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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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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2)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다

(창 17:15~1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사역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방금 다 들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에 택한 인물로,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그가 100세,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려고 했느냐? 바로 성경에서 언급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라는 약속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의 당시 상황은 어떠했느냐? 성경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는 기록이 있다. 다시 말해, 이 노부부의 나이에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그는 땅에 엎드려 웃으며 속으로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말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한 약속을 단지 농담으로 여긴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아주 웃긴 일이었는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으면서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시다니. 게다가 내게 아이를 낳아 기르라며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다니,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아브라함은 땅에 엎드려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불가능해. 하나님께서 사람한테 농담하시는 거야. 이게 진짜일 리 없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럼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어떤 사람이었느냐? (의인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를 의인이라고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이면 다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참으로 교조적이구나! 이 일은 너희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쉽게 정의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있다.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이 일에서 보여 준 태도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어떠하냐? 막연한 면이 있지 않으냐? 그의 믿음이 크냐? 크지 않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그의 마음속 생각이 아브라함 본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를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순전히 상상에 불과하고, 아무렇게나 끼워 맞추는 것으로, 무책임한 평가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몸짓을 하나님이 보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알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자신이 정한 일을 바꾸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했을 때,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하나님은 어떤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며, 사람의 태도 때문에, 심지어 무지한 태도일지라도 자신의 계획을 함부로 바꾸거나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17장 21~2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했는지 하나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믿음이 얼마나 커야 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하나님이 행한 일과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택하기로 뜻을 정했는지, 어떤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지에 대해 사람에게 완전히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의 분량이 그 정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이 볼 때는 모두 정상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도 훈계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라는 말씀만 남겼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에 따라 점차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눈에 자신이 이루고자 계획한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다 예비하고 바로 떠났다. 사람이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계획하든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발전되어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떻게 인식하든 간섭하지 않지만, 사람이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일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봤듯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시간에 이삭을 태어나게 했다. 실제로 사람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의 사역을 막았느냐?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믿음이나 관념, 상상이 하나님의 사역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느냐? 없다! 전혀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그 어떤 환경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뜻을 정한 모든 일은 그의 계획에 따라 제때에 완성되고 이루어지며, 그의 사역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은 물론,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과 관념조차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을 거침없이 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며, 전능함의 발현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59)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70)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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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7)


💁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려고 하다
(창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창 18: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0) “아브라함이 가로되 …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 멸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은 그가 보살피는 자에게는 크게 긍휼을 베풀고 혐오하여 포기하는 자에게는 크게 노한다

