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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는 축복의 말씀만 들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은 그 순간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 수 있었겠느냐?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슬펐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 그가 계획한 것에 대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때,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와 마음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얻었고, 그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은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렸을지라도, 마음은 여전히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가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경영이 비로소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얻고자 하는 사람, 그가 보고자 하는 사람, 그가 기뻐하는 사람이 아주 멀리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때는 하나님 자신 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며,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음이 아주 흥분된 동시에 무겁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다음 사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준 일을 통해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유 하나로 하나님은 그에게 이처럼 큰 복을 내렸다. 비록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를 귀히 여기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진심을 보이는 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같은 진심을 어느 정도로 소중히 여기느냐? 아마 너희는 그 정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란 후, 하나님은 또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요구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수행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다. 아브라함의 그 진심에 하나님은 감동하였으며, 그것을 귀히 여겼다. 어느 정도로 귀하게 여겼느냐? 귀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이냐?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전에 없던 만족감을 느꼈으며,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은 기쁨을 느꼈다. 그런 ‘만족감’과 ‘기쁨’은 하나님이 손수 만든 피조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이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께 드린 가장 진귀한 첫 번째 ‘제물’이었다. 이 ‘제물’은 하나님이 그토록 힘들게 기다렸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창조된 인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물로 간주하였다. 또한 그것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기울인 심혈로 얻게 된 첫 번째 성과를 보았고, 인류에게서 희망도 보았다. 그 후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들이 더 나와 그와 함께하며, 그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그를 헤아리기를 바랐다. 심지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계속 살아가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아브라함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그와 함께하고, 그의 경영에 계속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했든, 그것은 단지 바람일 뿐이고 생각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 하나님을 알고 증거하고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것에 ―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그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을 보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것도 보게 되었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진심과 순종을 열납했을지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했으며,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도 부족했다. 또한 하나님과 동심합의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고 조급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롭고 조급할수록 최대한 빨리 그의 경영을 계속해 나가려고 했고, 한 무리를 선정하고 얻어 그의 경륜을 이루고 그의 뜻을 이루려고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그런 간절한 마음은 바뀐 적이 없다. 처음 인류를 창조한 후 하나님은 이긴 자들, 즉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깨닫고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와 그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난하든, 하나님이 희망하는 목표가 얼마나 멀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변한 적이 없고, 그것을 포기한 적도 없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느냐? 아마도 그렇게 실감 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느껴 보거라!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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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6/29/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창조주의 권능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다

1.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다

(창 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6~7)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 1:9~11)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창 1:14~15)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20~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다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3. 하나님의 축복

(창 17:4~6)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창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이상 세 부분의 성경 말씀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권능을 행사할 때 원칙이 있다는 것을 보았느냐? 예컨대, 하나님은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는데,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며 사람에게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지금 사람들이 보는 ‘무지개’가 하나님이 당시에 말씀하였던 그 ‘무지개’가 아니냐? 그 무지개의 성격과 의미에 변화가 있느냐? 확신하건대 어떤 변화도 없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그 일을 행하였고, 사람과 세운 언약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언약’이 언제 변할지는 물론 하나님이 결정한다.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한 후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언약’을 지키고 있다. 이 일에서 너희는 또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권세와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일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고 원칙이 있으며 신용을 지킨다. 그의 신중함과 그가 일하는 원칙은 창조주를 거스를 수 없고 그의 권능을 초월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권능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모두 그의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계획을 파괴한 적도 방해한 적도 없다. 그는 권능을 행사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정확하게 진행한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는 만물 역시 하나님 권능의 행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의 권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고, 그의 권능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다. 그가 보기에 복받는 자는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 권세 아래에 있을지라도,주받는 자 역시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능의 주재하에, 하나님 권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며, 하나님 권능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다. 창조주의 권능은 그 어떤 요인의 변화로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권능의 행사 원칙 역시 그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격변한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능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 권능의 본질인 것이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성인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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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7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0)








6/2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4)



