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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 <놓친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리> (솔로 찬양)



깨어나라, 형제들아! 깨어나라, 자매들아!
하나님의 날은 연기되지 않는다
시간이 곧 생명이니
시간을 잡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은 떨어져도 계속 공부하면 되지만
하나님의 날은 연기되지 않는다
기억해라! 명심해라! 하나님의 유익한 충고다
세상의 결말이 너희 눈앞에 펼쳐졌고
대재난이 곧 닥칠 것이다
너희의 생명이 중요하냐
아니면 너희가 자고 먹고 입는 것이 중요하냐?
이제는 생각을 해야 한다!
참으로 가엽도다! 궁핍하도다!
참으로 눈멀었도다! 이 잔인한 인간들아!
하나님 말씀을 그냥 흘려듣다니
하나님이 너희에게 헛되이 말씀했단 말이냐?
왜 계속 그렇게 해이하냐?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누굴 위해 이렇게 말씀하는지
생각해 본 적 없느냐?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이 바로 너희의 구세주이니라!
너희의 전능자이니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시간은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명심해라! 이 세상에 후회약은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더 말씀해야 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이 너희가 자세히 되새기고
반복해서 묵상할 가치가 없단 말이냐?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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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창세기 2:18~20)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세기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와 관련된 구절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말씀이 있다. 너희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어라.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말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만든 뒤 아담이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느냐? 글자를 알았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뒤에 아담은 각종 생물을 보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았느냐? 하나님이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느냐? 물론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각종 생물들에게 어떤 이름을 어떤 식으로 지어 주어야 할지를 알았을까? 이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 때 아담에게 어떤 것을 더해 주었냐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는데, 위의 사실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의 지혜를 더해 주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것이 핵심이다. 너희는 새겨들어야 한다! 또 한 가지 핵심이 있는데 이 역시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담이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으면 하나님 편에서는 그 생물들의 이름을 확정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내가 꼭 설명해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그의 지혜와 능력, 소유와 어떠함도 주었다. 하나님에게서 이런 것들을 받은 사람은 독립적으로 일을 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한 것들이 하나님 보기에 좋으면 하나님은 열납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올바르게 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각 생물의 이름을 고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부른 대로 하나님은 ‘인정’해 주어 그 생물의 이름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다른 의견이 있었을까? 없었다. 이것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를 가지고 일을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이 긍정적인 일을 행했다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긍정되고 인정받고 열납된다. 하나님은 아무런 평가나 비판도 하지 않는다. 이는 어떠한 인류도, 어떠한 악령이나 사탄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을 보았느냐? 사람이라면, 패괴된 사람 혹은 사탄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 앞에서 자신을 대표해 일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절대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력과 그 지위를 놓고 다투지 않겠느냐? 반드시 다툴 것이다! 이때 패괴된 사람 혹은 사탄이 아담과 함께 있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아담이 한 일을 부인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있고 독창적인 견해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담이 한 모든 일을 부정했을 것이다. “네가 ‘이것’이라고 부르겠다면 난 절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저것’이라고 부를 거야. 네가 ‘장 씨’라고 부르면, 난 ‘이 씨’라고 부를 거야. 반드시 내 우수함을 보여 줄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무슨 본성이냐? 교만이 아니냐? 반면 하나님은 어떠하냐? 이런 성품이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에 대해 이상한 행동, 반대하는 행동을 보였느냐? 분명히 말하건대 없었다!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에는 고집이나 교만이나 독선이 없다. 이 점을 위의 대목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네가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고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나타내고 드러냈는지 볼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다면 내가 방금 해석한 내용들에 대해 너희는 인정하느냐? 아담이 한 일에 대해 하나님은 대놓고 “잘했다. 옳다. 찬성이다!”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인정했다. 그는 아담이 한 일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했다. 이는 창세 이후 인류가 하나님의 당부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 행한 첫 번째 일로, 하나님을 대신해 행한 일이자 하나님을 대표해 행한 일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지혜에서 비롯된 일로, 좋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때 아담이 한 일은 인류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선명히 나타내 보인 일이었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부 소유와 어떠함과 지혜를 더해 준 것은 사람이 그를 선명히 나타내는 생명체가 되게 하려 함이었다. 또한 그러한 생명체가 하나님을 대표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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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4)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5)

