고 적극적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의 운명이 정해져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삶과 운명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게 된다. 즉, 사람의 일생은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살아온 길을 뒤돌아볼 때, 그 여정을 차례차례 떠올려 볼 때, 사람은 힘들었든 평탄했든 걸어온 걸음마다 하나님이 안배하고 인도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안배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어 창조주의 주재와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이번 생애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어떤 사람이 운명에 대해 수동적 태도를 가진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순종의 태도가 없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람이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에 능동적 태도를 가진다면,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진실로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것에 진정으로 순종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더 이상 거역하지 않고 더욱 단호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그의 운명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이는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총명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주재를 분명하게 알 수 없을 때, 그 하루하루는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의 삶의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어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조차 없게 한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

4.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해야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재를 알지 못하는 탓에 늘 반항심과 패역한 태도로 운명과 마주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 그리고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헛된 바람일 뿐, 언제나 좌절을 맛보게 된다. 영혼 깊은 곳의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 고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은 그렇게 낭비되고 있다.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재 탓이냐,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쁜 탓이냐? 분명히 둘 다 틀렸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가는 길,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할 때,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큰 은혜와 보호임을 알게 될 때, 고통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유롭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기를 주관적으로 바라면서도,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진정으로 인정하지도, 순종하지도 못한다.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를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과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창조주의 권세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운명은 스스로 정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운명과 창조주의 권병에 극력 대항하여 초래되는 고통을 떨쳐 버리기 또한 쉽지 않다. 물론 참된 자유를 얻기 어렵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기는 아주 어렵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주관하고 안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배와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쉽게 들릴지 몰라도 어려운 일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기꺼이 협력하고 어떤 이는 꺼린다. 꺼리는 사람들에게는 협력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없다.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벗어나려 하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거나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의 힘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 사람에게 슬픔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명예와 이익을 좇기 때문도, 운명에 맞서 안개를 뚫고 힘겹게 나아가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존재를 알고 나서도,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수렁 밖으로 발을 빼지 못하며, 강퍅하고 끈질기게 실수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진창 속에서 허우적대고 완고하게 창조주의 주재와 겨루고 끝까지 대항하면서 전혀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부서지고 피 흘리며 쓰러질 때에야 포기하고 되돌아선다. 이것이 사람의 진정한 슬픔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순종을 선택한 자는 현명하고, 도망치려는 자는 우매하고 완고하다고 하는 것이다.


9/30/2019

은혜 찬양 MV 뮤직비디오 2019<사람을 향한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1
성경 속의 한 장면,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는
감동적이고 따뜻하다
그림에 하나님과 사람만 담겨 있지만
그 관계는 너무나 친밀하고 사람의 부러움을 자아낸다

2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값없이 사람에게 주어진다
순진무구하고 얽매일 근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눈앞에서 행복하게 산다
하나님은 사람을 염려하시고, 사람은 보호 속에 산다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떨어질 수 없다

3
인류를 창조하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을 책임지셨다
어떤 책임인가?
바로 사람을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길 바라셨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기대이다

4
그런 기대를 품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그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나님 뜻을 나타내는 이 간단한 말씀은
하나님 마음이 이미 인류를 염려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5
이 간단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 볼 수 있다
하나님 마음속에 사랑과 염려가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염려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양심과 인간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스함과 염려를 느낄 것이고
사랑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6
이것을 느낄 때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나님이 그립지 않겠는가?
마음으로 경외하고 사랑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겠는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8/29/2019

