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menu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플랫폼배경사진 출처: https://www.holyspiritspeaks.org/special-topic/kingdom-has-descended-on-the-world/copyright_en.html
레이블이 창조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창조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7/0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1)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다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만물을 창조한 후, 창조주의 권능이 ‘무지개 언약’으로 또 한 번 입증되고, 다시 나타나다

창조주의 권능은 언제나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타나고 행사된다. 그는 만물의 운명을 주재할 뿐만 아니라, 그가 친히 빚은 인류 ― 다른 구조와 형식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특별한 피조물 ― 역시 주재하고 있다. 만물을 창조한 후에도 창조주는 그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물과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권능을 정식으로 행사한 것은 인류가 그의 손에 의해 탄생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인류를 경영하고 주재하기로 하였고, 인류를 구원하기로 하였다. 또한 진정으로 인류를 얻고자 하였는데, 바로 만물을 관리할 수 있는 인류를 얻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러한 인류가 그의 권세 아래에 살아가며, 그의 권세를 알게 하고 그의 권세에 순종하게 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으로 그의 권세를 선포하고, 그의 권세로 자신의 말씀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권세는 어디서든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한 일부 특수 사례들만을 뽑았다. 이것으로 너희가 하나님의 유일성과 하나님 권능의 유일무이함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게 하겠다.

창세기 9장 11절에서 13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기록과 관련된 말씀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유사한 부분은 무엇일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행한 것이다. 다른 부분이라면, 이 단락의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의 대화라는 점이다. 이 대화는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사람에게 언약에 대해 알려 주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그때 권능을 행사한 것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인류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부와 명령이었으며, 그가 만들고자 하는 피조물에게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대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사람과의 대화이며, 또한 그가 인류에게 하는 당부와 훈언이고, 그가 만물에게 하달하는 권능을 지닌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이 어떠한 일들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느냐? 거기에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 주고, 또한 이를 위해 하나님이 증거를 세운다고 하였다. 그 증거는 무엇이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것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한 원래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함과 동시에 무지개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너희는 다 무지개를 본 적이 있을 텐데, 무지개를 보았을 때, 이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고 있느냐? 과학으로는 이 사실을 논증할 방법이 없다. 과학으로는 그 근원을 찾지 못했으며, 그것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필요 없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말씀이 있고 난 후, 권능이 지속되는 결과인 것이다. 창조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과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출현시켜 하나님이 세운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에게나 창조된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천상의 규율이자 법칙이라는 의미이다. 변함없이 지속되는 이 법칙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난 후 그의 권능이 또 한 번 진정으로 구현된 것이며,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그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 권능의 지속과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다. 이는 그가 무엇을 하고자 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고, 어떤 방식으로 성취하겠다고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씀이 있고 난 몇천 년 후인 오늘날에도 인류는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인해, 그 일은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무지개를 없어지게 할 수 없고,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인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면 그대로 지키고, 그대로 지키면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면 반드시 영원하다.” 이 말은 여기서 아주 명확하게 구현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확실한 증거이자 특징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떤 비피조물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특유의 신분과 본질을 피조물과 구분시켜 준다. 아울러, 그것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이자 특징인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줌과 동시에 그의 마음도 알려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수한 증거를 사용해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그 증거로 그가 사람과 세운 언약에 확신을 준 것이다. 이 ‘언약’을 세웠다는 것이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니냐? 얼마나 큰 사건일까? 바로 그 ‘언약’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니며, 또 단체와 단체 간의 언약도 아니다. 더욱이 한 국가와 또 다른 국가 간에 세운 언약도 아니며, 창조주가 인류 전체와 세운 언약이다. 이 ‘언약’의 유효 기간은 창조주가 만물을 폐기하는 그날까지이며, 이 ‘언약’의 시행자는 창조주이고, 그것의 수호자 역시 창조주이다. 요컨대,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창조주와 사람의 대화에 따라 응하고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세에 순종하고, 따르고, 신뢰하며, 그 권세를 깨닫고 우러르고 칭송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유일무이한 하나님 이외에 이러한 언약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매번 무지개가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은 인류에게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을 알려 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창조주가 인류와 세운 언약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자체가 아니라, 창조주의 영원불변의 권능인 것이다. 무지개의 출현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창조주가 은밀한 곳에서 행하는 놀랍고도 오묘한 행사이며, 창조주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변치 않는 권능의 생생한 구현이다. 이 모든 것들이 창조주의 또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능의 구현이 아니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 🌱 📖 🌱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발췌문 3)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발췌문 105)










7/0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사탄은 감히 창조주의 권능을 초월하지 못했으며 만물은 규칙 가운데 생존한다

이것은 욥기에서 발췌한 말씀이다. 이 말씀 가운데의 ‘그’는 욥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비록 짧지만,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영계에서 사탄과 나눈 구체적인 대화로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상인 사탄을 설명하였다. 또한 하나님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이고 명령이다. 그 명령의 세부적인 사항은 욥의 목숨과 관련되며, 하나님이 사탄에게 정해 준 욥을 대하는 마지노선에 관련된다. 즉, 오직 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우선 이것이 하나님이 사탄에게 한 말씀이며, 욥기의 원문과 결부시켜 하나님이 어떠한 배경하에서 이러한 말씀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탄은 욥을 참소하고자 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야만 욥을 시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욥을 시험하고자 하는 사탄의 요구를 들어준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러한 조건을 걸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이 말씀은 어떤 성격을 띠느냐? 확실히 그것은 분부이고 명령이다. 이 말씀의 성격을 파악한 후에 너는 이 명령의 선포자가 하나님이며, 명령을 받아들이는 자가 사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양자의 관계는 그 명령을 통해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 준다. 물론 이 역시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 기록에서 보여 주는 영계에서의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관계이며,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과 지위의 차이이다. 또한 지금까지 인류가 구체적인 사례와 구체적인 문자 기록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 지위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기록이 인류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아는 데 있어 중요한 문헌이며,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고, 그것으로 영계에서의 창조주와 사탄의 대화 중 일부를 통해 창조주 권능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씀 속에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이 또 한 번 입증되었다.

