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하는 방식은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변동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고정불변한 것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나 정체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만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다만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성경을 초월하지 말아야 하고 성경을 초월할 수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의 ‘여김’은 그들을 단단히 낡은 율법 아래에 박아놓았고 죽은 규례에 박아놓았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느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하든지 모두 예언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한 매 단계 새 사역을 하는 동시에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계시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긴다. 본래부터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어려운 데다가 사람의 그릇된 마음과 사람의 자고 자대(自高自大)한 패역한 본성을 더하니,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사람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세심히 고찰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데,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표현이 아닌가? 이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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