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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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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016

[동방번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고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비천하게 보인다)

(욥 42:7~9)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기≫ 42장 7절에서 9절에 하나님은 욥을 그의 종이라고 언급하였다.
‘종’이란 이런 호칭으로 욥을 칭했는데,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욥의 가치를 뜻한다. 비록 하나님이 그에 대해 더 높은 호칭은 없었지만 이 호칭은 결코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욥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의 ‘종’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애칭’이다. 하나님이 여러 번 ‘내 종 욥’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욥에 대한 하나님의 기쁜 심정을 알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이 ‘종’이란 단어의 함의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이 성경 본문에서 한 말씀에서 하나님이 ‘종’이란 이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定義)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욥을 시련한 후에 처음 공개적으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욥이 한 것과 말한 것을 열납한다고 알려 준 것이며 처음 공개적으로 욥이 전에 한 것과 말한 것의 확실성과 정확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의 부정확하고 황당한 의논으로 인해 그들에게 노하였다.왜냐하면 그들은 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배경에서 살면서도 욥은 하나님에 대해 이토록 정확한 인식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제멋대로 추측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음에 화가 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욥이 한 것과 말한 것을 열납한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분노가 생겼다.
하나님은 그들의 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들에게 요구하였다.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일을 함으로 그들의 죄를 씻으라고 알려 주었다.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번제를 드림으로 그들의 과오를 만회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번제는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지만 이번의 번제는 욥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번제의 특이한 점이다. 욥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열납되었고 동시에 욥의 친구 몇몇은 오히려 욥이 시련을 받는 기간에 드러났다. 그들은 우매하고 거만한 탓에 하나님께 정죄받고 하나님의 노기를 건드려 당연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는데, 이 ‘징벌’이 바로 욥의 앞에서 번제를 드린 것이다.그런 후에 또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기를 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조치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데에 뜻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이 욥의 순전함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들의 모든 행위를 열납하지 않고 욥을 크게 열납하고 기뻐한다고 알려 주었으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고, 우매하고 거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혐오를 받고, 우매하고 거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하나님의 눈에 비천하게 보인다고 알려 주었다. 이 두 방면은 하나님이 두 부류의 사람에게 내린 정의(定義)이고 이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자 이 두 부류 사람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하나님의 논법이다. 비록 하나님이 욥을 종으로 호칭했을지라도 이 ‘종’은 하나님 눈에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권병을 부여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과오를 사해 줄 수 있게 한 사람이며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고 다른 사람보다 존귀한 사람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종’의 진정한 함의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종’으로 칭함받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2가지 확연히 다른 태도가 바로 두 부류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 눈에 귀하게 보이며,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날 수 없기에 하나님의 기쁨을 얻지 못하고 늘 하나님께 혐오를 받고 하나님께 정죄받으며 하나님 눈에 비천하게 보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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