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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 ―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 · 제11편

 

말씀책

내가 너의 하나님이자 너의 왕이냐? 너는 내가 네 안에서 진정으로 왕권을 잡게 했느냐? 잘 성찰해 보아라. 새 빛이 왔을 때 연구하고 거부하며, 심지어는 따르지 않고 멈추지 않았더냐? 그러니 너는 심판받아 죽음으로 떨어질 것이다. 심판과 채찍질을 당하고 성령 역사를 느끼지 못할 것이며, 급히 울부짖으면서 엎드려 경배하고, 슬피 통곡할 것이다. 나는 늘 너희에게 얘기하고 말했다. 너희에게 하지 않은 말이 없다. 잘 돌이켜 보아라. 내가 당부하지 않은 것이 있더냐? 그런데도 계속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고, 의심의 구름이 해를 가려 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자기’ 뜻이 너무 강하고 관념이 너무 크기 때문 아니겠느냐? 네 안중에 내가 어디 있더냐! 네 마음속에 내 자리가 어디 있더냐! 너는 실패해 아무런 방법도 없게 되어야 나에게 간구하는구나. 네 생각대로 한번 해 봐라! 이 사람들아! 전부 네 옛 자아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새 빛을 따라가지 못한다. 늘 예전에 깨달은 것들만 교제할 뿐 새로운 것이 없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모두 자기 안에서 살면서 나를 향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 방식이 바뀐 것을 보면 너는 틀릴까 봐 늘 조심한다.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더냐? 너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구했느냐? 너는 ‘성령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며 머리로 궁리하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 역사임을 보고서도 한바탕 논평을 늘어놓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자의 관념만 잔뜩 늘어놓고, 성령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며, 대가를 치르며 내 앞에서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건성으로 대한다. 또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도 내 앞에 와서 교제하며 구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것은 무슨 속셈이냐?

확장 열람 : 하나님을 경외한 욥의 세 가지 모습을 아십니까?


..........................


추천: 하나님 말씀 찬양 :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행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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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7/0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 CCM <사람을 지으신 의미를 되찾으실 하나님>(가사 버전)



1
이 땅에 사람을 지으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 
속죄 제물 되심으로 사람을 구원하셨네
마지막엔 사람을 정복하고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네 이것이 처음부터 그가 행하신 사역
그가 그의 나라를 세우시고 사람을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건
땅에서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의 그의 권병을 회복시키겠다는 뜻
마지막에 패역한 자를 멸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고 
땅에서 더 잘 살게 하시네
그가 세우실 나라는 자신의 나라
그가 원하시는 인류는 바로 그를 경배하는 자 온전히 순종하며 그의 영광이 있는 자
2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과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어버렸네
하나님께 패역한 원수 되고 사탄의 지배와 권세 아래 살게 되었네
하나님은 피조물의 경외를 잃었고 그들 가운데서 사역하시지 못하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함이 마땅하나
하나님께 등 돌리고 오히려 사탄 경배해 사탄이 사람 마음에서 우상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사람 마음에서의 지위와 사람을 지으신 의미를 잃으셨네
그 의미를 되찾으려면 사람을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패괴된 성품을 제거해야만 하네
마지막에 패역한 자를 멸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고
땅에서 더 잘 살게 하시네
그가 세우실 나라는 자신의 나라
그가 원하시는 인류는 바로 그를 경배하는 자 온전히 순종하며 그의 영광이 있는 자
3
사탄에게서 사람을 빼앗아 오려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셔야 하고
그래야만 서서히 사람의 본래 모습과 기능을 되찾을 수 있으며
마지막에, 마지막에, 마지막에 하나님 나라 회복시킬 수 있다네 회복시킬 수 있다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 말씀 찬양 더보기:


                        ➤ 말씀 찬양 CCM <그리스도는 영의 본래의 어떠함 나타내시네>(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성육신의 권병과 의의>(가사 버전)

                       ➤ 말씀 찬양 CCM <하나님나라의 예포 울릴 때>(가사 버전)








6/2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2)