현대 사회의 마음의 "살인마" - 비교심리에 대한 분석

2019년 3월 22일
샤오씬
오늘날 사회에는 비교 심리가 특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나이, 집단, 계층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비교의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오늘날 동창회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연락을 이어가는 연결 고리가 아니라 서로 비교하고 부를 자랑하는 곳으로 전락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자식, 남편, 집, 차, 직장 등 모든 것은 사람들이 비교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담배를 피우고, 어떤 술을 마시며 어떤 옷을 입는지도 모두 비교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친척, 친구, 동료 혹은 그 어떤 관계일지라도 사람들은 숨기는 것이 있을지언정 비교하지 못할 것은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났고, 네가 잘났다면 난 그것보다 더 잘났다.’라는 심리로 인해 사람들은 비교 심리가 성행하는 사회 풍조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지식과 훌륭한 명망을 얻어도 비교 심리를 당해 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식과 명망 역시 비교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비교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지만 또 할 수 없이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세상일로 분주한 크리스천의 일상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이런 비교와 부를 자랑하는 행위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잘난척하는 사람들의, 체면을 치켜세워 주었지만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물론 그 고통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사촌 언니처럼 말입니다. 언니는 가정이 부유해서 집과 차도 있고 작게나마 사업도 하고 있으며,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교하는 사회 풍조의 영향으로 인해 동창회가 열릴 때마다 언니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잘난척하려고 비싼 옷을 사 입었습니다. 거기에 식사비와 유흥비까지 더하면 매년 꽤 큰돈을 지출했습니다. 언니는 친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습니다. 하루는 친구 부부가 멋스럽게 밍크코트를 입은 모습을 보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커플용 밍크코트를 샀습니다. 심지어 친구가 산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사느라 천만 원을 넘게 썼습니다. 현금이 모자라자 카드를 긁기까지 했습니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이를 데려가고 데려올 때 남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주려고 또 대출을 받아 새 차를 바꾸었습니다. 비록 언니네 장사가 잘 되긴 하지만, 계속 이렇게 쓰다 보니 모아 놓은 돈이 없는것은 물론이고 거의 5천만 원에 달하는 빚까지 떠안았습니다. 심지어 가겟세를 내지 못해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언니의 삶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잘난척을 하기 위해 이러한 비교 심리가 우리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은 앞에서는 잘난 척하고 뒤에서는 혼자 눈물을 삼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교’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고통은 날로 커졌고 이미 현대인들의 마음의 살인마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교 심리란 무엇인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비교’는 심리학적으로 다소 음성에 속하는 심리적 특징입니다. 다시 말해 한 개체가 자신을 타인과 비교했을 때 보이는 격차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정서의 심리적 과정입니다.” 비교 심리는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허영심과 질투심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있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남들보다 자신이 한 단계 낮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모인 곳에서 떳떳이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딜 가서 누굴 만나건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라면 온갖 방법을 다해 얻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면 사방팔방 자랑하고 다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못났다고 생각이 들면 괴로워 하고 좌절하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냅니다. 심리학자들은 비교 심리를 스스로 제어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축적되어 심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지만, 현실의 삶에서 허영심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과 타인이 가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문가가 어떻게 얘기했든 간에 비교하려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비교 심리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요? 이런 비교 심리는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하나님 말씀을 읽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탄 성품의 지배로 인해 사람 안에는 한 가지 욕망과 야심이 있는데 이것은 인성 안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모두 땅에 있기 싫어하고 늘 반공중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반공중에는 누가 있는 곳인가? 거기는 사탄이 있는 곳이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어서 땅에 두고 먹고 입고 싸고 하는 생활 규칙 모두를 정상적이게 하였고, 사람됨의 기본 상식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는지를 배우게 했지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 주거나 반공중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날개 달린 것은 새이고 반공중에 떠돌아다니는 것은 사탄이고 악령과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야심을 가지고 늘 자신이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며 남다르고 특이해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너의 이 생각의 근원이 틀렸다.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다”는 것은 무슨 사상인가? 금계독립인가? 군계일학인가? 비할 바 없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정상 인성의 추구 목표에 사용하면 좋은가? 완전무결ㆍ천하일색ㆍ자수성가, 이런 단어는 좋은가? 걸출하고, 훌륭하고, 특별한 인재, 이런 단어는 좋은가? 카리스마, 인격적인 매력, 스타, 명인, 위인, 마음의 우상,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미혹과 마비’란 사탄이 사람의 육적인 것과 삶, 미래를 생각해 주는 것마냥, 듣기에 그럴싸하고 사람의 생각에 잘 맞는 말과 사상을 퍼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너를 속여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꼬임에 넘어가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강제 주입’이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무엇을 주입하느냐? 강제 주입은 사람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냐? 사람의 동의를 거친 것이냐? (아닙니다.)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용없다. 네가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탄은 자신의 생각, 생존 법칙, 본질을 주입한다. 사실 사탄이 주입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고 사이비한 논리이다. 이런 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각종 그릇되고 황당무계한 논리인 것이다. 