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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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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2016

[동방번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예수의 비유)

예수의 비유
    1) 씨 뿌리는 비유 (마 13:1~9)
    2) 가라지 비유 (마 13:24~30)
    3) 겨자씨 비유 (마 13:31~32)
    4) 누룩 비유 (마 13:33)
    5) 가라지 비유를 설명 (마 13:36~43)
    6) 보화를 감추는 비유 (마 13:44)
    7) 진주를 발견하는 비유 (마 13:45~46)
    8) 그물을 치는 비유 (마 13:47~50)

   첫 번째, 씨 뿌리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아주 의미있다. 씨 뿌리는 것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일이다. 두 번째, 가라지의 비유이다. 무엇이 가라지인지에 관해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나 성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세 번째, 겨자씨의 비유이다. 겨자가 뭔지 너희는 다 알겠지? 만약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읽어봐도 좋다. 네 번째, 누룩의 비유이다. 많은 사람들은 누룩이 발효시키는 데에 쓰이고 사람의 일상생활에 쓰일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다음의 여섯 번째, 보화를 감추는 비유, 일곱 번째, 진주를 찾는 비유, 여덟 번째, 그물을 치는 비유, 이 모든 비유는 다 사람의 생활에서 소재를 찾은 것이고 다 사람의 현실 생활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런 비유는 사람에게 어떤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가? 이 그림은 바로 하나님이 하나의 정상적 사람이 되어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활상의 언어, 인성의 언어로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사람의 각종 생활 방식을 체험하고 목도한 후 이런 생활의 체험이 그가 신성의 언어를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는 교재로 되었는데, 물론 생활 속에서 보고 들은 이런 것도 인자의 인성 경험을 풍부하게 했다.그가 사람에게 진리를 좀 깨닫게 하려고 할 때,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좀 깨닫게 하려고 할 때 그는 위의 여러 가지 비유와 비슷한 이런 방식으로써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알려 줄 수 있었다. 이런 비유는 모두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있었고 사람의 생활과 어긋나는 일은 한 가지도 없었다.예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 농민들이 씨를 뿌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무엇이 가라지인지도 알고 무엇이 누룩인지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인류가 보화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보화를 감추는 비유도 하고 보화를 찾는 비유도 하였다.
생활 속에서 그는 어부들이 그물을 치는 것도 자주 보았는데, 등등 인류의 생활과 관련되는 이런 행위를 예수는 친히 보았고 동시에 이런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정상적인 각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하루 세 끼와 일상에서 일하고 쉬는 것을 체험하고 하나의 평범한 사람의 생활을 친히 겪으면서 다른 사람의 생활도 목도한 것이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목도하고 친히 겪을 때 그가 생각한 것은 어떻게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인지, 어떻게 자신이 더 자유롭고 더 편하게 살 것인지가 아니라 인류의 이런 진실한 생활을 체험하는 동시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쓰라림을 보았고 사탄의 패괴 아래에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의 쓰라림과 가련함과 비참함을 보았다. 그는 인류의 생활을 체험한 동시에 패괴 속에서 생활하는 인류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도 체험하였고 또한 죄 속에서 생활하는 인류가 사탄에게 시달리고 죄악에 시달려 목표와 방향이 없는 참상도 체험하였고 보았다. 예수가 이런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신성에서 보았는가 아니면 그의 인성에서 보았는가? 예수의 인성은 존재하고 살아 있는 것이어서 그는 이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었고 볼 수도 있었으며, 그의 실질 곧 그의 신성도 당연히 보았다.즉 그리스도 자체━예수, 이 사람이 본 것이다. 그가 본 이 모든 것은 그에게 그때 도성육신이 담당하는 사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비록 그 자신은 그때 도성육신이 담당할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알고 있고 그에게 임하는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죄 속에 있는 인류의 무기력함을 보았을 때, 그가 인류가 율법 아래에서 가련하게 살면서 힘없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더욱더 아팠고 그는 더욱더 절박하게 인류를 죄 속에서 구원하려고 하였다.
그가 어떤 곤경에 직면하게 되든지, 그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든지 그의 마음은 더욱더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구속하려고 굳게 생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시 말해서 예수는 더욱더 분명히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어떤 것인지, 담당한 부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인류가 더는 죄 속에서 살지 않고 동시에 하나님도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따라서 인류를 구원하는 진일보의 사역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더욱더 절박하게 그가 담당할 사역을━사람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인류를 대신해 속죄하는 것을 완성하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마음속에서 그는 인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고 자신을 희생하기를 원하였고 기꺼이 속죄제로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달가워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이 사역을 완성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그가 인류 생활의 참상을 보았을 때 그는 되도록 빨리 일분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그의 사명을 완성하려고 하였다. 그에게 이런 절박한 마음이 있었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큰 굴욕을 참아야 하는지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오직 하나의 신념밖에 없었다. 즉 그가 자신을 바치기만 하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제로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고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전개할 수 있으며 인류의 죄 속에서의 생활과 죄 속에서의 생존 상태가 곧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신념과 그가 하려고 작정한 일은 모두 인류를 구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여 하나님이 순조롭게 다음 단계 사역을 전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그 당시의 마음이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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