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오늘날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이 말을 네가 아마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신기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천연적인 것을 먼저 드러내지 말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오직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진실로 경건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하는 것은 논쟁으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구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한 “오늘날 하나님이 또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온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네가 아마 이 말에 개의치 않을 수도 있고 이 말을 아주 싫어할 수도 있으며 이 말에 매우 흥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래도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사실을 마주할 수 있고 또한 이 사실을 신중하게 고찰할 수 있으며 가장 좋기는 경솔히 단정 짓지 말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찰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은 먼저 이러한 진리를 알아야 한다. 즉 말씀이 육신 된 이상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말씀이 육신 된 이상 하나님의 발표가 있다.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된 이상 그가 하려는 사역을 가져오고 말씀이 육신 된 이상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발표할 것이며 말씀이 육신 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줄 수 있고 생명을 베풀어 줄 수 있으며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의 실질을 구비하지 않은 육신이라면 결단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확실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인지를 알아보려면 그가 발표한 성품과 말씀에서 확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인지, 혹은 참 *도(道)인지를 확정하려면 반드시 그의 실질로부터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인가의 관건은 그 실질(역사ㆍ말씀ㆍ성품 등등 더 많은 방면)에 있는 것이지 그의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약 그의 외면을 고찰함으로 인해 그 실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무지몽매이다. 외면은 실질을 결정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수 없다. 예수의 외면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외면이 아닌가? 그의 용모와 차림새로는 그의 참된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까닭은 그들이 오로지 예수의 외면만 보고 오히려 예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세심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연고가 아닌가? 나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형제자매마다 역사(歷史)의 비극을 재연하지 말고, 당대의 바리새인이 되어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지를 세심히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에 자기의 머리를 명석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는 예수를 기다리는 각 사람의 직책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영의 눈을 밝게 뜨고 그런 허황된 글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현실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언제나 마음이 들떠서 모든 것을 잊은 채 온종일 황홀경에 빠져 있지 말고, 주 예수가 하늘의 어느 한 송이 흰 구름을 타고 홀연히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여 지금까지 그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어떻게 준행하는지도 모르는 너희를 데려가기를 바라지 말라. 그래도 현실적인 것을 좀 생각해 보아라!"
* 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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