⭐ 창조주의 권능은 시간, 공간, 지리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18절을 보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여러 차례 축복하며 그의 자손을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된다고 했느냐? 성경 구절처럼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저 형상적인 언어일 뿐이지만, 이 형상적인 언어를 통해 하나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후손이 한둘이 아니고 수천수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나라를 이룰 정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나라의 아비가 되리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많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일이냐, 하나님에게 달린 일이냐? 자신의 후손이 얼마가 될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느냐?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후손이 몇 명일지조차도 사람은 결정할 수 없다. 누가 자신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일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되든,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든 상관없이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예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적게 주었는데 네가 너무 많이 받게 되는 법은 없다. 하나님이 네게 많이 준다면, 네가 많다고 탓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지,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으며,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네 씨로 크게 성하여”라고 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지켜질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으며, 사람이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바라보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변화에 의해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사라지는 그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이는 그가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의 권세를 지녔으며, 창조주의 능력이 있고, 만유와 모든 생명을 주관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가능케 하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간단한 일인 것이다. 이 일이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가 하고자 결정한 일이나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본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는 이러한 체득이 있느냐? 이런 것은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후예가 많지 않으냐? 얼마나 많으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으냐? 각 나라, 각 지역, 세계 각지로 널리 퍼져 있지 않으냐? 이러한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그 말씀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끊임없이 현실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권능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이는 순식간의 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한 일의 성취와 응답은 시간 차 없이 즉시 이루어진 경우이다. 이 또한 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 권능의 또 다른 면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권능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창조주 권능의 더 실질적이고 더 훌륭한 면을 느끼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가 무섭게 하나님의 권능은 그 사역을 관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것들이 점차 현실이 되기 시작하였다. 만물의 모든 것들이 다 이로 인해 다양한 변화를 맞았다. 봄이 오면, 풀이 파릇파릇해지고 꽃이 피고 나무에 싹이 튼다.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기러기들이 돌아오며, 논밭에는 사람들의 일손이 분주해진다. … 이에 발맞춰 만물도 다시 소생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룰 때, 하늘과 땅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되는데,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 만물이 다 힘쓰며 움직이게 된다.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창조주의 권능 아래에 배치되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각자의 재능을 바친다. 이는 창조주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는 하나님의 권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권능에 범위가 정해져 있느냐? 하나님의 권능에 시간적 제약이 있느냐? 하나님 권능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을 논할 수 있느냐? 크고 작음과 강함과 약함을 논할 수 있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헤아릴 수 있느냐? 하나님의 권능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축복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그의 그 축복은 지속된다. 그 지속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하고, 인류에게 창조주가 가진 영원불멸의 생명력이 수없이 재현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권능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말씀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어 만물과 인류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권능으로 이뤄진 일마다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하다.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능과 그가 행한 사역마다 전부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후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든, 무엇을 하든, 약속받기 전후의 사정이 어떻든, 그가 생활하는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든, 하나님은 다 알고 있다. 말씀을 하고 난 뒤에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방금 일어난 것과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에게는 인류에게 한 모든 약속을 추진하고 관장하고 실현시키는 능력과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그 약속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요소, 예를 들면 시간, 장소, 종족 등과 같은 요소의 범위가 얼마나 넓든,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실현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관장하는 범위는 우주 전체, 인류 전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만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빛만 관리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었으니 물만 관리하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오해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일이 몇백 년이 지난 뒤에는 사람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약속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 있고,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권능을 행사하였는지, 만물은 또 어떻게 하나님에 의해 배치되었는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얼마나 훌륭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인류가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그의 행사에서 나타난 탁월한 면면들은 만물 가운데 전해지고 칭송되고 있다. 만물은 또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를 나타내며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갖가지 미담들은 만물을 통해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권세와 하나님의 능력은 만물에게 하나님의 무소부재와 항상 존재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시간, 지리, 공간,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범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며,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영원히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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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6)



