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너희의 태도이다.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이 태도는 너희가 최종적으로 멸망에 이를지, 아니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예비한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이미 20년 넘게 사역하였다. 20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너희는 자신의 행실에 대해 다소 모호하겠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의 행실을 확실하고 진실하게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이 전하는 도를 듣기 시작해서부터 점점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본분을 이행하기까지, 사람이 이 기간에 보였던 각종 행실을 다 기록해 두었다.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환경이나 시련이 닥치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여러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등을 하나님은 기록부에 다 기록해 두었다. 이런 일들이 너희에게는 아마 무척 흐릿하겠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혀 흐릿하지 않고 매우 분명하다. 모든 사람의 결말, 모든 사람의 운명 및 앞날과 관련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심혈이 들어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는 조금도 등한시하지 않고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을 위해 이런 기록부를 작성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른 노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해 두고 있다. 이 기간 하나님을 대하는 너의 태도가 어떠했는지가 바로 너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무척 진실하지 않으냐? 지금까지 너희는 하나님이 매우 공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지 않으냐?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희의 결말을 하나님이 정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건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누가 정한다고? (하나님이요.) 여전히 모르는구나!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먼저 말해 보아라. 누가 정하느냐? (사람이 스스로 정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정한다고? 그 말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냐? 한국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행위와 가는 길에 근거해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객관적인 대답이었다. 너희에게 알려 줘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 사람에게 기준을 하나 정해 주었다. 그 기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사람의 결말을 가늠한다. 네가 하나님의 이 기준에 따라 행한다면 좋은 결말을 얻을 것이다. 반대로 이 기준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말을 누가 정하는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정하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느냐? (맞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구원 사역을 하며 아름다운 종착지를 예비해 준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역하는 대상으로, 위에서 말한 결말과 종착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는 것들이다. 사역 대상이 없다면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진다. 사람은 구원받는 대상이다. 구원받는 대상이란 게 수동적이긴 하지만 이 대상의 태도가 하나님의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으면 너는 기준도 모르고 목표도 없다. 기준과 목표가 있더라도 네가 협력하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너는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결말은 하나님과도, 사람과도 떨어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대체 누가 결말을 정하는 건지 알았겠지?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마음을 되돌렸을 때 하나님이 베푼 긍휼과 관용은 거짓이었느냐?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두 측면의 성품이 전환되어 나타난 것을 보며 너는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성품은 분리된 것이 아닌 완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노하든, 긍휼과 관용을 베풀든 모두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생생하게 나타나며, 그는 일이 진행되는 상태에 따라 마음과 태도를 바꾼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그가 로봇이나 돌부처가 아니며 그에게도 마음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알려 준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숨 쉬는 하나님 자신으로, 니느웨 사람들에게 진노할 수도 있고, 그들의 태도 변화에 따라 그들의 과거를 용서할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그들의 회개로 그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 준 것이다. 사람은 규례에 끼워 맞추기를 좋아하고, 규례로 하나님을 규정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하며, 공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생각할 줄 모르고 실질적인 견해도 없다고 여긴다. 사실상 사물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은 계속해서 바뀌고, 그와 동시에 다양한 면으로 하나님의 본질이 나타난다. 바뀌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리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실제적인 나타냄으로 인류에게 그의 진노와 긍휼과 자비 그리고 관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물이 발전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그에게는 수사자 같은 진노도 있고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긍휼과 관용도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그 누가 의심하거나 침범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고, 그 누가 바꾸거나 곡해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만사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즉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만물의 구석구석에서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고, 모든 순간순간에 생생하게 시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시간이나 공간에 국한되어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발현되고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려 더 이상 진노하지 않고 니느웨 성을 멸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만 베푸는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진노가 빈말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긍휼을 거두고 크게 진노할 때, 너는 하나님께 인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며, 그의 진노에는 흠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회개로 감동받고 사람의 회개로 마음을 돌이킨다. 그의 감동과 돌이킴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의 관용과 긍휼에는 모두 흠이 없고 깨끗하며 순수하고 순결하며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하나님의 관용은 곧 관용이고, 긍휼은 곧 긍휼이다. 사람의 여러 가지 태도로 인해, 사람의 회개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의 성품도 나타내고 긍휼과 관용도 나타낸다.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을 드러냈든지 그것은 모두 순결하고 직접적이며 그 어떤 피조물의 본질과도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사역의 원칙, 마음과 생각 혹은 하나님이 내린 어떤 결정, 하나님의 그 어떤 행동에서도 흠이나 오점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은 결정한 대로 행하고 행한 대로 이룬다. 이 결과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정확한 것이다. 결과의 근원에 흠이 없고 오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흠이 없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도 피조물이 갖추지 못한 것인데,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어떤 연구와 검증(원문: 推敲與體驗)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니느웨 성 이야기를 알게 된 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서 다른 측면의 본질을 보게 되지 않았느냐? 또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측면을 보게 되지 않았느냐? 인류 중에 이러한 성품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이런 진노를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이런 긍휼과 관용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피조물 중에 크게 진노하여 인류를 멸하기로 결정하거나 인류에게 재앙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더냐? 인류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죄를 사해 줌으로 인류를 멸하겠다는 결정을 바꿀 자격이 있는 자가 또 누가 있더냐? 창조주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방식과 원칙으로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에 좌지우지되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만이 갖고 있는 성품으로 볼 때 그 어떤 사람도 그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사람도 그를 설득하고 그가 내린 결단을 바꿀 수 없다. 피조물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심판받는다. 그가 진노하든, 긍휼을 베풀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창조주의 본질, 즉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다!