외적으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사탄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실제로 말씀하는 태도와 서 있는 위치는 사탄보다 높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명령하는 어조로 사탄에게 분부한 것이다. 사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 주고, 욥을 이미 사탄의 손에 붙였으니 마음대로 욥을 대할 수는 있으나 욥의 생명을 취할 수는 없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 함축적 의미는 비록 욥을 사탄의 손에 붙였으나 욥의 생명까지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서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사탄에게 한 이 명령에서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하며 서 있던 위치 역시 이 명령에서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이 서 있는 위치는 빛과 공기를 만들고 만물과 생명체를 만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만물과 생명체를 주재하는 하나님이고, 인류를 주관하고 음부를 주관하는 하나님이며, 모든 생명체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인 것이다. 영계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가 감히 사탄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또한 어찌해서 사탄에게 친히 명령을 내린 것일까? 욥의 목숨을 포함해서 사람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고, 하나님은 사탄이 침해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며,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했을 때에도, 욥의 생명을 앗아가지 말라는 이 특별한 뜻을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사탄은 감히 초월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과 구체적인 분부에 대해 사탄은 각별히 조심하고 명령에 복종하고 따르며 감히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사탄 역시 마음대로 하나님의 어떤 명령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범위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감히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 권능의 위력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권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 사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자기가 속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인류보다 훨씬 잘 안다. 하나님의 지위와 권능에 대해 사탄은 영계에서 확실하게 보았다. 하나님 권능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능이 행사되는 원칙에 대해 사탄은 깊이 느꼈다. 그래서 감히 태만하거나 그 어떤 것도 위반하려고 하지 못하며, 감히 하나님 권능을 벗어나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도 그 어떤 도전도 감히 하지 못한다. 사탄은 본성이 사악하고 교만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해 준 한계와 범위를 감히 벗어나지 못했다. 천만년 동안, 사탄은 엄격하게 그 한계를 지키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분부와 명령을 준수하며 지금껏 감히 한계선을 벗어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사탄이 비록 악독하긴 하지만, 타락한(직역: 패괴된) 인류보다 훨씬 ‘현명’하다. 사탄은 창조주의 신분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 ‘규율을 지키는’ 사탄의 행위로부터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사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천상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유일성,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만물이 법칙 가운데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인류가 하나님이 제정한 궤적 가운데서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규율을 깰 수 없고 이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창조주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창조주의 결정에서 온 것이며, 창조주의 권능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6/2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9)



📖 창조주 권능하의 만물은 다 완전무결하다

새와 어류, 나무와 화초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없는 것,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집짐승, 곤충, 들짐승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하나님이 보기에 다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보기에 그 모든 일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졌고, 그의 기준에 도달하였다. 창조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하고자 한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이루었다. 그가 창조하고자 한 것들이 한 가지씩 나타났고, 나타난 것마다 모두 창조주 권능의 구현이자 그의 권능이 가져온 결정체였다. 이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들로 창조주의 은혜와 공급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가 나타남으로 이 세계는 점차 하나님이 만든 만물로 풍요로워졌다. 혼돈하고 캄캄했던 세계가 맑고 깨끗하게 변화되었고, 적막하던 세계가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세계로 변화되었다. 창조된 만물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세한 것까지,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모든 피조물은 그것만이 갖는 정해진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다르든지 간에, 창조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면, 그것은 모두 창조주의 권능하에 생존하게 된다. 간혹 사람은 못생긴 곤충을 보면 “왜 이리도 못생겼어?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생긴 것을 만드셨을 리 없으니 이건 절대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야.”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곤충은 유난히 못생기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니 분명히 이것만의 특별한 쓰임새가 있을 거야.”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모든 생물들이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각양각색의 기능과 용도가 있도록 다 생각해 두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외형부터 내면의 구조까지, 생활 습관부터 각자 차지하고 있는 위치까지 다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나귀는 나귀의 생김새가 있으며,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누가 제일 예쁘고 누가 제일 못생겼다고 하겠느냐? 누가 가장 쓸모가 있고, 누가 가장 불필요한 존재라고 하겠느냐? 어떤 이는 코끼리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코끼리를 이용해 밭을 가는 자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만물 가운데 가장 위엄 있게 생겼다며 사자, 호랑이의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사자와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느냐? 요컨대, 만물을 대함에 있어, 사람은 창조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즉,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규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현명한 것이다. 또한, 창조주의 초심을 찾고 순종하는 태도야말로 창조주의 권능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에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이때에 이르러, 창조주 권능하의 만물은 창조주의 주재에 새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새날의 사역에 눈부신 서막을 열 것이며, 창조주도 그 순간 자신의 경영 사역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만물은 창조주가 정한 ‘봄에 싹트고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이 법칙과 창조주의 경영 계획에 따라 서로 함께 호응할 것이다. 그들은 각자 새로운 날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생명 여정을 맞이할 것이고, 또한 창조주 권능의 주재 아래에서의 하루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쉼 없이 성장하고 번성할 것이다. …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61)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6)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9)






6/2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1)