넷째 날, 하나님이 또 한 번 권능을 행사하자 인류의 계절과 날짜와 연도가 탄생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자신의 계획을 이루면서 그렇게 자신이 계획했던 처음 3일을 보냈다. 그 3일 동안, 하나님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기진맥진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했던 첫 3일을 멋지게 보냈고, 상전벽해처럼 변화무쌍하게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었다. 새로운 세상이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만 봉인되어 있던 그림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조금씩 펼쳐졌다.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마치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다. 창조주는 그의 생각 속에 있던 것이 막 현실이 된 그 광경을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마음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조주의 그 새로운 페이지의 계획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는 또 무슨 말씀을 하였을까? 그의 권능은 또 어떻게 행사되었을까? 아울러, 또 어떤 새로운 사물이 이 새로운 세상에 왔을까? 창조주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눈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머무는데, 이 하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창조주에게 있어 그것은 틀림없이 또 하나의 멋진 하루이자 현 인류에게도 역시 대단히 중요한 하루이며,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하루였다. 그날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중요하며, 또 헤아릴 수 없는 그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먼저 창조주의 말씀을 들어 보자. …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창 1:14~15). 이것은 하나님이 뭍과 그 위의 식물을 만든 후에, 또 하나의 피조물에서 보여진 하나님 권능의 행사이다. 이런 일이 하나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하면 그대로 지키고, 지키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에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그 광명체는 하늘에서 빛을 발해 땅을 비추었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구분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말씀하는 순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지정 방식대로 이루어졌다.

‘하늘 궁창의 광명’은 상공에서 빛을 발하는 물체로서, 그것은 하늘도 비추고 땅과 바다도 비춘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한 속도와 빈도로 회전하며, 다른 시간대에 땅을 비춘다. 이와 같이, 동서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낮과 밤에 대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다른 회전 주기로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짜에 대한 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명한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인류에게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나타내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호가 된다. 인류는 경작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가 구분해 주는 계절, 날짜, 연도를 알아보고 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인류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계절, 날짜, 연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부터 있었고, 인류가 경험하는 춘하추동의 교체 주기 역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로 인해 사람들은 낮과 밤을 규칙적이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구분하고 날짜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절기와 연도를 아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달이 둥글어지는 날, 즉 달이 차서 한 달이 되는 날에 사람들은 광명체가 비추는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알게 되고, 달이 이지러지는 날, 즉 한 달의 절반이 되는 날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절기의 시작을 알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며칠이 하나의 절기를 이루고, 몇 개의 절기가 하나의 계절을 이루며, 몇 개의 계절이 한 해를 이루는지 매우 규칙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는 광명체의 운행으로 표시되는 계절, 날짜, 연도를 매우 쉽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류와 만물은 자연스럽게 광명체의 운행으로 만들어지는 낮과 밤의 교체, 사계절이 바뀌는 규칙 가운데서 살게 되었다. 이 역시도 창조주가 넷째 날에 광명체를 만든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창조주가 그 일을 통해 이룬 목표와 의의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와 그 광명체들이 장차 인류에게 가져다줄 가치 역시 창조주가 행사한 권능의 또 하나의 걸작인 것이다.

인류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세계에서, 창조주는 이미 자신이 곧 만들 새 생명을 위해 ‘저녁과 아침’, ‘공기’, ‘땅과 바다’, ‘풀과 채소, 그리고 각종 나무’, ‘광명체와 계절, 날짜, 연도’를 예비하였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그가 창조한 모든 새로운 사물 가운데서 발현되었고, 그의 말씀과 실제가 함께 가니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조금의 간극도 없었다. 그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과 탄생은 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즉, 말씀을 했으면 그대로 지키고, 지키면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뀐 적이 없으며,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지금 다시 성경의 이 말씀을 보면, 너희는 매우 새롭게 느껴지지 않느냐? 너희는 새로운 내용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것은 창조주의 행사가 너희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권세와 능력을 알도록 인도하고 또한 너희에게 창조주를 알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며, 그의 행사와 권능이 이런 말씀과 생명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사람들은 창조주의 권능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창조주의 지고지상함을 보게 되었으며,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의 뛰어남을 보게 되었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기적이 연속되게 만들었고, 사람의 이목을 끌었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 주는 하나하나의 놀라운 행사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비범한 능력은 인류에게 계속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하여 사람들이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기뻐하고, 찬양하며, 갈채를 보내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애틋함이 생기게 했다. 창조주의 권능과 행사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고,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흡족게 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생각, 모든 음성, 발현된 하나님의 모든 권능은 다 만물 가운데의 걸작으로서, 피조물인 인류가 가장 깊이 알고 인식할 가치가 있는 놀라운 위업인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2)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2)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다