⭐ 욥의 반응

(욥 1:20~21)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자발적으로 돌려 드린 것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했다.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이 말씀이 끝나자 사탄은 물러갔고, 곧이어 욥은 갑작스러운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먼저 소와 나귀를 빼앗기고, 종들이 살해당했다. 이어서 양 떼들과 종들이 불에 타 죽었다. 그 후에 낙타를 약탈당하고, 종들이 죽임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자녀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욥이 처음으로 받은 시험이었고 이러한 일련의 공격에 그는 고통을 받았다. 이 공격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욥의 재산과 자녀들만 목표로 삼았으며, 욥 본인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욥은 거액의 재산을 가진 엄청난 부자에서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은 그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없고, 정면으로 직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욥은 비범한 일면을 보여 주었다. 성경에는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욥이 재산과 자녀를 잃고 난 후에 보인 첫 번째 반응이었다. 우선, 욥은 놀라지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으며, 분노와 증오는 더더욱 없었다. 여기에서 욥이 마음속으로 이 모든 재앙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비롯된 일이 아니며, 보응이나 징벌이 임한 것도 아니라, 여호와가 주는 시련이 자신에게 임한 것이고, 여호와가 자신의 재산과 자녀를 거두어 간 것임을 확신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욥의 마음은 매우 차분했으며, 정신도 매우 맑았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매우 이성적이고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닥친 재앙에 대해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보통 때와 다른 냉정함을 보여 주었다. 즉,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던 것이다. ‘겉옷을 찢었다’는 것은 그가 벌거숭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의미하고,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는 것은 그가 벌거숭이로 세상에 왔고 지금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며, 갓난아기처럼 자신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욥이 자신에게 닥친 그 모든 일을 대한 태도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호와에 대한 그의 믿음은 믿음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와 순종이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내린 복에 감사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간 것에 대해서도 감사했으며, 더욱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자발적으로 돌려 드릴 수 있었다.

욥이 보여 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은 인류의 모범이다.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은 사람들이 갖춰야 할 최고 수준의 인성이었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거두어 가도 전혀 원망하는 바가 없었으며, 게다가 땅에 엎드려 하나님이 자신의 육체를 당장 거두어 가더라도 그 어떤 원망도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욥의 이러한 모든 반응은 그의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즉, 욥은 순수하고 정직하며 선하기 때문에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굳게 믿으며 흔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욥은 하나님의 인도와 만물을 통해 보게 된 하나님의 행사에 따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생각과 행실, 태도와 일 처리 원칙을 자신에게 요구하고 규범화했다. 오랜 시간 그렇게 하면서 욥은 자신의 체험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하고 실제적인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악에서 떠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욥이 고수한 ‘순전함’의 유래이다. 욥은 정직하고 단순하며 착한 인성을 갖췄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악에서 떠난 실제 체험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욥은 사탄의 이 같은 공격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이 주는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만족스러운 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의 시험에서 욥은 아주 ‘단순’하게 반응했었지만, 후세 사람들은 평생의 심혈을 기울여도 욥이 해냈던 그 ‘단순’한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욥이 보여 준 그 모습도 갖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지금 욥의 그 ‘단순’한 반응을 보고, 오늘날 말로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표명한 ‘절대 순종, 죽기까지 충성’이라는 구호나 결심을 그것에 비교해 보면, 너희는 매우 부끄럽지 않으냐?