니느웨 사람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해석을 통해, 너희는 ‘유일무이’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중의 긍휼을 설명할 수 있느냐?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한 측면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이 두 측면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라 정의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룩한 것으로, 사람이 거스르거나 그 누구든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한, 하나님만이 특유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며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측면인 긍휼도 거룩하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소돔을 멸하거나 니느웨를 구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참된 발현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증오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관용과 긍휼을 베푸는지,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든지, 얼마나 많은 긍휼과 자비를 베풀든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 하나님의 존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지만 총애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 관용을 베풀지만 한 번도 지나치게 사랑한 적은 없다. 하나님께는 자신의 원칙과 범위가 있다. 너는 아무리 크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어도 절대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긴다면, 피조물과 같은 한 사람이나 친구, 혹은 숭상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감추고 너를 버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니 그 누구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해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자주 볼 수 있다. “네가 얼마나 먼 길을 달렸든, 네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든, 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든,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면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친척이나 친구로 여기거나 하나님을 단짝 대하듯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네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얼마나 많이 느꼈든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너의 친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7> 중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의 본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의 신분과 지위를 뜻하며, 그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의 본질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바뀌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고유의 성품은 하나님의 고유의 본질이다. 그가 누구에게 사역하든 간에 그의 본질과 공의로운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원래의 성품이다. 이때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지위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노하는 이유는 그의 본질에 변화가 생기거나 그의 성품에 다른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사람이 공공연히 하나님께 도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이 봤을 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자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할 때, 하나님과 겨룰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노를 시험할 때가 바로 죄악이 범람할 때이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적대 세력이 멸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진노이다. 하나님의 존엄과 거룩함이 도전을 받을 때, 정의의 힘이 저지당하고 사람이 정의를 찾아볼 수 없을 때는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낼 때이다. 하나님의 본질 때문에 땅에서 하나님과 겨루고 대적하고 맞서는 세력들은 모두 사악하고 패괴되고 정의롭지 않은 세력이며,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사탄에 속하는 세력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빛이며, 흠이 없이 거룩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악하고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게 되면 모두 소멸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은 불로 소돔 성을 멸망시켰다. 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나 물체를 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불을 이용해 인류를 멸한 것은 그 육체뿐 아니라 영, 혼, 육 전부를 멸하여 소돔 성 사람들이 물질세계와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진노를 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런 발현은 하나님의 진노 본질의 일면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할 때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어떤 이유도 하나님이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할 수 없고, 다시 긍휼과 관용을 베풀도록 설득할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 없이 그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고 또한 깔끔하고 마음에 들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는 방식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걱정하고 사랑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볼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없는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오직 긍휼, 관용, 사랑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와 위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고, 피조물이 아닌 어떤 것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사칭이나 모방은 더욱 불가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하나님 성품을 인류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성품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런 성품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공의로운 성품을 갖춘 것은 하나님이 사악함, 암흑, 패역, 인류를 패괴시키고 집어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고 무결한 본질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하나님이 긍휼히 여겼던 자일지라도, 설령 하나님이 택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슬렀다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주저하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측면의 표현이지만 하나님은 절대 원칙 없이, 대상의 구분 없이 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 쉽게 노하지 않고, 진노와 위엄을 쉽게 나타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상당한 정도와 기준이 있다. 이는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쏟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성경에는 사람과 하나님의 대화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는 하는 말이 깊이가 없고 우매하여 어린아이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치지 않았고 정죄하지도 않았다. 특히, 욥이 시련을 겪는 동안 욥의 세 친구와 사람들이 욥에게 한 말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느냐? 그들을 정죄했느냐? 그들에게 노했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하라 하였고, 그들의 과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는 패괴되고 무지한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주요 태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절대 감정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를 총체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어서도, 울분이 극에 달해 쏟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발현이자 참된 표현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분이어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유와 원칙 없이 노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이유도 원칙도 없이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오히려 패괴된 인류의 전유물이다. 사람은 어떤 위치에 오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트집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이유 없이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어떤 자리에 오르지 못한 패괴된 인류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항상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항상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쏟아 내고 교만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표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여기에는 불순함, 음모와 계략, 패괴와 사악함, 심지어 야심과 욕망이 가득하다. 