 










5/2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5)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창 3:20~21)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아담, 하와와 함께 있었느냐?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대답해 보아라.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한국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이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느냐?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대만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이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모두 아주 적절한 대답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창조하여 그들을 동반자로 삼았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의식주를 돌보았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모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그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신묘막측함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낮춤과 자비,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근심과 책임과 보호만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흡사 자식을 두고 걱정하는 부모와 같았다.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진실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대한 지위를 가진 자라 자처하지 않고 가죽으로 직접 인류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 이 가죽옷으로 치부를 감추든 추위를 막든 어쨌든 하나님은 손수 그 일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생각이나 이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옷을 지어 사람의 몸을 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한 것이다. 이 일은 단순해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상상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낮춤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안하무인이었던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 한없이 높이 쳐들었던 머리를 떨구었다. 여기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한층 느끼게 되었다. 마음속 ‘위대한’ 하나님, ‘사랑스러운’ 하나님, ‘무소불능한’ 하나님은 반대로 아주 미미하고 추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이 일을 듣고 나서, 너는 하나님이 행한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얕보겠느냐? 어떤 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반대다. 그는 하나님이 진실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에 감동받는다.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볼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로 존재함을 더욱 느끼게 되고, 사람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비중과 늘 사람 곁에 있는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현재와 연결시켜 봐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위해 이처럼 소소한 일을 했고, 사람이 지금껏 감히 상상하지도, 예상치도 못한 일까지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지금의 사람에게 할 수 없을까? 어떤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본질은 꾸며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도 꾸며 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은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더해 준 것도 아니고, 시간이나 장소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한 일에서, 사람이 하찮거나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일, 심지어 하나님이 절대 할 리 없다고 여기는 아주 미미한 일들에서 진정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나타난다. 하나님은 위선적이지 않다. 그의 성품과 본질 속에는 과장, 가식, 거만, 교만이 없다. 그는 지금껏 큰소리친 적이 없다. 그는 신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돌보고 인도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든, 얼마나 느낄 수 있든, 얼마나 볼 수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확실하게 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을 사람이 알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영향을 줄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영향을 줄까? 나는 네가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봄을 더 실감하길 바란다. 그와 동시에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추측도, 의심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묵묵히 모든 일을 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진실함과 신실함과 사랑으로 모든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떠한 주저함이나 후회도 없었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보답받거나 얻으려 한 적도 없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유일한 목적은 사람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얻기 위함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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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5)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3/06/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시련과 믿음>


1
사람은 시련에서 연약하고 소극적이고 하나님 뜻이나 실행 길 알지 못해도 
하나님 사역에 대한 믿음 있어야 한다
욥은 연약하여 생일을 저주해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심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떠한 연단을 주시든 믿음을 온전케 한다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어도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2
보이지 않는 일에서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정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 사역을 잘 알지 못하거나
고통과 연단이 있을 때 모두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온전케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떠한 연단을 주시든 믿음을 온전케 한다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어도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떠한 연단을 주시든 믿음을 온전케 한다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어도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 동영상 더보기: 말씀 찬양 CCM 2020 <비범하고 위대하신 전능자>

2/19/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씀 찬양 CCM 2020 <비범하고 위대하신 전능자>


1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죠
인류가 들어 보지 못한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오랫동안 갖고 있던 것이 부지중에 사라져요
아무도 전능자의 행적을 측량할 수 없고
전능자의 비범하고 위대한 생명력을 느낄 수 없어요
전능자는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비범해요