(창 17:15~1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사역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방금 다 들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에 택한 인물로,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그가 100세,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려고 했느냐? 바로 성경에서 언급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라는 약속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의 당시 상황은 어떠했느냐? 성경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는 기록이 있다. 다시 말해, 이 노부부의 나이에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그는 땅에 엎드려 웃으며 속으로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말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한 약속을 단지 농담으로 여긴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아주 웃긴 일이었는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으면서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시다니. 게다가 내게 아이를 낳아 기르라며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다니,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아브라함은 땅에 엎드려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불가능해. 하나님께서 사람한테 농담하시는 거야. 이게 진짜일 리 없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럼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어떤 사람이었느냐? (의인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를 의인이라고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이면 다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참으로 교조적이구나! 이 일은 너희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쉽게 정의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있다.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이 일에서 보여 준 태도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어떠하냐? 막연한 면이 있지 않으냐? 그의 믿음이 크냐? 크지 않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그의 마음속 생각이 아브라함 본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를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순전히 상상에 불과하고, 아무렇게나 끼워 맞추는 것으로, 무책임한 평가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몸짓을 하나님이 보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알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자신이 정한 일을 바꾸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했을 때,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하나님은 어떤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며, 사람의 태도 때문에, 심지어 무지한 태도일지라도 자신의 계획을 함부로 바꾸거나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17장 21~2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했는지 하나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믿음이 얼마나 커야 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하나님이 행한 일과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택하기로 뜻을 정했는지, 어떤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지에 대해 사람에게 완전히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의 분량이 그 정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이 볼 때는 모두 정상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도 훈계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라는 말씀만 남겼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에 따라 점차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눈에 자신이 이루고자 계획한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다 예비하고 바로 떠났다. 사람이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계획하든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발전되어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떻게 인식하든 간섭하지 않지만, 사람이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일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봤듯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시간에 이삭을 태어나게 했다. 실제로 사람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의 사역을 막았느냐?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믿음이나 관념, 상상이 하나님의 사역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느냐? 없다! 전혀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그 어떤 환경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뜻을 정한 모든 일은 그의 계획에 따라 제때에 완성되고 이루어지며, 그의 사역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은 물론,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과 관념조차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을 거침없이 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며, 전능함의 발현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7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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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7)


💁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려고 하다
(창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창 18: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0) “아브라함이 가로되 …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은 그가 보살피는 자에게는 크게 긍휼을 베풀고 혐오하여 포기하는 자에게는 크게 노한다

성경 기록을 볼 때, 소돔 성에 하나님의 종이 10명이라도 있었느냐? 없었다! 하나님께 그 성은 남겨 둘 가치가 있었느냐? 성에서는 롯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했다. 이는 그 성에 하나님의 종이 한 사람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롯만 구원하고 소돔 성을 멸한 것이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보기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매우 원칙 있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결정 하나를 내리기 전에 장기간의 감찰과 생각의 과정을 거치며, 때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결정이나 판단도 단호하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는 그 결정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일찍이 성안에는 의인이 40명도, 30명도, 20명도 없으며, 10명조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의인은 롯 한 명뿐이었다. 성에서 일어나는 일, 성안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감찰하고 있었으며,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결정은 잘못될 리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하나님의 전능 앞에서 사람은 매우 무감각하며, 더없이 우매하고 무지하며, 근시안적인 존재라는 것이 더 두드러진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가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발현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 숫자는 아주 간단하며 어떤 문제도 설명하지 않지만,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의인이 50명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관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하나님의 이 부분의 성품을 보았느냐? 더 나아가 의인이 10명밖에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의인 10명으로 인해 그 성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관용과 사랑이 아니냐? 하나님은 그 의인들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염려하여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용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결과는 무엇이냐? 아브라함이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멸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그 후, 아브라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성에는 그가 말한 의인이 10명도 없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로 뜻을 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어떤 결정을 하였느냐? 그 성에 의인이 10명도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성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그 성을 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노가 아니냐? 그 ‘노’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변하지 않느냐? 그 성품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의 발현이 아니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질의 발현이 아니냐? 하나님은 의인이 10명도 없다는 것이 확정되면 반드시 그 성을 멸할 것이며, 게다가 그 성에 있던 사람들을 엄하게 벌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고 또한 그들이 너무 더럽고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이 대화들을 분석할까? 이 간단한 몇 구절에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인을 귀하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며 관용으로 대하고 염려하는 동시에, 그 성안의 모든 패괴된 자들을 마음속 깊이 증오하였다. 이것이 크게 긍휼을 베풀기도 하고 크게 노하기도 하는 것 아니냐?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 성을 멸하였느냐? 불로 멸하였다. 하나님은 왜 불태우는 방법으로 그 성을 멸했을까? 네가 어떤 물건이 불에 타는 것을 볼 때, 혹은 네가 어떤 것을 불태워 버리려고 할 때, 너는 그 물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왜 그것을 불태우느냐? 더는 필요 없고, 더 이상 그 물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냐? 그것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으냐? 하나님이 불로 태우는 방식에는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고, 증오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불로 소돔 성을 멸할 때 바로 이런 심정이었다. 불태우는 방식은 하나님의 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성 하나를 멸하려고 했을 때, 그 일이 사람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 성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눈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남아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이 그 성을 멸하는 것은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 전후에 발생한 일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보았다.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너희들 대다수는 하나님의 긍휼은 어느 정도 느낀 적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노를 체험한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일찍이 크게 긍휼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희 중 그 어떤 사람이나 일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크게 노한 경우는 아주 드물고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는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이냐?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노를 표출할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크게 노할 때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혐오하고 버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존재를 증오하며 더 이상 그 사람의 존재를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노가 임하면, 그 사람이 소멸됨을 의미한다. 지금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직 그 정도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크게 노하면, 너희 중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이 이 시대에 너희 모든 사람에게 크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을 뿐, 아직 크게 노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노가 임하기를 구해도 된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노와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체험해 보면 된다. 너희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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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발췌문 7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5)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44)