정의와 사악의 싸움에서 사람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화내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의의 힘이 위협당하고 박해당하고 공격당할 때, 사람은 이를 무시하고 회피하거나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사악한 세력 앞에서는 비위를 맞추고 비굴하게 굽실거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분풀이하는 것은 사악한 세력의 출구이며, 이는 육에 속한 사람의 악행이 넘쳐 나고 억제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때 모든 사악한 세력과 사람을 해하는 죄악은 저지당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모든 적대 세력은 드러나고 분리되고 저주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적대시한 사탄의 모든 공범자들은 징벌받고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그에 반해 하나님의 사역은 막힘없게 되고, 하나님의 경륜은 정해진 대로 한 단계씩 앞으로 진행된다. 또한 하나님의 선민은 사탄의 교란도 미혹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자생하고 판치지 못하도록 보장하며, 모든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이 존재하고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다.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패괴된 인류의 화는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행동은 하나같이 다 패괴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고 패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저지당하고 사악한 사물은 멸망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이유는 정의롭지 않고 부정적이고 사악한 사물이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거나 교란시키거나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롭고 긍정적이며 아름답고 선한 사물의 존재를 수호하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규칙과 법칙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의 노는 하나님의 성품이 매우 정당하고 자연스럽게, 또 진실하게 나타난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 이면에 다른 속셈이나 교활함이나 음모가 없고 패괴된 인류에게 공존하는 욕망, 간사함, 악랄함, 폭력성, 사악함 등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기 전에 이미 모든 일의 본질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았고, 이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정의와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한 목표와 태도가 아주 명확하다. 두루뭉술하거나 맹목적이지 않고, 충동적이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며, 원칙이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또한 하나님 진노의 실제적인 면이다. 인류는 바로 하나님 진노의 이 실제적인 면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인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 추락하게 되고,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선한 모든 사물은 멸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피조물의 생존 법칙과 규칙이 파괴되고 심지어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진 후, 하나님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계속해서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지키고 유지하였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진노와 위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악한 사람과 사물,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은 징벌받고 통제되고 멸망된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서 그에게 대항하는 자, 사탄의 공범자 그리고 사탄의 종이 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끊임없이 치고 멸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앞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 가운데 가장 정의로운 일이 지금까지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든 간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져 뜻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을 멸할 것이라 선포하기 바로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하나의 일에서 동시에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되지 않음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완전히 다른 두 본질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과 후에 하나님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본질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낌없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는 자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니느웨 성 사람들도 소돔 성 사람들처럼 패괴되고 사악하고 아주 폭력적이었지만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렸고 그들을 멸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대하는 태도는 소돔 성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순종하고 회개하였고, 그리고 여러 면에서 진실하고 간절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 상을 주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상을 주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 그리고 인류에 대한 진심은 그 누구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위인이나 슈퍼맨 중에 높은 위치, 즉 위인의 입장이나 지고한 위치에 서서 인류나 피조물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느냐? 인류 중에 누가 인류의 생존 현황을 손금 보듯 환히 알 수 있겠느냐? 누가 인류의 생존에 부담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겠느냐? 누가 성을 멸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겠느냐? 또 누가 성의 죄를 사할 자격이 있겠느냐? 누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아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오직 창조주밖에 없다!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아끼고, 이 인류를 사랑하며, 창조주에게만이 이 인류를 내버리지 못하는 참된 마음이 있다. 또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모든 피조물을 아낀다. 그의 마음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끌린다. 그는 인류의 사악하고 패괴된 모습에 분노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인류가 회개하고 신복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을 되돌리고 축하한다. 그의 모든 마음과 생각은 인류를 위해 생기고 움직이며,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인류를 위해 발현된다. 또한 그의 희로애락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인류를 위해 조용하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바치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의 일분일초를 기여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은 아낄 줄 몰랐지만 자신이 손수 창조한 인류는 늘 아껴 왔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에게 주었다…. 그가 조건도 보상도 없이 긍휼과 관용을 베푸는 것은 오로지 인류가 그의 눈 아래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 아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언젠가 인류가 다시 그의 앞에 돌아와 그가 바로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만물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그분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요나가 명을 받들고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긴 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성안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염려와 기대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요나를 질책함으로써 그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 있었다. 즉, 인류는 하나님이 손수 만든 것이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심혈을 기울였고, 모든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며, 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 공급을 누리고 있고, 하나님이 자신이 기울인 심혈로 그 모든 사람을 바꾸어 왔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가 박 넝쿨을 아끼는 것처럼 하나님도 손수 만든 인류를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더군다나 그 성안에는 수많은 아이와 무고한 가축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철없는 나이대인 창조된 인류의 생명을 그렇게 쉽게 끝내거나, 그들의 결말을 그렇게 쉽게 정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장하여 다시는 조상들이 갔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받지 않으며, 니느웨 성의 과거를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하나님은 회개한 후의 니느웨와 니느웨의 미래를 보고, 다시 하나님의 긍휼 아래에서 사는 니느웨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서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창조된 인류가 곧 니느웨의 미래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언급하기 싫은 니느웨 성의 과거를 짊어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 있는 니느웨 성의 과거와 미래를 증언하는 중차대한 일을 책임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 참된 고백에서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 창조주의 마음을 완전히 볼 수 있다. 이는 인류에게 ‘창조주의 긍휼’이 알맹이 없는 단어나 헛된 약속이 아니라 여기에는 구체적인 원칙과 방식, 목표가 있다는 것과 그는 거짓이나 가식이 없고 진실하고 참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그는 모든 시기와 시대에 끊임없이 인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다. 하지만 요나와의 대화는 창조주가 왜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지, 어떻게 긍휼히 여기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관용과 진심을 베풀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창조주가 언어로 표현한 유일한 내용인 것이다. 