2
전능자는 저버림 받으면서도 인류를 구원하시기에 위대하시죠
전능자는 생과 사의 의미를 알고 피조물의 생존 법칙도 알아요
전능자는 인류의 생존의 생존의 근거이고 인류를 다시 부활시키는 구속자시죠
아무도 전능자의 행적을 측량할 수 없고
전능자의 비범하고 위대한 생명력을 느낄 수 없어요
전능자는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비범해요
하나님 사역을 위해 하나님 계획을 위해
전능자의 마음은 기쁨에서 슬픔으로 슬픔에서 행복으로 바뀌고 있어요
전능자는 전능자는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비범해요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동영상 더보기:
말씀 찬양 CCM 2020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사람을 구원하는 빛이다>

12/12/2019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 제11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 제11편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신교]

모든 인류는 내 영의 감찰을 받아야 하고,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를 면밀히 성찰해야 하며, 나의 놀라운 행사를 지켜봐야 한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아들들과 백성들이 모두 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때, 나는 본격적으로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을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내가 땅에서 친히 사역을 시작할 때, 심판 시대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설 때, 나는 전 우주를 향해 말하고 전 우주를 향해 내 영의 음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천지 만물 중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나의 말로 정화하여, 더는 더럽고 음란한 땅이 아닌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나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바꾸어 내가 쓸 수 있게 하고, 진흙 냄새가 배어 있지도, 땅에 속한 냄새가 묻어나지도 않게 할 것이다. 사람은 땅에서 내가 한 말의 목적과 근원을 모색한 적이 있고, 땅에서 나의 행사를 관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참으로 내가 한 말의 근원을 아는 자가 없었고, 참으로 내 행사의 기묘함을 본 자가 없었다. 오늘날, 내가 친히 세상에 임하여 음성을 발하니 그제서야 사람은 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머릿속에 자리했던 ‘나’의 지위를 지우고 의식 속에 ‘실제 하나님’의 지위를 각인시켰다. 관념이 있고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어느 누가 하나님과 접촉하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만 주는 하나님일 뿐이다. 내가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진정으로 내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기겠느냐? 정말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느냐? 사람 마음속의 ‘나’와 실제 속의 ‘나’는 그야말로 차이가 너무 많아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내가 성육신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설령 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의 고정 관념이 아니겠느냐? 나는 날마다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다니고, 날마다 모든 이의 내면에서 운행한다. 사람이 참으로 나를 보게 되면, 나의 말 속에서 나를 알 수 있고, 내가 말하는 방식과 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본격적으로 인간 세상에 임할 때, 만물 중에 어느 것이 침묵하지 않겠느냐? 만인 중에 어느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내가 우주 세계의 곳곳을 다니면서 모든 일을 친히 안배하는데, 어느 누가 이때에 놀라운 내 행사를 알지 못하겠느냐? 나는 손으로 만유를 떠받치고 있지만, 나는 또 만유 위에 있다. 오늘날 내가 성육신하여 친히 인간 세상에 온 것이 바로 내가 자신을 낮추고 감춘다는 것의 진정한 함의가 아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나를 아주 좋다고 칭송하고 매우 아름답다고 찬미하지만, 참으로 나를 아는 자가 있느냐? 내가 오늘날 왜 너희에게 나를 알라고 하겠느냐? 큰 붉은 용을 수치스럽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냐? 나는 사람들이 위압에 의해 나를 ‘찬미’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나를 알게 됨으로 인해 나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나를 찬미하기를 원한다. 그런 찬미는 빈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렇게 찬미해야만 직접 나의 보좌에 상달되고 하늘 높이 울려 퍼질 수 있다. 사람은 사탄에게 유혹되었고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으며 ‘관념과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나는 성육신하여 친히 전 인류를 정복하고 사람의 모든 관념을 폭로하고 모든 생각을 타파할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이 다시는 내 앞에서 자기 모습을 뽐내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으로 나를 섬기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람의 관념 속에 있는 ‘나’를 철저히 제거할 것이다. 나는 나의 나라가 강림할 때, 먼저 이 단계의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백성들 가운데서 착수하였다. 큰 붉은 용 국가에서 태어난 백성은 확실히 큰 붉은 용의 독소가 조금이나 일부분만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단계 사역의 중점을 너희에게 두었다. 이는 내가 성육신으로 중국에 온 또 다른 의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며, 설령 조금 파악했다고 할지라도 아는 듯 모르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방식의 전환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내 말을 볼 수 있고 내 말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면, 사람은 다 구원받아 음부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모두 나를 알고 나에게 순종하게 되면, 그때는 바로 내가 안식하고, 사람이 내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때이다. 