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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5)



셋째 날,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났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기로 가득 찼다

〈창세기〉 1장 9절에서 11절 말씀의 첫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만 했을 뿐인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궁창 이외에 그 공간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성경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는 바로 그 공간에 또 육지가 생기고 바다가 생긴 것, 다시 말해 물과 육지가 나누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모두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에 ‘그대로 되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던 기간에 바쁘게 보냈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하나님이 손을 댔다고 기록된 것이 있더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한 것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새로운 사물이 생겨나게 했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겨났다. 순식간에, 형태가 각각인 여린 작은 생명들이 흙 속에서 꼬물꼬물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몸에 묻은 흙을 채 털어 내기도 전에 너도나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에 감사를 표하고, 그들 모두가 만물의 일원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 각자의 생명을 바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땅에는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났고, 사람들에게 제공될 각종 채소가 흙을 뚫고 무럭무럭 자라났으며, 산과 들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숲이 울창하였다. …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밋밋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풀, 채소와 나무 등 각종 식물들로 둘러싸여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게 되었다. … 공기는 풀꽃 향기로 그윽하고, 흙 내음이 물씬 풍기며, 각종 식물들은 공기를 통해 숨을 쉬면서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에 따라 모든 식물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싹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생명 여정을 시작하였다. 각자 생명의 궤적을 지키며, 만물 중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 그들은 모두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고,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창조주에게서 계속 자양분을 공급받을 것이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 곳곳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것이며,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명력을 영원히 세상에 알릴 것이다. …
창조주의 생명은 비범하고 그의 생각은 비범하며 그의 권능은 비범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이 있자 최후의 결과는 늘 “그대로 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손댈 필요 없이, 생각으로 지휘하고 말씀으로 명령하기만 하면 일은 곧 그대로 되었다. 그날 하나님은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한 다음, 뭍에 풀이 자라나게 하였고,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자라게 하였으며, 그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분류하고 열매마다 씨를 품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루어져 계속해서 이 새로운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그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그 그림의 내용을 말씀으로 표현할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의 권능을 어떻게 행사하든, 일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한 단계씩 변화되었다. 그 모든 변화와 발전은 창조주의 권능을 나타내고, 또한 창조주 생명력의 비범함과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단순한 구상도, 공허한 그림도 아니며, 생명력과 엄청난 능력을 지닌 권능이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다 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동시에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완전한 구상과 아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셋째 날 땅에 각종 식물들이 자라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계속 말씀으로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사물을 만들었다. 그는 말씀하고 명령하고 그의 권세를 행사하고 그의 능력을 보이고자 하였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한 만물과 인류를 위해 구상한 모든 것들을 예비하고 있었다. …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3)





3/2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상)