이런 사탄의 독소는 사람의 머릿속에, 마음과 영에 심어지고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세뇌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사탄의 독소를 받아들이면 사람도 귀신도 아닌 전혀 인성이 없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교의 늪에 깊이 빠져 있게 된 근원을 정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이후 교만 자대한 사탄의 본성이 우리 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거나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주재와 운명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타인과 다르고 타인보다 뛰어나며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는 삶을 추구하여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나 사회의 풍조에서도 ‘사람은 높은 곳으로, 물은 낮은 곳으로’, ‘사람은 체면으로 살고 나무는 껍질로 산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등 사탄의 독소가 우리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에겐 진리가 없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가 없었으며 그렇게 사탄의 독소를 사람 됨됨이의 규칙으로 삼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릇된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되었고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잘사는 것이 지위와 존엄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런 삶만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항상 누가 더 훌륭한지를 비교하고 어떤 일이 닥쳐도 체면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려고 하고 더욱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항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착실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체면을 차리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쏟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고민하며 모든 대가를 치르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이는 그렇게 자신의 허영심과 체면을 만족시켰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고 훌륭하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중국의 한 남고생은 비교 심리에 젖어 자신의 신장을 팔아 아이폰을 샀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이 바로 허영심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다른 사람을 넘어서지 못하면 평생을 질투와 증오라는 고통 속에 살고 부모님의 무능력과 배우자의 능력을 원망하여 가족들에게 상처를 안겨 주고 결국 가정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다른 사람을 넘어서 잠깐의 쾌락은 맛보았지만 그 후 여전히 공허함 속에 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결국 점점 고통스럽고 심신이 지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비교 심리로 인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힘들게 일해 온갖 질병에 걸리며 심지어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비교 심리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의 삶은 고통스럽기만 하고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교 심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비교’라는 마음의 살인마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너희에게 길이 있는가? 너는 먼저 일을 꿰뚫어 봐야 한다. 너는 포기하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네가 늘 이런 것을 잡고 겨루기에 마음속에 이런 것들로 꽉 들어찼고, 늘 잡고 놓지 않으려 하기에 이런 것에 통제되고 얽매여 그것의 노예가 되었으며 내려놓지 못한다.』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정확한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체면과 지위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구속하며 사람을 해치는 수단이며 우리가 좇는 허영심은 우리를 더 깊은 비교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고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꿰뚫어 봐야만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런 허영심을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으며 더 이상 허영심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허영심의 속박을 벗어 던지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일도 없어질 것이며 편안하고 자유로우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삶의 고통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된 인생관을 버리고 올바른 추구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며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진리는 모든 긍정적 사물의 실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는 다양한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에게 숨어 있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괴롭히는 온갖 수단과 방법 등을 드러내시고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셨으며 앞으로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 등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런 진리를 깨닫는다면 선과 악,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여러 사상을 분별할 수 있고 사탄의 음모와 계략도 꿰뚫어 볼 수 있어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를 버리고 올바른 인생의 길을 걸으며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거룩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밝고 바른 인생길을 걷게 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진정한 삶을 살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갖추게 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너에게 진리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으로 악을 멀리하고 사탄의 박해와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네가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고 흠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것은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모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재하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꺼이 하나님께서 우리 운명에 정해 놓으신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우리를 향한 사탄의 통제와 속박에서 벗어나고 허영심의 속박에서 벗어나며 앞에서는 잘난 척하고 뒤에서는 혼자 눈물을 삼키는 삶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8/27/2019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6)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악에서 떠날 것이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숨고 멀리하고 숭상하고 미신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앙모하고 숭경하고 신뢰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조건도 불평도 없이 경배하고 보답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앙모도, 신뢰도, 이해도, 헤아림도, 순종도 없으며, 단지 두려움과 불안, 의심, 오해, 회피, 그리고 멀리함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헌신과 보답도 없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경배와 복종도 없으며,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미신할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악한 일을 멀리할 수도 없다. 오히려 사람이 종사하는 모든 활동과 행위에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대적, 훼방과 논단이 가득할 것이며, 또한 진리를 위배하고 하나님 말씀의 참뜻에 어긋난 악행이 가득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면, 진실로 따르고 의지할 것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해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진실로 이해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헤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헤아려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해야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해야 조건도, 불평도 없이 보답할 수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보답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 수 있으며, 창조주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창조주를 알아야 진정으로 경배하고 복종할 수 있으며, 진실로 창조주께 경배하고 복종해야 진정 악행에서 벗어나고 악에서 떠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전 과정이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모든 내용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8/26/2019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돈이 없는 결혼 생활 어떻게 가능할까요