성경 기록을 볼 때, 소돔 성에 하나님의 종이 10명이라도 있었느냐? 없었다! 하나님께 그 성은 남겨 둘 가치가 있었느냐? 성에서는 롯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했다. 이는 그 성에 하나님의 종이 한 사람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롯만 구원하고 소돔 성을 멸한 것이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보기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매우 원칙 있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결정 하나를 내리기 전에 장기간의 감찰과 생각의 과정을 거치며, 때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결정이나 판단도 단호하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는 그 결정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일찍이 성안에는 의인이 40명도, 30명도, 20명도 없으며, 10명조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의인은 롯 한 명뿐이었다. 성에서 일어나는 일, 성안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은 감찰하고 있었으며,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결정은 잘못될 리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하나님의 전능 앞에서 사람은 매우 무감각하며, 더없이 우매하고 무지하며, 근시안적인 존재라는 것이 더 두드러진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에서 우리가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발현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 숫자는 아주 간단하며 어떤 문제도 설명하지 않지만,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의인이 50명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관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하나님의 이 부분의 성품을 보았느냐? 더 나아가 의인이 10명밖에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의인 10명으로 인해 그 성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관용과 사랑이 아니냐? 하나님은 그 의인들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염려하여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용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결과는 무엇이냐? 아브라함이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멸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그 후, 아브라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성에는 그가 말한 의인이 10명도 없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로 뜻을 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어떤 결정을 하였느냐? 그 성에 의인이 10명도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성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그 성을 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노가 아니냐? 그 ‘노’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변하지 않느냐? 그 성품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의 발현이 아니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질의 발현이 아니냐? 하나님은 의인이 10명도 없다는 것이 확정되면 반드시 그 성을 멸할 것이며, 게다가 그 성에 있던 사람들을 엄하게 벌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고 또한 그들이 너무 더럽고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이 대화들을 분석할까? 이 간단한 몇 구절에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인을 귀하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며 관용으로 대하고 염려하는 동시에, 그 성안의 모든 패괴된 자들을 마음속 깊이 증오하였다. 이것이 크게 긍휼을 베풀기도 하고 크게 노하기도 하는 것 아니냐?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 성을 멸하였느냐? 불로 멸하였다. 하나님은 왜 불태우는 방법으로 그 성을 멸했을까? 네가 어떤 물건이 불에 타는 것을 볼 때, 혹은 네가 어떤 것을 불태워 버리려고 할 때, 너는 그 물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왜 그것을 불태우느냐? 더는 필요 없고, 더 이상 그 물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냐? 그것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으냐? 하나님이 불로 태우는 방식에는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고, 증오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불로 소돔 성을 멸할 때 바로 이런 심정이었다. 불태우는 방식은 하나님의 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성 하나를 멸하려고 했을 때, 그 일이 사람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 성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눈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남아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이 그 성을 멸하는 것은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돔 성을 멸하기 전후에 발생한 일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보았다.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너희들 대다수는 하나님의 긍휼은 어느 정도 느낀 적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노를 체험한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일찍이 크게 긍휼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희 중 그 어떤 사람이나 일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크게 노한 경우는 아주 드물고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는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이냐?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노를 표출할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크게 노할 때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혐오하고 버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존재를 증오하며 더 이상 그 사람의 존재를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노가 임하면, 그 사람이 소멸됨을 의미한다. 지금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직 그 정도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크게 노하면, 너희 중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이 이 시대에 너희 모든 사람에게 크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을 뿐, 아직 크게 노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노가 임하기를 구해도 된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노와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체험해 보면 된다. 너희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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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발췌문 7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5)

               ✔ 매일의 하나님 말씀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발췌문 44)








6/0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3)


하나님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고, 사람의 진심만을 원한다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였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했다. 즉,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를 ― 그가 사랑하는 이삭을 ―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행한 이 일은 지금에 와서 봐도 여전히 사람의 관념과는 어긋나지 않느냐? 그렇다! 하나님이 이때 행한 일은 사람의 관념에 매우 맞지 않는 것이며,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이런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믿지 못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들을 주셨다가 아들을 얻은 후에는 또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나님이 대체 뭘 하시려는 거지?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러고는 또 그에게 조건 없이 아들을 바치라고 했다. 이것은 지나친 것이냐?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 지나칠 뿐만 아니라 조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아브라함 본인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다른 생각이나 자그마한 추측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들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 너는 어떤 일에서 아브라함이 기꺼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느냐? 원문에서 뭐라고 했느냐? 이같이 기록되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3),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9~10).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 모든 행동을 하나님은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보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정말로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이전에 아브라함이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하나님을 오해했다 할지라도, 이때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진짜였으며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삭을 ― 그의 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순종을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사람이 봤을 때,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하나님의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 이삭을 바치라는 것에 ―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하였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다. 비록 그 일이 시련이고 검증일 뿐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위안을 받았고, 사람이 그에게 바친 사랑을 느꼈으며, 또한 사상 처음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던 그 찰나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애초에 이삭의 생명을 가져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바로 저지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복종은 이미 시험을 이긴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보인 행동으로 이미 충분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한 일에서 이미 결과를 얻었다.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느냐?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하였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한 것이며 하나님이 보고자 기대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냐? 비록 하나님이 다양한 배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미 이것을 바쳤어. 나는 이미 그것을 포기했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나에게 만족을 못 하시는 걸까? 왜 계속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거지? 왜 계속해서 나를 검증하시지?’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너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너에게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던 것과 같은 그런 진심과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보지 못했고, 너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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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1)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8)

     ✔ 매일의 하나님 말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발췌문 7)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30)












12/21/2019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하나님의 권능 1> 제4부분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하나님의 권능 1> 제4부분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전능신교]


