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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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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2016

[동방번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하나님이 니느웨를 구원한)(하)

    (욘 4장)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여호와 하나님의 요나와의 이 대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류에 대한 조물주의 진실한 고백이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에게 조물주가 자신이 주재하는 만물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알려 주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한 바와 같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즉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 대해 대략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성 안에 살아 있는 것(사람과 가축 포함)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즉, 아이나 미성년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에 대해 손금 보듯 환히 안다는 구체적인 실증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람에게 인류를 대하는 조물주의 태도 즉, 조물주 마음속에서의 인류의 가치를 알려 주는데,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한 바와 같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 말씀은 요나를 책망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전부 실제 정황이다.
    요나가 비록 부탁을 받고 가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는 했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결코 알지 못했고 성 안의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근심과 기대도 알지 못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이 질책은 인류는 하나님이 친히 만든 것이고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심혈을 기울이고 기대를 두고 있으며 각 사람마다 하나님 생명의 공급을 누리고 있고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의 심혈과 대가로 바꿔 온 것임을 그에게 알려 주고,
하나님이 그가 친히 만든 인류를 요나가 박 넝쿨을 아끼는 것처럼 최후 시각이 이르기 전까지 절대로 가볍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그 성에 또 그토록 많은 아이와 무고한 육축들이 있다고 요나에게 알려 주는 데 의의를 두었다. 좌우도 분변치 못하고 어리석은 연령의 피조된 인류에 대해 하나님은 더욱더 그들의 생명을 그렇게 쉽게 끝내거나 그들의 결말을 정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장하여 더 이상 앞사람의 길을 걷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받지 않기를 바랐으며, 그들이 니느웨의 과거를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나님은 회개한 후의 니느웨와 니느웨의 미래를 보고 하나님의 긍휼 아래서 다시 살아가는 니느웨를 보기를 더더욱 바랐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니느웨 성에서 아직 좌우도 분변치 못하는 그 피조된 인류가 바로 니느웨의 미래이고, 그들이 니느웨의 언급하기 싫은 과거사를 짊어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서 니느웨의 과거와 장래를 간증하는 중임도 맡게 된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 진실한 고백은 인류에 대한 조물주의 긍휼을 완전하게 나타냈다.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낸 것은 ‘조물주의 긍휼’이 공허한 어휘나 입으로만 하는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인 원칙과 방식 그리고 목표가 있는 것이다. 그는 매우 확실하고 참되며 거짓이나 가식이 없다. 그의 긍휼은 이렇게 끊임없이 각 시기에, 매 시대에 인류에게 베풀고 있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요나와의 대화는 조물주가 그가 왜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지, 어떻게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관용과 인류에 대한 그의 진심을 베풀었는지를 언어로 표현한 유일한 한 단락의 서술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간결한 대화에서 표현한 것은 인류에 대한 그의 완전한 마음이고, 인류에 대한 그의 마음속 태도의 진실한 표현이자 또한 인류에게 긍휼을 널리 베푸는 구체적인 실증이다. 그의 긍휼은 인류의 선조들에게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인류의 후손들에게도 한 세대 또 한 세대 베풀어 주고 있다. 비록 하나님의 진노가 인류의 어느 구석진 곳과 어느 시대에 늘 임했을지라도 하나님의 긍휼은 멈춘 적이 없었다. 그는 그의 긍휼로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피조된 인류를 이끌고 인도하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피조된 인류에게 공급하고 자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에 대한 그의 진심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말씀한 것처럼 그는 줄곧 그가 친히 만든 만물을 아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공의로운 성품 중의 긍휼이다. 이것도 역시 조물주의 틀림없는 유일무이함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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