2019년 1월 23일​
장쥔(張軍)​

이른 아침, 한 줄기 햇빛이 방안을 비추자 마루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자마자 기지개를 켰습니다. 막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친구 보라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가희야, 나 다음 주에 결혼해, 꼭 와줘!”


결혼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결혼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저는 속으로 ‘전에 보라에게 괜찮은 남자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는데, 보라가 다 싫다더니. 이번에는 결혼하는 걸 보니, 남편될 사람의 집안 조건이 꽤 괜찮나 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라의 결혼식 날, 저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준비를 했습니다. 10시 쯤, 저는 보라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신혼집 풍경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널찍한 거실, 화려한 장식품, 세련되고 럭셔리한 가구, 이렇게 큰 집은 정말 ‘금빛 찬란’이라는 말로 가히 형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도모르게 자꾸 부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쩐지 보라가 결혼을 한다더니, 남편이 정말 부자인가 보네!’

나중에 결혼식장에 간 저는 그 화려함에 더욱 기가 눌렸습니다.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올리는 예식에다, 사회자는 현지의 유명한 MC였고, 웨딩카 행렬도 전부 다양한 브랜드의 고급차였습니다. 눈앞의 이 모든 광경에 저는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같이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든 외모든 내가 보라보다 나았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러 면에서 보라보다 못하구나. 결혼식의 화려함은 그렇다쳐도,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오래된 단층집이잖아. 보라가 지금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은 내가 평생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하겠지?’ 저는 실망스러웠고, 당초 배우자 선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만 성실하고 좋으면 미래에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고 섣불리 능력 없는 남편을 고른 것입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기필코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부자를 고를 것입니다. ‘아, 지금은 다 늦었어!’ 저는 어쩔 수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각자 남편의 직업, 수입, 집, 차 등등을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하니 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기분이 바닥까지 다운되었습니다. 자리가 불편해진 저는 간단히 음식을 먹고 나서 부랴부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저의 머릿속에 계속 결혼식의 광경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기보다 잘 살았고, 자신을 돌아보니, 돈도, 차도 없고, 아직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있으니, 호화로운 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했고, 자기가 지금 이렇게 못 사는 게 다 남편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집안 조건이 좀 좋았더라면,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 나도 집 있고 차 있는 중산층 생활은 할 수 있었을 테고, 친구들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집안의 것들이 전부 다 눈에 거슬렸습니다. 특히 남편의 고지식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모습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면 꼬투리를 잡고 남편에게 화를내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기분이 언짢아 할 때마다 얼른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남편이 저한테 잘하고, 무슨 일이든 양보해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억울하고, 이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살아가는 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목하고 따뜻했던 가정이 지금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저는 남편이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가사일을 도와주고 다정하게 대화도 나눴는데, 지금은 일이 없으면 휴대폰만 쳐다보고 게임하며, 저와는 말도 섞으려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이상 행동에 저는 더욱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당신한테 시집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정말 더 이상은 못 살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괴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였고, 형제자매와 자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와 함께 지내는 동안, 저는 그들이 소박하고, 선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이 생기면 단순한 마음으로 털어놓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 해결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사이에서는 상하 귀천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서로를 깔보지도 않았고 서로 돕고, 일으켜 세우며, 공급해 주었습니다. 다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구하며 사람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전에 없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구애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너에게 관심이 있을지, 너의 반려자가 될 수 있을지를 개인이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와 삶을 함께할 배우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네 삶의 일부로 들어오고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배우자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결혼의 형태는 천태만상이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즐기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결혼에 불만을 가진 부부도 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을 아우르는 결혼도 있다. 천생연분인 부부가 있고 비슷한 집안의 상대와 결혼한 부부도 있다. 행복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결혼도 있다.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몰이해와 경멸을 자아내는 결혼도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절망적인 결혼도 있다. 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순간 마음이 확 트인 저는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이 진작에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과 예식장에 들어갑니다. 결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과 만나서 사귀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이 배정하신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해 모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취향과 추구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말을 잘하고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능력 있고,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우리 요구 기준에 맞지 않으면 원망 속에 살면서 상대를 차갑게 대하거나, 상대와 기싸움을 하고, 말다툼하며, 심한 경우에는 이혼까지 하여 자신과 가족 모두가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이때, 저는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순종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무능하다고 싫어하며 남편을 무시하면서 스스로 고통 속에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남편도 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리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길 원하며, 더 이상 자신의 삶에 불만스러워하지 않고, 남편을 무시하지 않으며, 남편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그때부터 저는 남편을 다시 잘 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있어도 예전처럼 그렇게 억지를 부리거나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배정이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남편이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남편도 저의 변화를 보면서 저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친정에 갔는데 한 이웃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아직도 신혼 때 살던 단층집에 사세요? 