6/1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4)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원본 그대로의 기록이다. 말씀은 아주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아주 풍성하다. 그 속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이유와 배경,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할 때의 기쁨과 벅찬 심정이 담겨져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기를 희망한다’는 간절한 마음도 담겨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긍휼히 여긴다는 것을 보았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와 고심을 보았다. 더욱이 이번 경륜 사역의 뒤에서 하나님이 혼자 감당하고 있는 슬픔과 아픔이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는 이 말씀에서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뜻깊은 말씀이자, 후세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와 크나큰 영향력을 주는 말씀이다.

사람은 진심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여기에서 보게 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복은 크지 않으냐? 어느 정도로 크냐? 여기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전무후무한 복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의 외아들을 ― 그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주: 여기서 ‘바치다’라는 말 대신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로 말해야 한다.]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복을 내렸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한 복은 무엇이냐? 바로 그의 자손을 많아지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많아지게 한다는 것이냐?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어떤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냐?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느냐?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고 조금의 원망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구대로, 명령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에게 그러한 복을 약속한 것이다. 그 약속에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그 당시의 하나님의 마음과 관련된다. 그 중요한 말씀을 너희는 보았느냐? 아마 너희는 주의 깊게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하였다. 그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할 때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보통 어디를 가리켜 맹세하느냐? 다 하늘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을 향해 맹세하고 서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했다는 이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정확한 해석을 해 주면 너희는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번 외로움을 느꼈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혹은 ‘무의식적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을 취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자기 자신에게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는 이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이 행동으로부터 너는 너 자신을 연상해 볼 수 있다. 네가 가슴에 손을 대고 자신에게 말할 때, 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알고 있지 않느냐? 너의 태도는 아주 진지하지 않겠느냐? 너는 아주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지 않겠느냐? 여기에서 보여진 것같이,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할 때의 태도가 아주 진지하고 진실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며 약속을 주었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에게 ‘나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할 것이다. 그는 내 말에 순종했으며, 내가 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는 이 말씀을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라엘 선민들이 나오게 하고, 그다음 그 선민들을 이끌어 그의 사역에 발맞춰 함께 나아가게 하기로 뜻을 정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담당하게 하려 했다.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이 선포하고자 하는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지게 하며, 그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바람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이것은 복받은 일이 아니냐? 인류에게 있어서 이보다 큰 복은 없으니, 이것이 가장 큰 복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받은 이 ‘복’은 그의 자손이 많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그의 경영, 그의 당부와 사역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했을 때,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했을 때, 하나님은 이미 뜻을 정하였다. 하나님이 이렇게 뜻을 정한 과정은 매우 진실하지 않으냐? 아주 실제적이지 않으냐? 하나님은 그때부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심혈을 기울이고, 그의 소유와 어떠함, 그의 모든 것, 더 나아가 그의 생명까지 그들에게 베풀어 주기로 정한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서부터 그의 행사를 보여, 사람들에게 그의 지혜와 그의 권병과 능력을 보게 하리라 뜻을 정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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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5)