≪성경≫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상)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1. 『오랫동안 사람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방식(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떠나면 사이비이자 이단이라 한다.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 해석이 밑바탕이 된 책을 봐야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주를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을 탐독해야 하며,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을 숭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성경이 생긴 후, 사람이 주를 믿는 것은 바로 성경을 믿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탓에 사람이 주를 믿는다기보다는 성경을 믿는다는 것이 낫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낫고,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더 낫게 되어 버렸다. 이처럼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처럼 여겨 숭배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여기게 되었다. 성경이 없어진다면, 이는 생명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보며, 심지어 하나님보다 더 우러러보기도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거나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성경책이 없거나 성경의 유명한 장절이나 문구 없이 살아야 한다면 생명이라도 잃는 줄 안다. 그러기에 사람은 주를 믿으면서부터 성경을 보고 외우기 시작한다. 성경을 잘 외울수록 주를 사랑하고 믿음이 크다는 것을 더 잘 증명할 수 있으며, 성경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형제자매라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주에 대한 충성심이나 믿음을 가늠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도,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덮어놓고 성경 구절을 풀이할 수 있는 단서만 찾고 있다. 그들은 성령 역사의 동향을 좇지 않고, 줄곧 고생스럽게 성경만 연구하고 조사한다. 그 누구도 성경 밖에서 성령의 더 새로운 역사를 찾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 누구도 성경을 떠날 수 없으며, 누구도 감히 성경을 떠나지 못한다. 사람은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견해도 천차만별이고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에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성경에서 명인들의 해석이나 더 심오한 비밀들을 찾아내려 하고, 성경을 탐구하려 한다. 또한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의 배경이나 예수가 유대에서 했던 사역의 배경, 혹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비밀을 성경에서 찾아내려 한다. 사람이 성경을 대하는 관점은 ‘탐닉’과 ‘믿음’밖에 없었고, 성경의 실상과 본질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성경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묘함을 느끼며, 성경에 더욱더 ‘탐닉’하고, 더욱더 ‘믿음’을 가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세 사역의 예언을 찾고자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세에 어떤 사역을 하고,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를 찾아내려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성경을 숭상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고, 말세가 될수록 성경의 예언, 특히 말세에 관한 예언을 더욱 맹신하게 되었다. 사람이 성경을 이처럼 맹신하고 신뢰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를 찾으려는 마음은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다음과 같은 관념이 존재한다. ‘오직 성경에서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 사역의 비밀이 감춰져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과 모든 사역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다른 책이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성경은 하늘의 사역을 땅에 가져올 수 있고, 시대를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이런 관념이 생기고 나서 성령의 역사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지난날에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든,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이 없었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발걸음은 모두 성경에 ‘통제’되었고, 그로 인해 최신 사역을 확장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져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모두 성경의 유명한 장절과 문구, 그리고 수많은 예언으로 초래된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 마음속의 우상이 되었고, 사람들 머릿속의 ‘탐닉’이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경 밖에서 별도로 사역할 수 있다는 사실과 사람이 성경을 떠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믿을 수 없어 한다. 또한 하나님이 최종 사역에서 성경을 떠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믿을 수 없어 한다. 이런 사실은 사람이 생각하기도 어렵고, 믿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었고, 하나님이 더 새로운 사역을 확장하는 데에 난관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2. 『성경은 한 권의 역사책이다. 물론 그 안에는 선지자의 예언도 어느 정도 들어 있다. 선지자의 예언은 결코 역사(歷史)가 아니다. 성경은 단지 예언이나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바울이 쓴 서신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라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너는 성경이 몇 부분으로 구성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 그리고 선지자들이 쓴 예언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있는 말라기로 구약 성경 전체가 마무리된다. 즉, 여호와가 인도했던 율법시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걸쳐 구약 율법시대의 모든 사역이 종합적으로 기록되었다. 즉,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인도를 받았던 사람들이 그 당시 겪었던 일들을 모두 구약에 기록한 것이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예언하게 하여 각 나라와 족속의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였다. 자신이 행하려는 사역을 예언하게 한 것이다. 여호와가 일으킨 이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가 베풀어 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은 그 환상과 음성에서 계시를 받아 예언들을 기록했다. 그들이 행했던 이런 사역도 다 여호와의 음성을 선포한 것인데, 이는 여호와를 대신해 행한 예언 사역이다. 여호와는 그 당시 사역할 때 성육신하지 않고 영으로만 사람들을 인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그의 사역을 했으며, 그들이 묵시를 받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과 족속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 그들의 사역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알려 준 말씀을 모두 기록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을 일으킨 것은 예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후에 행할 사역이나 당시에 아직 행하지 않은 사역을 예언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기묘함과 지혜를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매우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한 말이거나 기록해 놓은 말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 이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모두 마친 후에 기록한 것으로,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하고 많은 말을 했다. 은혜시대의 일이나 말세에 세상을 멸한다는 일을 예언했다. 바로 여호와가 앞으로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 이외의 책은 모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주로 여호와가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역사했는지를 보게 된다. 구약 성경에는 주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인도한 사역이 기록되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게 함으로 바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광야로 들어가게 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 가나안에 입성한 후 그곳에서 살았던 내용도 기록되었다. 그 외에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각지에서 사역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땅인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이다. 하나님은 노아 이후부터 지상의 사람을 정식으로 인도했는데, 그때부터는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만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행한 사역은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지역이 인류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최초에 이스라엘 외에 다른 나라가 없었던 데다가 여호와가 다른 곳에서 역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 당시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이다.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했던 말은 땅에서 행할 다른 사역, 즉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성령의 역사이다. 