지금 너희는 분량이 안쓰러울 정도로 너무 작고 심지어 잡아 줘도 일어서지 못할 정도인데, 하물며 나를 알아 가는 것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내가 비록 천사들이 보냄을 받아 아들들과 백성들을 목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친히 인간 세상에 임했을 때, 천사들 역시 사역하며 목양하기 시작하였다. 천사들이 목양하는 기간에, 모든 아들들과 백성들은 시련과 목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각종 이상(異象)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다 새롭게 시작된다. 또한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기 때문에, 인성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사람에게 초자연적으로 여겨지는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운행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고(사람은 직접 신성을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초자연적이라고 여김), 사람의 관념과 뜻은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면 이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시작이므로 진입하는 데에 아직 적지 않은 부족함이 있을 것이고, 실수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날, 내가 너희를 이 단계까지 이끌어 온 이상, 나의 합당한 안배와 나 자신의 목적이 있다. 지금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고 한들 너희가 정말 알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위해 활로를 찾지 않는 자가 누가 있더냐? 자신의 앞날을 고려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더냐?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풍부하고 다채롭다 할지라도 만세 후의 오늘날이 이럴 줄을 어찌 예상했겠느냐? 설마 이것이 너 스스로 노력한 결과란 말이냐? 너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얻어 낸 것이란 말이냐? 너의 머리로 그려 낸 아름다운 그림이란 말이냐? 내가 온 인류를 이끌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나의 안배에서 벗어나 다른 활로를 찾을 수 있었겠느냐? 설마 사람의 ‘생각’과 ‘바람’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단 말이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란 말이냐? 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예상 밖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데, 이는 그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란 말이냐? 인류를 통틀어, 전능자의 눈 아래에서 보살핌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느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느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더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원했지만 오히려 죽음은 그들을 멀리 피해 갔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강자가 되길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였지만, 부지불식간에 죽는 날이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대성통곡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넘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사탄에게 사로잡혀 갔다. 내가 비록 사람들이 나를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치고 멸할까 봐 내 얼굴 보기를 무서워한다. 사람들은 참으로 나를 알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나를 무서워하고 내가 형벌을 내릴까 두려워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나를 대적하고 판단하는데, 설마 이것이 실제 상황이 아니란 말이냐? 사람은 나를 안 적이 없다. 이는 내 얼굴을 본 적이 없고 내 음성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내가 있다고 해도 모호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느냐? 나를 분명히 알고 있는 자가 누가 있느냐? 나는 백성들이 나에 대해 모호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큰 공사를 벌인 것이다.

나는 살며시 인간 세상에 왔다가 표연(飄然)히 떠나간다. 누가 나를 본 적이 있느냐? 설마 태양이 불타듯 붉다고 해서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달이 휘영청 밝다고 해서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별들이 높이 떠 있다고 해서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내가 왔을 때, 사람은 알지 못했고, 만물도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갈 때도 사람은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누가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설마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찬미로 가능하겠느냐? 들판에 피어 있는 백합이 가능하겠느냐? 하늘을 나는 작은 새가 가능하겠느냐? 숲속에서 포효하는 사자가 가능하겠느냐? 아무도 나를 완전하게 증거할 수 없다! 아무도 내가 하려는 일을 할 수 없다! 설령 한다 해도 효과는 또 어떠하겠느냐? 나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날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한다. 그러니 아무도 나의 심판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아무도 나의 심판의 실제를 벗어난 적이 없다. 내가 궁창 위에 서서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긍휼과 자비 속에서 살고 있다. 너희도 이런 상황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1992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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