👉 창조주의 권병은 시간, 공간, 지리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18절을 보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여러 차례 축복하며 그의 자손을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된다고 했느냐? 성경 구절처럼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저 형상적인 언어일 뿐이다. 하지만 이 형상적인 언어를 통해 하나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후손이 한둘이 아니고 수천수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나라를 이룰 정도가 된다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나라의 아비가 되리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많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일이냐, 하나님에게 달린 일이냐? 자신의 후손이 얼마가 될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느냐?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후손이 몇 명일지조차도 사람은 결정할 수 없다. 누가 자신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일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되든,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든 상관없이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예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적게 주었는데 네가 너무 많이 받게 되는 법은 없다. 하나님이 네게 많이 준다면, 네가 많다고 탓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으로,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으며,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지켜질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며, 사람이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보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사라지는 그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이는 그가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의 권병을 지녔으며, 창조주의 능력이 있고, 만유와 모든 생명을 주관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가능케 하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있어서는 지극히 간단한 일인 것이다. 이 일이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일이나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본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는 이러한 체득이 있느냐? 이런 것은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후예가 많지 않으냐? 얼마나 많으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으냐? 각 나라, 각 지역, 세계 각지로 널리 퍼져 있지 않으냐? 이러한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그 말씀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끊임없이 현실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권병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이는 순식간의 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한 일의 성취와 응답은 시간 차 없이 즉시 이루어진 경우이다. 이 또한 다 하나님의 권병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 권병의 또 다른 면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권병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창조주 권병의 더 실질적이고 더 훌륭한 면도 느끼게 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자마자 하나님의 권병은 그 사역을 주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것들이 점차 현실이 되기 시작하였다. 만물의 모든 것들이 다 이로 인해 다양한 변화를 맞았다. 일례로, 봄이 오면 풀이 파릇파릇해지고 꽃이 피고 나무에 싹이 튼다.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기러기들이 돌아오며, 논밭에는 사람들의 일손이 분주해진다…. 이에 발맞춰 만물도 다시 소생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룰 때, 하늘과 땅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되는데,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 만물이 다 힘쓰며 움직이게 된다.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 지배되고 안배되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각자의 기능을 다한다. 창조주의 권병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는 하나님의 권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에 범위가 정해져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에 시간적 제약이 있느냐? 하나님 권병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을 논할 수 있느냐? 크고 작음과 강함과 약함을 논할 수 있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헤아릴 수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병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축복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그의 그 축복은 지속된다. 그 지속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권병을 증거하고, 인류에게 창조주가 가진 영원불멸의 생명력이 수없이 재현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권병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말씀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어 만물과 인류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권병으로 이뤄진 일마다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하다.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병과 그가 이룬 일마다 전부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후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든, 무엇을 하든, 약속받기 전후의 그의 사정이 어떻든, 그의 생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든, 하나님은 그것을 다 환히 알고 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방금 일어난 것과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한 모든 약속을 추진하고 주관하고 실현시키는 능력과 권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그 약속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요소, 예를 들면 시간, 장소, 종족 등과 같은 요소의 범위가 얼마나 넓든,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실현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주관하는 범위는 우주 전체, 인류 전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만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빛만 관리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었으니 물만 관리하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오해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일이 몇백 년이 지난 뒤에는 사람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약속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 있고,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권병을 행하였는지, 또 만물을 어떻게 지배하고 안배했는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인류가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병과 그의 행사에서 나타난 탁월한 면면들은 만물 가운데 전해지고 칭송되고 있다. 만물은 또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를 나타내며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갖가지 미담들은 만물을 통해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만물에게 하나님이 어디에나 다 존재하고 항상 존재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될 때, 너는 하나님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시간, 지리, 공간, 그리고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범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며,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영원히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추리하기 좋아하고 상상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상상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느냐? 사람의 추리와 상상력으로 하나님 권병의 진정성과 확실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사람에게 하나님의 권병을 알게 할 수 있느냐? 진정 하나님의 권병을 깨닫고 순종하게 할 수 있느냐? 사람의 추리와 상상력은 사람 두뇌 작용의 산물일 뿐, 하나님의 권병을 아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증거하고 있다. 공상 과학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은 달이 어떤 모양인지 상상할 수 있고, 우주의 행성들이 어떠한지를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상상은 그야말로 상상일 뿐이며, 사실이 어떤지, 다시 말해서 그 일련의 사건들과 하나님의 권병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 설사 네가 달에 가 봤다 한들 어쩌겠느냐?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여러 측면으로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범위가 얼마나 큰지 상상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추리와 상상력으로는 하나님의 권병을 알 수 없다면, 사람은 어찌해야 하겠느냐? 가장 현명한 선택은 추리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데에 있어, 절대 상상력이나 추리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 하나님 자신의 신분,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은 너의 상상력으로 인식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하나님의 권병을 알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야 하나님의 권병을 진정으로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과 교제를 통해, 또한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점차적으로 체득하고 점차적으로 실증하면서 알아 가고, 점점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외에는 다른 첩경이 없다. 