어째서 늘 3단계 사역을 언급하겠느냐? 시대의 변천과 사회의 발전, 자연의 변모는 모두 이 3단계 사역의 변화에 따라 바뀐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에 따라 바뀔 뿐, 스스로 발전하지 못한다. 3단계 사역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피조물과 각 종교 각 교파, 각계의 인사들이 다 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어느 교파에 속하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순종해야 한다. 이 사역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교주도 행하지 못한다. 세상이 몇 개의 큰 종교로 나뉜다고는 하나 종교마다 교주와 통솔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 또한 지구상의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 국가에도 여러 종교가 존재한다. 대국이든 소국이든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지만, 세계 각지의 종교 종류가 얼마나 되든 결국 전 우주의 모든 사람은 한 분의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어떤 종교의 교주나 통솔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류를 이끄는 이는 어느 교주나 통솔자가 아니라 천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이다. 이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몇몇 큰 종교가 있지만, 그 종교가 얼마나 크든 모두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며, 그 어떤 종교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발전과 사회의 교체, 자연 과학의 발전은 다 창조주의 안배를 떠날 수 없다. 이 사역들은 어느 한 교주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주는 어느 종교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도,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이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교주는 그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교주는 통솔자일 뿐 하나님(창조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만물은 창조주의 수중에 있기에 마지막에는 모두 창조주의 수중으로 돌아올 것이고, 인류는 본디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기에 어느 교파든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가운데 지극히 높은 분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류를 적합한 종착지로 인도할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여 각기 부류대로 나눴으니 마지막에도 그가 자신의 사역을 행하여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행한 3단계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고, 또한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다. 3단계 사역의 사실은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도한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단계 사역이 끝나면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전 우주 위아래에 오직 이 하나님 한 분만이 존재하며 다른 종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할 수 없는 자는 세상을 끝낼 수 없고, 세상을 창조한 이는 틀림없이 세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시대를 끝낼 수도 없으면서 다른 이에게 심신을 수양하고 교양을 쌓으라고만 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도, 인류의 주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이처럼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행하는 이는 오직 한 분뿐이며, 이 사역을 행할 수 없는 자는 분명 하나님이 아닌 원수이다. 사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다. 모든 사역은 다 이 참하나님 한 분이 행하고, 온 우주도 다 이 하나님 한 분이 주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든 중국에서 사역하든, 영으로 사역하든 육신으로 사역하든, 모두 그 자신이 행한 것이며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전 인류의 하나님이기에 그 어떤 조건의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이상(異象)이다. 피조물로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사역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야 하며 나아가 하나님이 사역하는 모든 의미까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합격된 피조물이 아니다! 피조물로서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인류의 역사(歷史)와 하나님의 모든 사역도 모르며, 더욱이 인류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 누가 전 인류를 다스리는지도 모른다면, 본분 이행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해 왔고, 땅에서 사람을 창조한 이래로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 성령은 끊임없이 역사하고 사람을 인도하며 한시도 사람과 떨어진 적이 없으나,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일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깨닫지 못한다. 피조물인 네가 자신의 역사(歷史)를 모르고,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누가 이끌어 주었는지도 모르며, 하나님이 행한 사역도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모른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오늘날 창조주가 또 친히 모든 사람을 이끌어 주면서 그의 지혜와 전능, 구원과 기묘함을 보여 주었는데도 결국 네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너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 아니겠느냐? 사탄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사람이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도태될 대상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사역을 알지 못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자는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려거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3단계 사역이 모두 끝날 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만들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들이고, 3단계의 구원 사역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는 마지막에 이루려는 사역이다. 그들은 6천 년 경영 사역의 결정체이자 최후에 사탄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마지막에 살아남을 자들이다. 너희 모두가 이 사람들 중의 일원이 될 수도 있고, 절반 혹은 몇 명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너희의 의지와 추구에 달려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9)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발췌문 132)











6/2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6)



넷째 날, 하나님이 또 한 번 권능을 행사하자 인류의 계절과 날짜와 연도가 탄생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자신의 계획을 이루면서 그렇게 자신이 계획했던 처음 3일을 보냈다. 그 3일 동안, 하나님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기진맥진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했던 첫 3일을 멋지게 보냈고, 상전벽해처럼 변화무쌍하게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었다. 새로운 세상이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만 봉인되어 있던 그림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조금씩 펼쳐졌다.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마치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다. 창조주는 그의 생각 속에 있던 것이 막 현실이 된 그 광경을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마음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조주의 그 새로운 페이지의 계획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는 또 무슨 말씀을 하였을까? 그의 권능은 또 어떻게 행사되었을까? 아울러, 또 어떤 새로운 사물이 이 새로운 세상에 왔을까? 창조주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눈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머무는데, 이 하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창조주에게 있어 그것은 틀림없이 또 하나의 멋진 하루이자 현 인류에게도 역시 대단히 중요한 하루이며,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하루였다. 그날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중요하며, 또 헤아릴 수 없는 그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먼저 창조주의 말씀을 들어 보자. …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창 1:14~15). 이것은 하나님이 뭍과 그 위의 식물을 만든 후에, 또 하나의 피조물에서 보여진 하나님 권능의 행사이다. 이런 일이 하나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하면 그대로 지키고, 지키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에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그 광명체는 하늘에서 빛을 발해 땅을 비추었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구분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말씀하는 순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지정 방식대로 이루어졌다.

‘하늘 궁창의 광명’은 상공에서 빛을 발하는 물체로서, 그것은 하늘도 비추고 땅과 바다도 비춘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한 속도와 빈도로 회전하며, 다른 시간대에 땅을 비춘다. 이와 같이, 동서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낮과 밤에 대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다른 회전 주기로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짜에 대한 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명한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인류에게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나타내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호가 된다. 인류는 경작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가 구분해 주는 계절, 날짜, 연도를 알아보고 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인류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계절, 날짜, 연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부터 있었고, 인류가 경험하는 춘하추동의 교체 주기 역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로 인해 사람들은 낮과 밤을 규칙적이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구분하고 날짜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절기와 연도를 아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달이 둥글어지는 날, 즉 달이 차서 한 달이 되는 날에 사람들은 광명체가 비추는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알게 되고, 달이 이지러지는 날, 즉 한 달의 절반이 되는 날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절기의 시작을 알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며칠이 하나의 절기를 이루고, 몇 개의 절기가 하나의 계절을 이루며, 몇 개의 계절이 한 해를 이루는지 매우 규칙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는 광명체의 운행으로 표시되는 계절, 날짜, 연도를 매우 쉽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류와 만물은 자연스럽게 광명체의 운행으로 만들어지는 낮과 밤의 교체, 사계절이 바뀌는 규칙 가운데서 살게 되었다. 이 역시도 창조주가 넷째 날에 광명체를 만든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창조주가 그 일을 통해 이룬 목표와 의의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와 그 광명체들이 장차 인류에게 가져다줄 가치 역시 창조주가 행사한 권능의 또 하나의 걸작인 것이다.

