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의 균형에 대해서도 주관하고 계신다. 이 균형을 어떻게 주관하는가? 마찬가지로 식물과 비슷하다. 역시 그것들의 번식 능력, 번식 수량, 번식 빈도와 동물 중에서 맡은 그것들의 역할에 근거해 균형을 장악하고 그것들의 수량을 결정한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을 예로 말해 보자. 만약 사자의 수량이 얼룩말을 초과한다면 얼룩말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가? 얼룩말은 멸종될 것이다.
그럼 만약 얼룩말의 번식 수량이 사자보다 훨씬 적다면 그것의 운명은 어떠하겠는가? 역시 멸종될 것이다. 그러므로 얼룩말의 수량은 반드시 사자의 수량을 훨씬 초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얼룩말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또한 사자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즉, 한 마리의 얼룩말마다 얼룩말 가운데의 하나이지만 동시에 또 사자의 먹거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자의 번식 속도는 영원히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의 수량은 영원히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이래야 사자의 먹거리가 보장될 수 있다. 사자는 비록 얼룩말의 천적이지만 사람들은 늘 그것들이 오히려 한가하게 같은 곳에서 서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얼룩말은 사자의 사냥 먹이로 된다고 해서 수량이 적어지거나 멸종될 리가 없다. 사자도 자기의 ‘왕위’로 인해 가족 구성원을 증가시킬 리가 없다. 이 가운데의 균형은 바로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동물 사이에도 균형된 법칙을 제정하여 그것을 이런 균형에 도달하게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흔히 보게 되는 것이다. 얼룩말의 천적은 사자밖에 없는가? 악어도 얼룩말을 잡아먹는다!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장면도 아주 끔찍하다. 얼룩말은 보기에 아주 무력한 동물로, 사자와 같은 흉악한 본성이 없다. 사자라는 강력한 적을 만나면 얼룩말은 달아날 줄밖에 모르고 심지어 반항할 줄도 모른다. 사자보다 앞서지 못할 때는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이는 동물 세계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장면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있는가? 얼룩말이 불쌍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럼 사자가 증오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얼룩말이 얼마나 멋진가! 사자는 호시탐탐 늘 그것을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얼룩말은 바보처럼 멀리 도망치지도 않는다. 얼룩말은 사자가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거기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사자가 언젠가는 얼룩말을 잡아먹을 것인데, 얼룩말은 속으로 아는가, 모르는가? 속으로 알면서도 얼룩말은 그 땅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기묘한 일이다. 그 기묘한 일에는 하나님의 명정이 있고 하나님의 주재가 있다. 네가 얼룩말이 불쌍하게 여겨져도 그것을 구할 수 없고, 사자가 증오스럽게 여겨져도 그것을 멸할 수 없다. 얼룩말은 바로 하나님이 사자에게 예비해 준 먹거리이다. 그러나 사자가 아무리 잡아먹어도 얼룩말은 멸종될 리가 없다. 사자의 번식 수량이 아주 적고 아주 느리므로 사자는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아무리 잡아먹어도 그것의 수량은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균형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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