셋째 날,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났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기로 가득 찼다

〈창세기〉 1장 9절에서 11절 말씀의 첫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만 했을 뿐인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궁창 이외에 그 공간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성경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바로 그 공간에 또 육지가 생기고 바다가 생긴 것, 다시 말해 물과 육지가 나누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에 ‘그대로 되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던 기간에 바쁘게 보냈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하나님이 손을 댔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한 것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새로운 사물이 생겨나게 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겨났다. 순식간에, 형태가 각각인 여린 작은 생명들이 흙 속에서 꼬물꼬물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몸에 묻은 흙을 채 털어 내기도 전에 너도나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 모두가 만물의 일원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 각자의 생명을 바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땅에는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났고, 사람들에게 제공될 각종 채소가 흙을 뚫고 무럭무럭 자라났으며, 산과 들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숲이 울창하였다. …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밋밋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풀, 채소와 나무 등 각종 식물들로 둘러싸여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게 되었다. … 공기는 풀꽃 향기로 그윽하고, 흙 내음이 물씬 풍기며, 각종 식물들은 공기를 통해 숨을 쉬면서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에 따라 모든 식물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싹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생명 여정을 시작하였다. 각자 생명의 궤적을 지키며, 만물 중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 그들은 모두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고,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창조주에게서 계속 자양분을 공급받을 것이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 곳곳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것이며,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력을 영원히 세상에 알릴 것이다. …
창조주의 생명은 비범하고 그의 생각은 비범하며 그의 권능은 비범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이 있자 최후의 결과는 늘 “그대로 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손댈 필요 없이, 생각으로 지휘하고 말씀으로 명령하기만 하면 일은 곧 그대로 되었다. 그날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한 다음, 뭍에 풀이 자라나게 하였고,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자라게 하였으며,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분류하고 열매마다 씨를 품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루어져 계속해서 이 새로운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그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그 그림의 내용을 말씀으로 표현할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의 권능을 어떻게 행사하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변화되었다. 그 모든 변화와 발전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고, 또한 창조주 생명력의 비범함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단순한 구상도, 공허한 그림도 아니며, 생명력과 엄청난 능력을 지닌 권능이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다 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동시에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완전한 구상과 아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셋째 날 땅에 각종 식물들이 자라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계속 말씀으로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사물을 만들었다. 그는 말씀하고 명령하고 그의 권세를 행사하고 그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였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한 만물과 인류를 위해 구상한 모든 것들을 예비하고 있었다. …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3)





6/0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3)


하나님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고, 사람의 진심만을 원한다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였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했다. 즉,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를 ― 그가 사랑하는 이삭을 ―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행한 이 일은 지금에 와서 봐도 여전히 사람의 관념과는 어긋나지 않느냐? 그렇다! 하나님이 이때 행한 일은 사람의 관념에 매우 맞지 않는 것이며,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이런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믿지 못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들을 주셨다가 아들을 얻은 후에는 또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나님이 대체 뭘 하시려는 거지?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러고는 또 그에게 조건 없이 아들을 바치라고 했다. 이것은 지나친 것이냐?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 지나칠 뿐만 아니라 조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아브라함 본인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다른 생각이나 자그마한 추측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들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 너는 어떤 일에서 아브라함이 기꺼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느냐? 원문에서 뭐라고 했느냐? 이같이 기록되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3),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9~10).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 모든 행동을 하나님은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보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정말로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이전에 아브라함이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하나님을 오해했다 할지라도, 이때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진짜였으며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삭을 ― 그의 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순종을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사람이 봤을 때,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하나님의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 이삭을 바치라는 것에 ―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하였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다. 비록 그 일이 시련이고 검증일 뿐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위안을 받았고, 사람이 그에게 바친 사랑을 느꼈으며, 또한 사상 처음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던 그 찰나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애초에 이삭의 생명을 가져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바로 저지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복종은 이미 시험을 이긴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보인 행동으로 이미 충분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한 일에서 이미 결과를 얻었다.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느냐?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하였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한 것이며 하나님이 보고자 기대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냐? 비록 하나님이 다양한 배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미 이것을 바쳤어. 나는 이미 그것을 포기했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나에게 만족을 못 하시는 걸까? 왜 계속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거지? 왜 계속해서 나를 검증하시지?’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너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너에게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던 것과 같은 그런 진심과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보지 못했고, 너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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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1)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30)