인류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세계에서, 창조주는 이미 자신이 곧 만들 새 생명을 위해 ‘저녁과 아침’, ‘공기’, ‘땅과 바다’, ‘풀과 채소, 그리고 각종 나무’, ‘광명체와 계절, 날짜, 연도’를 예비하였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그가 창조한 모든 새로운 사물 가운데서 발현되었고, 그의 말씀과 실제가 함께 가니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조금의 간극도 없었다. 그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과 탄생은 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즉, 말씀을 했으면 그대로 지키고, 지키면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뀐 적이 없으며,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지금 다시 성경의 이 말씀을 보면, 너희는 매우 새롭게 느껴지지 않느냐? 너희는 새로운 내용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것은 창조주의 행사가 너희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권세와 능력을 알도록 인도하고 또한 너희에게 창조주를 알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며, 그의 행사와 권능이 이런 말씀과 생명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사람들은 창조주의 권능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창조주의 지고지상함을 보게 되었으며,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의 뛰어남을 보게 되었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기적이 연속되게 만들었고, 사람의 이목을 끌었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 주는 하나하나의 놀라운 행사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비범한 능력은 인류에게 계속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하여 사람들이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기뻐하고, 찬양하며, 갈채를 보내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애틋함이 생기게 했다. 창조주의 권능과 행사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고,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흡족게 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생각, 모든 음성, 발현된 하나님의 모든 권능은 다 만물 가운데의 걸작으로서, 피조물인 인류가 가장 깊이 알고 인식할 가치가 있는 놀라운 위업인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2)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6/1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율법시대의 사역>(발췌문 20)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수많은 계명을 정했고 모세를 통해 그를 따라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포했다. 그 계명은 여호와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것으로, 애굽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계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하는 여호와의 요구였다.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을 원칙으로 죄와 의로움을 판단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했고, 어떤 이는 돌에 맞아 죽었으며, 어떤 이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계명을 지켰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일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임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바였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사람의 삶을 인도하는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말에 순종하며,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율법으로 갓 난 인류를 통제한 것은 앞으로 행할 사역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행한 사역을 근거로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그 기간에 여호와는 수많은 말씀과 사역을 했지만,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도하기만 했다. 즉, 그 무지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고, 생활할 줄 알며, 여호와의 말씀을 깨닫도록 이끌어 준 것이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 대부분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율법을 준행하게 한 것이었다. 이는 타락(직역: 패괴)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므로 성품의 변화라든가 생명의 성장 등을 논할 수는 없다. 그는 다만 율법을 통해 사람을 단속하고 통제했을 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 여호와는 단지 성전에 거하는 하나님이자 하늘의 하나님이었으며, 구름 기둥이자 불기둥이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하라고 한 것은 오늘날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과 계명뿐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규례라고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이 갖춰야 할 것들을 많이 베풀어 주고 친히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지음 받은 후, 사람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이 땅에 살면서 갖춰야 할 것들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었으며, 그것을 통해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인류를 그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보다 낫게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것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은 단지 사람을 인도해 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주를 인정하게 한 것뿐이다. 정복하는 것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인도해 준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행한 사역의 전부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행한 사역의 배경이자 실상이며 본질이다. 또한 이는 모든 사람을 여호와의 수중에서 다스리는 6천 년 경륜의 시작 사역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6천 년 경륜에 더 많은 사역이 생겨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6/1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인류의 구원 위해 두 번 성육신하신 하나님> (가사 버전)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려 두 번 성육신하신 하나님
영이시든, 육신 입으셨든 하나님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네

1
천사들은 사탄과 싸울 수 없네 사람에겐 더욱 불가능한 일
천사는 힘이 없고 사람은 패괴되었으니 도저히 손댈 수 없는 일
사람의 생명 만들고 땅에서 사람을 온전케 하려면 육신이 되셔야 하네
그의 신분과 사역으로 인류 구하시네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려 두 번 성육신하신 하나님
영이시든, 육신 입으셨든 하나님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네

2
하나님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네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
사람의 본분은 순종하고 따르는 것 천지개벽할 수 없기 때문이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창조주를 흡족게 하는 것으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네
그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려 두 번 성육신하신 하나님
영이시든, 육신 입으셨든 하나님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네
하나님 영이 사역하시거나 사람이 사역한다면 이 싸움은 결코 진정한 끝을 보지 못하리
새 싸움 시작될 때마다 새 시대 사역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은 친히 온 시대 이끌어 가시네 온 인류 위해 새 길을 여시네
시대 바꿀 때마다 사탄과 새 싸움 벌이시네
사람은 더 새롭고 아름다운 경지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새 시대로 들어가네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려 두 번 성육신하신 하나님
영이시든, 육신 입으셨든 하나님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 🎵 🎵 🎵


🎀 말씀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모이는 축복 누리도다> (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2020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가장 사랑하심이라>

              ➤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의 영광 동방에서 나오네> (가사 버전)







6/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3)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사탄을 물리치는 것뿐, 피조물에 대해서는 어떤 악감정도 없다. 형벌이든 심판이든 그의 모든 사역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고,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목표는 단 하나, ‘사탄과 끝까지 싸운다! 꼭 사탄을 이기고야 말 것이다! 사탄을 이길 때까지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역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통제되어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과 싸워 끝을 내지 않으면 사탄은 사람들을 풀어 주지 않으며, 사람들은 하나님께 얻어지지 못한다. 사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사탄을 물리치지도, 사탄과 싸워 이기지도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6천 년 경륜 중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율법의 사역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은혜시대의 사역, 즉 십자가의 사역을 했으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인류를 정복하는 사역을 한 것이다. 이 사역들은 모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정도에 따라 한 것이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어느 단계 사역이든 다 사탄을 물리치는 데 목적이 있다. 6천 년 경영 사역의 본질은 큰 붉은 용과 싸우는 것이고,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은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이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6천 년 동안 싸우면서, 즉 6천 년 동안 사역하면서 마지막에는 사람을 한 경지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탄이 패하면 사람은 완전한 해방을 얻는다. 지금의 사역이 바로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 사람을 모든 것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며, 그 어떤 규례에도 속박받지 않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통제받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역 추세이다. 모든 사역은 너희의 분량과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 다시 말해, 너희가 닿을 수 있는 만큼 공급하지, 건목수생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역은 너희의 실제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 각 단계의 사역은 다 사람의 실제 필요와 요구에 따라 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사실 처음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간격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초래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교란하고 패괴시켜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은 피해자이자 기만당한 자이다. 사탄을 물리치면 피조물은 창조주를 볼 수 있고, 창조주도 피조물을 보며 친히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 있어야 할 삶이다. 그러므로 주 사역은 역시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라 하겠다. 사탄을 물리치면 무슨 일이든 다 해결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 🌽 🌲 🌲 🍍 🍍 🌴 🌴 🍊 🍊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속시대 사역의 실상>(발췌문 23)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4)