그 선지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당시 사람들이 여호와의 역사를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세상을 창조한 것은 인류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창세기는 인류가 생겨난 후에 있게 된 책으로, 모세가 율법시대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너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후대가 볼 수 있게 기록해 놓는다면, 이것을 그들이 봤을 땐, 너희가 기록한 것이 지나간 시대에 일어난 일이므로 그들은 그저 역사(歷史)로 취급할 것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은 구약에 기록되었고, 은혜시대에 예수가 행했던 사역은 신약에 기록되었다. 그런 기록들은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하나님이 행했던 사역들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다.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행했던 사역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므로 한 권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신약은 은혜시대 사역의 산물이지만,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면 그 또한 이미 시대에 뒤처진 책이 된다. 그러므로 신약 역시 한 권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신약의 내용은 구약만큼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기록된 양도 많지 않다.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한 수많은 말씀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었지만, 예수의 말씀은 4복음서에만 일부가 기록되었다. 물론 예수도 매우 많은 사역을 했지만 상세하게 기록되지는 않았다. 신약에 기록된 내용이 적은 이유는 예수가 한 사역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지상에서 3년 반 동안 행한 사역과 다른 사도들이 한 사역은 여호와가 행한 사역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내용이 구약보다 적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3. 『신약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20~30년이 지난 뒤에 기록한 것이다.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 성경이었다. 신약 성경은 은혜시대가 되어서야 생긴 것으로, 예수가 사역할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기록하고 나서야 4복음서가 생겼다. 그리고 거기에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까지 추가되었다. 예수가 승천하고 3백여 년이 지난 뒤, 후세 사람들이 다시 그 자료들을 편집하여 하나로 묶으면서 비로소 신약책이 생겨났다. 신약은 당시 사역이 끝난 후에야 생겨난 것이지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사도 바울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그리고 후에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까지 함께 모았다. 거기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아주 큰 환상(원문: 異象)을 기록한 내용을 맨 마지막 책으로 묶었다. 그것은 말세에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후세 사람들이 배열한 것으로, 지금의 말씀과는 다르다. 지금은 사역하는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사역과 말씀이다. 또한 사람이 손댈 필요 없이 영에서 비롯된 말씀을 직접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으며, 이는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는 다르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그들의 지식 수준과 자질에 근거해 기록한 사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나 인식이 다르므로 기록한 내용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처럼 숭배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왜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역을 찾지 않느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일 뿐, 성경이 아니다. 사람이 수천 년간 성경을 읽어 왔어도 변화가 전혀 없었다.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4.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이냐?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했던 사역에 관한 것이다. 구약 성경은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뿐만 아니라 여호와가 창세한 사역도 기록한 책으로,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사역에 대한 기록은 마지막 부분인 말라기로 끝난다. 구약은 하나님이 행했던 두 가지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하나는 세상을 창조한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반포한 사역이다. 그 사역들은 모두 여호와가 행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대변하는 사역이며, 전반 사역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가 한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이는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이루어진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고, 그가 행했던 사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부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이스라엘에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게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지상에서 살 수 있게 인도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선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여호와가 지상에서 처음으로 택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며, 또한 처음으로 친히 인도해 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는 바로 여호와가 택한 첫 번째 선민이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시대 사역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들에게 역사했다. 제2단계의 사역은 신약 은혜시대의 사역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한 지파인 유대 족속에게 행해졌다. 이렇게 사역 범위를 좁힌 이유는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 전역에서만 사역하였으며, 그것도 3년 반 동안만 사역했다. 그러다 보니 신약에 기록된 내용의 양이 구약의 내용에 훨씬 못 미쳤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5. 『성경은 신구약 전서로도 불린다. 너희는 무엇을 ‘언약’이라고 하는지 아느냐? ‘구약’을 ‘언약’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여호와가 애굽 사람을 쳐서 이스라엘 사람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구원할 때, 이스라엘 사람과 세운 언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그 ‘언약’은 문 인방에 바른 ‘양의 피’를 증거로 삼았다. 여호와는 그것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면서 문 인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가 있으면 모두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고, 모두 그가 남겨 둘 대상이라고 알려 주었다(그때 여호와가 애굽의 모든 장자와 처음 난 우양을 치려고 했기 때문임). 그 ‘언약’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애굽의 사람과 가축은 모두 여호와가 구원할 대상이 아니므로 애굽의 장자들과 처음 난 우양을 모두 죽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예언서에서 애굽 백성을 중하게 벌한다고 예언한 것은 모두 여호와가 세운 언약 때문이다. 이것이 ‘언약’의 첫 번째 의미이다. 여호와는 애굽의 장자들과 처음 난 모든 가축을 죽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 남겨 두었다. 다시 말해, 여호와는 이스라엘 땅의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여호와가 그들을 전부 보존하려 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오래도록 사역하기 위해서였고, 그들과 ‘양의 피’로 언약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치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그의 선민이라고 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서 율법시대의 모든 사역을 펼치고 그의 모든 율법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열어 놓으려고 했다. 또한 그들 가운데서 선지자와 사사들을 택해 이들을 중심으로 사역하려 했다. 여호와는 시대가 바뀌지 않는 한, 자신이 택한 백성들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별도로 사역하지 않겠다고 그들과 약속을 하였다. 여호와가 세운 언약 또한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가 피로 맺은 언약이자, 그의 선민들과 맺은 언약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여호와가 사역할 적합한 범위와 대상을 택하여 자신의 시대 전체의 사역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언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언약’의 두 번째 의미이다. 전체 구약 성경에서 언약을 세우기 전의 창세기를 제외한 다른 책들은 모두 언약을 세운 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간혹 이방 족속의 일들도 일부 기록되었지만, 구약에 전반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이다. 율법시대에 기록된 책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구약’이라 불렸다. 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으로 명명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맺은 약속으로 명명한 것이다. 예수의 약속은 사람이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흘린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그것으로 예수에게서 구원을 얻고 거듭나서 더 이상 죄인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의 은혜를 받게 되고, 죽은 후에 지옥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 은혜시대에 기록된 책은 모두 약속을 맺은 후에 생겼고, 모두 약속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사역과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예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벗어나지도 않고 약속의 범위도 넘어서지 않았으며, 모두 주 안에서 체험한 형제들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들 또한 약속으로 명명하여 ‘신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두 ‘언약’은 율법과 은혜의 두 시대에만 해당될 뿐, 마지막 시대와는 무관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2> 중에서

