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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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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2016

[동방번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욥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까닭으로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였다)(하 3)

(욥 3:3)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나는 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 사람은 사람의 겉면을 본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실질을 알고 있지만 사람은 사람의 겉면을 보는 것으로 인해 사람의 실질을 정의한다.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할 때 그의 이 거동은 욥의 세 친구를 포함해 모든 영적 인물들을 놀라 어리둥절해지게 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왔기에 당연히 사람의 생일을 포함해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과 육체에 감사해야지 저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터득할 수 있고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그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도 이 터득은 신성불가침한 것이고 언제든 바뀔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욥은 ‘상규에 어긋나게’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는데, 그의 이 거동이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금지구역에 난입한 것이니 사람의 이해와 동정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욥의 ‘의’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 ‘욥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방종”이 생겨 감히 이렇게 겁없이 함부로 행동하여 여기서 그의 여생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보살핌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가 태어난 그 날이 멸망하였더라면이라고 저주한 것 같은데,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이런 겉면의 현상은 사람에게 욥의 이 거동을 정죄할 증거를 주었지만 누가 욥의 그때의 진정한 생각과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겠는가? 또 누가 욥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겠는가? 여기의 속사정과 연유는 하나님만 알고 또한 욥 본인만 알고 있었다.
    사탄이 손을 뻗쳐 욥의 뼈를 상하게 할 때 욥은 마귀의 손아귀에 있었는데 벗어날 수가 없었고 반항할 힘도 없었으며, 그의 몸과 영혼은 초강도의 극심한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극심한 고통’은 그로 하여금 육체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미소함과 무력함과 연약함을 깊이 느끼게 하였고,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인류를 염려하고 보살피는가의 심정도 깊이 깨닫고 이해했다.마귀의 손아귀에서 그는 속된 인간이 그 시각 뜻밖에도 이처럼 무력하고 연약함을 체험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치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고 숨은 것을 느끼는 듯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완전히 사탄의 손에 넘겼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더욱 그를 위해 마음 아파하였으며, 그의 아픔으로 인해 아파하고 그의 슬픔으로 인해 슬퍼하였다…… 욥은 하나님의 아픔을 느꼈고 하나님의 아까워함도 느꼈다…… 그는 더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고 더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더욱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고통받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각 욥은 그저 이 속된 인간에서 애써 벗어나고만 싶었고 더는 이 육체가 그에게 가져다주는 아픔을 참고 싶지 않았다. 이러면 하나님이 더는 그의 아픔으로 인해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육체의 아픔을 참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께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음’으로 초래된 고통도 참아야 했다. 이 이중적인 아픔은 하나는 육체에서 온 것이고 하나는 심령에서 온 것인데, 욥으로 하여금 가슴이 찢어지고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을 감당하게 하였고 또한 그로 하여금 속된 인간의 극한이 그토록 사람을 어찌할 수 없게 하고 무력하게 하는 것임을 느끼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고 사탄을 증오하는 마음도 따라서 더욱 강렬해졌다. 그 시각 욥은 자신이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지언정,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지언정 하나님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를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증오하기 시작했고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이 태어난 날을 싫어하고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까지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는 그의 생일과 그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던 것이다. (욥 3:3~4)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욥의 말 속에는 자신에 대한 증오가 섞여 있었다.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또 하나님이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에 대한 자책과 빚짐도 섞여 있었다.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이 두 구절의 말은 욥의 그때 심정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표현했으며 또한 욥, 이 사람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완벽하게 각 사람에게 나타냈다. 동시에 욥이 소원한 것처럼 욥의 믿음과 순복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는 그 시각 진정한 승화(昇華)를 얻게 되었는데, 물론 이 ‘승화’는 바로 하나님이 이루려고 예기했던 효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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