아파트는 아직인가요?” 저는 마음이 흔들리고 당혹스러웠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이요.” 이웃이 말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아파트에 살려고 하는데, 깨끗하고 편안해서 살기 좋잖아요.” 저는 이웃의 시선을 피하며 둘러댔습니다. “저희 시아버님이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어서요. 저는 단층집도 아주 좋은데요. 아파트는 나중에 생각해 보려구요.” 이웃이 떠난 후 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휴! 우리가 무슨 아파트 살 돈이 있기나 하냐구!’ 부지중에, 저는 또 남편이 무능해서 자기의 체면이 깎였다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혼이 당신께서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이 저보다 잘 사는 것을 보면 그래도 원망스럽습니다. 남편이 제가 원하는 행복한 생활을 주지 못한 것 같고, 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세요!’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트렌드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트렌드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갈수록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간에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모든 고통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좇아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제일이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체면에 살고, 나무는 껍질에 산다’ 등등 사악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돈을 숭상하고 물질적 향락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 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고, 양옥집과 별장에 살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의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좇습니다. 아울러 이를 밑천으로 서로 높은 수준으로 비기고 자랑합니다. 돈이 있고, 잘 살면 잘난 사람이고, 그가 하는 말에도 힘이 실리고 모두가 부러워하며 아첨합니다.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무시합니다. 이런 잘못된 관점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점점 비현실적이고, 허영에 빠지며,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변해 완전히 인성과 이성, 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모두 집안 조건이 좋은지, 돈은 잘 버는지를 봅니다. 이렇게 하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부귀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남자가 출세하면 여자도 존귀해진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시집 잘 가는 게 낫다’ 등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며 완전히 결혼관을 왜곡시켰습니다. 사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 쌍방이 함께 모든 책임을 지면서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사랑하고, 아껴주며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결혼에 너무 많은 요구와 조건이 생겼습니다. 부부간의 감정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거래로 가득합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면 결혼하고,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물질적 요구와 허영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그 결혼은 억지로 유지되거나 서로 미워하며 상처 주다가 심한 경우 이혼에 이릅니다. 지금 사회는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내연녀나 꽃뱀도 흔하게 보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본인도 역시 사악한 시대 조류의 유혹을 받고 고통당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전, 저와 남편은 꽤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차 있고, 집 있고, 자기보다 더 잘 사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때, 저는 남편의 평범하고 무능함을 싫어했고, 매일같이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자신도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우리 부부 사이는 점점 소원해져서 집안은 예전의 화목하고 따스함을 잃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대했던 스스로의 행동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추구했던 생활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종의 수단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본인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에게 우롱당하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되고 심지어 이혼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저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부자에게 시집가서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의 남편은 밖에서 외도하고, 여색을 탐하면서 부인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집안에서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 하인처럼 굽신거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둘 사이에도 진실한 감정이 없었고 자주 말다툼하며 싸웠습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만족을 얻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없는 쓰라린 고통과 무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가령 그들의 그런 삶이 행복했을까요? 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건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저는 마음속의 이런 허망한 것들을 내려놓고 남편과 화해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저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사탄이 주입한 목표대로 살려고 했던 삶은 정말 고통스러웠어. 난 진리가 없어 사탄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헛되이 내 인생을 낭비한 거야.’ 그제서야 깨달은 저는 잘못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다시는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따라 헛된 물질적 삶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남편을 바르게 대하고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기까지 헤아리니, 저는 남편이 비록 돈이 없어서 그에게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주지 못하고, 허영심도 채워주지 못하지만 정직하고, 일처리가 신중해서 무슨 일을 하든 주도면밀하며, 저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억지를 부려도 남편은 다 양보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그의 믿음 생활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배정한 결혼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부자인 남편을 선택해서 풍족한 삶을 살았더라도 생활은 먹고 마시는 게 다였을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창조주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진리와 비밀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과 사악한 시대의 조류도 분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가난하든 풍족하든 적절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한 후, 남편을 대하는 저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에게 관심을 쏟고 이해했습니다. 서서히, 저와 남편 사이의 소통도 늘어났습니다. 남편은 그의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마침내 가정이 화목해지고 온기가 돌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지금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정확한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증문 더보기: 바람난 남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8/09/2019