너는 성경에 기록된 욥의 집에 닥친 이 모든 상황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이 있었으냐? 많은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 매우 놀라지 않았으냐? 욥이 맞닥뜨린 시련은 ‘끔찍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으냐? 다시 말해서, 글로 묘사된 내용만 봐도 욥에게 시련이 임했을 때의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실제 현장은 어떠했겠느냐? 이로써 욥에게 임한 것은 ‘연습’이 아니라 ‘실제 총탄을 든 정규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임한 그 시련은 도대체 누가 직접 한 것이냐? 물론 사탄이 한 것이다. 사탄이 직접 한 것은 맞으나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어떤 방식으로 욥을 시험하라고 했느냐? 말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조건을 하나 제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욥에게 그런 시험이 임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욥에게 닥친 시험을 통해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과 악독함, 그리고 사탄이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여기에서 이번 시험의 잔인함 정도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독한 본성과 추한 몰골이 이때 낱낱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사탄은 이러한 기회, 하나님이 허락한 이러한 기회를 빌미로, 욥에게 가차 없이 미친 듯이 해를 가했다. 그 해치는 수단과 잔인함의 정도는 지금의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하고 전혀 견뎌 내지도 못할 정도였다. 욥이 사탄의 시험을 당하며 그 시험 속에서 굳게 섰다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준 시련 속에서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기 위해 사탄과 대결을 벌였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대결에서 욥은 가득했던 소와 양을 잃었고 재산 전부와 자녀까지 잃었다. 하지만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버리지 않았다. 즉, 그는 사탄과의 대결에서 재산과 자녀를 잃을지언정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지키고, 사람됨의 근본을 지키려고 하였다. 성경에는 욥이 재산을 잃는 전 과정과 욥의 반응과 태도가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간단명료한 묘사에 욥이 그 시험에 아주 ‘쉽게’ 직면했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실제 장면과 사탄의 악독한 본성을 결부시켜 보면, 이 몇 마디로 묘사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장면은 이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인류를 대하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을 대하는 잔인함과 증오의 정도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의 몸에 손대지 말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사탄은 분명 사정없이 욥을 사지로 몰았을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 눈의 의인이나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다는 것은 사탄을 멀리하고 저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이 허락한 이 기회를 이용해서 모든 분노와 증오를 사정없이 욥에게 쏟은 것이다. 이것으로 욥이 육체와 마음, 외적 내적으로 받은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당시의 장면을 볼 수 없고, 그저 성경의 기록을 통해 욥이 고통받았을 당시의 심정을 미미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 욥이 지킨 순전함에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황급히 도망갔다

욥이 이러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였을까? 하나님은 감찰하고 살펴보았으며, 또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감찰하고 살펴보면서 심정이 어땠을까? 당연히 몹시 마음 아팠다. 하나님은 마음이 아파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라고 허락한 것을 후회했을까?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탄에게 하나님 앞에 있는 욥이 의롭다는 것을 확인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또한, 사탄에게 그것의 사악함과 비루함을 드러낼 기회를 준 것이다. 더욱이 욥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사탄, 나아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궁극적으로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틀림없이 정확하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느냐? 사실, 욥이 사탄을 이긴 것이 아니냐? 여기에 욥이 한 가장 멋진 말이 있다. 그 말이 바로 욥이 사탄을 이겼다는 증거이다. 그가 말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욥의 태도이다. 이어서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다. 욥에게서 나온 이런 말들로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며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칭찬은 틀리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칭찬한 그 사람이 의인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증언이다. 바로 이처럼 평범한 말 한 마디에 사탄은 간담이 서늘해졌고, 수치를 당해 황급히 도망가게 되었으며, 속수무책이 되었다. 욥의 이 한 마디에서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의 행사가 얼마나 놀랍고 위력이 있는지 보게 되었으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도가 권세 잡고 있는 사람의 비범한 매력도 보게 되었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기 위해 발산되는 강력한 생명력도 보게 되었다. 첫 번째 대결에서 사탄은 이렇게 패했다. 사탄은 이 사건으로 ‘시야를 넓히게’ 되었지만 욥에 대해 손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사탄의 악독한 본성 역시 이로 인해 변하지는 않았다. 사탄은 계속해서 욥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또 하나님 앞에 오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1)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11)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9)




