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이 없는 물건짝이다 보니 자신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제 손금 보듯 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모두 그의 앞에서 ‘검열’을 받았거나 먼저 그의 승낙을 받고 한 듯 말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마저 모두 훤히 꿰뚫는 듯하다. 사람은 모두 이러하다. 오늘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본성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앞에서는 내가 하라는 것을 하지만, 내 뒤에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내 앞에 왔을 때는 또 다른 사람 같았는데,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는 듯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추태가 아니냐? 내 앞에서, 내 뒤에서 전혀 딴사람 같았던 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내 앞에서는 갓 태어난 양 같지만 내 뒤에서는 사나운 호랑이 같고 또 산속의 새처럼 ‘멋대로 뛰어다니는’ 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또 내 앞에서 의지를 다진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내 앞에서는 내 말을 찾고 갈망했지만, 뒤에서는 내 말을 싫어하고 포기한 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마치 나의 말이 그들에게는 짐이 된 듯했다. 나는 ‘원수’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내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게 용서를 구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지 않고 또 몇 번을 타일러도 고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진실하고 사람의 뜻이 아무리 간절해도 나는 분노를 띠고 사람의 행위를 외면했었다. 나는 사람이 나와 협력할 믿음이 생겨 내 앞에서 내 품에 안긴 듯, 내 품의 따스함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나는 선민들의 활발하고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어찌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내 손안에 정해진 복을 누릴 줄 모른다. 이는 무엇이 ‘복’인지, 무엇이 ‘고통’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를 참되게 추구하지 않는다.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 중에 그 누가 내 앞에서 눈같이 깨끗하고 옥같이 순결할 수 있겠느냐? 나에 대한 사랑을 맛있는 음식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이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이냐? 높은 직위와 후한 급여로 바꿀 수 있단 말이냐? 또는 너를 향한 다른 사람의 사랑과 맞바꿀 수 있단 말이냐? 설마 사람이 시련 때문에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이냐? 설마 사람이 고난과 환난 때문에 나의 안배를 원망할 수 있단 말이냐? 그 누구도 내 입의 날 선 검을 진실로 깨닫지 못했다. 그 겉면의 뜻만 알 뿐, 내면의 뜻은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 사람이 정말 날 선 검의 예리함을 봤더라면, 모두 쥐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듯 했을 것이다. 사람은 무감각하게 되어 내 말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므로, 내 말의 엄격함을 모르고, 내 말이 사람의 본성을 얼마나 많이 드러냈는지, 사람의 패괴를 얼마나 많이 심판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나의 말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알기 때문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다.
[동방번개]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유일한 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미 나타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참 도를 찾고 구하시는 분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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