제19편 (3)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만물은 나의 존재로 말미암아 자기 자리에서 순종하며, 나의 징계가 없다고 해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은 땅에서 각 나라의 경계를 이루었고, 물은 땅 사이에서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공기는 땅의 공간에서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물체가 되었다. 오직 사람만이 진심으로 내 요구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만물 중에 패역한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나에게 진정으로 순종한 적이 없으므로 나는 계속 사람을 엄격히 다스리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 정말 나의 영광을 온 우주 아래에 두루 퍼지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모든 영광을 사람에게 보일 것이다. 사람은 더러워서 나의 영광을 볼 자격이 없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나를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감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광을 사람에게 보인 적이 없었고, 사람은 계속 타락하여 죄의 심연 속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사람의 불의를 용서해 준 적이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보호할 줄 모른 채 언제나 ‘죄’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고 ‘죄’ 때문에 해를 입어도 방치하였다. 이것이 사람에게 자애심(自愛心)과 자존감이 결여된 것이 아니란 말이냐? 사람들 속에 진실한 사랑이 있느냐? 사람의 충성심은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진실이라는 것 속에는 가짜가 섞여 있지 않느냐? 사람의 충성심은 모두 혼합물이 아니냐?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순수한 사랑이다.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하고, 또 나를 알고자 해도 내게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은 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에게 ‘충성심’을 바친다면 나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나를 신뢰하지 못해 내게 자신을 조금도 헌신하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로 인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사람을 처리하여 적합한 종착지를 주면 그만이다. 하늘에서 천둥이 칠 때 사람을 쳐서 쓰러뜨리고, 큰 산이 무너질 때 사람을 파묻을 것이다. 맹수가 굶주릴 때 사람을 통째로 삼켜 버리고, 바닷물이 세차게 불어날 때 사람을 수몰시킬 것이다. 세상에서 서로 잔인하게 죽일 때 사람들 가운데서 생겨난 재해로 인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말씀 더보기: 
제19편 (3)

3/10/2016

동방번개-구원의 소리ㅡ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국도 새 노래 MV 中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푸르른 하늘, 푸르른 잔디, 부드러운 기타 선율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당신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에게 순복하고 마음을 그에게 주는 사람을 보애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이 위대한지 미소한지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다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계획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통행하기 위해 살기만을 바랍니다.

[동방번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중국에서의 역사로 말미암아 탄생된 것이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곧 진리, 길,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나타나셨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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