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대하는 인류의 여러 가지 태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는지는 사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사람을 대하고 처리하는지도 결정한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일부 방식을 열거할 테니 너희가 하나님을 대하는 이런 방식과 태도가 맞는지 틀리는지 좀 들어보아라. 우리 다음 7가지 부류 사람의 표현을 보도록 하자.
1.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황당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세상의 전설에서 들은 보살이나 성자와 같아 사람이 만나면 큰 절을 세 번 올리고 식후 향을 한 대 피워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매우 감사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항상 이런 충동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지금 믿고 있는 하나님이 그들 마음속에서 동경하는 거룩한 자와 마찬가지로 ‘만나면 세 번 절하고 식후 향을 한 대 피우는’ 그들의 이런 대우법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토록 바란다.
2.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중생을 제도하고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생불’로 여기고,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생불’로 여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부처로 여겨 섬긴다. 비록 향을 피우지 않고 절을 하지 않으며 제물을 바치지 않지만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부처’이다. 단지 그로 하여금 선을 행하고 베풀게 하며 살생하지 않고 남을 욕하지 않게 하며 겉으로 착실하게 살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할 뿐인데, 이는 바로 그의 마음속의 하나님이다.
3.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이 숭배하는 위인이나 유명인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위인이 어떻게 말하기 좋아하는지, 어떤 어조로 말하는지, 말할 때 어떤 단어를 쓰는지, 어떻게 어휘를 사용하는지, 어떤 말투인지, 어떻게 손짓하는지, 어떤 언행인지, 어떤 행동인지, 이런 것은 전부 다 그가 모방하려는 것이고 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4.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의 통치자로 여기며, 그분이 지고지상한 분이고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분이며 만약 누군가 어기면 그분의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이런 통치자를 숭배하는 것은 그 통치자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통치자의 그 사상과 자세, 통치자의 그 권세와 본성, 심지어 통치자의 취미와 사생활까지도 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으로 되었고 그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와 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도 하나의 통치자로 여겨 숭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황당한 믿음법이다.
5.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특별히 믿고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너무 얕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별로 많은 경력이 없음으로 인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그의 우상으로 여겨 경배한다. 이 우상은 그의 마음속에서 바로 그의 하나님이다. 즉, 그가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려는 대상이고 그가 경외하려는 대상이며 또한 그가 따르고 모방하려는 대상이다. 그는 하나님을 그의 우상으로 여기고 이 우상을 그가 일생 동안 따르려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를 모방하고 겉으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을 모방하여 매우 유치해 보이는 일들과 단순하고 성실해 보이는 일들을 자주 한다. 심지어 그는 이 우상을 그와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나 친구로 여겨 따른다. 그는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6. 한 부류의 사람은 설령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도를 많이 들었을지라도 그들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유일한 취지는 바로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거나 실제에 맞지 않는 자랑과 찬미를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런 대우법이 필요한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또한 만약 그렇게 하나님을 대하지 않으면 수시로 하나님을 거스를 것이고 수시로 하나님께 득죄할 것이며 그들의 ‘득죄’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을 처벌하실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다.
7. 그리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정신적 의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이 인간 세상에 살면서 사람은 평안과 기쁨이 없고 위로받을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은 후 속으로 기뻐하고 다행스러워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정신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마침내 그들의 정신을 의탁할 수 있는 하나님을 찾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인 후, 하나님을 따른 후 그들의 정신이 즐겁기 시작하였고 생활이 충실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이방인처럼 매일 취생몽사하지 않고 짐승처럼 살지 않으며,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하나님이 그들의 정신적 필요를 아주 잘 만족시키고 그들의 심령과 정신에 매우 큰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여긴다. 부지중에 그들은 자신의 정신을 의탁할 수 있고 자신의 정신과 온 가족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런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단지 정신적 의탁만 만족시키면 된다고 여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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