이 짧은 대화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표현한 것이고, 인류를 향한 자신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긍휼을 많이 베풀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류의 선조에게 긍휼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예전과 같이 오늘날의 후손에게도 한 세대 또 한 세대 긍휼을 베풀고 있다. 비록 하나님의 진노가 종종 인류의 어떤 구석, 어떤 시대에 임했더라도 하나님은 긍휼을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긍휼로 창조된 인류를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끌고 인도하며 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에 대한 그의 참된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한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라는 말씀처럼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손수 만든 만물을 아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에 있는 긍휼이다. 이것 또한 틀림없는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은 니느웨 성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모호함도 없었고, 순수한 진노에서 순수한 관용에 이르렀다. 여기서 하나님의 본질이 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노한 것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안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고 그들에게 다시 관용을 베풀었을 때도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로 인해 바뀐 것이다. 그 기간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본질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지만,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려 진노를 거둔다. 그러나 사람이 완고하게 하나님께 계속 대항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멸할 때까지 노를 멈추지 않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또한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성품이 진노든, 긍휼과 자비이든 모두 사람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기인한다. 만약 하나님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노한다면,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거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인’ 적이 없고 진심으로 신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항상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신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시한 적이 없을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늘 임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촌부인 저는 평소 가정에서 져야 하는 막중한 부담이 버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심한 다혈질로 변했고, 남편과는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사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저는 괴로울 때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 좀 구해 주세요….” 그러던 2013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이 제게 임하였고, 하나님 말씀, 형제자매들과의 예배와 교제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제가 괴로워할 때마다 찾았던 하느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나는 이러한 사람들, 즉 지금의 너희를 예정하고 택하였다. 너희의 성품, 자질, 모습, 체격, 출생 가정, 직업, 결혼 등 너의 모든 것, 심지어 너의 머리카락 색깔,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 모두 내가 직접 안배한 것이다. 네가 매일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내 손으로 안배한 것이며, 오늘날 너를 내 앞으로 인도한 것은 더더욱 내가 안배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히 앞으로 나아가라.』(<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4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만사 만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제가 하나님 보좌 앞에 와 말세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게 된 행운을 얻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까마득히 오래전에 예정해 놓으셨던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남편과 가정 역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니, 저는 마땅히 그 지배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하나님의 안배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이끌고 인도하시도록 순종하며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저는 더 이상 남편과 다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제게 생긴 변화에, 남편도 제 믿음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우리 집에 와 예배드리는 형제자매들을 깍듯하게 대해 주었고, 어떤 때는 살뜰하게 챙겨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매일 하나님 말씀을 보았고, 형제자매들과 자주 예배와 교제 시간을 가지며, 서로의 체험을 나누었습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전에는 느껴 보지 못했던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14년 5월 28일, ‘산둥(山東) 자오위안(招遠) 사건’이 터진 후, 저희 집에서는 더 이상 그런 화목과 안녕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평범한 형사 사건이었던 이 사건은 3일 뒤 중국 정부에 의해 신앙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감쪽같이 탈바꿈했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빌미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 뉴스 매체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사정없이 모함하고 음해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관한 각종 유언비어가 전국을 뒤덮었습니다. TV에서 관련 뉴스를 보고 정부의 유언비어에 속아 넘어간 남편은 갑자기 돌변하여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기를 쓰고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언비어를 듣고 아내를 핍박하는 남편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교회, [전능신교]
어느 날 저녁, 남편은 씩씩대며 집에 돌아와 제게 큰 소리로 따지듯 물었습니다. “당신이 다니는 데가 대체 무슨 교회야?” 평소와 다른 남편의 태도에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난 돌아오신 예수님, 그러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요. 우리가 평소 말하던 하느님 말이에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TV에서 뭐라고 하는지 좀 보라고!” 그러면서 남편이 TV를 켜자, 마침 ‘5·28’ 산둥 자오위안 살인 사건 관련 뉴스 보도가 나왔습니다. 거기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비난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신자들이 사회 치안을 어지럽힌다며 산둥성 공안청이 대대적인 단속과 체포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뉴스를 본 저는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다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와 모함이에요. 저 살인범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복음을 전하는 것도 교회에는 원칙이 있어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마음씨가 착한 사람들한테만 복음을 전하지, 악한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아요. 장리둥(역주: 자오위안 사건의 살인범) 같은 악한 자는 애초에 교회의 복음 전도 원칙에 맞지 않는 사람이에요. 저 사람들은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장리둥은 상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서 홧김에 사람을 죽인 거라고요.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께서도 <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에서 분명히 이렇게 정하셨고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너의 자녀, 남편이나 아내 또는 형제나 부모 등)을 억지로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집은 사람이 부족하지 않으니 쓸모없는 자로 머릿수를 채울 필요가 없다. 원해서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교회로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 이 조항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너희는 이 일에서 서로 제약하고 감독하며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 누구도 이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할 때 절대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요. 이건 누구도 어겨선 안 돼요. 저 뉴스는 근거 없이 날조해 낸 거예요. 정부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음해하고 모독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남편은 놀랍게도 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뉴스가 진짜든 가짜든, 공산당이 반대하는 종교는 그냥 믿지 마. 우리 집이 공산당한테 수색당하는 꼴은 못 보니까. 그리고 우리 애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남편과 TV에서 흘러나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저는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정부는 종교를 단속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탄압하는데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구나. 자오위안 사건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하고 음해하다니, 악랄하기 짝이 없어!’
