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하나의 마음이 있어 그를 동반할 수 있고 그의 경영을 계속하도록 그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하나의 소원일 뿐이고 하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은 단지 그에게 순복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해 이해와 인식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표준에━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과 합심하는 데에 전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보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을 견뎌 낸 것도 보았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진심과 순복을 열납하였을지라도 그는 아직 하나님의 지심인(知心人)이 되기에 부족했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 부족했으며 하나님과 합심하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데에 전혀 이를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고 여전히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로울수록, 안타까울수록 되도록 빨리 그의 경영을 계속하고 되도록 빨리 한 무리 사람들을 선정하여 얻음으로 그의 경영 계획을 이루고 그의 뜻을 이루어야 했는데, 이것은 시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변하지 않은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이다. 하나님은 시초에 인류를 창조해서부터 이미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이해하고 알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이 그와 동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하나님의 이 마음은 여태껏 바뀐 적이 없다. 아직도 얼마 더 기다려야 하든지, 앞길이 얼마나 간고하든지 또한 하나님이 바라는 목표가 얼마나 아득히 멀든지 하나님은 인류 몸에서의 기대를 여태껏 바꾼 적이 없고 또 여태껏 포기한 적도 없다. 지금 내가 이렇게 말하니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좀 느꼈는가? 아마 깊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텐데, 천천히 느껴보아라!』
<말세 그리스도의 발표(선집)>에서 발췌
말씀 더 보기: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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