하나님은 전체 경륜의 사역을 모두 친히 행한다. 세상을 창조한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온 인류를 구속한 두 번째 단계도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끝을 맺는 사역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더더욱 그가 친히 해야 한다. 모든 인류를 속량하고, 정복하고, 얻고, 온전케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친히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직접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신분을 대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를 얻기 위해, 또 인류가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모든 경륜과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은 그저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인식은 아무런 가치도, 의의도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얄팍한 인식이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해야만 이 사역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한다면 그를 대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설사 한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첫 번째 성육신은 속량을 위한 것, 즉 인류를 죄에서 속량해 정결케 하고 죄를 사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복 사역 역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행한다. 이 단계에서 하는 것이 예언뿐이라면 예언가, 그러니까 은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서 시켜도 그만이다. 예언만 한다면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사역,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사역이라면 사람이 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하고, 성육신하여 친히 행해야 한다. 말씀의 시대에 예언만 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할 필요 없이 이사야나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 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 단계의 사역은 예언에 그치지 않으며, 말씀 사역으로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사역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이 직접 해야 한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일부 사역만을 행한 후, 선지자를 통해 약간의 말씀과 사역을 했다. 사람이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가는 하나님을 대신해 예언을 말하고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역은 직접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의 죄와 무관했으며, 사람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여호와는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직접 모세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그들이 하나님이 하려는 말씀과 행하려는 일을 하게 하고,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게 했다. 첫 단계 사역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으로, 사탄과의 싸움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탄과 본격적으로 싸운 것은 첫 번째 성육신 때부터 지금까지이다. 첫 번째 싸움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탄을 물리치고 첫 번째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람의 생명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사람을 되찾아 오는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여호와가 처음에 행한 사역은 그저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인도한 것으로, 사역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그 어떤 싸움이나 큰 사역과도 관계가 없었지만, 훗날 싸울 사역을 위한 기반 다지기였다. 두 번째 단계인 은혜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했고, 반드시 직접 성육신해야 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육신한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직접 사탄과 대결하는 사역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그 사역을 대신하여 하게 하면 사탄과 마주했을 때 사탄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하나님이고, 또한 사람의 생명이자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신분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사역하여 사탄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사람에게 맡겨 직접 말씀을 선포하라고 해도 사람은 하지 못한다. 예언만으로는 사람을 정복할 수 없으므로 성육신을 통해 사탄을 물리치고 철저히 굴복시켜야 한다.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고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후 얻으면, 이 단계 사역은 끝이 난다. 즉, 대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경영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시대를 이끄는 사역과 새로운 사역을 여는 일은 더더욱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사람에게 계시와 예언을 주는 것 등은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 사탄과 직접 싸우는 사역은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다. 사탄과 싸우지 않은 첫 단계 사역에서 여호와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을 전했고, 또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사탄과 싸우는 두 번째 단계 사역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 사역했다. 사탄과의 싸움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성육신과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에게 시킬 수 없으며, 사람은 싸워 봤자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아직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힘이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 중립적인 존재로, 사탄 쪽으로 기울면 사탄에 속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면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니 이런 싸움의 사역을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그랬다면 진작에 목숨을 잃지 않았겠느냐? 이미 오래전에 황천으로 가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없기에 사탄과 싸우면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일부 사역을 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을 구슬릴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싸우기도 전에 사탄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다. 사람은 그것을 기초로 따르고 순종해야만 하나님께 얻어져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 그리고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한계가 있기에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을 인도하지 못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의 총명과 지혜가 사탄의 계략을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6)







6/1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5)



셋째 날,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났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기로 가득 찼다

〈창세기〉 1장 9절에서 11절 말씀의 첫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만 했을 뿐인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궁창 이외에 그 공간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성경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바로 그 공간에 또 육지가 생기고 바다가 생긴 것, 다시 말해 물과 육지가 나누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에 ‘그대로 되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던 기간에 바쁘게 보냈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하나님이 손을 댔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한 것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새로운 사물이 생겨나게 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겨났다. 순식간에, 형태가 각각인 여린 작은 생명들이 흙 속에서 꼬물꼬물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몸에 묻은 흙을 채 털어 내기도 전에 너도나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 모두가 만물의 일원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 각자의 생명을 바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땅에는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났고, 사람들에게 제공될 각종 채소가 흙을 뚫고 무럭무럭 자라났으며, 산과 들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숲이 울창하였다. …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밋밋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풀, 채소와 나무 등 각종 식물들로 둘러싸여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게 되었다. … 공기는 풀꽃 향기로 그윽하고, 흙 내음이 물씬 풍기며, 각종 식물들은 공기를 통해 숨을 쉬면서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에 따라 모든 식물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싹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생명 여정을 시작하였다. 각자 생명의 궤적을 지키며, 만물 중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 그들은 모두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고,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창조주에게서 계속 자양분을 공급받을 것이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 곳곳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것이며,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력을 영원히 세상에 알릴 것이다. …
창조주의 생명은 비범하고 그의 생각은 비범하며 그의 권능은 비범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이 있자 최후의 결과는 늘 “그대로 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손댈 필요 없이, 생각으로 지휘하고 말씀으로 명령하기만 하면 일은 곧 그대로 되었다. 그날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한 다음, 뭍에 풀이 자라나게 하였고,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자라게 하였으며,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분류하고 열매마다 씨를 품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루어져 계속해서 이 새로운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그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그 그림의 내용을 말씀으로 표현할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의 권능을 어떻게 행사하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변화되었다. 그 모든 변화와 발전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고, 또한 창조주 생명력의 비범함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단순한 구상도, 공허한 그림도 아니며, 생명력과 엄청난 능력을 지닌 권능이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다 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동시에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완전한 구상과 아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셋째 날 땅에 각종 식물들이 자라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계속 말씀으로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사물을 만들었다. 그는 말씀하고 명령하고 그의 권세를 행사하고 그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였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한 만물과 인류를 위해 구상한 모든 것들을 예비하고 있었다. …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3)





