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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2016

[동방번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화복을 따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성경에 기록된 욥의 이야기에서 언급한 적이 없는 하나의 사실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오늘 언급할 중점이다. 욥은 비록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귀로 듣지도 못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있었다. 하나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무엇인가?
바로 앞에서 말한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것이다. 이 ‘찬송’은 조건이 없고 배경이 없고 그 어떤 원인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욥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했음을 보게 된다. 그의 마음에서 생각한 것과 작정한 것과 계획한 것은 다 하나님께 털어놓은 것이지 봉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그를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무엇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이렇게 하나님께 경배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지나친 욕망도 가지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해 그 어떤 요구도 없었고 토색도 없었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은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능과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재앙을 받는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든지 재앙을 받든지 하나님의 권능과 권병은 변할 수 없기에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당연히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사람이 재앙을 받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과 권병은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고 있으며,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의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권능과 권병의 창현(彰顯)이며, 어느 각도에서 보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을 것인데, 이것은 욥이 한평생 경력하고 인식한 것이다. 욥의 이 모든 마음과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하나님의 앞에 와서 하나님께 중히 여김을 받았다. 하나님은 욥의 이런 인식을 소중히 여겼고 욥에게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소중히 여겼다. 이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게 될 모든 것을 맞이했다. 욥 자신은 하나님에 대해 요구가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요구하여 한 것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순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욥이 여겼던 자신의 직책이자 역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다. 욥은 전혀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전혀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무엇을 분부하고,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타이르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지금의 말로 말하면 바로 그에 대한 하나님의 그 어떤 진리 방면의 깨우침과 인도와 공급도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이런 인식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대견스러운 일이다. 그의 이런 표현은 하나님께 있어서 족한 것이며, 그의 간증은 하나님이 칭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욥은 비록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들은 적도 없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마음과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오한 도리만 말하고 큰소리만 치고 제물을 바치는 것만 말할 수 있을 뿐 하나님에 대해 그 어떤 진실한 인식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경외가 없는 그 사람들과 비하면 훨씬 소중하다. 그것은 욥의 마음이 순결하고 하나님에 대해 숨김이 없고 그의 인성이 성실하고 선하며 그가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인성을 구비하고 이런 마음을 구비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해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권병과 권능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데에 이를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화복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기에 사람의 걱정은 무지몽매한 이지 없는 표현이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이 사실에 대해 의심의 태도를 갖고 있는 표현이자 역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표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욥의 이런 인식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이론적 인식은 너희만큼 많은가? 하나님이 그때 한 사역과 한 말씀은 아주 적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욥에게 이런 성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실로 쉽지 않다. 그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그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런 태도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인성과 그 자신의 추구로 말미암아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성과 그의 추구는 지금 사람들이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그 시대에 하나님이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이미 그에 대해 이런 평가가 있었고 이런 정론(定論)이 있었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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