그날 저녁, 저와 남편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당분간 숨어 있으면서 하나님 말씀 책은 잘 숨겨 놓거나 교회에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가 정부에 들키기라도 하면 집 수색을 당할 거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말에 저는 체포, 집 수색, 벌금과 징역 등 여러 고초를 겪었던 수많은 형제자매가 떠올랐습니다. 또 제 사촌 동생은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파출소 소장을 보다 못해 그와 다투었다가 노동 교화 1년 형을 살고, 가족들도 덩달아 고생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말이 통하지 않는 악마입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집 수색을 당하게 되면, 무슨 낯으로 남편과 아이를 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집이 수색당하고, 체포되는 모습과 남편과 아이까지 연루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슬프고 무서워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어 바른길을 걷는 것이 참 어려운 일로, 언제든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핍박이 무서워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저는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터였습니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그저 산 송장일 뿐, 죽어서도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내적인 갈등과 괴로움에 시달리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극도로 소극적이고 나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예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과 힘을 주었고, 제 안의 걱정과 두려움을 없애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 생령을 주재하시고, 저의 생명과 가정 역시 주관하고 계십니다. 제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을 배반해선 안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 재산과 자식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굳건히 지키며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하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섰던 욥을 떠올렸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아직 붙잡히지도, 집 수색을 당하지도 않았고 고작 정부가 날조한 유언비어와 소문을 마주했을 뿐인데도 비관적이고 나약해졌습니다. 가엾을 정도로 작은 제 분량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조금도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하나님 보기가 부끄러워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해선 안 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믿어야 해!’라고 다짐했습니다.
다음 날 정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신문을 제게 던지며 말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한번 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바로 체포한다고 써 있어. 감옥은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돼. 구타는 기본이고, 수십 명이 한 침상에서 부대끼며 생활하는데, 한밤중에 화장실 갔다 오면 잠잘 자리가 없어질 정도라고. 그리고 당신이 잡혀가도 우린 보석금을 낼 돈이 없단 말이야. 잡혀가서 징역형을 선고받아야 정신 차릴 거야?” 남편의 무정한 말에 저는 너무 괴로웠고, 중국 정부란 악마가 더욱 증오스러워졌습니다. 만약 저들의 유언비어와 탄압이 없었다면, 남편도 지금처럼 저를 핍박하지 않고 제 믿음을 지지해 주었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정부가 퍼뜨리는 말이 모두 유언비어로, 하나님을 모함하고, 비방하고, 모독하는 말들임을 압니다. 중국 정부는 사탄 악마이고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은 연약하니 하나님께서 지켜 주세요. 총명함과 지혜를 주셔서 사탄의 음모와 간계를 꿰뚫어 보고 하나님 편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제가 중국 정부란 사악한 세력에 무너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제 마음은 감히 조금도 하나님을 멀리할 수 없었고, 그러자 다음과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가 나사로를 부활시킨 목적은 바로 사람의 생사를 포함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사람과 사탄에게 증명해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을지라도, 변함없이 사람이 볼 수 있는 물질세계와 볼 수 없는 영계까지 다스리고 주관하고 있음을 알게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은 결코 사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함이다. 이것은 하나님 권병의 표출과 발현이며, 또한 하나님이 인류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만물에게 전달하는 방식인 것이다. ‘예수가 나사로를 부활시킨’ 일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고 가르치는 방식이자 그의 능력과 권병으로 인류에게 교훈을 주고 공급해 주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또한, 비언어적 요소로 인류에게 창조주가 만물을 주관함을 보여 주는 방식이자 인류에게 창조주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실제 행사를 통해 알려 주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무언의 방식으로 인류에게 준 가르침은 영구적이고 영원불멸한 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마음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놀라움과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나사로의 부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이 사건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끼친 영향은 아주 깊다. 이는 이 일을 잘 아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깨달음과 이상(異象)을 확고하게 하였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셨다는 사실은 제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다시 힘이 솟아났고 마음이 굳건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생사 역시 다른 그 누구도 주관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잡힐지 말지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한번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은 더 커졌고, 황망함과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퍼뜨린 유언비어는 평안하고 행복했던 저희의 삶을 깨트렸습니다. 더는 가정에 풍파가 생기지 않도록 저는 예배드리고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큰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저희 아버지도 ‘5·28’ 자오위안 사건을 전해 들으시고는 제 신앙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뭘 믿든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도는 하지 말고 예배도 나가지 말거라. 나 같은 늙은이는 시달림을 이길 수 없단다. 제발 가족을 생각해! 하나님을 믿는 건 좋지만, 신앙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걸 어쩌겠니.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어. 공산당이 크리스천을 정치범으로 간주하는 걸 너도 다 알잖냐. 너 때문에 우리까지 마음 졸이게 하지 말아라.” 가족들도 저를 핍박하고 이해해 주지 않자, 저의 고통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 제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행여나 경찰에게 잡혀가지는 않을까, 가족들을 난처하게 만들진 않을까 걱정이 된 저는 외출 때마다 하나님 말씀 책과 교회 관련 물품들을 잘 숨겨 놓고 나갔습니다. 예배에 갈 때도 혹시 누가 신고하지 않을까, 가족들이 연루되진 않을까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늘 극도의 경계심을 품은 채 지냈고, 경찰차나 경찰을 보기만 하면 심장이 튀어나올 듯 거세게 뛰었습니다. 정말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일 같았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중국 공산당이라는 이 사악한 무신론 집단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바른길을 걷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거지? 왜 하나님을 못 믿게 하는 걸까?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보면 미친 듯이 탄압하고 잡아가고 박해를 하는 걸까?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이토록 증오하는 걸까? 정말이지 너무나 사악해!’