너희에게 상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저 앉아서 기다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논리로 추리하지 말고, 지식으로 분석하지도 말며, 과학을 근거로 삼지도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통해, 삶 속에서 접하게 되는 매사를 통해 네가 믿는 하나님이 권병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느끼고 증명하고 실증하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으며, 그의 능력은 항상 그가 진정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음을 실증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경로인 것이다. 혹자는 더 간단한 방법으로 이 목표에 이르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간단한 방법을 너희는 생각해 냈느냐? 내가 말하지만 다른 길은 없다! 그러니 너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을 통해 성실하고 착실하게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인식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모든 것은 공허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 창조주가 만물 생령을 주관하고 주재하는 사실은 창조주의 권병이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욥기에도 마찬가지로 욥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욥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욥 42:12). 인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것들은 무엇이냐? 사람의 재산이 아니냐? 이런 재산을 소유한 욥은 그 시대에 아주 부유하지 않았겠느냐? 욥은 그 재산들을 어떻게 소유하게 된 것이냐? 그의 부는 어떻게 생긴 것이냐? 그런 재산은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욥이 그 재산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여기서 우리가 언급할 주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축복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사람이 꿈에도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생 동안 재산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사람이 주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재산을 베풀어 주고 축복을 줄 수 있는 권병과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축복에는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느냐? 당연히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아브라함과 욥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실은 같지만,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축복은 다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모래와 같이,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축복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준 이 일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은 한 사람의 후손, 한 종족을 강성해지게 한 것이다. 이 일에서 하나님이 권병으로 주재한 것은 만물 생령 중에서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인류이다. 하나님 권병의 주재하에 이 인류는 하나님이 정한 범위와 속도에 따라 종족을 번식하며 생존해 나간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들 족속의 생존 능력, 번성 속도, 수명은 다 하나님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이 모든 것의 원칙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 권병의 보호하에 막힘없이 순조롭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에 대해 말하자면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어떤 시대에서도, 인류가 어떤 재난을 겪어도 아브라함의 후손은 다 죽음이라는 재앙의 위협에서 안전할 것이며, 그 족속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욥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그를 매우 부유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준 것 가운데, 숨 쉴 수 있는 각종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생명체의 수, 번식의 속도, 생존율, 얼마나 실할지 등등 이러한 구체적인 사항들도 다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 이 생명체 또한 언어 능력은 없지만 마찬가지로 창조주의 지배하에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배하는 원칙은 욥에게 약속한 축복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욥에게 준 축복에 대해 말하자면, 약속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날지라도 만물 생령을 주재하는 창조주의 권병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 아브라함과 욥에 대한 서로 다른 약속과 축복 가운데에서 구현되고, 또 한 번 인류에게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의 상상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세부적 내용은 또 한 번 인류에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가운데서만 하나님의 권병을 알 수 있다고 알려 준다.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에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권병은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궁창이 있으라 하니 궁창이 생겼고 뭍이 드러나라 하니 뭍이 드러났다’는 이런 말씀에서만 구현된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부분은 하나님이 어떻게 빛을 지속시키고, 궁창이 사라지지 않게 하며, 뭍을 영원히 물과 나뉘게 하느냐에서 구현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빛, 궁창, 뭍과 같은 피조물들을 주재하고 관리하느냐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구현된다. 인류에게 준 하나님의 축복에서 너희는 또 무엇을 보았느냐? 아브라함과 욥에게 복을 준 후에, 하나님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권병이 이제 막 행해지기 시작하였고, 그가 자신이 한 모든 말씀을 현실로 이루고, 자신이 한 말씀의 모든 세부 사항을 실현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후의 세월 속에서 그가 하고자 한 모든 일들을 계속하였다. 어쩌면 사람은 하나님께 권병이 있기 때문에 말씀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만사 만물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이런 상상은 황당한 면이 없지 않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에 대해, 만일 네가 단편적으로만 보고 하나님의 권병으로 주재하는 만물이 생존하는 각종 현상과 사실들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권병에 대한 너의 이해는 공허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러한 상상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이미 미궁에 빠져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상상 속 하나님은 명령만 내리는 기계일 뿐, 권병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욥의 사례를 통해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실제적인 면을 보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욥을 축복한 후에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고, 사자에게만 시키고 자신은 결과만 기다린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마자 만물은 하나님 권병의 인도하에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사역에 협력하여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과 사물을 예비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하나님의 권병은 온 땅에서 행해졌고, 아브라함과 욥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응답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각각의 절차와 모든 중요한 부분에 필요한 것들을 다 계획하고 예비하였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움직인 것은 하나님의 사자들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들에게만 권병을 행한 것이 아니라 만물도 움직여 하나님이 이루려는 사역에 협력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권병을 구체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너희들 가운데,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셋째 하늘이나 어떤 고정된 자리에 계시면서 그 어떤 구체적 사역을 행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다 생각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러냐? 확실히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권병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의 권병은 진실하고 실제적인 것이지 절대로 공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진정성과 실제성의 단면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그가 인류를 인도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고 구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각각의 방식, 각각의 측면, 각각의 세부 내용과 그가 이룬 모든 사역, 그리고 만물에 대한 그의 이해는 확실히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의 권병과 능력은 항상 모든 일에서 나타나고 구현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병이 실제로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시시각각 자신의 권병과 능력으로 계속 사역하며, 만물을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과 권병은 천사와 하나님의 사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을 주고, 욥에게는 또 어떤 것을 축복하였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며,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된 것이다. 설사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이나 욥에게 직접 임했을지라도, 그들이 한 것은 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 것이며, 모두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경 기록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임한 것을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무엇을 하였는지 보지 못했을지라도, 사실상 진정한 능력과 권병으로 행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사 네가 천사나 사자에게 큰 능력이 있어 그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거나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고 일련의 일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지라도, 그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일 뿐, 절대로 하나님의 권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창조주의 권병을 가진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창조주의 권병을 행하거나 나타낼 수 없다.