6/0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1)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해서부터 인류와 접하기 시작했고, 인류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으며, 인류에게 자신의 성품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즉, 하나님은 인류와 접하면서부터 인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소유와 어떠함과 본질을 공개한 것이다. 과거의 사람이나 오늘날의 사람이 볼 수 있든 없든,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요컨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자신의 성품과 본질을 나타낸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이 인류와 접하고 사역하면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고, 표출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사람에게 뭔가를 숨기거나 감춘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내보였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은 인류가 그를 알고 그의 성품과 본질을 이해하길 바라지, 인류가 그의 성품과 본질을 영원한 비밀로 삼거나 하나님을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로 여기길 바라지 않는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인류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포하는 말씀과 나타내는 성품은 그의 뜻을 대변하고,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접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성품을 나타냈든지, 또 사람이 본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과 본질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한다. 인류가 얼마나 느끼고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깨달을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다 하나님의 뜻, 즉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요구하였는데, 이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요구는 하나님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으냐?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어떤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이 있는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할 때 나타낸다. 거기에는 그 어떤 거짓이나 위장도, 숨김이나 포장도 없다. 그런데도 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늘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냐? 왜 사람은 늘 하나님의 뜻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나타내고 보여 주는 것이 다 하나님 자신의 소유와 어떠함이고 다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성품의 구석구석 면면인데, 왜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냐? 왜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냐?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창세 이래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러니까 막 창조한 사람에게 무엇을 하든, 사람은 그저 하나님을 동반자이자 의지할 대상으로 삼았을 뿐, 하나님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즉,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사람에게 ‘동반자’로 보이는 이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라는 사실 역시 알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 당시의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천지 만물이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으며, 하나님이 어디서 왔는지는커녕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몰랐다. 물론 하나님도 그 당시에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행한 일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인류가 창조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 사역의 준비 단계부터 사람에게 일부 사역을 했으며, 사람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제사 드리는 법,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제야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간단한 개념이 생겼고,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하나님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 많이 알고, 얼마만큼 깊게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 절차에 맞춰서 사역의 진행 상황에 따라 사람에게 다양한 요구를 한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아주 진실하지 않으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으냐? 그는 인류가 창조된 초기에는 사람에게 정복 사역을 하지 않았고, 온전케 하는 사역도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는 아주 낮았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심지어 그를 거스르는 일을 해도 그는 모두 용서하고, 따져 묻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사람에게 어떤 요구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때의 요구 기준이 아주 낮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 위대하지 않다거나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이 허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을 알려면 길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발걸음을 따르고, 하나님이 인류에게 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과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된 다음에도 하나님의 참모습이 인류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겠느냐? 사람은 그러지 않을 것이며, 그럴 엄두를 내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됐다면 그것은 이미 진정한 하나님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참모습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결과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은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 그에 따라 하나님은 무지개를 증거로 삼아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운 후, 자신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땅에서 자신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점점 더 간절히 원했다. 특히, 땅에서 흑암 세력과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증거할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을 얻기 원했다. 그러한 한 무리의 사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바라던 것이자 창세 이래 줄곧 기대해 마지않던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든 사람과 언약을 세우든,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계획과 소원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 창세전부터 오래도록 바라던 것은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사람, 즉 그의 성품을 알고, 그의 뜻을 이해하고, 그를 경배할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을 얻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그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3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9)







6/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8)