나중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 사실의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누군가를 보살피고 감찰하면, 사탄은 바로 그 뒤를 따라간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마음에 들어 하면 사탄은 그 뒤를 쫓아가서 살펴본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얻고자 하면, 사탄은 있는 힘을 다해 훼방 놓는다. 갖가지 사악한 방식을 동원해 시험하고 방해하며 하나님 사역을 파괴하여 오직 자신만 아는 숨겨진 목적을 이루려 한다. 사탄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탄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도 얻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자기가 점령해서 통제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경배하게 하고 함께 악행을 저지르게 하려 한다. 이것이 사탄의 음흉한 속내가 아니겠느냐? … 사탄의 추악한 모습과 본질을 아주 명확히 보여 준다. 사탄이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의 뒤를 쫓아다니는 목적은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점령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모두 멸해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가져 이용하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홀연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정부가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핍박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영적인 전쟁, 사탄과 하나님이 사람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앙숙이며, 하나님을 저버리고 대적하는 악마입니다. 인류를 패괴시킨 후 사탄은 망령되게도 인류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려 했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인류를 얻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사탄은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해 왔으며, 각종 비열한 수단을 써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사탄은 제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려 가족과 저를 이간질하고, 혈육의 정과 심리 전술을 이용해 협박과 회유, 위협과 공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바로 제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부정하고, 배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그들의 노예가 되게 한 뒤, 결국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멸망당하도록 만들려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참으로 음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미친 듯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그들은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키는 마귀가 틀림없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면서 늘 자신을 정의의 선봉자나 정의의 본보기로 치켜세운다. 사탄은 정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해하고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마비시키고 미혹하고 부추기는 것이다. 사탄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악행을 지지하고 따르게 만들어 사탄과 함께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에 대항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의 음모와 계략,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여 더 이상 사탄에게 짓밟히거나 농락당하는 것을 원치 않고 사탄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사탄과 함께 징벌받고 멸망되길 바라지 않을 때, 사탄은 보살 같았던 얼굴을 금세 바꾸고 가면을 벗어던져 사악하고 잔인하고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고 사악한 그 세력에 반항하는 모든 사람을 제거하지 못해 안달이 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중국 정부의 진짜 모습을 꿰뚫어 보았고, 그들은 바로 진정한 사탄의 화신이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가장 사악한 사탄의 정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5·28’ 자오위안 사건을 이용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해 사람들을 속이고 부추겼습니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자신들과 한편에 서서 같이 하나님께 대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자오위안 사건을 조작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죄를 덮어씌운 목적은, 이를 빌미로 크리스천들을 체포하고 탄압하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천들을 일망타진해 뿌리 뽑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철저히 없애 중국을 무신(無神) 국가로 만들려는 야심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의 본질은 정말 음험하고 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영적 전쟁의 실체와 중국 정부의 사악한 본질을 알게 되자, 저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 않은가? 왜 정부가 우리를 탄압하도록 놔두시는 걸까?’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내가 예전에 나의 지혜는 사탄의 간계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 그 말을 했겠느냐? 그것이 지금 내가 말하고 역사하는 실상이 아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하나님은 일부 악령의 역사를 통해 일부 사람을 온전케 함으로써 이들이 악마의 행위를 간파하게 하고,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선조’를 알게 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야 사람이 악마와 철저히 결별할 수 있고, 자기 자손뿐만 아니라 자기 선조까지 버리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물리치려는 본뜻이 여기에 있다. 즉, 모든 사람이 큰 붉은 용의 진면목을 알 수 있도록 그 가면을 완전히 찢어 버리고 그 본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땅에서 이토록 많은 사역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며,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만유를 움직여 하나님을 위해 힘쓰게 한다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41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중국 정부라는 사악한 사탄 세력의 핍박을 이용해 하나님의 선민을 온전케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대적하고 정죄하고, 근거 없이 모함하고, 또 크리스천을 핍박하고 체포하는 중국 정부를 통해, 우리는 진리와 하나님을 증오하는 저들의 악마 본질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으로 분별하고 저버리게 되어 더는 저들에게 속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중국 정부라는 악마의 탄압을 이용해 사람들을 드러내고, 각기 부류대로 나누십니다. 두려워하는 자, 거짓으로 믿는 자, 유다 같은 자들은 중국 정부의 광적인 탄압 속에서 드러나고 도태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자는 광적인 탄압 속에서도 굳게 서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이긴 자가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자,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원망, 의문이 모두 사라졌으며 하나님의 큰 지혜와 전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참으로 사탄의 계략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어떤 국가도, 어떤 세력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저지하고, 그의 말씀에 대적하며, 그의 계획을 방해하고 망치려는 자는 종국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어떤 자가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한다면, 하나님은 그자를 지옥에 처넣을 것이다. 어떤 국가가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한다면, 하나님은 그 국가를 멸망시킬 것이다. 어떤 민족이 하나님의 사역을 반대한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온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알 수 있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권병은 그 어떤 세력도 뛰어넘을 수도 없다는 사실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중국 정부가 줄곧 미친 듯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탄압하고,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해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도록 속이고 가로막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여전히 중국 전역으로 확장되었고 중국에서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지금도 세계 각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을 받고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해 결정된 일입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간 생각이 탁 트이고 마음이 환해져,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찬미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참으로 하늘보다 높습니다. 중국 정부가 힘을 쓰도록 이용하신 것은 너무나도 지혜로우신 행사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은 참으로 실제적이라 진심으로 탄복하고 끝없이 찬미하게 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키질하실 때 걸러지는 가라지나 쭉정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가 일으킨 저 사악한 바람에 날려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알곡’이 되어 하나님께 거두어지고 싶습니다. 하나님, 전에 저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린 적이 없지만 이 광적인 핍박 속에서, 진심을 바쳐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겠습니다. 중국 정부의 사악한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를 사모하고, 광명을 따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고 난 후, 제 마음은 굳건해졌습니다. 