6/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30)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노아 이야기의 결말인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평소와 다른 이례적인’ 방식으로 당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음을 보았다. 이 방식은 무척 특별했다.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것을 일단락 짓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때 ‘언약을 세운’ 일은 아주 평범한 일이다. 그것은 단지 문자의 형식으로 양측을 구속하는 일로, 일을 행할 때 규정을 어기지 않도록 양측의 이익을 보호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상 아주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한 출발점과 의미에 입각해서 보면,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생각이 진실하게 나타난 것이다. 만일 네가 이 말을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는다면, 내가 일의 진상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인류는 정말로 영원히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할 것이다. 너의 상상 속 언약을 세우던 하나님은 웃고 있었을 수도 있고, 엄숙한 표정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상상 속 하나님이 가장 일반적인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아픔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고독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이 신뢰하거나 신뢰할 만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아픔을 토로할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은 간단한 일을 행하여 지난 인류와 작별했고, 과거의 일을 해결했으며,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일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슬픔과 아픔을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두었다. 하나님은 그가 토로할 만한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워 사람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무지개가 나타날 때 과거에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음을 상기하게 했고,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하나님은 이토록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도 사람을 잊지 않고 여전히 이렇게 사람을 염려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사심 없음이 아닐까? 반면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무엇을 생각할까? 이때가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이럴 때 사람은 늘 하나님을 끌어당겨 와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언제든 하나님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고, 사람을 곤경에서 벗어나 빛 속에서 살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에게 공급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은 안정제나 위로제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마음 아프고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떤 피조물이나 사람이 그와 함께하고 그를 위로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선 분명 지나친 바람이다. 사람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감정을 헤아린 적이 없기 때문에 그는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 줘야 한다고 요구한 적이 없고,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뿐이다. 하나님이 약간의 고통을 받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할 때, 하나님이 모든 일에 기울인 심혈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될 때, 너는 비로소 하나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사심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지만 왜 그렇게 했고 왜 언약을 맺었는지 누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다. 즉, 그의 진정한 생각을 누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다. 그가 직접 창조한 인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또한 그가 인류를 멸할 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느낌을 사람에게 알려 주더라도 사람은 그 ‘신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마음이 아픈 와중에도 여전히 그의 다음 단계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부분과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묵묵히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린다. 하나님이 인내하는 것은 그가 냉혹해서도 아니고, 무감각해서도 아니며,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약함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본질이 본래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본질과 성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자 진정한 창조주인 하나님의 신분이 진실로 체현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8)






5/3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9)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후, 인류가 패괴된 이후든 인류가 그를 따랐던 때든 상관없이 인류를 자신의 절친한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인류가 말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여겼지, 장난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 스스로는 창조주이고 인류는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계급이 나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한 모든 행사는 이런 관계를 한참이나 넘어서 있다.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하는 일까지, 그의 마음은 이런 것들을 가욋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게 엄청난 공헌을 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요구할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나 다른 서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래서 사람의 감사와 찬미를 받아 내려고 인류를 향해 하나님 자신이 왜 이렇게 행했고, 왜 이렇게 인류를 보살피는지 설명하거나 표현한 부분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상심하거나 극심한 아픔을 느낄 때에도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염려를 잊지 않고 그런 ‘상심’과 ‘아픔’을 홀로 묵묵히 감내한다. 오히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이렇게 인류에게 공급한다. 비록 인류가 자주 하나님을 찬미하고 증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잘 대해 준 것을 가지고 사람의 은혜에 대한 감사나 보답을 받으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진실로 따르는 사람과 그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자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 쪽에서 이 축복은 조금의 아낌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께 받는 축복은 흔히 사람의 상상을 넘어서고, 사람이 한 행위와 사람이 들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의 심정이 어떨지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받은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느냐? 정확히 말하자면, 없다! 노아를 포함해 인류가 당시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왜 그런 언약을 세웠는지 느낄 수 있느냐? 느낄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을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거나 지위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어떤 감정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독립적이어서 사람의 관심과 이해와 헤아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픔도 희로애락도 없고, 괴로워하지도 근심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감정적인 표현도 필요치 않고, 그 어떤 감정적인 위로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와 반대로 ‘연약하고 어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위안과 공급과 격려가 필요하며, 나아가 언제 어디서든 감정적인 위로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이런 마음이 숨겨져 있다. 즉, 사람은 ‘약자’이니 하나님의 지극한 보호가 필요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돌봄’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강자’이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의 수호자이자 축복자가 되어야 하고, 그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신통력이 굉장해서’ 사람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얻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나타낸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과 하나님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실을 훤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람의 필요를 공급하고,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인도해 빛을 비춰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이 모든 것과 들인 모든 대가에 대해, 성경이나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분명히 요구하는 말씀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 반대로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끊임없이 인도하고 공급하며 도움을 준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게 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그의 소유와 어떠함, 은혜와 긍휼과 모든 상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다. 하지만 지금껏 그가 받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의 마음을 사람에게 드러내 보인 적은 없다. 또한 아무도 그를 이해해 주지 않고,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나님 쪽에서 원망한 적도 없다. 그는 묵묵히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며, 사람이 깨달을 그날을 기다릴 뿐이다.

