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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2016

[동방번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길 잃은 양의 비유)

(마 18:12~14)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것은 한 단락의 비유이다. 이 단락 말씀은 사람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여기에서 비유한 표현 방식은 인류의 언어와 문자에서는 한 가지 수사(修辭)적 방식이고 인류의 지식 범위 안의 것이다. 만일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한다면 사람은 이런 말씀이 하나님의 신분과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지만 이 말씀을 은혜시대에 인자가 발표해 내니 사람은 매우 편하고 매우 온화하고 또한 매우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었기에 그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성에서 아주 적절한 비유로써 그의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였는데, 이 마음의 소리는 하나님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대표하고 하나님이 이 시대에서 하려는 사역을 대표하며 또한 은혜시대에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 자신의 하나의 태도도 대표한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이 태도에서 보면, 하나님이 각 사람을 한 마리의 양에 비유했는데 만일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는다면 그는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그 양을 찾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때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 몸에서 역사한 하나의 원칙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이런 비유로써 그때 역사의 결심과 태도를 묘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도성육신 된 ‘우세’한 점이다. 그는 사람의 지식을 이용해 인성의 언어로써 사람에게 말씀하여 그의 염원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신성의 언어를 인성의 언어와 방식으로 사람에게 해석해 주거나 ‘통역’해 주는데, 이러면 사람에게 그의 뜻을 알고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알게 하는 데에 유리하다. 그 외에 그는 또 사람의 각도로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의 언어로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이 알기 쉬운 방식으로 사람과 대화하고 심지어 사람의 언어 지식으로 말씀하고 역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친절하고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하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도 보게 한다. 여기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께 있어서 말씀을 하고 일을 하는 데에 금기(禁忌)가 있는가?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사람의 지식과 사람의 언어 또는 사람이 말하는 방식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말씀을 하고 하려는 사역을 하며 하나님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잘못된 상상이다. 하나님이 이런 비유를 사용했는데, 이 비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실함을 느끼게 하였고 하나님의 진심도 느끼게 하였으며 그 기간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도 보게 하였다. 이 비유는 율법 아래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사람들을 꿈속에서 깨어나게 했고 동시에 한 세대 또 한 세대 은혜시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격려해 주었다. 이 단락의 비유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사람의 가치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마지막 한 마디를 보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예수의 이 말씀은 그 자신이 말씀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하늘 위의 아버지가 말씀하고 있었는가?
겉으로 보면 예수가 말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뜻은 하나님 자신의 뜻을 대표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였다. 그때의 사람들이 하늘 위의 아버지만 하나님으로 시인하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이 사람은 단지 하늘 위의 아버지가 보낸 분이지 결코 하늘 위의 아버지를 대표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가 반드시 이런 한 마디 말씀을 추가하여 사람에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느끼게 하고 이 말씀의 진실성과 정확성도 느끼게 해야 하였다. 이것은 비록 간단한 한 마디 말씀이지만 아주 마음에 와닿고, 그것은 예수의 낮춤과 숨김을 유로해 냈다.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든지 아니면 영계에서 역사하든지 그는 사람의 마음속을 가장 분명히 알고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사람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무엇으로 인해 곤혹스러워하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한 마디 말씀을 추가한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 몸에 숨겨진 문제를 두드러지게 나타냈는데, 인자가 한 말씀에 대해 사람은 모두 반신반의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말씀하는 동시에 반드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는 이런 전제를 더해야만 말씀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사람에게 그의 말씀의 정확성을 믿게 하여 말씀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평범한 인자로 되었을 때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난처하고 인자의 처지도 얼마나 난감했는지를 알 수 있고, 그때의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서의 지위가 얼마나 미소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가 이 말씀을 한 것은 사실 사람들에게 “너희는 안심하거라, 나의 이 뜻은 나 자신의 뜻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속의 그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에 대해 말하면 매우 풍자적이 아닌가? 비록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어 역사함에는 하나님의 본체가 구비하지 않은 많은 유리한 조건을 구비했지만 사람에게서 오는 의심과 저버림을 참아야 했고 사람의 마비와 둔함도 참아야 했다. 다시 말해서, 인자가 역사하는 과정이 바로 사람의 저버림을 체험하는 과정이자 역시 사람의 그와의 겨룸을 체험하는 과정이고 더욱이 그가 몸소 실천하면서 자신의 소유소시(所有所是)와 자신의 실질로써 부단히 사람의 신임을 얻고 부단히 사람을 정복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도성육신 되어 사탄과 실제적으로 싸운다고 말하기보다 하나님이 하나의 평범한 사람이 되어 그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과 한차례 승부를 펼친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이 한차례 승부에서 인자는 그의 낮춤, 그의 소유소시, 그의 사랑과 지혜로써 그의 사역을 완성하고 그가 얻으려는 사람을 얻고 그에게 있어야 할 신분과 지위도 얻었으며 그의 보좌 위로 ‘회귀’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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