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한 줄기의 희미한 빛이 비치자 온 우주의 사람들이 동방의 빛을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 이상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고 동방의 빛이 시작되는 곳을 보려고 나섰다. 하지만 능력의 한계로 그 빛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 우주 아래가 온통 환해지자 모든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그제야 나의 날이 인간 세상에 조금씩 다가왔음을 알았다. 사람들이 모두 경축하고 있다. 빛이 왔으므로 사람들은 더 이상 깊이 잠들지 않고 혼미하지도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빛 비춤 아래에서 마음과 눈이 밝아져 문득 삶의 즐거움을 느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보니 동물들이 쉬고 있었다. 한 줄기 희미한 빛이 비치자 모든 것들이 새로운 생활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동물들도 동굴에서 기어 나와 먹이를 찾는다. 물론 식물도 마찬가지로 빛이 비치자 푸른 잎을 반짝이며 내가 땅에 있을 때 자신의 몫을 바치려고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빛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빛이 임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는 자신의 추한 몰골을 가리지 못할까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사람들 모두 가리는 것 없이 벌거벗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빛이 비치자 몹시 당황하고 빛이 나타남에 크게 놀랐다. 또 많은 사람들이 빛을 본 후에 크게 후회하며 자신의 더러움을 증오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므로 나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난의 연단을 받던 많은 사람들은 빛을 보자 문득 빛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는 그 빛을 다시 잃게 될까 두려워 가슴에 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빛의 출현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전에 실명하였기 때문에 빛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빛으로 인해 기쁨을 얻지도 못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는 위대하지도 않지만 천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에게 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내가 없어도 사람의 삶은 쓸쓸하지 않으며, 내가 있어도 사람의 삶에 기쁨을 더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람들이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나도 사람들에게 누릴 것을 아주 조금만 베풀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 법칙을 알게 되었을 때, 다행히도 자신을 헌신해 내게서 무언가를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이 자신의 취미에만 국한되어 있단 말이냐? 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내가 주는 물질에만 국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사람들이 나의 빛을 보지 못하면 믿음으로 나를 진실하게 사랑할 수 없단 말이냐? 설마 사람의 에너지가 정말로 지금 상태에서 더 커질 수 없단 말이냐? 설마 나를 사랑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단 말이냐?
말씀 더보기: 제19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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