6.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알고 해석할 수 있다면 참도를 찾은 것으로 여긴다. 사실, 그것이 정말 그렇게 간단한 것이냐? 사람은 성경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사역의 증거일 뿐이다. 너는 성경에서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두 단계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즉 창세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사역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신약 4복음서에는 예수가 땅에서 행했던 사역이 기록되어 있고, 바울이 행한 사역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모두 역사 기록에 속하지 않느냐?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한다.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일 뿐이다. 역사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역사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현재 행하려는 사역은 모르거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이유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함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네가 죽은 글귀나 역사(歷史)를 알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이상, 반드시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무방하겠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4> 중에서



8/07/2019

제19편 (1)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사람은 내 말을 삶의 근원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책무다. 사람은 반드시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대해 자기 몫을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멸망을 자초하고 스스로 난처한 상황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사람이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폐품을 내 앞에 내밀어 흔들며 나를 만족시키려 할 뿐, 자기 목숨을 교환의 대가로 내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요구하고 있다. 나는 사람이 헌신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은 모두 탐심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게 마음을 바치지 못한다. 내가 말할 때 사람들은 정신을 집중해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말을 멈추었을 때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경영’을 시작하며 내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내 말이 그의 ‘경영’의 부속물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에게 엄격했지만 그래도 인내하고 너그럽게 대했다. 내가 관용을 베풀었더니 사람은 주제를 모르며, 자신을 알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내가 인내해 준다고 오히려 나를 기만하기만 한다. 사람들 중에 나를 진심으로 헤아리는 자가 없었고, 나를 보배처럼 여겨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도 없었다. 그저 한가할 때 나를 무성의하게 대할 뿐이다. 나는 이미 사람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을 들이고 전례 없는 사역을 하였다. 나는 또 사람에게 나의 소유와 어떠함을 통해 인식과 변화를 가지라고 ‘부담’을 추가시켰다. 나는 사람을 그저 ‘소비자’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물리치는 ‘생산자’로도 만드는 것이다. 비록 내가 사람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사람에 대한 요구 기준은 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내가 아무렇게나 장난치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목적과 근거를 가지고 일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가 하는 일에서 깨닫고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자기 ‘청춘’을 낭비하거나 자기 생명을 아무렇게나 먼지를 묻혀도 되는 겉옷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자신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스스로 나의 풍부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나로 인해 사탄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나를 위해 사탄을 공격해야 한다. 내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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