가족들의 몰이해와 방해는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로, 하나님이 제 믿음과 충성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정성스레 마련해 주신 상황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주변 상황을 원망하지도, 상황에 얽매이지도 않게 되었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을 마련해 주시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고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해. 절대 하나님을 배반해선 안 돼!’ 그러고 난 후 저는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더 이상 예전처럼 저를 반대하거나 핍박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보고 믿지 말라는 게 아니야.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변했다는 거 나도 알아. 다만 앞으로 예배하러 갈 때는 더 조심하고 신중하도록 해.” 남편의 말에 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 하나님의 행사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진리와 정의는 모든 흑암과 사악함을 무너뜨릴 수 있고, 사탄의 사악한 세력은 종국엔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체험 가운데 연단의 고통을 겪긴 했지만, 하나님의 지혜로운 사역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좀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제 생명의 자산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광명을 따르겠다는 다짐과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음의 갈등>은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은 간증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들이 주인공의 처제가 진리를 거부한 것과 교회 사역을 망치고 방해한 갖은 악행을 근거로 진리 원칙에 따라 악인으로 출교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교회 리더였던 주인공은 마땅히 교회 사역을 보호해야 했으나 정에 끌려 처제를 감싸고 돕니다. 그 후, 그는 징계를 받아 아프게 된 것과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조금 알게 되고, 정에 흔들려 일을 처리한 결과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정'이라는 사슬을 끊고, 진리 원칙에 따라 교회에서 악인을 내쫓게 됩니다. 그러면서 진리를 실행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3)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 악인들이 받는 징벌 또한 내 공의로운 성품의 증거이자, 나아가 내 진노의 증거가 된다. 재난이 닥칠 때, 나를 대적한 모든 자는 기근에 빠지고 전염병에 걸려 슬피 울 것이며, 오랜 세월 나를 따랐지만 온갖 악을 저지른 자들 역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천만년 이래 보기 드문 재난 속에 떨어져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르면서 나에게 일편단심 충성한 사람들은 오히려 기쁘게 손뼉 치며 나의 큰 능력을 찬양할 것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한 마음으로 내가 인간 세상에 한 번도 베푼 적 없는 즐거움 속에서 살 것이다. 나는 사람의 선행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의 악행을 극도로 증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오면서 나와 한마음 한뜻인 사람들을 얻기를 기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와 한마음 한뜻이 아니었던 자들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속으로 미워했다. 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걸 보며 통쾌해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마침내 나의 날이 왔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사역은 사람을 징벌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종착지를 안배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나의 행사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행한 모든 것이 옳음을 보여 주고, 내가 행한 모든 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내 성품의 발현임을 보여 주며, 나아가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 있는 모든 생령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고 재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구도 다시는 아름다운 해와 달과 푸르른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음산하고 차디찬 암흑의 밤과 저항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원(원문: 救贖)이자 희망이며, 나아가 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의지처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오직 멸망의 재앙을 당하고 온갖 유령에게 짓밟힐 것이다. 나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사역을 행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사람들이 조금의 선행으로 나에게 보답하는 것뿐이다. 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을지라도 나는 인간 세상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다음 단계에 전개할 사역을 행할 것이다.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바쁘게 일한 결과가 이미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선행이다. 요컨대, 나는 너희가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나를 만족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엄습할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재난은 내가 일으키며 또 당연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내 앞에서 선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환난 가운데서 너희의 모든 행위가 온전히 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다. 너희의 믿음과 사랑은 다 공허하고, 두려움이나 강인함만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는 평가만 내린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너희 개개인의 모든 행위와 태도이다. 그것으로 너희의 결말을 정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밝혀 둘 것이 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동영상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3)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2)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내가 사람을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는 단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결말을 확정할 때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위, 그리고 그가 따라온 과정과 원래 지니고 있는 속성, 혹은 그의 최종적인 태도를 하나하나 나의 기록부에 적어 놓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내 손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모두 나의 배정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이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는 것이고, 그들 스스로 저지른 갖가지 악행으로 인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나의 계획은 시종일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저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말하는 대상이 점점 줄어들고, 진정으로 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내 계획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으며, 반대로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 계속 변하고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빌붙어 아부하던 모든 사람이 내게 냉담해져 결국에는 나를 문밖으로 쫓아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너희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미온적이던 데서 반감과 혐오로 바뀌어 결국에는 너희를 징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희를 징벌하는 날이 되면 나는 여전히 너희를 볼 수 있지만 너희는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 속에서 사는 것이 무료하고 답답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생활 환경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너희의 악한 말에 상처받지 않고 더럽기 짝이 없는 너희의 행위를 멀리함으로써 너희가 계속 나를 속이거나 건성으로 대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너희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너희에게 권할 것이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고,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모두에게 이로운 일과 자신의 종착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재난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 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동영상 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발췌문 2)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 당연히 하나님이 친히 해야 한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말하자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만방의 사람을 가르치고, 모든 진리를 만방의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심판’이라는 말을 언급하면, 너는 여호와가 만방에 알린 말씀이 떠오르고,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꾸짖은 말씀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씀들이 엄하긴 해도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서로 다른 상황, 즉 서로 다른 배경에서 하나님이 한 말씀일 뿐이다. 그런 말씀들은 말세의 그리스도가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 참고 설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모든 긍정적인 사물은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 사탄의 방해나 패괴,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이 존재하는 곳에는 꼭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임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곳에는 진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즉, 진리와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나타납니다. 