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과 맞선다. ‘오랜 문화 유산’, 소중한 ‘고대 문화의 지식’, ‘도교의 학설, 유교의 학설’, ‘공자의 경전, 봉건적 예교(禮敎)’와 같은 것들이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현대의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발달한 공업, 농업, 상업은 그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고대 ‘유인원’이 가져다준 봉건적 예교만을 강조하며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대적하고, 무너뜨리고 사람을 오늘날까지 해쳐 왔다. 게다가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려한다. 사람은 봉건적 예교의 가르침을 받고 고대 문화의 지식을 물려받아 크고 작은 마귀로 물들어 버린 지 오래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접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오심을 즐겁게 맞이하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하다. 사람은 모두 얼굴에 살기가 가득하고, 여기저기에 독살스러운 기운이 잔뜩 올라와 있으며, 하나님을 육지에서 몰아내려 한다. 손에 칼을 쥔 채 진을 치고 하나님을 ‘말살’하려 한다. 항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마귀의 땅에는 우상이 널려 있다. 온 땅의 상공에는 종이를 태우고 향을 피우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하여 숨 쉬기가 힘들 정도이다. 마치 독사가 뒹굴며 일으키는 썩은 흙냄새와 같아서 구토를 유발한다. 또한, 머나먼 지옥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한 악귀의 ‘독경’ 소리는 몸서리치게 한다. 알록달록한 우상이 빼곡히 진열된 땅은 주지육림의 세계로 전락했다. 마왕은 음모를 실현한 듯 섬뜩한 웃음을 멈추지 않는데, 사람은 오히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또한 마귀에 의해 타락하여 정신이 혼미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는 것 역시 알지 못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허물어뜨리고, 하나님을 다시 욕되게 하고 암살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고 방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땅에서 인간 세상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폭로하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망치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악에 받쳐 있는 마귀가 하나님이 땅에서 그것의 정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어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추악한 몰골이 남김없이 드러나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고, 언급할 수조차 없다. 이것이 마귀의 본질이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추악한 영혼은 이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악의 앞잡이들! 속세에 내려와 쾌락을 추구하고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염량세태를 초래하고,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사람을 농락하여 성결했던 본래의 모습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하고 사악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세상에 군림하고 세상을 호령하려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방해하고, 사람을 철옹성처럼 둘러싸 가둔다. 이렇게 많은 죄업을 쌓고, 화를 불러오고도 벌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단 말이냐? 잡귀와 요괴가 세상에서 잠시 횡행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혈을 물샐틈없이 차단시켰다. 이토록 말할 수 없이 극악무도하거늘 어찌 하나님이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이 크게 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심히 가로막고 대적하니 이보다 더한 패역이 어디 있겠느냐! 크고 작은 잡귀조차 호가호위하며, 덩달아 풍파를 일으키며, 진리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한다. 패역한 자식들! 그것의 염라대왕이 ‘왕’이라고 새겨진 보좌에 오르기라도 한 듯 유유자적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구나. 진리를 찾고 정의를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개돼지,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역겨운 파리 떼를 이끌고 거름 더미 속에서 의기양양해하며 못된 수작을 부린다. 자신의 ‘염라대왕’이 가장 대단한 ‘왕’이라고 생각하며 우쭐한다. 자신이 역겨운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 것이냐? 개돼지만도 못한 부모의 힘에 기대어 하나님의 존재를 모독한다. 보잘것없는 파리가 자신의 부모는 이빨고래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보잘것없이 작고, 제 부모는 자신보다 수억 배나 큰, 더러운 개돼지임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자신의 비천함을 모른 채 개돼지의 ‘썩은 냄새’를 믿고 곳곳에서 횡포를 일삼고, 후대를 번성하겠다는 헛된 생각에 빠져 부끄러움도 모른다. 초록색 날개를 달고(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가리킴) 잘난 체하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뽐낸다. 자신의 더러움을 슬그머니 사람에게 내던지고, 오색찬란한 날개로 자신의 더러운 것들을 감추었다는 듯 득의양양해하며 참하나님의 존재를 핍박한다(종교계의 실상을 가리킴). 파리가 날개는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있어도 배 속은 불결함으로 가득 차 있고, 온몸은 독을 가진 균으로 들끓는, 작디작은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 파리는 개돼지 부모에 기대어 횡포를 부리고(하나님을 핍박하는 종교계의 관계자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믿고 참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것을 일컬음), 미쳐 날뛴다. 마치 떠돌던 유대 바리새인의 영혼이 하나님을 따라 큰 붉은 용의 나라, 자신의 소굴로 되돌아와 또다시 핍박을 시작하고, 수천 년 동안 해 온 일을 이어 나가는 듯하다. 이 인간쓰레기들은 결국에는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수천 년 후 더러운 귀신은 더욱더 ‘교활하고 간사해진’ 듯하다. 속으로 늘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겠다는 생각을 품고, 온갖 술수를 쓰며, 수천 년 전의 비극을 자신의 고국에서 ‘재연’하려 한다. 하나님은 핍박을 받다 못해 큰 소리로 부르짖을 뻔했고, 당장이라도 셋째 하늘로 되돌아가 당장 그것을 멸해 버리고 싶게 만든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기쁨과 슬픔을 알며, 그가 혐오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사람의 진입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의 진입이 빠를수록 하나님의 마음은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마왕을 꿰뚫어 볼수록 하나님과의 거리가 좁혀져 하나님의 바람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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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편의 <사역과 진입>에서 발췌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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