여기에서 나는 왜 이런 말들을 할까? 이 말들에서 너희는 또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는 사람이 가장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인이나 좋은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나,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하나님’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심 없음이다. 사심 없음이라 하면 너는 자신도 매우 사심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네 자녀에 대해 한 번도 대가를 바라거나 셈을 따진 적도 없었고, 부모를 대할 때도 사심 없는 마음으로 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너는 최소한 ‘사심 없음’이라는 말에 대해 어떤 개념은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심 없음’은 긍정적이고, 사심 없는 사람이 되는 건 무척 훌륭하다고 여긴다. 만일 너 자신이 사심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아주 위대하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만물 속에서나 사람, 일, 사물 속에서나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사심 없음을 본 사람은 없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하나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고 사랑을 주고 염려하는지 영원히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네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보는 것은 너와 혈연관계에 있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너를 몹시 아끼는 그 사람이다. 네가 본 것은 너에게 육적으로 유리한 것들이고, 네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물질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사심 없음이다. 바로 이렇게 ‘사심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에게 생명을 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하나님과 비교해 볼 때, 사람의 ‘사심 없음’은 오히려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사람이 생각하는 ‘사심 없음’은 실제적이지 않은 공허한 것이고 불순물이 들어 있다. 하나님과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의 ‘사심 없음’은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사심 없음’은 하나님의 본질이 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사심 없음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끊임없는 공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오늘 내가 말하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느끼지 못하고 그저 머리를 끄덕여 인정하는 수준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일과 사물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사심 없음만이 진정한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직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무조건적이고 흠결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의 소위 사심 없음도 진실이 아닌 거짓되고 표면적인 것이다. 그것은 목적과 속셈이 있고 거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검증을 이겨 낼 수 없는 것이다. 추하고 비열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너희는 이 말을 인정하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5/2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생생하게 나타나는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생생하게 나타나는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마음을 되돌렸을 때 하나님이 베푼 긍휼과 관용은 거짓이었느냐?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두 측면의 성품이 전환되어 나타난 것을 보며 너는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성품은 분리된 것이 아닌 완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노하든, 긍휼과 관용을 베풀든 모두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생생하게 나타나며, 그는 일이 진행되는 상태에 따라 마음과 태도를 바꾼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그가 로봇이나 돌부처가 아니며 그에게도 마음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알려 준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숨 쉬는 하나님 자신으로, 니느웨 사람들에게 진노할 수도 있고, 그들의 태도 변화에 따라 그들의 과거를 용서할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그들의 회개로 그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 준 것이다. 사람은 규례에 끼워 맞추기를 좋아하고, 규례로 하나님을 규정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하며, 공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생각할 줄 모르고 실질적인 견해도 없다고 여긴다. 사실상 사물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은 계속해서 바뀌고, 그와 동시에 다양한 면으로 하나님의 본질이 나타난다. 바뀌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리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실제적인 나타냄으로 인류에게 그의 진노와 긍휼과 자비 그리고 관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물이 발전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그에게는 수사자 같은 진노도 있고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긍휼과 관용도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그 누가 의심하거나 침범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고, 그 누가 바꾸거나 곡해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만사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즉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만물의 구석구석에서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고, 모든 순간순간에 생생하게 시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시간이나 공간에 국한되어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발현되고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려 더 이상 진노하지 않고 니느웨 성을 멸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만 베푸는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진노가 빈말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긍휼을 거두고 크게 진노할 때, 너는 하나님께 인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며, 그의 진노에는 흠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회개로 감동받고 사람의 회개로 마음을 돌이킨다. 그의 감동과 돌이킴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의 관용과 긍휼에는 모두 흠이 없고 깨끗하며 순수하고 순결하며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하나님의 관용은 곧 관용이고, 긍휼은 곧 긍휼이다. 사람의 여러 가지 태도로 인해, 사람의 회개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의 성품도 나타내고 긍휼과 관용도 나타낸다.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을 드러냈든지 그것은 모두 순결하고 직접적이며 그 어떤 피조물의 본질과도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사역의 원칙, 마음과 생각 혹은 하나님이 내린 어떤 결정, 하나님의 그 어떤 행동에서도 흠이나 오점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은 결정한 대로 행하고 행한 대로 이룬다. 이 결과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정확한 것이다. 결과의 근원에 흠이 없고 오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흠이 없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도 피조물이 갖추지 못한 것인데,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어떤 연구와 검증(원문: 推敲與體驗)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니느웨 성 이야기를 알게 된 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서 다른 측면의 본질을 보게 되지 않았느냐? 또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측면을 보게 되지 않았느냐? 인류 중에 이러한 성품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이런 진노를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이런 긍휼과 관용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피조물 중에 크게 진노하여 인류를 멸하기로 결정하거나 인류에게 재앙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더냐? 인류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죄를 사해 줌으로 인류를 멸하겠다는 결정을 바꿀 자격이 있는 자가 또 누가 있더냐? 창조주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방식과 원칙으로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에 좌지우지되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만이 갖고 있는 성품으로 볼 때 그 어떤 사람도 그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사람도 그를 설득하고 그가 내린 결단을 바꿀 수 없다. 피조물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심판받는다. 그가 진노하든, 긍휼을 베풀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창조주의 본질, 즉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다!

니느웨 사람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해석을 통해, 너희는 ‘유일무이’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중의 긍휼을 설명할 수 있느냐?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한 측면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이 두 측면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라 정의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룩한 것으로, 사람이 거스르거나 그 누구든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한, 하나님만이 특유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며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측면인 긍휼도 거룩하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소돔을 멸하거나 니느웨를 구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참된 발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

💁더 보 기 :

                       ✔ 말씀 찬양 CCM 2020 <참으로 나타난 창조주의 권세>

                       ✔ 워십 찬양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진심> (남성 솔로 찬양)

                       ✔ 워십 찬양 뮤직비디오/MV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아끼시네>




5/1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하나님 마음속에는 구원하시려는 인류가 가장 중요하다>(가사 버전)


1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그는 생각과 말씀만이 아닌 계획과 목적과 마음으로 인류 위해 모든 것을 하신다
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하나님과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은 바삐 보내며 모든 심혈 기울이신다
그의 사역을 경영하시며 모든 사람과 사역을 주재하신다
누구도 본 적 없는 큰 대가 치르며 사역하시는 하나님은
인류에게 자신의 속성과 심혈 지혜와 전능, 성품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이 경영하고 구원하시려는 사람 외에 하나님과 이렇게 친밀했던 피조물은 없었다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가로막음이 얼마나 크든 사람이 얼마나 나약하고 거역하든
결코 하나님을 막을 수 없고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2
하나님은 경영하고 구원하시려는 사람과 얼마나 가깝고 친밀한가
전 우주에서 또 누가 하나님과 그렇게 친밀한 사이였던가?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인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
사람이 하나님 아프게 하고 하나님 거역하지만
그가 사람에게 큰 대가 치르셨지만 불만도 후회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역하신다
사람이 언젠가 그의 부르심에 부르심에 깨어나 말씀에 감동되어
그가 창조주이심을 알고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가로막음이 얼마나 크든 사람이 얼마나 나약하고 거역하든
결코 하나님을 막을 수 없고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추 천 :

       ✔ 말씀 찬양 CCM 2020 <사람을 최대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 말씀 찬양 CCM 2020 <사탄을 물리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하나님>