하나님 자신이 행한 사역은 사람이 알아야 할 이상(異象)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 경영의 전부이자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상이다. 사람이 이 가장 큰 이상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아 가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어려우며, 또한 이 길을 간다 할지라도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사람에게 이상이 없다면 오늘날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상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지켜 주었고, 이상은 사람에게 최대의 보호막이 되었다. 너희는 앞으로도 더욱 깊이 알아 가야 한다. 3단계 사역에 담긴 하나님의 모든 뜻과 그의 지혜로운 사역의 본질을 알아야만 그것이 너희의 진실한 분량이 된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앞 두 단계 사역과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 사역만으로는 구원 사역을 전부 완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으로 사람을 철저히 구원할 수 있다 할지라도, 앞 두 단계의 사역 없이 마지막 단계 사역만으로 인류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단계 사역 중 어느 단계의 사역도 단 하나만 가져와서 온 인류가 유일하게 알아야 할 이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구원 사역은 총 3단계로 이루어진 사역이지, 그중의 어느 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이 하루라도 완성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경영은 절대로 끝날 수 없다. 하나님의 어떠함과 성품, 지혜는 모든 구원 사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미리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의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구원 사역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 성품과 어떠함의 일부를 발현하는 것이지, 매 단계에 곧바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함을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이 완성되어야 구원 사역이 모두 끝나는 이상, 사람이 하나님의 전부를 알아 가는 것 역시 3단계 사역을 떠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 단계 사역에서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부 사역에서 발현된 성품에 불과하므로 그 전이나 그 후에 발현된 성품과 어떠함은 대변하지 못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한 시기나 한 장소에서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인류의 발전 상황에 따라 점차적으로 심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 사역은 한 단계씩 하는 것이지 한 단계에서 바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닌 모든 지혜의 결정체는 어느 한 단계가 아닌 3단계 사역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모든 어떠함과 지혜는 3단계 사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단계마다 하나님의 어떠함이 있고, 하나님 사역의 지혜가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3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모든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 어떠함은 온 인류에게 실로 중요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이런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상을 경배하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은 모두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3단계의 구원 사역을 행한 이상, 사람은 이 3단계의 사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춘 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라면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자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 3단계 사역 중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 사역을 바탕으로 행한 것이지, 구원 사역 이외의 다른 사역을 따로 행한 것은 아니다. 시대나 사역의 내용이 크게 다를지라도 사역의 핵심은 변함없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구원 사역을 점차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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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 <인류가 하나님의 인도를 잃은 결과> (솔로 찬양)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음이라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니라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음이라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으며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음이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만유를 주재하신다는 믿음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아득해졌음이라
인류의 존망,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음이라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사니라…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시는지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안배하시는지
찾는 이는 극히 적음이라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기대와 멀어지고 있었음이라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니라
지난날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의 사람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음이라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소용이 없느니라
그 누구도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니라
그 누구도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니라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기에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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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2019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을 마음에 새기며 귀한 보물로 여긴다. 또한,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준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또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한 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폭로한 말씀으로 자신을 맞춰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숭상과 신임을 편취하고, 개인적인 경영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사취하고 도둑질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역하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망상한다. 시간이 흘렀으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준수해야 할 말씀을 찾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자신을 돕고 공급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생기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추측이 점점 더 심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상상은 갈수록 과장되어 갔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이론적 공급과 인도하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양, 식은 죽 먹기인 양, 그들의 인생 목표와 사명을 찾은 양, 새 삶을 얻은 양, 구원을 받은 양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낭랑하게 외우는 과정에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을 찾은 듯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하나님과 대면하는 듯했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의 고심을 끊임없이 깨닫고 있는 듯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경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한 듯했고, 하나님의 존귀함을 더욱 깨달은 듯했으며, 하나님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더욱 느낀 듯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인 인식에 심취되어 있는데, 마치 그들의 믿음이 증가하고, 고난받겠다는 다짐이 견고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듯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체험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생각은 다 그들의 일방적인 상상과 추측에서 비롯되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어떤 검증도 견뎌 내지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것과 분량은 하나님이 준 시련과 검증을 전혀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들의 의지는 모래 위에 지어진 공중누각에 불과하며,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상상해 낸 성과에 불과하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공을 들인’ 이 사람들은 무엇이 참된 믿음이고 무엇이 참된 순종인지, 무엇이 참된 헤아림인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인지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이론, 상상, 지식, 은사, 전통과 미신, 심지어 사람의 도덕관까지 모두 가져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밑천과 무기, 심지어 토대로 삼는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또 이러한 밑천과 무기를 하나님을 알아 가는 비법으로 삼고, 하나님이 주는 검증과 시련, 형벌과 심판을 맞이하고 대처하는 비법으로 삼는다.

결국 그들이 얻는 것은 여전히 종교적 색채와 봉건 미신, 전설과 기이함, 비밀스러움으로 가득 찬 하나님에 대한 정론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정의는 하늘과 하느님(원문: 老天爺)만 믿는 사람들과 찍어 낸 듯 똑같다. 하나님의 실제,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등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들의 인식과 어긋나고, 그 어떤 관계도 연관도 없으며, 심지어 완전히 상반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자양’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지 못한다.

그 진정한 원인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과 알고 지낸 적이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접하고’ 사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며 경배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대하는 이러한 관점과 태도로 인해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임을 뜻하고, 그들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7/12/2019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실패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을 받고 가장 좋은 종착지로 돌아갈 수 있는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스스로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안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조금 바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조금 봉헌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무관심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해 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