6/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30)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노아 이야기의 결말인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평소와 다른 이례적인’ 방식으로 당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음을 보았다. 이 방식은 무척 특별했다.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것을 일단락 짓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때 ‘언약을 세운’ 일은 아주 평범한 일이다. 그것은 단지 문자의 형식으로 양측을 구속하는 일로, 일을 행할 때 규정을 어기지 않도록 양측의 이익을 보호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상 아주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한 출발점과 의미에 입각해서 보면,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생각이 진실하게 나타난 것이다. 만일 네가 이 말을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는다면, 내가 일의 진상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인류는 정말로 영원히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할 것이다. 너의 상상 속 언약을 세우던 하나님은 웃고 있었을 수도 있고, 엄숙한 표정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상상 속 하나님이 가장 일반적인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아픔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고독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이 신뢰하거나 신뢰할 만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아픔을 토로할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은 간단한 일을 행하여 지난 인류와 작별했고, 과거의 일을 해결했으며,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일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슬픔과 아픔을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두었다. 하나님은 그가 토로할 만한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워 사람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무지개가 나타날 때 과거에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음을 상기하게 했고,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하나님은 이토록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도 사람을 잊지 않고 여전히 이렇게 사람을 염려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사심 없음이 아닐까? 반면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무엇을 생각할까? 이때가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이럴 때 사람은 늘 하나님을 끌어당겨 와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언제든 하나님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고, 사람을 곤경에서 벗어나 빛 속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에게 공급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은 안정제나 위로제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마음 아프고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떤 피조물이나 사람이 그와 함께하고 그를 위로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선 분명 지나친 바람이다. 사람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감정을 헤아린 적이 없기 때문에 그는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 줘야 한다고 요구한 적이 없고,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뿐이다. 하나님이 약간의 고통을 받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할 때, 하나님이 모든 일에 기울인 심혈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될 때, 너는 비로소 하나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사심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지만 왜 그렇게 했고 왜 언약을 맺었는지 누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다. 즉, 그의 진정한 생각을 누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다. 그가 직접 창조한 인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또한 그가 인류를 멸할 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느낌을 사람에게 알려 주더라도 사람은 그 ‘신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마음이 아픈 와중에도 여전히 그의 다음 단계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부분과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묵묵히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린다. 하나님이 인내하는 것은 그가 냉혹해서도 아니고, 무감각해서도 아니며,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약함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본질이 본래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본질과 성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자 진정한 창조주인 하나님의 신분이 진실로 체현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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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8)