진리가 있어야 심판과 형벌이 있고, 심판과 형벌이 있어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현현을 찾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심판의 권병이 있고, 오직 그리스도께만 패괴된 인류를 심판하실 권력이 있습니다. 이는 인자, 즉 그리스도가 바로 ‘심판의 주’임을 설명해 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으면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하며,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나타납니다. 사람은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과정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과정입니다. 패괴된 인류에게 진리는 곧 심판이자 감찰, 형벌이며,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진노가 나타납니다.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는 오롯이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전능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앎도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살아 내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면 빛과 사랑 가운데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그리스도가 진리를 선포해 심판을 시행함으로써 이루신 성과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진리이며, 다 인류에 대한 심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심판의 효과가 있습니다. 율법시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패괴된 인류에게 심판이었습니다. 은혜시대, 예수님의 말씀 역시 패괴된 인류에게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 전능하신 하나님이 심판 형벌의 사역에서 하시는 말씀도 다 인류에게는 심판입니다. 이를 통해 인류는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그분의 최고의 사랑이며, 그분의 심판과 형벌이 가져다준 것은 전부 구원과 온전케 함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과 완벽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침륜과 멸망에 빠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을 마음에 새기며 귀한 보물로 여긴다. 또한,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준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또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한 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폭로한 말씀으로 자신을 맞춰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숭상과 신임을 편취하고, 개인적인 경영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사취하고 도둑질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역하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망상한다. 시간이 흘렀으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준수해야 할 말씀을 찾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자신을 돕고 공급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생기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추측이 점점 더 심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상상은 갈수록 과장되어 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이론적 공급과 인도하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양, 식은 죽 먹기인 양, 그들의 인생 목표와 사명을 찾은 양, 새 삶을 얻은 양, 구원을 받은 양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낭랑하게 외우는 과정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을 찾은 듯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대면하는 듯했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고심을 끊임없이 깨닫고 있는 듯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경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한 듯했고, 하나님의 존귀함을 더욱 깨달은 듯했으며, 하나님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더욱 느낀 듯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인 인식에 심취되어 있는데, 마치 그들의 믿음이 증가하고, 고난받겠다는 다짐이 견고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듯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생각은 다 그들의 일방적인 상상과 추측에서 비롯되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어떤 검증도 견뎌 내지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것과 분량은 하나님이 준 시련과 검증을 전혀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들의 의지는 모래 위에 지어진 공중누각에 불과하며,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상상해 낸 성과에 불과하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공을 들인’ 이 사람들은 무엇이 참된 믿음이고 무엇이 참된 순종인지, 무엇이 참된 헤아림인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인지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모두 가져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밑천과 무기, 심지어 토대로 삼는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또 이러한 밑천과 무기를 하나님을 알아 가는 비법으로 삼고, 하나님이 주는 검증과 시련, 형벌과 심판을 맞이하고 대처하는 비법으로 삼는다.
결국 그들이 얻는 것은 여전히 종교적 색채와 봉건 미신, 전설과 기이함, 비밀스러움으로 가득 찬 하나님에 대한 정론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정의는 하늘과 하느님(원문: 老天爺)만 믿는 사람들과 찍어 낸 듯 똑같다. 하나님의 실제,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등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들의 인식과 어긋나고, 그 어떤 관계도 연관도 없으며, 심지어 완전히 상반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지 못한다.
그 진정한 원인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 알고 지낸 적이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접하고’ 사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며 경배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대하는 이러한 관점과 태도로 인해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 그들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기도를 하고 나니 너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평온해졌느냐? (네.) 사람은 마음이 평온해지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평온해지지 못하면 마음이 들뜨고 늘 다른 생각이 들어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요즘 이야기해 왔던 내용의 요점은 무엇이냐?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라.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과 관련해 첫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권병,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세 번째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에 이야기했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하느냐? 첫 번째 부분인 ‘하나님의 권병’에서 너희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 너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어느 부분이냐? (하나님께서 처음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위력에 대해 교제하실 때,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시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시며, 그것이 하나님의 본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되 욥의 생명은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부분에서 하나님 말씀의 권병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보충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고, 또 말씀으로 사람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말씀의 권병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사로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하신 것에서 사람의 생사가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으며 사탄은 이를 주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하시든 영으로 사역하시든 하나님의 권병은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교제를 듣고 나서 너희가 얻은 인식이다. 그렇지?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말했는데, 너희는 그 ‘권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나님 권병의 범위 내에서, 하나님이 행하고 나타낸 것에서 사람은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병은 언제나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권병이 크게는 만유를 주재하고, 작게는 사람의 일생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여섯 개 관문은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고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병은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권병은 하나님 신분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란 말에 대해 지금 너희는 이론적인 이해에만 머물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뭔가 실질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느냐? (저희가 아이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었고, 그 속에도 하나님의 권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위험이 닥쳤을 때 저희는 느끼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항상 은밀한 가운데 계시며 저희를 보호하셨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권병이십니다.) 아주 좋다. 잘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