👉 창조주의 권병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다

이상 세 부분의 성경 말씀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그의 권병을 행할 때 원칙이 있다는 것을 보았느냐? 예컨대, 하나님은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는데,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며 사람에게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지금 사람들이 보는 ‘무지개’가 하나님이 당시에 말씀하였던 그 ‘무지개’가 아니냐? 그 무지개의 성격과 의미에 변화가 있느냐? 확신하건대 어떤 변화도 없다. 하나님은 그의 권병으로 그 일을 행하였고, 사람과 세운 언약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언약’이 언제 변할지는 물론 하나님이 결정한다.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한 후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언약’을 지키고 있다. 이 일에서 너는 또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일할 때는 매우 신중하고 원칙이 있으며 신용을 지킨다. 그의 신중함과 그가 일하는 원칙은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의 성품과 뛰어넘을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지고지상한 권병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모두 그의 권세 아래에 있을지라도,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라도 단 한 번도 자신의 계획을 파괴한 적도 방해한 적도 없다. 그는 권병을 행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정확하게 진행한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는 만물 역시 하나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의 권병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고, 그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복받는 자는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주받는 자 역시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병의 주재하에, 하나님 권병의 시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며, 하나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다. 창조주의 권병은 그 어떤 요인의 변화로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권병의 행사 원칙 역시 그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격변한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 권병의 본질인 것이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성인 것이다!

"소스 출처:
www.stockfootage.com
Schwalm Pictures https://www.youtube.com/channel/UCJDEeQRTiAsWhHFdLWZ2TTQ/featured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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