5/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창세기 2:18~20)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세기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와 관련된 구절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말씀이 있다. 너희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어라.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말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만든 뒤 아담이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느냐? 글자를 알았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뒤에 아담은 각종 생물을 보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았느냐? 하나님이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느냐? 물론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각종 생물들에게 어떤 이름을 어떤 식으로 지어 주어야 할지를 알았을까? 이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 때 아담에게 어떤 것을 더해 주었냐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는데, 위의 사실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의 지혜를 더해 주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것이 핵심이다. 너희는 새겨들어야 한다! 또 한 가지 핵심이 있는데 이 역시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담이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으면 하나님 편에서는 그 생물들의 이름을 확정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내가 꼭 설명해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그의 지혜와 능력, 소유와 어떠함도 주었다. 하나님에게서 이런 것들을 받은 사람은 독립적으로 일을 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한 것들이 하나님 보기에 좋으면 하나님은 열납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올바르게 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각 생물의 이름을 고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부른 대로 하나님은 ‘인정’해 주어 그 생물의 이름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다른 의견이 있었을까? 없었다. 이것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를 가지고 일을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이 긍정적인 일을 행했다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긍정되고 인정받고 열납된다. 하나님은 아무런 평가나 비판도 하지 않는다. 이는 어떠한 인류도, 어떠한 악령이나 사탄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을 보았느냐? 사람이라면, 패괴된 사람 혹은 사탄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 앞에서 자신을 대표해 일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절대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력과 그 지위를 놓고 다투지 않겠느냐? 반드시 다툴 것이다! 이때 패괴된 사람 혹은 사탄이 아담과 함께 있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아담이 한 일을 부인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있고 독창적인 견해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담이 한 모든 일을 부정했을 것이다. “네가 ‘이것’이라고 부르겠다면 난 절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저것’이라고 부를 거야. 네가 ‘장 씨’라고 부르면, 난 ‘이 씨’라고 부를 거야. 반드시 내 우수함을 보여 줄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무슨 본성이냐? 교만이 아니냐? 반면 하나님은 어떠하냐? 이런 성품이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에 대해 이상한 행동, 반대하는 행동을 보였느냐? 분명히 말하건대 없었다!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에는 고집이나 교만이나 독선이 없다. 이 점을 위의 대목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네가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고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나타내고 드러냈는지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다면 내가 방금 해석한 내용들에 대해 너희는 인정하느냐? 아담이 한 일에 대해 하나님은 대놓고 “잘했다. 옳다. 찬성이다!”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인정했다. 그는 아담이 한 일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했다. 이는 창세 이후 인류가 하나님의 당부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 행한 첫 번째 일로, 하나님을 대신해 행한 일이자 하나님을 대표해 행한 일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지혜에서 비롯된 일로, 좋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때 아담이 한 일은 인류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선명히 나타내 보인 일이었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부 소유와 어떠함과 지혜를 더해 준 것은 사람이 그를 선명히 나타내는 생명체가 되게 하려 함이었다. 또한 그러한 생명체가 하나님을 대표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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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4)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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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5)

 










5/2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5)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창 3:20~21)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아담, 하와와 함께 있었느냐?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대답해 보아라.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한국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이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느냐?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대만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이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모두 아주 적절한 대답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창조하여 그들을 동반자로 삼았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의식주를 돌보았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모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그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신묘막측함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낮춤과 자비,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근심과 책임과 보호만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흡사 자식을 두고 걱정하는 부모와 같았다.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진실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대한 지위를 가진 자라 자처하지 않고 가죽으로 직접 인류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 이 가죽옷으로 치부를 감추든 추위를 막든 어쨌든 하나님은 손수 그 일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생각이나 이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옷을 지어 사람의 몸을 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한 것이다. 이 일은 단순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상상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낮춤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안하무인이었던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 한없이 높이 쳐들었던 머리를 떨구었다. 여기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한층 느끼게 되었다. 마음속 ‘위대한’ 하나님, ‘사랑스러운’ 하나님, ‘무소불능한’ 하나님은 반대로 아주 미미하고 추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이 일을 듣고 나서, 너는 하나님이 행한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얕보겠느냐? 어떤 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반대다. 그는 하나님이 진실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에 감동받는다.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볼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로 존재함을 더욱 느끼게 되고, 사람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비중과 늘 사람 곁에 있는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현재와 연결시켜 봐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위해 이처럼 소소한 일을 했고, 사람이 지금껏 감히 상상하지도, 예상치도 못한 일까지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지금의 사람에게 할 수 없을까? 어떤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본질은 꾸며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도 꾸며 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은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더해 준 것도 아니고, 시간이나 장소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한 일에서, 사람이 하찮거나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일, 심지어 하나님이 절대 할 리 없다고 여기는 아주 미미한 일들에서 진정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나타난다. 하나님은 위선적이지 않다. 그의 성품과 본질 속에는 과장, 가식, 거만, 교만이 없다. 그는 지금껏 큰소리친 적이 없다. 그는 신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돌보고 인도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든, 얼마나 느낄 수 있든, 얼마나 볼 수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확실하게 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을 사람이 알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영향을 줄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영향을 줄까? 나는 네가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봄을 더 실감하길 바란다. 그와 동시에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추측도, 의심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묵묵히 모든 일을 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진실함과 신실함과 사랑으로 모든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떠한 주저함이나 후회도 없었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보답받거나 얻으려 한 적도 없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유일한 목적은 사람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얻기 위함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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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