       ✔ 말씀 찬양 CCM 2020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를 얻기 바란다>

       ✔ 말씀 찬양 CCM <하나님이 성육신해야 인류를 완전히 구원할 수 있다>






5/1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 <성육신하신 하나님 가장 사랑스러워라> (솔로 찬양)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후
친히 인간 세상에서 인류의 삶을 겪으셨음이라
인류의 타락과 삶의 현 상태를 보신 후
육신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기댈 곳 없는 인류의 슬픔과 비참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으셨음이라
또한, 육신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인성과 육신의 본능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처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그를 따르는 자들을 더 염려하게 되셨음이라
하나님 마음에는 그가 경영하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인류가
가장 중요하고
그는 이러한 인류를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셨음이라
비록 그가 이러한 인류를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셨고
또 인류가 그에게 끊임없이 상처 주고 거역할지라도
그는 어떤 원망도, 후회도 없었고
여전히 사람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았으며
그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으심이라
그는 사람이 언젠가는 그의 말씀의 부르심에 깨어날 것이며
그의 말씀에 감동받고 그가 창조주임을 알아보고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임을 아시기 때문이라…
그는 사람이 언젠가는 그의 말씀의 부르심에 깨어날 것이며
그의 말씀에 감동받고 그가 창조주임을 알아보고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임을 아시기 때문이라…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임을 아시기 때문이라…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5/1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가사 버전)


1
인류는 사탄에게 짓밟혀 더 이상 태초에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아니다
하나님과 적대되는 지식이나 상상, 관념으로 가득 차고 사탄의 패괴 성정으로
 가득 찬 인류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이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부르심을 듣기만 하면
일어나 음성의 근원을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하나님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위해 목숨까지 버린다

2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고
여전히 하나님이 정한 규칙에서 살고 있다
비록 사탄에게 패괴된 뒤로 인류가 더럽고 감각이 둔하고 나이가 많아 기억력도 없지만
사람의 기능과 본능은 전혀 손상 없다
이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의 모습이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부르심을 듣기만 하면
일어나 음성의 근원을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하나님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위해 목숨까지 버린다
창조주의 마음 소리를 느끼게 될 때 인류는 창조주 곁으로 돌아오며
다시 자양(滋養)과 공급을 얻게 될 때 인류는 기억을 되찾는다
인류의 심령이 창조주 마음 소리를 느끼게 되면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창조주의 곁으로 오게 된다
인류가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창조주의 자양과 공급을 얻게 될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그때는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진실로 돌아온 것이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말씀찬양 더보기  :







5/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참으로 나타난 창조주의 권세>


인류와 만물의 운명은 창조주의 주재와 연관되고
창조주의 지배와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인류와 만물의 운명이 어떠할지는 창조주의 권세와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다
인류는 만물의 법칙에서 창조주의 주재를 깨닫고
만물의 생존 법칙에서 창조주의 주관을 보았고
만물의 숙명 속에서 창조주의 섭리를 알게 되었다
인류, 만물의 생사에서 창조주의 안배를 체험하고
또한 세상의 법률 제도와 어떠한 세력을 초월함을 보았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주재를 파괴하지 못하고
어떤 세력도 만사 만물을 바꿀 수 없다
인류와 만물은 천상의 법칙 속에서 대대로 생존하고 번식해 온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의 권세의 참된 나타남이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 관련 동영상: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명장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다



저작권 정보:
https://www.holyspiritspeaks.org/special-topic/copyright.html

-----------------------------------------------------------------------------------------------

📺 추천:
🎈말씀 찬양 CCM 2020 <누가 하나님의 마음 이해할까>


4/2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말세의 그리스도를 저버린 자들은 영원한 징벌 받으리>


많은 사람이 마음에 두지 않아도
하나님은 말씀하지 예수를 따른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지

1
구름 타고 오는 예수를 너희 눈으로 볼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라
그때는 마음이 흥분될지 모르지만 네가 지옥에서 징벌을 받을 때임을 알라
그땐 하나님은 경륜을 끝내고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상벌 내리리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에

2
이적 아닌 진리 받아들여 정결해진 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와 그 품에 안기리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면 거짓 그리스도’라 하는 자는 벌받으리
이적의 예수만 믿으며 심판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를 믿지 않았기에
예수가 흰 구름 타고 와서 그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네
이적의 예수만 믿으며 심판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를 믿지 않았기에
예수가 흰 구름 타고 와서 그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네 그럴 수밖에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4/1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워십 찬양 뮤직비디오/MV <하나님의 사랑과 본질은 사심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1
하나님은 그의 고통을 공개적으로 알린 적 없고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린다
이는 냉혹함, 무감각, 무기력함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본질이 본래 사심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인류 위해 그는 묵묵히 모든 고통 감내하고
묵묵히 베풀어 준다

2
하나님은 그의 고통을 공개적으로 알린 적 없고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린다
이는 그의 본질과 성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자
진정한 창조주인 하나님의 신분이 진실로 구현된 것이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인류 위해 그는 묵묵히 모든 고통 감내한다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인류 위해 그는 묵묵히 모든 고통 감내한다
묵묵히 모든 고통 감내하고 묵묵히 베풀어 준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4/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워십 찬양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진심> (남성 솔로 찬양)


창조주는 항상 인류와 함께 있고
만물과 인류와 대화하고 있으며
매일같이 새로운 행사가 있다
그의 본질, 그의 성품은 인류와의 대화에서 나타나고
그의 마음과 생각은 그의 행사에서 빠짐없이 나타난다
그는 늘 인류와 함께하며 인류를 관찰하고 있으며
무언의 언어로 조용히 만물과 인류에게 알려 준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 있고, 만물 중에 있으며
수호하고 있고,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바로 너의 곁에 있다…’
그의 두 손은 따뜻하고 힘이 있으며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그의 음성은 감미롭다
그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사람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의 얼굴은 아름답고 온화하다
그는 떠난 적도, 사라진 적도 없고
줄곧 그림자처럼 인류와 함께하였다
인류를 보살피는 정성과 인류에 대한 특별한 ‘감정’
그리고 진실한 염려와 사랑은
그가 니느웨 성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나타났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은 요나와의 대화에서
창조주가 손수 만든 인류에 대한 연민의 정을
완전하게 나타냈다
여기서 너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심을
깊이 느낄 수 있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